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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92화 (92/327)

92. 이것도 붓 통에 숨겨갈 수 있나? (3)

말린 눈꽃 송이 같은 흰색 잎이 붙은 씨앗을 예희라는 소녀가 건네주었는데, 원길은 이것이 어떤 식물의 씨앗인지 알 수가 없었다.

“회회총(回回蔥)이라 불리우는 파(蔥)의 한 종류다. 어쩌면 벌써 조선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즐겨 먹는 것이니 너희도 한번 먹어 보거라.”

“마마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길보다 예조판서 홍윤성이 먼저 나서 배례를 하며 두 손으로 씨앗을 받아들었다.

“봄에 심으면 늦여름에 먹을 수 있고, 다시 가을에 심어 다음해 봄에 먹을 수 있답니다. 파를 심을 수 있는 곳이라면 문제없이 경작이 될겁니다.”

예희라는 소녀가 농사짓는 법을 대충 알려주었는데, 파의 한 종류니 농군들에게 파처럼 키우라고 하면 될 터였다.

“간식으로 내 입을 즐겁게 하여 회회총을 주었으니, 주식으로 나를 또 즐겁게 하면 금화(金華)를 주도록 하마.”

“금화는 어제 본 그 돼지 종자를 말하는 거예요.”

금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원길에게 예희가 알려주자, 원길은 의욕이 솟구쳤다.

“네. 마마님이 즐거울 수 있게 주돈피아(酒豚皮芽)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원길은 토끼고기를 술에 절여 내는 주토피아에 돼지고기를 써서 만들기로 했다.

“주돈피아?”

“네, 마마. 저희 가문에서 만든 요리로 술(酒)로 끓여낸 돼지고기(豚)의 껍질(皮)이 새싹(芽)처럼 피어난다는 요리이옵니다. 아마, 처음 보는 요리이실 겁니다.”

원길의 말을 들은 부인 한 씨는 콧방귀를 뀌었다.

천하 중원의 주인인 황제를 안아 키웠기에 천하별미를 모두 맛보았으며, 새롭다고 하는 요리들도 대부분이 약간씩 변형된 거기서 거기였던 음식들이었기에 콧방귀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번 튀김으로 새로운 간식을 만드는 것을 보았기에 은근 기대도 되었다.

“자신 있게 내가 처음 보는 요리라고 하니 기대를 해보지. 건번처럼 내 눈앞에서 한번 해 보거라.”

“네.”

보통의 요리사들이라면 권력자가 보는 앞에서 요리한다는 것 자체에 긴장되어 손을 벌벌 떨거나 양념을 빼먹고 넣지 않는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원길은 집안에서부터 공개된 장소에서 요리를 해왔었고, 요리숙을 하며 설명하듯이 가르쳐 주는 요리에도 경험이 많았다.

일꾼들이 가져온 돼지 옆구리살과 등살은 도축 후 피를 제대로 뺐기에 물에 넣어 피를 빼지 않아도 되었다.

칼로 밀어내듯이 길고 얇게 고기를 잘랐고, 중심에 둥근 당근을 두고, 고기를 겹쳐 말아 둥근 공을 만들었다.

원형의 모양 유지를 위해 명주실을 겹겹이 감아 고기를 둥글게 고정했다.

그리고, 고기를 삶아내는 국물을 만들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포도로 담은 담금주가 없어요. 술은 이렇게 있는데….”

예희가 내놓은 술들은 가까이 가기만 해도 특유의 강한 향이 올라오는 독주들이었다.

‘극단적인 중원의 술이로구만. 이 술로 만들게 되면 술의 향이 너무 강해 고기의 맛을 오히려 해치게 될 것인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시기 또한 겨울이다 보니 포도를 구하는 게 불가능했다.

원길은 직접 저장고로 가 과일과 채소를 살피는데, 보관이 상대적으로 쉬운 사과와 배는 온전하게 있었고, 포도는 말린 포도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포도 담금주를 대신해 사과와 배를 갈아 넣었고, 말린 포도를 칼등으로 짓이겨 넣었다.

과일과 물의 비율을 1:1로 하여 끓였고, 국물이 끓어오르자 공처럼 만들어 둔 돼지고기를 넣어 삶았다.

돼지고기의 잡냄새를 없애기 위해 생강과 마늘을 넣었고, 후추도 마음껏 넣었다.

이 각 동안 푹 익힌 돼지고기를 꺼내 기름칠한 냄비에서 다시 구웠다.

‘토끼고기와 비교해 돼지고기가 참으로 연하구나. 겉을 익혀 내는 갈색을 만드는데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구나.’

고기의 겉면을 구우면서도 끓여낸 국물에 밀가루를 넣어 걸쭉하게 만들었고, 소금, 간장, 식초를 넣어 양념을 조렸다.

“다 되었습니다.”

