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01화 (101/327)

101. 어매일가노(語每日可勞).

“군마마.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처럼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직접 맛을 보셔야 어떤 것인지 바로 아실 것입니다.”

“하하.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어서 이 어매일가노부터 내어 오게. 형님께서도 이 차림보기를 보시고 어떤 것이겠구나 생각하시겠지만, 이 그림으로는 담지 못하는 그 향취가 있습니다. 충분히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허허. 네 이야기에 기대감을 키웠다가 실망할까 염려도 되지만, 이리 자신만만해하니 또 기대를 아니 할 수 없구나. 지금 나오는 저것이 어매일가노인가?”

손잡이가 달린 유기 잔을 일꾼이 내려놓았는데, 그 잔의 모양이 참으로 특이했다.

8각형으로 각이 진 잔은 가로는 좁고 세로로 길쭉한 모양의 잔이었는데 두루미처럼 길쭉한 부리 입을 가진 자들이 쓸법한 모양새였다.

조선 시대에는 손잡이가 달린 컵(CUP)의 개념은 없었고, 잔의 개념만 있었기에 특별히 만든 컵이었다.

“잔의 모양부터 특이하군. 이 손잡이가 달린 것은 편리하긴 하군... 그런데, 이거 진짜 마셔도 되는 것인가? 색이 마치...”

유기 잔에 담긴 검은 액체의 모습을 보고 월산군은 약으로 느껴지는지 표정이 안 좋아 보였다.

반대로 내가 해주는 음식에 대한 신뢰가 있는 잘산군은 고민하지 않고 잔을 들어 입 앞으로 가져갔다.

“음. 냄새가 좋구만. 형님. 색은 이러하나 한번 냄새를 맡아 보십시오.”

“냄새? 오호. 약 냄새가 아니라 구수한 냄새로군. 마치 숭늉 같은데. 맞나?”

“네 대군마마 맞습니다. 숭늉에 볶은 보리를 갈아 넣은 것이옵니다.”

“오호, 그래서 이리 구수한 향이 나는 것이로군. 그럼 어디 맛을 볼까. 오호~ 따뜻하고 구수한 숭늉이 몸을 녹이는구만. 숭늉에 밥풀이 날리지 않아 더 좋은 것 같군.”

“오늘 아침에 먹은 숭늉과 같으면서도 다르구만. 헌데, 이러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숭늉은 보통 식사 후 입가심을 위해 마시는 것인데, 이리 먼저 내놓으면 다른 것은 안 먹지 않겠나?”

“네. 전하. 근래에는 숭늉을 식후에 마셔 소화를 돕게 하는 식으로 음용하고 있사오나, 전조 시대에만 해도 종에게 숭늉을 들게 하여 다닐 정도로 언제나 숭늉을 마셨다고 하옵니다.”

물론, 잘산군의 말처럼 숭늉에는 소화를 잘 시킬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긴 했다.

무쇠솥에 밥을 지은 후 그 눌어붙은 솥에 물을 부어 끓이게 되면, 밥알에 남은 전분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포도당과 덱스트린(dextrin)이란 가수분해 산물이 생기는데 이 덱스트린이 구수한 맛을 내고 소화도 잘되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상시 식후 숭늉을 즐겨 먹던 사람이 숭늉을 먹지 못하면 속이 더부룩한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만나 매일 옳은 말과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입과 목이 마르지 않겠습니까? 그때 이 숭늉을 마시라는 의미에서 어매일가노(語每日可勞)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식후가 아닌, 이야기를 나누다 마시는 숭늉이라. 그럴듯하군. 그런데, 숭늉이 검은데, 눌은 밥을 태운 것이 아니라 볶은 보리를 넣었다고 했나?”

“네. 찰보리를 솥에 볶은 후 분쇄기로 가루를 만들어 숭늉과 같이 끓인 것이옵니다.”

“분쇄기라면 이거 말인가?”

잘산군은 내가 준 후추 그라인더를 소매에서 꺼내었다.

“마마. 그걸 들고 다니시옵니까?”

