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Honey My Honey. (1)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무슨 이야기? 앞뒤 없이 그렇게 이야길 하면 내가 어떻게 알겠나?”
“주먹밥 대신 나오는 건번을 이야기하는 거라네.”
“아, 건번? 처음 건번을 받았을 땐 뭐 이런걸 먹으라고 준 거야 하면서 욕을 했지만, 닭곰탕 국물이랑 먹으니 괜찮더구만. 근데 왜?”
“그래. 그 이야기네. 원래 말이야. 딱딱한 건번은 그냥 입에 넣고 침에 불려 먹는 거라고 하더군. 국물 없이 말이야.”
“에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렇게 먹었다간 이빨이 남아나지 않았을 거야 먹는 시간도 한참 걸렸을 거고.”
“그렇지. 헌데, 입에서 건번이 침에 부는 시간까지도 노역 일을 시킬 수 있기에 원래 건번을 그렇게 먹였다고 하더군.”
“헐. 그게 진짜인가? 밥 먹는 시간도 아끼기 위해 건번을 먹이려고 한 것이라니. 진짜 헐 이로구만.”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닭 국물을 끓여 주자고 한 것이 문경 유지인 전 도령이라고 하더군. 그 어린 도령 있잖나.”
“아, 우리에게 건번을 줄 때 은근히 반쪽씩 더 쥐여 준다는 그 꼬마 도령?”
“그래. 맞아. 그 도령이 닭 국물을 우리는 닭도 자기 집에서 한 마리씩 들고 와서 잡는다고 하더군.”
“헐! 그게 정말인가? 그럼, 이거 닭 국물 줄 때 건더기 좀 달라고 투정 부리면 안되겠구먼. 그런데, 어젠 닭대신 개장국이 나왔는데, 그건 뭐야? 그것도 집에서 잡아 온 건가?”
“아, 그건 들개라네. 노역 온 자들이 배고픔에 나물이고 열매고 주워 먹으러 산을 돌아다니니 전 도령이 통 쇠로 된 함정 우리를 설치했다고 하더군. 어제 먹은 개장국은 그 우리에 잡힌 거라고 하더군.”
“오! 대단하구만.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이리 잘 아나?”
“내가 직접 물어봤거든. 건번이라는 걸 화덕에 굽기 전에 오지창으로 한번 찌르던데 그 찌르는 이유가 궁금했거든. 그래서 물어보면서 다른 것도 물어봤지.”
“그래서 답은 다 들었나?”
“전도령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고, 거기서 노역으로 건번을 만드는 노인에게 들었네.”
“오 그래서 왜 오지창으로 굽기 전의 건번을 찌르는 건가?”
“그게, 우리에게 오복(五福)을 주기 위해서라고 하더군. 건번에 오복을 넣어 주기 위해 오지창으로 찌르는 거라더군.”
“복을 주기 위해서? 진짜?”
“진짜 그런 이유라고 하더군. 노역와서 몸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돌아가라고 오지창으로 건번을 찌르면서 복을 빌어준다고 하더라고. 이 마음 씀씀이가 정말 고맙지 않은가? 어! 저기 전 도령님이다! 인사하러 가야겠어.”
“나도 인사해야겠구먼. 오복은 둘째치고, 자기 돈으로 닭 국물을 끓여 준다니 고맙다고는 해야겠지.”
건번으로 밥을 먹고 쉬고 있던 이들이 원종이 지나가기만 해도 감사하다고 몸을 일으켜 절을 하자, 원종도 처음엔 무었 때문인지 몰랐다
하지만, 건빵을 구울 때 반죽 속 공기를 빼기 위해 찍는 오지창이 오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변해 양민들에게 말이 퍼지자 왜 이렇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모든 게 다 쇤네가 입을 잘못 놀린 일 입니다요.”
만길 노인은 늘 내가 반 농담으로 벽돌로 얻은 이익을 다 양민들 밥 먹이는 데 쓰고 있다고 자선사업 한다고 했던 말을 듣곤, 내 평판을 좋게 만들어 주기 위해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다, 오지창으로 찍는 이유를 물어보는 자가 있기에 자신도 이유를 몰랐지만, 가장 좋은 이야기를 가져다 붙여 이야기했던 것이었다.
“괜찮네. 큰일도 아니고, 노역 온 자들의 입에서 그냥 칭찬을 받는 것이라면 아무 상관이 없네. 오히려 내 위명이 올라갔으니 잘한 일이네.”
사실, 원종은 건번을 만들며 주먹밥보다는 건빵이 군용 주식으로 더 좋을 것 같아 시작한 것이었고, 겸사겸사 건빵을 일본보다 먼저 만든 것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록을 남겼으니 되었던 것이었다.
