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운이 좋군. (1)
“칡을 짓이겨 물을 뽑아내면 그 물에는 전분이라는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전분물을 끓여 만든 것이 이 칡 묵입니다.”
연질의 회백색으로 된 칡 묵이 올라왔는데, 둥근 그릇에서 식히며 굳혔기에 둥근 그릇 모양이었다.
‘이렇게 보면 젤리 같구나.’
물결무늬를 내어주는 크링클 커터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없다 보니 밋밋하게 직선으로 자를 수밖에 없었다.
“이 양념은 유자와 꿀을 섞은 양념입니다.”
한명회의 집이었기에 귀한 유자가 있었고, 유자의 새콤함과 칡 묵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현대에서도 도토리묵이든 칡묵이든 간장에 식초를 넣은 양념이 주를 이루지만, 의외로 묵은 달달한 소스나 드레싱과도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차를 끓여 먹는 유자청을 소스로 찍어 먹으면 최고지.’
“그리고, 이쪽은 간장과 식초, 파를 썰어 넣어 만든 양념입니다. 후식으로 생각하신다면 이 달달한 유자 양념에, 칼국수에 이어지는 식사로 생각하신다면 이 간장 식초에 찍어 드시면 됩니다.”
묵을 먹는 것이 처음인지 부인 한 씨는 젓가락으로 묵을 집다 흘리거나 세게 집으려다 묵을 부수기 일쑤였다.
결국, 숟가락을 들어 칡묵을 떠먹었는데, 달콤한 유자 소스도 듬뿍 퍼서 입으로 가져갔다.
“아! 절묘해요. 처음 입에 넣으면 꿀유자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가 묵에서 나오는 씁쓸한 맛이 느껴지며 깔끔해져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곤?”
“그게, 마치 녹아 없어지듯이 두세 번 씹기도 전에 없어지는 거 같아요. 저만 이런 거 아니죠?”
“하하하. 부인 나도 그렇소. 이 묵이란 것이 이리 연약한 것인 줄은 처음 알았소.”
잘산군은 웃으며 자신도 몇 번 씹지 않아 금방 삼켜졌다며 너무 잘 넘어간다고 목이 아플 때 딱 맞는다고 했다.
“전 도령. 이리 쉽게 마치 허공을 씹어 먹는 듯이 그냥 넘어가는데, 정녕 이게 배고픔을 메꾸어 줄 수는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마마. 칡에서 나온 전분과 물만으로 만드는 것이지만, 같은 양의 죽을 먹은 것과 같사옵니다.”
잘산군에게는 죽과 같다고 했지만, 칼로리만 따지자면 전분이 칼로리가 더 높았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흰 가루인 전분은 여러 개의 포도당이 묶여있는 다당류로 탄수화물을 정제시킨 가루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당뇨가 있는 사람이 주의해야 하는 음식이었다.
“오, 그렇다면, 이 칡이란 것은 구황식물로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구만.”
잘산군은 말을 하면서도 묵을 계속 집어 먹었는데, 간장과 식초에 찍어 먹기도 했지만, 주로 꿀 유자에 찍어 먹었다.
이건, 원길 형이나 기주 형도 마찬가지였는데, 역시 단맛이 최고였다.
“단맛을 좋아하시니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드리겠습니다.”
원종은 부엌어멈이 묵을 쑨 솥으로 가 꿀유자 소스를 만들고 남은 유자 찌꺼기를 털어 넣었다.
‘묵을 쑤며 바닥에 눌어붙은 묵 누룽지가 별미지.’
솥 바닥에는 묵이 누룽지처럼 눌어붙어 있었는데, 누룽지를 박박 긁어 둥근 뭉치로 만들었다.
그러곤, 젓가락 끝에 묵 누룽지를 꾹꾹 눌러 붙였다.
“식후 입가심 거리로 먹는 묵 누룽지입니다.”
“묵 누룽지? 내가 보기에는 둥근 것이 마치 꿀 경단같구나. 아니, 묵 경단인가. 그럼 어디...”
잘산군과 한 씨 부인은 마치 설탕 과자를 먹는 아이들처럼 묵 누룽지를 입에 가져갔다.
묵경단은 솥 바닥에 눌어붙었기에 묵보다 더 탄력이 넘쳤고, 유자의 향기가 베여있자 마치 고급 간식과 같았다.
실제 일제강점기 때 집에서 도토리묵이나 칡묵을 하고 나면 솥 바닥에 계핏가루를 뿌리고 박박 끓어 젓가락에 붙여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주었다.
이게 얼마나 맛있는 간식이었는지, 어른들은 묵 누룽지 구경도 못 할 정도로 아이들이 다 먹었다.
그리고, 아직 어린 잘산군과 한 씨 부인도 아주 좋아했다.
“원종아! 우리도 좀 다오!”
“아놔! 이형들 진짜. 손 많이 가네.”
잘산군이 없었다면 더 달라고 난리를 피웠을 형들이지만, 윗사람이 있다 보니 그냥 꾸질꾸질하게 눈치를 보며 묵 누룽지를 헤헤거리며 먹었다.