“하하하. 내가 호초를 좋아하여 밖에서 뭘 먹을 때 언제든지 호초를 넣기 위해 들고 다니네. 그러고 보니 이 분쇄기도 따로 파나? 형님에게 하나 선물해 드리고 싶어 그러는데.”

“그렇지 않아도, 이 어매일가노를 집에서 드실 수 있게 볶은 보리를 분쇄할 수 있는 분쇄기를 따로 판매할 생각입니다. 대군마마께는 제가 따로 만들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 고맙구만. 이번에 나온 이건 또 뭔가?”

“아, 이건 군마마도 처음 보실 것이옵니다. 참렬버거 묶음이옵니다. 간단하게 식사용으로 나오는 음식이온데, 난로에서 구운 빵 사이에 닭고기와 갖은 야채를 넣은 것과 같이 먹을 수 있는 튀김, 음료가 포함된 묶음이옵니다.”

“오 궐에서 버거빵은 먹어 보았는데, 묶음은 또 처음이군. 이건 우엉인가?”

“네. 우엉과 도라지를 잘게 썰어 기름에 튀긴 것이옵니다. 참렬버거를 먹기 전에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하옵니다. 여기 양념에 찍어 드십시오.”

잘산군과 월산대군은 기름에 노랗게 튀겨진 우엉과 도라지를 들어 흰색의 양념을 찍어 먹었다.

“응? 기름에 튀긴 것이라 느끼할 줄 알았는데, 이 양념에 찍어 먹으니 산뜻하구나. 이건 무엇으로 만드는 것이냐?”

“달걀노른자로 만든 흰 양념에 천초와 마늘을 갈아 넣은 양념이옵니다.”

마요네즈를 설명할 길이 없다 보니 그저 양념이었다.

“음. 주전부리를 찍어 먹기 아주 좋구나. 이것도 따로 파느냐?”

“대군마마의 입맛에 맞으셨다면, 집안에서 일하는 어멈을 보내주십시오. 만드는 법을 알려드리도록 하겠나이다.”

“음. 좋아. 그럼 이 참렬버거라는 것은 어찌 먹는 것이냐?”

“제가 먼저 먹는 것을 보여드리겠나이다.”

원종은 따로 만들어온 버거를 양손에 들고는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먹는 중간에 도라지튀김과 우엉튀김을 먹었고, 어매일가노도 마셨다.

야만인같이 원종이 손으로 먹는 것을 보던 월산대군과 잘산군은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면서도 화끈하게 먹는 모습에 자신들도 회가 동했다.

어쩌면, 숭늉인 어매일가노를 마셔서 소화력이 좋아져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양손으로 잡고 먹는 것이 교양이 없어 보이긴 하나 이 음식 자체가 수저가 없는 상황에서 손으로 먹기 위해 나온 음식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사옵니다. 마마님들의 참렬버거는 드시기 쉽게 이렇게 칼로 잘라서 젓가락으로 드시면 되옵니다.”

8등분으로 잘린 버거를 집어 입에 넣은 월산대군은 입안 가득 차오르는 풍요함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벅차올랐다.

‘아, 어찌 음식을 먹는데, 풍요함이 가득 찬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지. 이 빵이란 것과 같이 씹히는 고기의 질감이 있지만, 거슬리는 것이 없고, 우거지 또한 질김이 있지만, 미리 썰려있는지 금세 씹히는구나.’

월산대군은 어매일가노를 자신도 모르게 한입 마셨는데, 방금까지 입안 가득했던 풍요로움이 목구멍으로 사라지며, 입안에는 구수함의 향취만이 남았다.

그 허함을 참지 못하고 다시, 어미의 젖을 빼앗긴 아이처럼 입안의 풍요를 느끼기 위해 참렬버거를 얼른 집어 입안에 넣었다.

‘그래, 알겠구나. 이 풍요의 정체를 알겠어. 고기다. 닭고기라고 했는데, 이 닭고기가 풍요의 느낌을 주는구나.’

월산대군은 잘려진 버거를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적였다.

“이 고기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닭의 가슴살을 뭉쳐 튀긴 것이옵니다.”

