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05화 (105/327)

105. 미역국이 보약입니다.

“여진인들에게서 초피(貂皮)를 사는 이유가 붓을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초피로 외투를 만들어 입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겨울옷으로 초피로 만든 외투를 입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 나이기온 옷을 겨울에 입으니 이제 초피로 만든 옷을 입지 않는 것이군요.”

“네. 형수님. 그러니 초피의 가격이 엄청나게 내려갈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초피를 구하려고 할 테지만, 초피를 다시 중국에 들고 가 파는 것도 귀찮으니 아예 초피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군요.”

이 초피 가죽은 여진의 토산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물품이었는데, 조선 왕실에 초피로 만든 외투가 유행했을 때는 초피 1장 가격이 소 한 마리 가격에 육박할 정도로 비싼 사치품이었다.

하지만, 닭털과 오리털을 넣어 만든 나이기온 옷이 유행하자, 조선 왕실과 종친들이 초피 외투를 입지 않게 되었고, 수요가 없어졌으니 가격이 내려갈 일만 남은 것이었다.

때문에 초피로 한몫 잡던 변경 상인들은 갑자기 작년 겨울부터 조선으로 초피가 팔리지 않아 의아해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생긴 변화는 가까운 도성 밖 왕십리는 물론이고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버님이나 작은형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아, 둘째 도련님은 동서와 같이 아예 본가로 들어왔답니다. 그 건번의 일이 끝나고 영덕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문경에서 돌 숯 캐는 일을 다시 맡게 되었답니다.

“그거 다행입니다. 큰형이 의주에 가고 제가 한양에 있으니 아버지가 적적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작은형이 들어왔으니 적적하지는 않으시겠습니다.”

“뭐 평상시와 같습니다. 다른 것은 겨울에 태어난 금동이가 이제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같이 놀아주시는 시간이 늘긴 하셨습니다.”

형수는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나이가 차고 혼례를 치룬지 4년이 넘어가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큰형수는 아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동생이 먼저 후손을 보았기에 조급증이 생겨 물설고 낯선 변방 의주로 형수가 올라가는 것이었다.

“제가 저녁으로 형수님 몸에 좋은 음식을 올리겠습니다.”

의기소침해져 있는 큰형수를 위해 한명회 대감 집으로 향했다.

“정말, 말린 미역만 있으면 되겠습니까?”

예전에 필요한 재료가 있으면 언제든 와서 가져가도 된다고 했기에 조선 최고 부자의 광을 내 식재료 창고처럼 마음껏 쓰고 있었다.

“네. 이것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청지기는 내가 와서 음식 재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뭔가 진귀하거나 비싼 재료를 챙겨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비쩍 마른미역만 책 한 권 정도 챙기자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 책 한 권 정도 분량의 말린 미역이 100인분 이상의 분량이었다.

미역은 그 시초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먹어왔는데, ‘당서’와 청나라 때 쓰인 ‘길림외기’에는 함흥 앞바다와 함경도 앞바다에서 나는 미역이 최고의 미역이라고 쓰여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미역에는 철분과 칼슘, 아이오딘(요오드) 성분이 풍부해서 피를 많이 흘린 후나 기력이 떨어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는데, 출산하며 피를 흘리고 기력이 떨어진 임산부에겐 최고의 음식이었다.

물론, 출산 후가 아닌 임신 전에 먹어도 좋은 식재료였다.

미역을 챙겼고, 오늘 소를 잡았다는 백정을 찾아 소고기 양지살도 구매했다. 그러곤 가패의 불판을 만들어 줬던 대장간에 들러 무쇠로 만든 작은 솥과 고기구이를 위해 특별히 만든 솥뚜껑 2종도 챙겨왔다.

“형수님 이 작은 솥과 솥뚜껑은 형에게 드리면 될 것입니다. 화로에 국을 끓이기 쉽게 만든 솥과 솥뚜껑이니 형이 알아서 쓸 것입니다.”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제게 미역국을 해주시려는 겁니까?”

“네. 출산 후에도 좋지만, 회임 전에도 먹어주면 몸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말린 미역은 휴대하기 쉬우니 의주에 가서도 이렇게 조금씩만 뜯어 물에 불린 후 국을 끓여 드시면 됩니다. 지금 이 작은 용량이 3인분은 될 것입니다.”

“이 작은 것이 3인분은 된다구요?”

형수는 직접 미역국을 끓여본 적이 없는지 말린 미역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 같았다.

