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93화 (93/327)

93. 허(許)해 주십시오. (1)

“큰 도련님이 하시는 공랑 점포로 가면 되겠습니까요?”

금산은 한양에 들어서자 어디로 갈지 물었다.

“아니, 바로 한명회 대감댁으로 가자.”

“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한명회 대감의 집으로 가는 것입니까요?”

“어머나, 그럼 이거 옷매무새부터 다듬어야 할 터인데.”

“저희는 거기서 가무를 보여드려야 하는 것입니까요? 아니면 다른 걸 해야 하는 것입니까요?”

관기 출신인 여인네들은 고관대작의 집으로 간다는 소리에 부산스러워졌다.

“너희들은 가서 할 것 없다. 그냥 짐이나 지키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사실 공랑 점포로 가도 되었지만, 형의 공랑 점포에는 송상의 행수들이 드나들며 나이기온 옷을 팔고 있기에 일부러 피했다.

“사탕(沙糖)이 필요한 데 있소이까? 내가 좀 샀으면 하는데.”

얼굴을 익힌 한명회 집안의 청지기에게 설탕이 있는지 묻자, 한참을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한 홉(대략 200ml) 가량이 있사오나, 제가 마음대로 내어 드릴 수 없는 귀물이옵니다. 대감마님께서 돌아오시면 그때 소인이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조선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일 수도 있는 한명회에게도 설탕이 한 홉밖에 없다는 말에 뭔가 억울했다.

현대라면 흰설탕 1kg을 사는데 2천 원이면 되었는데, 지금 시대에는 설탕 한 홉이면 소를 몇 마리나 살 수 있는 가치였다.

“사탕을 그냥 내어줄 수 있네. 헌데, 이 사탕으로 요리를 하려는 것인가?”

퇴청하고 온 한명회는 흔쾌히 설탕을 내줬다.

“네. 전하께 저 난로라는 것을 보여드리며 난로에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흠. 귀한 사탕으로 하는 요리라면 평소에는 맛보기 힘든 요리겠군. 더구나 저 난로라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도 특이한 것 같고. 흠. 그럼 이렇게 하지. 보한재(保閑齋 신숙주의 호)와 같이 날을 잡지. 그렇게 하면 나도 사탕으로 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겠지?”

“아, 그렇게 해주신다면 더 좋습니다.”

예종에게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른 대신들까지 한 번에 보여줄 수 있다면 나도 좋았다.

***

“난로의 관을 잘 연결해야 하네. 연기가 흘러나오지 않게, 둥글게 말리는 관의 틈새는 반죽을 발라 빈틈없게 만들고, 그 위로 한지를 다시 발라야 하네.”

평상시 예종이 집무를 보는 사정전(思政殿 통칭 편전이라 부름)에 난로 두 대를 설치하는데, 한번 설치를 하면 겨우내 쓸 것 같아 꼼꼼하게 관을 연결했다.

난로 한 대에는 장작으로 불을 피웠고, 다른 한 대는 준비해온 석탄으로 불을 피웠다.

“응? 오늘 상참(常參)에는 뭔가 일이 있다고 하더니 사람들이 미리 와 있어서 그런지 공기가 따뜻하구만.”

“그러네. 훈기가 도는구만.”

조선의 왕이 집무를 보는 사정전은 물론이고, 근정전(勤政殿 통칭 법전)도 입식 생활을 하는 중국의 양식을 따라 지었기에 바닥에는 온돌이 아닌 마루가 깔려 있었다.

거기다, 편전과 법전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로 흙벽을 세우지 않고, 사방 벽을 창을 둘러 만들었기에 겨울에는 유난히 더 추웠다.

그런 편전에 들어서는 대소신료들은 안에서 훈훈한 기운이 느껴지자 신기해했다.

“이게 그 난로로 구만.”

좌의정 신숙주가 다가와 난로에 양 손바닥을 쭉 내밀어 열을 씌었다.

“차(茶)도 한잔하시지요. 연근과 우엉을 달인 차입니다.”

난로 위에 올려두었던 주전자에서 우려낸 차를 대신들에게 한 잔씩 돌렸다.

“음 연잎 차와는 또 다른 풍취의 깊은 맛이로구만.”

“어디 나도 한 잔 주게. 이제 나이가 들어 뼈마디가 시리니 상참(常參)이 힘들구먼.”

“어흐! 뜨끈한 것이 좋구나.”

“주상전하 납시오!”

가냘프게 울리는 내시의 목소리에 대신들이 자리로 돌아가 납작 엎드렸다.

“응? 난로라는 기물을 설치한다고 하더니 저것인가 보군. 오! 훈기가 도는 것이 좋구나. 따로 들고 온 화로는 치워도 될 것 같구나.”

겨울에는 숯을 넣은 휴대용 청동화로를 내시들이 들고 다녔는데, 편전 안이 훈훈한 기운으로 가득하자 필요가 없었다.