“닭의 가슴살? 아무리 살이 많은 가슴살이라고는 하지만, 그 맛이 너무나 풍요롭구나. 어떻게 이런 닭고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냐? 내 아우의 말을 듣고도 숙수의 실력이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였는데, 이 흔한 닭고기만 해도 그 맛이 다르구나. 내 정녕 감탄할 수밖에 없구나.”

원종은 대군마마가 온다고 문경에서 가져온 경주 서라벌 닭을 잡았는데, 서라벌 닭의 육질을 바로 알아주는 월산대군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 닭 또한 특별히 먹이고 키운 닭이옵니다. 다른 닭들과는 비교가 힘이 들지요. 그리고 이번에 나온 것이 바로 가수저라이옵니다.”

아직 참렬버거를 다 먹지 않았지만, 그냥 놔두면 버거를 다 먹고 배부른 상태로 빵들을 먹게 될 것 같아 일부러 빨리 올렸다.

“귀한 사탕(설탕)은 구할 수가 없어, 조청과 꿀을 써서 만들었사옵니다.”

이미 가수저라를 한번 먹어 본 잘산군은 아직 먹어 보지 못한 월산대군을 배려한다고 먹지 않았는데, 월산대군은 카스테라의 단맛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숙수가 내놓는 음식의 이름은 다르다고는 하나, 그 조리법은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정저지와(井底之蛙)였구나. 이제까지 먹어 보았던 그 어떤 음식과도 다르구나. 어찌 이런 것을 생각해 낸 것이냐?”

“부끄럽사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에 만들어낸 판팥빵이옵니다. 잘산군마마께서도 처음이시니 즐겨주십시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방금 구운 판팥빵이 뿜어내는 단내에 취한 대군들의 젓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이 판팥빵은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먹으면 맛이 더 좋사옵니다.”

유당불내증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둘 다 젊은 나이였기에 큰 문제가 없을 듯하여 단팥빵엔 우유라는 국룰 메뉴를 내놓았다.

그리고, 단팥의 단맛에 우유가 섞이며 내는 그 고소하면서 달콤한 맛에 둘 다 감탄을 했다.

거기다 난로 오븐에서 구워내는 오리지날 단팥빵과 기름에 튀긴 후 견과류와 조청을 넣어 만든 건빵튀김까지 먹자 둘 다 배가 부를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아우의 호언장담이 그냥 막 나온 것이 아니었구나. 나 또한 이것들을 먼저 먹었다면 꼭 먹어봐야 한다고 추천을 하고 했을 것 같구나.”

“그렇지요. 하하하. 하지만, 우리가 자주 오기는 힘이 들 것 같사옵니다. 저 밖을 보십시오.”

잘산군의 말에 월산대군이 밖을 보니 가수저라와 판팥빵을 구우며 피워냈던 냄새들로 인해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었다.

“그렇군. 마음 편히 오기가 힘이 들겠어.”

월산군은 오늘 먹은 것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 자주 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직 생각 중이긴 하오나. 십 일에 한 번 혹은 보름에 한 번 가패가 쉬는 날을 만들 것이옵니다. 그때, 종친들만 이 이용하실 수 있게 할 터이니 그때 전갈을 주시면 자리를 미리 만들어 두도록 하겠나이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월산군은 종친들만 이용할 수 있는 날을 만든다는 말에 아주 흡족해했다.

***

월산군과 잘산군에게 최종테스트를 한 춘봉가패는 다음 날 정식으로 가게 문을 열었지만, 오픈하자마자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저기 차림 보기가 보이지 않소? 밖에도 나와 있는데 왜 쓰여있는 가격을 다 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오!”

“아 글쎄 가수저라는 이승포로는 안 받고 오승포로만 받소이다.”

“이 저화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으니 이걸로는 값을 치를 수 없소이다.”

“난 가수저라만 사가면 되는데, 언제까지 줄을 서야 하는 거요?”

먼저 사 가려고 새치기까지 하는 자들마저 있다 보니 계산대가 아비규환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화폐가 문제구나. 어휴.”

저화와 포는 물론이고 세종대왕이 보급했던 조선통보도 받는다고 명시했었고, 선불 계산을 위해 3명을 배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인상이 더러운 금산이와 오추, 삼식이를 동원해 줄을 세우고 정리를 하자 겨우 질서가 잡혀갔다.

