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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90화 (90/327)

90. 이것도 붓 통에 숨겨갈 수 있나? (1)

“원길이 자네는 뭘 챙겨가는 건가? 자네도 인삼인가? 아니면 홍삼인가?”

“종이를 챙겼습니다. 인삼이 가장 많이 남는다고는 하던데, 갑자기 사신단에 뽑히다 보니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윤하성 별제(別提)님은 뭘 챙기셨습니까요?”

원길은 별제가 종 6품에 무록관(녹봉을 받지 않는 벼슬)으로 일반 관직에 비해 아래로 보는 관직이었지만, 나이가 있다 보니 말을 올려주었다.

“호피와 황모필을 챙겼네. 그럼 자네는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장(張)가인가 오(吳)가인가?”

사신단으로 명나라에 가는 벼슬아치들도 상인들처럼 돈이 될만한 물건을 챙겨갔는데, 그 물건의 처분은 직접 하지 않고, 역관에게 대부분 맡겼다.

그렇기에 누구에게 물건을 맡겨 팔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저는 직접 팔아 보고 싶은데, 한학(중국어)을 잘하지 못해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오가에게 맡기게. 어떻게 보면 자네나 우리 윤 씨 문중이나 같은 줄 아니겠나.”

“그.그렇지요. 그럼 오가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물건들을 처분하게 되면 북경에서 거하게 한잔 빨아보자구.”

원길은 거간꾼처럼 관리들의 물건을 역관 오가에게 맡기라고 영업하는 윤하성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별제란 벼슬이 녹봉을 받지 않는다고 저리 노골적으로 역관과 붙어먹다니 쯧쯧쯧. 내가 신숙주의 줄을 타고 있기에 그의 매부인 윤자운의 윤 씨들과 한배를 타게 된 사이이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로구만. 쯔쯔쯔.’

별제라는 관직 자체가 대부분 음서로 관직을 시작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벼슬이었고, 녹봉을 주지 않는 무록관이었기에 사신단으로 가며 제대로 한몫 잡아 보려는 거 같았다

사실 원길은 명나라 황제에게 신년 인사를 위해 가는 공적 업무임에도 사익을 위해 물건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맞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조선에서 한 근(0.6kg)에 은 20냥 하는 인삼이 북경으로 가면 은 45냥이 되고, 한 근에 은 50냥 하는 홍삼은 북경에 가면 은 80냥이 된다는 소릴 듣자 부랴부랴 자신도 인삼이나 홍삼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었다.

허나 사신단이 떠나는 걸 먼저 알았던 이들의 사재기로 돈이 되는 인삼류는 물론이고 호피나 황모필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백면지(白綿紙)라도 챙겨가자고 해서 부랴부랴 80근(약 48kg)을 챙겼다.

조선의 사신단은 호위를 위한 병사와 관리, 짐꾼들 해서 대략 300명 규모로 이루어지는데, 나라에서는 한 사람이 짊어지고 움직일 수 있는 분량인 80근까지는 물건을 들고 가는 걸 허용해 주었다.

홍삼 80근이면 1근에 은 80냥이니 은 6,400냥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삼과 홍삼의 거래에 송상 같은 상인들도 끼어들기 위해 로비를 했었다.

덕분에 사신단은 평안도에 이르기까지는 길이 편했지만, 압록강을 넘어가자 대우가 달라졌고, 사람들과 물산도 달라졌다.

사신단은 안전을 위해 규모가 있는 군현에 묵으며 북경으로 움직였는데, 그럴 때마다 커다란 음식점에 사신단이 묵었다.

‘원종이가 문경새재에 만들려고 하는 주막이라는 곳이 이런 형태이겠구나.’

온돌을 쓰지 않아 나무로 2층 3층의 건물을 올려 장사하는 모습에 원길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신숙주 대감이 중원과 왜국에 가보게 되면 식견이 올라갈 것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물산이 다를 줄이야.’

“여기 주인은 여진족인데, 우리가 양고기를 시켰지만, 재미있는 것이 나올 것이네.”

윤하성의 말에 어떤 재미있는 것이 나오는지 기대했지만, 실망스럽게도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양고기 대신 개고기가 나오는군요.”

“하하하. 한입에 바로 맞춰 버리다니 놀랍구만. 한족이나 여진족들은 양고기를 우선으로 쳐주지만, 우리 조선 사람들은 양보다는 개고기를 최고로 친다고 해서 우리가 양고기를 주문하면 양이 아니라 개가 나온다네. 재미있지 않는가?”