예종은 아예 붉은색의 나이기온 점퍼도 벗어버렸는데, 뒤따라 들어온 왕비인 안순왕후와 잘산군 내외도 나이기온 옷을 벗었다.

“전하 난로에는 이렇게 주전자를 올려둘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습니다. 추운 겨울 언제든지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습니다.”

내시가 법도대로 따로 준비한 찻잔에 차를 담아 먼저 맛을 보았고, 잠시 시간이 흐르자 예종에게도 차를 올렸다.

“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차도 바로 마실수 있고 좋군. 편전과 법전에도 이렇게 난로를 설치하면 좋겠구나. 그런데, 이 난로로 뭘 만들어 먹는다고?”

“예 전하. 음식을 바로 해도 되겠사옵니까?”

“그래 해보거라. 오늘은 집무가 아닌 차를 마시는 다도회로 네가 하는 요리를 구경하도록 하마.”

예종의 허락이 떨어지자, 참렬이는 빵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시작했고, 나는 카스테라를 만들기 위해 달걀을 깨고 휘젓기 시작했다.

참렬이는 반죽을 끝내고 누룩으로 숙성되는 시간 동안 달걀흰자 치기에 들어갔다.

“오오! 달걀의 흰자가 뻑뻑해지더니 저렇게 굳어지다니 신기하구나.”

“저, 저저! 저건 사탕(沙糖)이 아닌가? 저 귀한 걸 저리 마구 넣다니.”

카스테라 노른자에 단맛을 위해 설탕을 듬뿍 넣어 휘저었다.

어렵게 구해온 우유도 넣었고, 유자의 껍질을 벗겨 말린 후 가루로 만든 것도 넣었다.

우유는 카스테라의 부드러움을 배가시켜줄 것이고, 유자 가루는 카스테라에 청량한 향취를 만들어 줄 터였다.

“숙성된 반죽을 난로에 넣겠습니다.”

참렬이가 난로의 문을 열어 오븐에 반죽 쟁반을 넣었는데, 난로 안에 구분되어 만들어진 오븐보다는 난로 안에서 타고 있는 석탄에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렀다.

“저 검은 것은 숯인가?”

“숯은 숯인데, 돌로 만든 숯이라 하여 돌 숯이라고 부르옵니다.”

“돌 숯?”

“네 이렇게 생긴 것이옵니다.”

원종은 카스테라를 참렬이에게 넘겨주며 나섰다.

“이 돌처럼 딱딱한 것이 나무 장작보다 더 오래 타오르옵니다. 손에 검둥이 묻을 수도 있사옵니다.”

예종은 물론이고 돌 숯을 아예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원종은 석탄을 들고 일일이 보여주었다.

“돌 숯이라고도 부르고, 석탄이라고도 부르옵니다. 보통은 땅 밑에서 찾을 수 있사온데, 금광이나 은광처럼 석탄을 캐내야 합니다. 제 고향인 문경이나 강원도에 이런 돌 숯을 캐낼 수 있는 광맥이 많사옵니다. 이런 주먹만 한 석탄 한 개가 이 장작과 같은 시간 동안 탑니다.”

“장작보다 더 오래 불탄다고?”

“네. 전하. 같은 크기라면 두세 배 더 오래 타며 더 강한 열기를 뿜어냅니다.”

“내게도 하나 가져오라.”

예종은 나무 장작보다 더 효용이 크다는 소리에 직접 석탄을 손으로 만져봤다.

검은 얼룩이 손에 남았지만, 살펴보고는 난로의 문을 열어 직접 석탄을 불에 넣어 보았다.

장작과 마찬가지로 바로 불이 붙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열기에 석탄의 겉이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불이 붙었다.

미리 준비해뒀던 석탄 전용 집계로 다시 석탄을 끄집어내어 관찰하기 쉽게 유기그릇에 담아내었다.

“신기하구나. 나무가 아닌 돌이 이렇게 불에 타다니.”

예종은 직접 집계로 이리저리 뒤집으며 불타는 석탄을 관찰했다.

“전하. 지방의 백성들은 보릿고개가 오면, 산에 올라 산나물을 캐 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기옵니다. 허나, 도성 인근의 백성들은 보릿고개가 오더라도 산에서 산나물을 캘 수가 없습니다.”

신숙주가 불타는 석탄에 정신없이 빠져 있는 예종을 깨웠다.

“불을 때기 위해 나무를 베다 보니 도성 인근의 나무들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은 나도 잘 아오. 나무가 없으니 산나물도 자라지 못하고 먹을 게 줄어든다는 것은 나도 아오.”

“네. 전하. 장작을 써야 하기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석탄을 캐와 장작 대신 쓰게 된다면, 장작이 필요 없게 되니 도성 인근의 산에도 녹림이 우거질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산나물도 자라게 될 것이고, 백성들이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수월할 것이옵니다.”