허나, 이렇게 일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니 행운이 굴러들어 왔다.
“도련님! 단맛 좀 보시겠습니까요?”
만길 노인은 뭔가 큰 선물을 주는 것처럼 밝은 얼굴로 급히 물었다.
“단맛?”
“네. 갈골에서 온 평신이란 이가 석청(石淸)을 찾았다고 합니다.”
“석청? 돌 사이에 만들어진 벌집 말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요. 어서 가시지요.”
만길 노인을 따라가 보니 큰 돌벽 사이에 난 틈새에 벌집이 붙어 있었는데, 판석이 널찍하게 걸치듯 만들어진 틈새라 마치 동굴처럼 그늘이 져 있었다.
“이제 겨울 초입이라 벌들이 돌아다니지 않고 있어서 연기로 쫓아야 합니다. 그리고, 금산 장사님은 주위를 좀 살펴 주십시오.”
“뭘 살펴야 하는가? 현감이나 아전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면 살피지 않아도 되네?”
“아이고, 그게 아닙니다요. 곰 때문에 그렇습니다요. 반달곰이고 흑곰이고 놈들은 자기 영역 안에 있는 벌통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련하게만 생각하는 곰은 벌통이 있다고 해도 한 번에 다 먹지 않습니다. 놈들은 꿀이 찰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놈들입니다. 그래서 벌꿀을 채취할 때는 늘 곰이 오는지 확인해야 합니다요.”
“그렇구먼. 금산 부탁하네.”
금산이 주위를 살필 때 모닥불을 피워 연기를 내었는데, 연기가 차기 시작하는 초반에는 벌들의 움직임이 줄어들었다가 그 한도를 넘자 벌들이 매운 연기에 반응해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각 가까이 연기를 피우자, 벌통을 지키던 벌들이 반으로 갈라져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매운 연기를 씌게 되면 끝까지 벌통을 지키려는 놈들과 피하려고 하는 놈들로 갈라져 버리게 됩니다. 여왕벌도 이때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는데, 이때 들어가야 합니다.”
만길 노인은 사이가 드문드문한 마로 짠 그물 같은 천을 얼굴에 썼는데, 현대 사람들이 쓰는 그물망 같은 역할을 하는 듯했다.
한 손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타다만 나무 조각을 들어 벌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으로 연기를 몰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 든 뾰족한 나무 막대기로 뭉쳐있는 벌들을 천천히 헤집으며 여왕벌을 찾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 여왕벌을 찾게 되자 막대기로 그 주위 벌집을 조각내어 얼른 집어 들었다.
“베어둔 나무통을 가져와라!”
나무통을 찾는 말에 현대에 쓰이는 그런 사각형의 양봉 틀인가 싶었지만, 손자인 석동이가 들고 온 나무통은 둥근 소나무를 가로로 잘라 그루터기처럼 위로 세울 수 있게 만든 통나무였다.
통나무의 속은 파내어져 있었는데, 이게 전통 방식의 양봉 틀인 것 같았다.
만길 노인은 여왕벌이 붙은 벌집을 통나무 속에 집어넣곤 사람이 없는 한쪽으로 치웠는데, 여왕벌을 따라 벌들이 오는지와 여왕벌이 도망치지 않는지를 눈으로 계속 확인했다.
“이렇게 난리가 난 때에 지조(志操)를 지켜 여왕을 따라오는 놈들도 있지만, 나라가 망했다고 도망쳐 다른 벌집으로 가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도망치는 녀석들을 잘 따라가면 다른 벌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석동아, 저쪽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이리저리 흩어지듯이 날아다니는 벌의 움직임이었지만, 만길 노인의 눈에는 뭔가 다른 흐름이 보이는지 손자에게 방향을 가리켰다.
석동이 벌을 따라가자 혹시 몰라 금산도 따라가게 시켰다.
“나무통에 제대로 옮겨붙은 거 같습니다.”
통나무 통에 붙인 여왕을 따라 벌들이 시꺼멓게 나무통 안으로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저 꿀을 따면 되는가?”
“네 도련님. 다만, 방금 옮긴 나무통의 꿀만으로는 벌들이 올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저 석청에서 따는 벌집의 3할 정도는 이 나무통에 옮겨 붙여야 합니다.”
“그 정도라면 충분하네. 그렇게 하게.”
만길은 바위에 달린 석청을 떼어내는 데도 기준을 가지고 떼어냈는데, 손으로 잡기만 해도 꿀이 뚝뚝 떨어지는 벌집은 꿀 도자기에 담았고, 손으로 잡았을 때 꿀이 묻어 나오지 않는 것들은 여왕이 있는 통나무 통에 넣었다.