원길은 접시에 돼지고기 경단을 올려 부인 한 씨의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고기를 묶고 있던 명주실을 풀고, 그 위로 졸여낸 양념 국물을 천천히 부었다.

“오! 요리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구나!”

뜨겁게 졸여낸 양념 국물이 돼지고기 공의 위로 부어지자, 양념이 고기들 사이로 스며들었고, 자연스레 둥글게 뭉쳐있던 돼지고기들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마치 꽃봉오리가 활짝 펼쳐지는 듯한 광경에 부인 한 씨는 물론이고 기미를 해야 하는 예희도 정신을 놓고 있었다.

“마마. 고기를 양념에 찍어 드시면 되옵니다.”

충분하게 익혀진 돼지고기는 젓가락만으로도 살이 분리되었는데, 부인 한 씨는 졸여진 양념을 꼼꼼하게 찍어 한입 맛을 보았다.

“흠. 처음 볼 것이라고 했던 그 자신감이 이해되는구나. 내 천하의 별미를 모두 먹어 보았다 자부하건만 이런 돼지고기 요리는 처음이구나. 천하 일미는 되지 못하겠지만, 천하 별미는 되겠구나. 청웅 너도 보았으니 만들 수 있겠느냐?”

“네. 마마. 술(酒)로 끓여 낸 돼지고기(豚)의 껍질(皮)이 새싹(芽)처럼 피어난다는 주돈피아 이름에 걸맞은 음식이었습니다.”

청웅이란 자와 그 곁에 있는 자들은 요리사인지 그 눈빛이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

“내가 먹어 보지 못한 별미를 맛보았으니 약속대로 금화(金華) 4마리를 주도록 하마. 청웅! 사신단과 같이 먹을 준비를 해다오. 그대의 솜씨를 조선 사신단에게도 보여다오.”

“네엡!”

사실 부인 한 씨는 이름난 요리사인 청웅의 음식을 먹어 왔기에 주돈피아란 요리를 먹고 그렇게 맛에 감탄하지 않았다. 그저 색다르게 해 먹는 요리구나 하는 정도의 놀람 뿐이었다.

하지만, 쉽게 회회총의 씨앗이나 금화의 씨돼지를 내어주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떠나온 조선의 관리 중에서도 요리하는 관리가 있다는 그 사실이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천하의 주인인 황제의 밑에서 일을 보는 자를 재상(宰相)이라 부르는데, 재(宰) 한자의 뜻에는 ‘관가의 요리를 맡은 요리사’라는 뜻이 있었다.

이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요리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상징하는데, 신하들과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그 당시에는 최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전설 시대라 불리는 삼황오제시대는 물론이고, 은나라, 주나라 때까지만 해도 재상은 군주를 대신해 신하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재상들은 먹을 것을 나누어 주기 위해 요리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했다.

도덕경에도 보면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이는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 자주 뒤집어 생선 살이 흩어지는 것이 백성들이 흩어지는 것과 같으며, 잘 구워져 먹음직스러운 생선구이는 풍요로운 나라와 같다고 요리로서 정치의 덕목을 강조했었다.

즉, 부인 한 씨는 관리들이 요리를 하면 할수록 옛 요순시대의 관리들처럼 공평하게 나라를 운영해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런 바람은 사신단과 함께 저녁 만찬을 먹으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처럼 집안에서 고기를 잘 배분 하는 자가 나라의 부도 배분을 잘 할 수 있는 것이오. 한나라의 재상이었던 ‘진평’은 제사가 끝난 후 남는 음식을 사람들에게 배분할 때 공평하게 배분하여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네. 진평이라면 한고조 유방을 도와 한나라의 기틀을 만든 명 재상이지요.”

예조판서 홍윤성이 부인 한 씨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즉, 고기를 나눠 먹는 작은 것에서부터 나라를 운영하는 방법이 나오는 것이고, 배곯는 이가 없게 만드는 것이 관리의 기본이라는 뜻이오. 거기에 맞춘다면 저 전원길이라는 참봉이 참으로 맞는 것 같소.”

“천하의 고기를 배곯는 이 없이 먹이는 것이 관리의 할 일이지요.”

홍윤성은 맞장구를 치면서도 부인 한 씨가 전원길을 좋게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 참봉을 중히 쓰도록 상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북경에서 유행한다는 돼지고기이니 주신 씨돼지를 잘 키우도록 하겠습니다.”

“전참봉 한 명을 좋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배곯는 이가 없게 모두에게 밥을 먹여야 하는 관리라면 그 소양으로서 요리를 배워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 그런 뜻이었군요.”