“값을 치르고 숫자가 쓰인 표식을 받았는데, 이건 어디로 가야 하오?”

“자리에 앉아 숫자 표식을 탁자 위에 두면 점원이 와서 주문한 것을 가져다줄 것이오.”

“그게 무슨 말이오? 난 가수저라를 가져가야 하는데.”

가수저라와 빵 종류를 구매한 이들은 포장으로 테이크 아웃까지 되었지만, 점원에 의한 서빙과 포장 후 들고 가는 포장 판매에 대한 사회적 매너 약속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일일이 사람들에게 같은 말을 수십 번씩 해야 했다.

거지 출신으로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점원들이었지만, 얼굴이 썩어들어 가는 게 보일 정도였다.

“처음이 빡세지만, 이런 가패 이용에 대한 약속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지키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운영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힘이 들더라도 한 달만 버티자. 그러면 일이 편해질 것이다.”

시시때때로 점원들을 타일러가며 버티는데, 가수저라가 품절이 떠버렸다.

“오늘 당장 평양으로 가야 하는데, 가수저라를 살 수 없으면 어쩌란 말이오! 미리 다 떨어졌다고 언질을 줘야 줄을 안 썼을 거 아니오.”

“내가 중인이라 가수저라를 안 팔겠다는 거요? 어서 내놓으시오!”

“주인어르신이 가수저라를 못 사 오면 나가 죽으라고 했습니다요. 제발 팔아주시오.”

어느 집안의 종인지는 몰라도 울며불며 팔아 달라고 바짓가랭이를 붙잡는 모습에 머리가 띵했다.

‘시발. 자영업이 헬인건 맞는데, 여긴 더 하잖아.’

*

[작가의 말]

실제 조선에서 차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이유가 이 숭늉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신분을 떠나 식후 마시는 숭늉이 있었기에 다른 차가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시판되고 있는 숭늉 관련 음료도 있는데, 그 음료는 흑미로 숭늉을 끓인 것입니다.

볶은 보리 대신 흑미로 끓이면 바로 검은 물이 나오지만, 흑미 자체가 태국 고산지대인 북부에서 발견되어 중국과 일본 등으로 재배지가 넓어졌는데, 이게 한국에 정식으로 들어온 것이 1990년대입니다.

잡곡밥의 대명사로 흑미가 쓰인 것이 채 50년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볶은 보리를 차로 마시는 문화가 있는 곳이 이탈리아입니다.

커피의 종가라고까지 프라이드가 있는 이태리에서 카페인 때문에 임산부들이 커피를 마시지 못하자 대체해서 나온 것이 오르조(ORZO)라는 볶은 보리차입니다.

이 오르조 차를 물에 타면 진짜 아메리카노와 색에서는 별 차이 없습니다.

물론, 커피의 씁쓸한 맛과는 다릅니다. 색만 같습니다.

이 오르조의 구수한 보리 향이 의외로 한국 사람과 잘 맞습니다.

그래서 실제 숭늉을 끓이실 때 이 로스팅 된 오르조 보릿가루를 넣어 끓이시면 숭늉의 구수함이 배가 됩니다.

가격도 저렴하니 한번 끓여 드시는 거 추천해 드립니다.

ps: 오르조 가루가 한국에 처음으로 수입된 이유도 재미있는데, 1980년대 당시 한식집이나 밥집에서 생수를 내어주면 대접을 못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리차나 결명자차 같은 끓인 물을 내줘야 손님들이 대우받는다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이 보리나 결명자를 넣어 물통에서 매일 끓이는 게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사장님이 궁리하다 끓는 물에 가루만 넣으면 보리차가 되는 오르조 가루를 수입해서 쓰게 되었습니다.

끓이고 남은 보리를 일일이 빼지 않아도 되니 일이 편해졌고, 의외로 구수한 맛도 좋아서 알음알음 수입되다 보니 카페인을 못 먹는 임산부들도 알게 되어 이제는 선물 세트로도 수입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자주 마십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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