“할아버지! 벌집을 찾았어요! 고개 넘어있었어요.”
“좋구나! 어서 여기부터 마무리하자꾸나.”
만길은 벌집을 바위에서 모두 다 떼어내면서 가장 꿀이 없는 한 조각을 남겨두었고, 그 조각에서 짜낸 벌꿀은 양 사방에 발랐다.
“한번 이렇게 번성한 벌집이 생겼던 곳은 다음에도 벌집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한 조각을 남겨두면서 꿀 칠을 사방에 해두면, 새집을 찾던 여왕이 꿀 냄새에 이끌려 여기에 집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와서 꿀을 따갈 수 있습니다.”
만길 노인의 말을 듣고 보니, 전통 방식의 양봉에는 분봉이란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현대식 양봉에서는 벌통 수를 늘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여왕을 키우는 왕대를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벌통에 끼웠다 뺐다 할 수 있는 소비장(나무 모판)에 새끼손톱만 한 둥지 여러 개를 만들어 여왕을 키워내었다.
그렇게 키워낸 새 여왕을 따라 벌집 한 통에서 3~4통의 벌통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인위적으로 조각내어 분봉한 벌통은 다시 세력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걸리겠지만, 단시간에 벌통을 늘리기에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벌통에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소비장이 없기에 전통 양봉은 벌통 수를 쉽게 늘리지 못하는 거구나.’
채취한 벌집에서 흘러내리는 꿀을 한번 찍어 먹어보자, 입안 가득히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집에서 먹었던 거나 요리에 썼던 꿀은 생청(生淸 벌집에서 뽑은 꿀만 있는 꿀)이라 꿀맛 만 있었지만, 이건 벌집에 묻어있는 화분(花粉 꽃가루)의 맛이 생생하게 느껴지는구나.’
원종은 꿀과 함께 느껴지는 꽃향기가 무슨 꽃의 향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꿀의 달콤함과 꽃향기의 화사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소청(巢淸 벌집에 담겨있는 꿀)으로 벌집과 같이 먹는 꿀이 가장 맛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진짜구나.’
벌집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 나뭇가지로 꿀이 흥건하게 고여있는 벌집을 떼먹었다.
‘오~ 꿀은 꿀인데, 벌집이 씹히며 나오는 단맛이 더해지니 내가 아는 꿀이 아니구나.’
벌집을 씹을 때 치아 사이로 쫙쫙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질감이 너무나도 좋았다.
이 벌집을 만드는 것은 꿀벌이었고, 꿀벌은 꿀만 가지고 벌집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꿀은 물론이고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 꽃잎이 머금고 있는 이슬과 꽃가루를 사용해서 벌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울러 꿀이 되게 하는 것은 꿀벌의 효소였다.
꿀을 채취해 집에 돌아와 내뱉을때 같이 나오는 꿀벌의 효소가 있기에 진정한 꿀이 되는 것이었다.
‘꿀벌이 토해낸 것을 달다고 먹는 게 웃기지만, 그만큼 달고 맛있으니 최고지 뭐.’
그리고 달콤한 꿀맛은 쓰디쓴 아픈 기억을 끌어 올려주었다.
‘벌집 아이스크림으로 카페가 박살이 났었지.’
한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오픈했던 퓨전 레스토랑이 성공하자, 당시 유행하던 벌집 아이스크림 집을 차렸었다.
내 딴에는 레스토랑과 카페의 협업을 노린 구성이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벌집을 만드는데 식용이 아닌 공업용 파라핀을 사용했다는 방송에 두들겨 맞아, 이득은 보지도 못하고 폐업을 당했었다.
‘지금은 식용 공업용을 안 따져도 되는 옛날방식 양봉이고, 꿀벌도 서양에서 들여온 벌이 아닌 토종 꿀벌이다. 그리고 꿀은 장기간 보관도 가능하지.’
이 말은 유통에 따른 망실이 없다면 문경에서 채취한 벌집을 한양에서 판매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양봉 기술을 가진 주름살 가득한 노인 만길과 더벅머리의 손자 석동이 아주 탐스러워 보였다.
*
[작가의 말]
꽃에서 분비되는 자당 성분을 꿀벌이 먹고, 그걸 벌집에서 토해내는 것이 벌꿀이 됩니다.
이때 꿀벌의 뱃속에서 효소가 나와 자당을 소화 시키는데, 이때 꿀벌이 가진 효소가 첨가됩니다.
꿀벌의 효소는 세균을 막아주는 항생제와 같은 역할을 하기에 꿀이 오래되어도 상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물론, 효소 외에도 꿀은 당도가 높아 변질시키려는 세균의 몸에서 수분을 빼앗는 삼투압 현상으로 세균을 죽이기 때문에 변질이 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