“뭐 나름의 재미야 있겠지만, 안 좋은 거 아닙니까?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고사성어처럼 우리에게 더 싼 개고기를 내는 것이지 않습니까?”

“돈으로 계산하면야 그렇지. 하지만, 조선의 사신들은 오히려 개고기가 더 고급이니 좋다고 웃으며 먹는 것이지. 그리고, 대충 이야길 들어 보니 이런 다른 고기가 나오는 게 북경에서도 유행이라고 하더군.”

“네에? 고기가 바꿔 나오는 게 유행이라고요? 어떻게 유행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양고기보다 더 윗줄로 쳐주는 고기가 있다는 것이지.”

“그럼 북경에는 양고기를 판다고 해놓고는 소고기가 나오는 것입니까?”

“아니네. 소가 아니네. 돼지고기가 나온다고 하더군.”

“네에? 돼지요? 오히려 개고기보다 더 맛이 못할 터인데...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조선 사신단을 놀리기 위해 한족들이 꾸미는 것 아닙니까?”

“아니네. 윤 별제의 말이 맞아.”

사신단을 맡은 예조판서 홍윤성이 진짜 맞는 말이라고 거들었다.

“나도 작년 사신단으로 북경에 갔을 때 이 말을 듣고 농을 한다고 생각했지. 그 누가 양고기 대신 냄새가 심한 돼지고기를 더 좋다고 하겠나? 헌데, 그게 정말이었어.”

“소인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찌 그렇게 된 것입니까요? 설마 북경으로 처음 가는 소인을 놀리기 위한 것입니까?”

“허허. 자네를 놀려서 뭘 하겠나? 이렇게 된 것은 바로 황제의 취향이 양고기에서 돼지고기로 바뀌면서 자연스레 변화하게 된 것이네.”

고기가 바꿔 나온다는 게 농이라고 생각했던 원길은 황제가 돼지고기 취향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특이하군요. 그러고 보니... 명의 초대 황제였던 홍무제는 강남의 평민 출신이라 들었습니다. 이게 영향이 있는 것입니까?”

“맞아. 원래 돼지고기는 황제는 물론이고, 제후나 고관, 장수들도 잘 먹지 않는 고기였어. 웬만한 부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고기였지.”

“소동파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지요. 진흙만큼 값싼 돼지고기! 부자는 다른 고기가 많아 먹지 않고, 가난한 자는 먹는 방법을 몰라 먹지 않는 고기!”

“맞아. 윤 별제가 나름 시를 좋아 했구만. 소동파가 살았던 송나라 때는 물론이고, 전조인 원나라에서는 북방의 민족이라 양과 말을 더 많이 먹었지. 그게 아니라면 닭과 오리, 거위를 더 좋아했어. 그랬던 중원에 명이 들어서며 바뀌기 시작한 거야.”

“전조인 원나라 때는 장강 이남의 한족을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으로 여겼지요.”

“그래 맞아. 홍무제가 바로 그 장강 이남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지. 그러다 보니 당시 중산층이 먹던 양고기나 닭, 오리를 제대로 먹지 못한 거지. 그런 가난한 이들이 먹을 수 있는 고기는 돼지고기밖에 없었거든.”

“즉, 어릴 때 먹었던 돼지고기에 입맛이 길들여지다 보니 황제가 된 이후에도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고, 그게 그대로 내려오게 된 것이군요.”

“그렇지. 우리 조선도 명나라의 고관들과 연회를 가질 수도 있으니, 실수하지 않기 위해 돼지고기를 미리 먹어 보고 그 노린내에 적응해야 할거네.”

“네엡. 명심하겠습니다.”

***

북경에 도착한 원길은 자신이 가져온 백면지를 역관 오승호에게 넘겨주었지만, 그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여 오승호를 따라나섰다.

“전 참봉. 자네가 원하는 채소 종자는 하북 탕산에서 구할 수 있다니깐 그러네. 북경에서는 채소의 종자를 구할 수가 없데두. 한양 도성 안에서도 농사를 못 짓게 하듯이 북경 성내도 마찬가지야. 북경 성안에서는 채소전을 부치지 못하니 종자를 거래하는 자도 없네.”

“그러면 북경에 사는 이들은 어디서 채소를 가져오는 겁니까?”

“북경성 밖의 북산이나 그런 지역에서 채소전을 해서 들고 오네. 허나, 우리는 외인들이라 거기에 갈 수가 없네. 물론, 시간도 없고. 나중에 돌아갈 때 탕산에 들리게 되니 그때나 따라나서게. 지금은 나도 정신이 없어.”