“네. 말린 미역을 물에 불리면 크기가 10배로 늘어난답니다. 절대 말린 미역을 그대로 먹으면 안 됩니다.”

현대에서도 미역국을 한 번도 끓여보지 않은 자취생이 먹을 게 없어 말린 미역을 먹다 응급실에 실려 간 일도 있었다. 그 정도로 말린 미역을 그냥 먹는 것은 위험했다.

말린 미역을 물에 불리며, 소고기 양지도 물에 담그어 핏물을 뺐다.

핏물 뺀 양지를 손으로 꾹꾹 눌러 물기를 제거하곤 잘게 잘라 참기름에 볶았다.

이후 물에 충분히 불어난 미역을 넣어 같이 볶았다.

미역을 너무 익힌다 싶을 정도로 볶았고 마늘과 간장, 액젓을 넣어 충분히 볶아주다 물을 넣었다.

“미역국은 끓인 후 바로 먹는 것보다 다음 날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합니다. 미역 안에 있는 맛있는 성분들이 시간을 두고 한 번 더 끓였을 때 녹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일이 끓여두었다가 다음 날 먹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물을 넣기 전에 이렇게 눌어붙을 정도로 볶아서 최대한 미역 맛을 우려내야 합니다.”

“아하 그래서, 미역국은 한 번에 많이 끓여서, 이틀 사흘 연속으로 먹었던 것이었군요.”

“네 맞습니다.”

어머니들이 한번 끓여서 며칠 연속 자식들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건 끓이면 끓일수록 더 맛있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계속 같은 국이 나온다고 어머니께 토를 달면 안 되는 일이었다.

미역국을 사나흘 계속 주는 것은 끓이면 끓일수록 더 맛있어지기 때문이지, 어머니가 귀. 찮. 아. 서. 계속 같은 미역국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미역국은 끓이면 끓일수록 더 맛있어진다는 걸 반드시 명심하자.

맑은 소고기 기름이 동글동글 띄어져 있는 뽀얀 미역국을 큰형수에게 올리고 마무리로 후춧가루를 두 번 쳐주었다.

“그 귀한 호초를...”

“형수님. 미역국의 담백한 맛에 호초 특유의 향과 맛이 더해져 맛이 어울리게 됩니다. 미역국과 호초는 아주 궁합이 좋습니다.”

홍 씨는 막내 도련님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들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고, 눈물도 찔끔 나올뻔했다.

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안 계신 전씨 집으로 시집을 왔기에 공식적으로는 집안의 안주인이긴 했으나, 시아버님에게는 이미 첩이 있었고, 나중에는 첩이 둘로 늘어나 은근한 견제를 하며 집안 살림을 챙겨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안주인이긴 했으나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안주인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집을 벗어나 한양에 오니 막내 도련님이 마치 자식처럼 식사를 챙겨 봉양해 주니 그제야 전씨 집안의 웃어른으로 대접받는구나 싶어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나올뻔했다.

“형수님. 국이 식겠습니다. 어서 드셔보십시오.”

홍 씨는 나올뻔한 눈물을 참고 숟가락을 들었다.

후춧가루를 휘저어 국물 맛을 보니 호초와 미역국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막내 도련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소고기 양지가 내는 육향과 바다의 내음이 담긴 미역, 그 둘을 아우르겠다는 듯이 들큰한 향을 내는 호초의 어울림은 입뿐만 아니라 속도 시원하게 해주었다.

“정말 국물맛이 끝내주는군요. 이게 호초의 맛인가 봅니다.”

홍 씨는 문경에서 일꾼들을 데리고 올라오며 신경 쓸 일이 많아 입맛이 떨어졌었는데, 미역국의 풍부한 맛에 입맛이 솟구쳤다.

막내 도련님이 보고 있었음에도 국에 밥을 말아 백김치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워 버렸다.

“달달한 것을 먹고 이 시원한 미역국을 먹으니 속에 차오르던 울화가 사라지며 개운해지는 듯하군요.”

“그거 다행입니다. 형수님이 맛있게 드시니 제가 다 기쁩니다.”

원종은 가수저라와 빵을 먹었음에도 미역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다 먹는 형수를 보자 여자에게는 디저트 배와 밥 배가 따로 있다는 말이 진짜인 것 같았다.

“의주로 가시게 되면, 변경이라 음식이 여기와는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이렇게 미역국을 끓여 드십시오. 그리고, 여진족들이 있으면 말이나 양의 젖을 파는 이들도 있을 것이 온대, 젓을 끓여 따뜻하게 드시게 되면 몸에 기운이 나실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알겠습니다. 도련님께 조카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요.”