“잘 먹었네. 처음 전 도령이 나무뿌리를 가져 왔을 때 이걸 진짜 먹을 수 있나 생각했었어. 헌데, 이 칡이란 것은 충분히 먹거리로 쓸 수 있겠구만. 내 입에서 맞았어.”
“다행입니다. 마마.”
“그리고, 국수를 원래 좋아했기에 자주 먹었는데, 대부분이 맑은 장국으로 만든 국수였어. 이렇게 해산물로 국물을 내고 뽀얀 국물을 가진 칼국수는 처음이었네. 아주 별미였어.”
“다행입니다. 마마. 사가의 음식이라 마마님의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었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맛있는 사가의 음식이라면 내 언제든지 먹을 수 있고, 입맛에도 맞을 거네. 그래서 그런데, 이것도 우리 부엌어멈에게 가르쳐 주게나.”
“네. 군마마 댁의 어멈에게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좋군. 좋아.”
잘산군은 이제까지 내가 해준 음식을 먹으면서 직접적으로 뭘 더 먹고 싶다고 이야길 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칼국수는 입에 맞는지 먼저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 성종이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키가 큰 왕이었다고 했는데, 어쩌면 이런 국수 같은 면식을 좋아해서 밀가루의 영향으로 키가 커졌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다음에는 다른 국수를 준비해 줘야겠구나.’
퇴청시간이 되어 한명회와 신숙주가 같이 왔는데, 그들도 칡 칼국수와 칡묵을 먹어 보곤 구황식물 이상의 것이 되겠구나 하며 감탄을 했다.
특히, 한명회는 그냥 가루로 만들어 죽처럼 끓여 먹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내 소한당(所閑堂 권람)과 유람을 하며 먹었던 칡가루는 너무 써서 죽으로 쒀먹더라도 인상을 펼 수가 없을 정도였어. 헌데, 이건 하루 세 끼를 먹으라고 해도 먹겠구만. 이 묵으로 해 먹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 잘 먹고 돌아다녔을 텐데 말이야. 하하하.”
“칡뿐만 아니라, 도토리로도 전분을 뽑아 칼국수와 묵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국수와 묵으로 만들어 먹는 법을 전국에 알려야 합니다.”
“하하하. 그걸 직접 하지 않겠나? 보한재(保閑齋 신숙주) 밑에서 시포의 정규화와 같이 칡과 도토리를 먹는 방법을 알리는 데 힘써주게나.”
한명회의 말을 듣고 보니 신숙주가 어제와는 달리 관복을 입고 있었다.
“보한재(保閑齋) 아래에 특별 기구를 만들어 줄 터이니 이참에 출사하게.”
한명회의 말에 신숙주는 물론이고 두 형도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소생 가진 재주가 음식을 만들고 식료의로서 깨작거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아직 어리기도 하여, 좀 더 지식과 지혜를 쌓고 나면 그때 출사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그러고 보니 어리기도 많이 어리구만. 아쉽군.”
한명회도 욕심을 내며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훗날 조선 역사에 구도장원공으로 불리는 율곡 이이가 어린 나이(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며 기록을 세웠으나, 실제 관직에 나아간 것은 29세였을 정도로 약관(弱冠)이 되지 않은 자들 중에서 급제 후 벼슬을 한 이가 몇 없었다.
물론, 16세에 급제한 김종서 장군이나 17세에 급제한 남이 장군이 있고, 선조 때 박호란 자가 17세에 장원 급제한 케이스가 있긴 했지만, 다들 말년이 좋지 못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더해서 지금 벼슬에 묶여 한양에 있으면 안 되었다.
궁에서 나이 많은 관리들과 입으로 드잡이질하며 허송세월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아쉽지만, 나이가 어리니 어쩔 수가 없구만.”
신숙주는 대놓고 아쉽다며 티를 냈다.
“대신 궐 밖에서 신 대감 어르신과 약조한 것을 이루기 위해 빨리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하긴 그 일도 있지. 그래도 나와 함께 조정에서 시포의 상설화를 추진하였다면 참 재미가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 일은 저기 기주 형을 추천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하하. 좌의정 어르신 소생은 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소신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진기주는 그 자리에서 넙죽 엎드리며 절을 했는데, 신숙주는 한참을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지금 저 애를 놓치면 영영 잡기 힘들 것 같으니 줄을 쳐둔다는 생각으로 진기주를 써야겠구나.’
“좋아. 이조(吏曹)에서 사람을 보내지.”
“가, 감사합니다. 어르신.”
진기주는 그동안 신숙주의 넷째아들인 신정에게 열심히 술을 사 먹이고 딸랑거렸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눈물이 다 나왔다.
“그럼, 자네는 본가에는 언제 내려가는가?”
“날씨가 아직 따뜻하니 내일 당장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
“형님 집에서 아버지 허락을 받고 오겠습니다요.”