“그렇다고, 무작정 요리를 하는 자를 출사시키거나 하면 아니 되오. 제나라의 환공은 명재상이던 관중이 병에 걸려 죽게 되자, 요리사 출신이었던 역아를 재상으로 삼았으나 그 역아로 인해 제나라는 혼란을 겪게 되었고 환공역시 죽게 되었소. 그러니, 기본적인 소양이 있는 관리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야지 소양 없이 요리부터 배운 자는 출사 시켜서는 아니 되오.”

“네 마마님의 말을 명심하여 관원들에게 요리를 배우도록 시키겠습니다.”

***

“이거 전참봉이 삼우당(三憂堂 문익점의 호)처럼 되는 거 아닌가? 귀한 종자와 돼지를 얻어 가다니. 종자는 붓 통에 들어가니 거기에 넣어서 가게나.”

별제 윤하성은 끌고 가는 돼지가 부럽다는 듯이 이야길 했다.

“회회총의 종자는 이미 붓 통에 넣었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이게 아무리 귀한 종자인들 목화만큼 만 하겠습니까?”

“목화만큼이야 안 되겠지만, 한 씨 마마에게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지. 아마, 자네는 돌아가면 무조건 승차할 것이네. 부럽구만 부러워. 나도 요리를 미리 배웠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제가 했던 주돈피아는 물론이고 다른 음식까지도 ‘요리숙’이라는 곳에서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 그런가? 그렇다면 나도 한번 배워 봐야겠구만.”

“윤 별제 님이시니 특별히 싸게 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

“…해서 부인 한 씨께서 내리신 총(蔥)의 종자와 금화저(金華猪)라는 돼지 종자를 받아 왔나이다.”

예조판서 홍윤성의 보고를 들은 예종은 난감했다.

부인 한 씨의 마음에 들었고, 그녀의 선물까지 받아 온 전원길의 벼슬을 올려줘야 했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신숙주의 줄을 잡은 자인데, 같이 사신단을 다녀온 것 때문인지 홍윤성이 벼슬을 올려 달라고 하는구나.’

신숙주나 홍윤성이나 다 같은 계유정난의 공신이었지만, 그 결이 달랐다.

신숙주는 한명회와 같은 나름의 개혁 성향이 있었지만, 홍윤성의 경우에는 말 그대로 훈구의 길을 걷는 자였다.

예종은 이러한 사실을 알았기에 훈구파 내에서 세를 갈라 서로 견제하게 하려 했는데, 갑자기 두 세력에서 밀고 있는 자가 나와 버렸으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아마, 단순히 두 세력에서 지지하는 것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승차시켜 지방으로 보냈을 것이었다.

하지만, 명나라의 숨은 실력자인 부인 한 씨가 총애한다고 하니, 그 처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혼자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예종은 상선에게 물었고, 상선은 답을 주었다.

“사신단에서 공을 세운 전원길은 평안도 목사(牧使)로 임명하여 사신단이 있을 때마다 명나라에 다녀올 것을 명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비록 북방 외직(外職)이기는 하지만, 정3품으로 승차하니 원길은 기뻤다.

“그런데, 부인 한 씨가 마음에 들어 했다는 튀김 건번과 주돈피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구나. 수라간(水刺間)에서 만들어 오라.”

“네. 전하.”

원길은 숙수의 안내를 받아 음식을 하는 수라간으로 움직였는데, 거기서 생각지도 않은 사람을 만났다.

“원종아! 너는 여기에 무슨 일이냐?”

“에? 형님은 여기에 어떤 일로 오신 겁니까요?”

“찬물도 순서가 있는 법이다. 너부터 이야기해 보아라.”

“에, 그러니깐. 제가 난로라는 물건을 만들어서 한양으로 올라왔었습니다. 그게….”

*

[작가의 말]

회회총이라고 하는 단어에 알아채신 분도 있겠지만, 바로 양파를 일컫는 말입니다.

양파가 한반도에 전해진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이 많은데, 보통 외래종에 양(洋)이란 말이 붙으면 보통은 조선 말기 개화기 때 들어온 작물을 말합니다.

그 이전에 들어온 외래종은 보통 호(胡)나 중국에서 들어오면 당(唐)이 붙습니다.

그래서 양파도 개화기 때 들어왔다고 추정을 합니다.

하지만, 6세기 쓰여진 북위의 제민요술이라는 책에 호총, 자총 등 4종류가 소개되어 있고, 한나라 때 외교관인 장건이 서역에서 들여왔다고 되어있습니다.

원나라의 요리책인 음선정요에도 서역에서 회회총을 가지고 왔다고 되어있습니다.

물론, 이 총(蔥)이라 불리는 파들이 양파인지에 대해서는 100%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00% 틀리다는 것도 없습니다.

몇몇 문서에서는 이런 회회총이 파와 양파의 중간쯤 되는 채소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총들이 쭉 경작되다 유럽에서 개량된 양파가 들어오며 그 자리를 양파에게 내어주고 없어진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그래서, 저의 글에서 회회총을 작은 양파로 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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