역관 오승호는 관리나 짐꾼들이 가져온 짐들을 알고 있는 상인들에게 넘기며 물건값으로 옥신각신했는데, 원길이 보기에도 정신이 없어 보였다.

조선의 인삼, 호피, 붓, 종이를 팔고 비단, 도서, 벼루 같은 사치품을 다시 되사야 했고, 대금으로 받은 은을 챙겨가야 하는 일도 있다 보니, 원길이 보기에도 역관들이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길은 신숙주에게 들은 말도 있고, 동생이 상단을 운영하기로 했기에 북경에서의 두 달 동안 역관을 따라다니며 말을 배우고, 어떻게 명나라와의 거래가 돌아가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 때놈들이 양아치구나!’ 하는 것이었다.

사신단이 북경에 도착하고 돌아가는 날짜는 아무리 시간을 끌어도 두 달 후에는 조선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역관들과 거래하는 북경의 상인들도 이 60일의 시간제한을 잘 알았다. 그래서 이 시간 동안 담합해서 물건을 사지 않고 북경을 떠나는 며칠 전 마음이 급해진 그때 물건을 싸게 매입했다.

시간을 끌게 되면 사신단이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판서님. 사신단이 출발하더라도 몇몇이 남아 물건 거래를 마치고 뒤를 따르면 안 되는 것입니까?”

“전 참봉 우리가 그렇게도 안 해봤겠나? 법적으로 병자가 있으면 와병을 핑계로 몇몇은 더 늦게 북경을 벗어나도 되게 되어 있어. 그래서 물건값을 더 받기 위해 그렇게 와병을 핑계로 몇을 남기기도 했었지.”

“헌데 잘 안된 것이군요.”

“맞네. 저놈들이 담합을 해서 시간을 더 끌더군. 그러다 본대와 멀어지니 강탈을 하려고 하더군.”

“헐. 다른 나라의 사절을 공격하더니.”

“한족 놈들이 다 그렇지. 호위 병사들이 없으면 저 한족 놈들에게 당할 뿐이야. 이 넓은 땅에서 기습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 호위를 붙여 기습을 막게 되면 관에 반출을 금지하는 염초나 유황을 들고 간다고 신고를 해버리네. 그러면 증거가 없더라도 감옥에 들어가게 되니 우리의 손해야.”

“햐. 이 잡놈들을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별수 있나. 그저 날짜가 촉박하더라도 그 시세에 맞게 물건을 넘겨 이익을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게지. 사실 촉박하게 판다고 해도 큰 이문이 남으니 이 교역도 계속 유지가 되는 것이고.”

“그럼, 신숙주 대감이 이야기하는 시포나 시전을 의주 인근 국경에 설치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요?”

“그걸 명에서 해주겠나? 아마 누구나 와서 거래할 수 있는 국경의 시장이 열리면 명나라 상인들보다 여진족이나 달단이 먼저 와서 거래하자고 할거네. 그렇게 되면 명나라에서 금지하는 철이나 화약이 달단이나 여진족에게 넘어갔다고 난리를 칠 터인데, 그걸 어찌 감당하겠나?”

예조판서 홍윤성의 말을 들으니 그럴 것 같았다. 지금도 북방의 변경을 시끄럽게 하며 중원으로 다시 들어오기 위해 달단들이 설치고 있었고, 여진족들은 북경으로 가는 길목에서 도적질하는 상황이니 국경에 시전을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사신단을 통한 거래만으로는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전 참봉! 저기가 탕산성이네. 오늘은 여기서 묵을 예정이니 자네가 찾는 채소 종자들이 있는지 알아보게나.”

역관들의 말에 원길은 동생이 이야기했던 종자들을 구할 수 있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하지만, 탕산에서 거래되는 종자들은 대부분 조선에서도 구할 수 있는 종자들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의 눈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털이 섞여 있는 돼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

[작가의 말]

중국 명나라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양고기가 최고의 고기였습니다.

주원장 이후 명나라 황제의 입맛을 위해 돼지의 종자개량과 어릴때 숫돼지를 거세해서 냄새를 없애는 방법이 만들어 졌고, 고기를 연하게 하는 방법들이 만들어 졌습니다.

그런 황제의 입맛에 고관들도 입맛을 맞추다 보니 황제가 먹는 돼지고기를 다들 즐기기 시작했고, 지금의 중국인들은 돼지고기를 최고의 고기로 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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