***

“언년아. 어제 내가 이야기한 것은 다 적었느냐?”

큰형수가 한양으로 올라올 때 문경에 있던 언년이도 따라 올라왔는데, 이제 다시 언년이를 달고 다니며 레시피나 여러 가지 일들을 기록하게 할 참이었다.

“네. 도련님. 다 적었습니다. 헌데, 오늘도 미역국인가요?”

“미역국이긴 하나 좀 색다른 국일 것이다.”

아침상에 어제 끓인 미역국을 먹은 형수도 점심으로 색다른 미역국을 해준다는 소리에 관심을 가졌다.

미역을 활용한 요리의 시작은 말린 미역을 물에 불리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그리고 담아두었던 오이지를 가지고 왔다.

오이가 나는 여름이었다면 생 오이를 쓰면 좋았을 터지만, 온실이 없는 조선에서 3월에 먹을 수 있는 오이는 식초에 절인 오이지뿐이었다.

“미역이 피를 맑게 하고, 몸을 보하게 하지만,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국을 먹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해먹일 수 있는 미역냉국입니다. 만들기도 아주 쉽답니다.”

원종은 물에 불은 미역을 잘게 다졌고, 오이지를 썰어 넣었다. 이후로는 식초와 조청, 참깨를 넣고 물을 넣었다.

“살짝 삶은 가지와 콩나물을 넣어도 되지만, 이렇게 미역과 오이만 넣어도 충분합니다.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뤄 한여름 입맛을 잃어버린 자에게 다시 입맛을 찾아 줄 것입니다.”

홍 씨는 끓이지도 않고, 그냥 식초와 조청을 넣은 것이 무슨 맛이 있겠는가 싶었지만, 냉국을 한 모금 마시자 눈이 치켜 떠졌다.

“이 식초의 신맛이 묘하군요. 신 듯, 단 듯... 뒷맛이 참으로 깔끔합니다.”

“네. 오늘은 생오이 대신 오이지를 썼지만, 한여름 박이 열리고 오이가 열리면, 박과 생오이를 넣어 싱그럽게 해 먹으면 더 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오이라는 것은 그 생김새가 남자의... 흠흠. 그것과 닮아 예로부터 회임과 관련된 일화가 많은 채소입니다.”

오이를 남자의 성기에 빗대는 이야기를 다른 여인에게 했다면 망측하다며 욕을 들었을 테지만, 아이가 없는 형수는 오히려 귀를 세웠다.

“대표적인 것이 고려 초 국사로 불렸던 도선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도선국사의 어머니가 처녀일 때 하천에서 떠내려오는 오이를 먹고 도선국사를 임신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오이가 태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이야기이지요.”

사실 이 이야기는 처녀가 밖에서 아이를 만들어 왔다는 부도덕한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한여름 먹는 오이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생긴 모양답게 오이는 더운 여름을 나고 회임을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여름에 미역과 오이로 만든 냉국을 먹으면 그게 바로 보약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의주에서 놓아먹을 수 있게 오이씨도 삼식이에게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이리 좋은 음식을 배워가니 낯선 곳이라도 입맛을 지킬 수 있겠군요.”

형수는 식초의 신맛이 계속 당기는지 미역냉국을 한 그릇 뚝딱 비워냈다.

그제야 기운을 차린 형수는 문경에서 한양으로 오며 쌓인 여독을 풀 수 있었고, 친정집에도 며칠간 다녀올 수 있었다.

“삼식아. 너 이제 우리 집안에서 나가줘야겠다.”

“네에?”

따로 삼식이를 불러 집을 나가줘야겠다고 하니 실눈처럼 가는 삼식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

[작가의 말]

조선은 개국초부터 고려왕조의 기반이 되었던 상인들의 힘을 빼기 위해 사무역을 엄격히 금지하고 나라 대 나라의 공무역만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 시절 육진을 개척하고 조선이 지은 성 근처에 사는 성저야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여진의 족장들과 하는 거래도 공무역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초피가 엄청나게 들어 옵니다.

이런 교역을 열어둔 이유는 여진인들에게 사오는 군마가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왜란, 호란을 겪으며 북방이 강성해지고, 조선이 그들에게 군마를 사 오지 못하자, 자연스레 조선에서 운용하던 기마병들도 쇠퇴하게 됩니다.

물론, 조선 후기의 군 편제가 기마, 보병에서 조총병으로 넘어가며 기병의 관리가 허술해진 이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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