“흠. 좌의정은 이 돌 숯, 석탄이라는 것의 효용을 좀 더 확인하고 어디서 얼마만큼 캐낼 수 있는지 알아서 보고하시오. 그대의 말처럼 장작 대신에 쓸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하시오.”

“네 전하.”

“그리고, 이 돌 숯을 가져온 너에게는...”

“저어... 도련님. 빵이 다 되었습니다요. 소인 혼자서는 다 할 수가 없는지라...”

끼어들면 안 된다는 것을 참렬이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야기했다는 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나도 빵이 타는 냄새가 살짝 나는 것 같아 급히 움직였다.

“전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말을 하면서도 가죽장갑을 끼고 햄버거 빵을 꺼내었다.

제대로 익은 빵 냄새가 확 퍼지자, 예종도 코를 벌렁거렸다.

“음 고소한 냄새가 나는구나.”

“네. 이것은 빵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바로 먹을 수도 있지만, 속에 다른 것을 넣어서 먹으면 더 맛이 있습니다.”

다들 구워진 햄버거 빵을 보며 냄새를 맡고 있을 때 다른 판에 미리 만들어 두었던 햄버거 패티를 펼쳐 그릇째 난로에 넣었다.

닭고기와 삶은 시래기를 다져서 달걀과 밀가루로 버무려 만든 치킨 패티였다.

패티가 열기에 익는 동안 햄버거 빵을 잘라 빵면에 물과 섞은 된장을 소스로 발랐고, 동치미 김치를 잘게 썰어 올렸다.

그러곤 난로에서 패티를 꺼내 한 장씩 올렸고, 고기를 넣어 볶은 간장 양념을 패티 위에 소스로 뿌렸다.

그렇게, 조선식 치킨버거가 만들어졌다.

소반 상에 유기 접시를 놓고, 그 위에 치킨버거를 올렸고, 칼질을 하더라도 흩어지지 않게 대나무로 만든 꼬치를 꽂았다.

물론, 꼬치의 끝에는 건강을 위해 굳셀 건(健) 자를 쓴 종이를 붙였다.

“내게 먼저 주시오.”

기미를 해야 한다며 내시가 끼어들자 어쩔 수 없이 예종의 버거에 먼저 칼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하 드시기 편하게 칼질을 하겠사옵니다.”

기미로 인해 모양이 망가져 버려 어쩔 수 없이 내가 조각조각 내어 꼬치로 한입에 넣을 수 있게 세팅을 다시 했다.

예종은 석탄을 만지고 난 손을 물수건으로 대충 닦았는지 아직 검둥이 묻어 있었지만, 꼬치를 잡아먹는지라 큰 문제는 없었다.

“오호호 이거 특이한 맛이로구나. 내 분명 밀가루로 만드는 것을 보았는데, 밀가루의 맛은 어디 가고 기묘한 맛만 남았구나. 닭고기의 향에 동치미의 아삭거림이 느껴지니 참으로 특이하구나. 밥 한 숟가락에 고기와 동치미를 같이 욱여넣은 그런 느낌이구나.”

예종은 치킨버거가 마음에 드는지 다시 한번 집어 먹었다.

“아주 마음에 든다. 다들 한번 먹어 보라. 그 어디에서도 먹어 본 적 없는 맛일 것이다!”

이미 대신들도 빵 냄새가 풍길 때부터 침을 삼키고 있었기에 얼른 먹어 보고자 줄을 섰다.

“이 참렬 버거는 체통을 지키기 위해 칼로 썰어 젓가락으로 먹어도 되는 음식이오나, 원래 이 음식은 이렇게 종이로 싸서 들고 다니다 이렇게 양손으로 잡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옵니다.”

“오! 말을 타고 가며 한 손으로도 먹을 수 있겠구만.”

“그러고 보니, 건번도 그렇고, 이것도 진중 음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로군.”

“네 맞습니다. 간편하게 걸어가면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요.”

예종에겐 양식처럼 그릇에 버거를 올려주었지만, 이들에게는 한지에 버거를 싸서 양손으로 잡고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오! 닭고기와 간장 양념에 동치미의 아삭거림이라니.”

“이 빵이라는 것은 그냥 먹어도 맛있을 것 같구만.”

햄버거가 패스트 푸드라고 불리는 만큼 원종은 대신들에게 버거를 만들어 주면서도 왕비인 안순왕후와 잘산군 내외에게도 치킨버거를 그릇에 올려 만들어 주었다.

물론, 꼬치를 꽂거나 칼질을 하는 것은 내시들의 도움을 받았다.

다들, 치킨버거를 먹으며 즐거워할 때 카스테라가 다 되었다는 달콤한 냄새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

[작가의 말]

토막지식!

온돌이 한민족의 문화이기에 당연히 경복궁의 건물에도 다 온돌이 깔려있겠지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의외로 경복궁 건물들 중에서 온돌이 깔린 것은 잠을 자는 침전들밖에 없었습니다.

애초 지어질 때 중국의 양식으로 만들다 보니 온돌을 넣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정말 추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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