“그래. 우선은 한양에서 옷을 만들어 파는 것에서 이익이 나고 있으니 급하게 뭘 하려고 하지 말거라.”
“이야~ 형님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빨리 다녀오며 돈을 더 가져오든지 곡식을 더 가져오라고 난리였을 겁니다.”
“하하하. 내 호조에서 눈물이 나게 배우고 있다. 뭐든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는 것도 이제 알게 된 것이지. 이 주름살을 보거라 늙은 것 같지 않으냐.”
“그 주름살은 송상에게 술 접대받으며 잠을 못자 생긴 것이겠지요.”
“아, 알고 있었느냐?”
“그럼요. 송상이랑 몇몇 상인들에게 공랑 점포를 먼저 지정해주고 뒷돈을 받는다는 게 제 귀에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윽. 그럼 빨리 발을 빼야겠구나.”
원길 형은 호조에서 일하며 어느 정도는 단단해진 것 같았지만, 뭔가 소인배적으로 단단해지는 것 같아 늘 그 정도를 정해줘야 할 것 같았다.
***
“도련님. 잠시만요! 무슨 소리가 안 들리십니까?”
한강을 건너 성남 근처에 다 달랐을 때 금산이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불러 세웠다.
금산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니 뭔가 웅웅, 붕붕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응? 이 소리는 벌이 나는 소리인 거 같은데.”
“네. 도련님 벌 소리인 거 같습니다. 가볼까요?”
그렇지 않아도 양초가 큰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벌통 한 개가 아쉬운 판이었다.
소리를 따라 움직이다 보니 붕붕거리는 벌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오!”
마을과는 좀 떨어진 공터에 통나무 속을 깎아 만든 벌집이 8개가 놓여 있었는데, 봉두난발을 한 네 명의 남자가 통나무 벌집을 도끼로 부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꿀을 채취하려면 그렇게 하면 아니 되네! 그렇게 하면 벌들이 다 도망하거나 죽게 되는 거야! 그만두게!”
원종이 크게 외치며 다가갔지만, 봉두난발을 한 남자들은 그저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도끼를 들었다.
“내가 벌집을 다 사겠네. 그만하게! 당장 손을 멈추게!”
내년 봄에 양봉을 하려면 벌집이 있어야 했기에 가격도 묻지 않고 다 사겠다고 외쳤다.
그제야 봉두난발의 남자들은 뒤로 물러섰는데, 그제야 제대로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도련님. 이놈들 야인(野人 여진족)인 것 같습니다. 제 뒤로 가시지요.”
금산의 말을 듣고 보니 복식이 조선의 의복과는 달랐다. 여진족이 남하하여 약탈 중인가 싶었지만, 도성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파발이나 봉화가 피어오르지 않았었다.
“헤헤헤. 귀한 댁 도령님 같은데, 벌집들을 얼마에 사시겠수? 아무리 못해도 오승포 50필은 주셔야 하는디.”
“북방 야인들이 여기까지 내려온 것이냐?”
“엥? 그 무슨 말이유? 야인이라니? 아, 우리 행색이 이렇지만 우리는 도살업(屠殺業)을 하는 백정호(白丁戶)요.”
“도살을 업으로 한다고? 소 돼지 잡는?”
“뭐, 소 돼지 잡는 건 맞는데, 또 바로 그렇게 이야길 하니 좀 섭하오. 그래서 이 벌집 살 거요 말 거요? 우리도 값만 맞으면 통째 넘기고 싶소. 벌들이 워낙에 지랄 맞아야지.”
이들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아는 그 고깃집의 백정인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사지. 그런데 어떻게 벌집을 8개나 구한 것인가?”
“구하다니요? 우리가 잡은 거요. 새끼 쳐서 도망가는 벌을 다시 잡아다 통에 넣은 거요.”
백정들은 아무렇지 않게 벌들을 잡아다 양봉을 했다고 하는데, 무식하고 야만스레 보이는 자들이 어떻게 벌집을 8개나 늘린 것인지 궁금했다.
“자네들도 꿀을 얻기 위해 양봉을 한 건가?”
“뭐, 겨울에 벌집에서 꿀을 떼다 팔아도 돈이 되긴 하지만, 그것보단 파리 때문이유.”
“파리? 날파리? 아!!”
백정의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
[작가의 말]
선조 때 17세로 장원급제한 박호는 10대에 장원으로 급제한 최초의 10대였습니다.
허나 그도 임진왜란 때 싸우다 26세에 죽었습니다.
10대에 출사한 이들 대부분이 역적으로 몰려 죽거나, 단명했고, 김종서의 경우에는 머리가 깨져 죽었죠.
성삼문의 경우에도 18세에 급제 21세에 출사했으나 사육신의 대명사이고...
조선 시대 10대에 일찍 출사를 하면 그만큼 주목을 많이 받아 말년이 다들 좋지 못했습니다.
22세에 급제, 23세에 출사한 신숙주는 45살에 영의정에 오르기도 했으니, 대충 통계적으로 봤을 때 20대에 출사하는 것이 딱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