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한명회의 집에서. (2)
수유에 뜻이 담겨있다는 아리송한 이야기를하며 한명회가 웃자 다들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 수유(酥油)에 뜻이 있었어.’
한명회는 입안에서 쫀득하게 씹히는 수유의 식감에서 그간 고민하던 일의 결론을 내렸다.
‘수유는 같은 우유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번 만들어지면 딱딱하게 굳어 마치 다른 물건인 양 서로가 들러붙지 않는다. 하지만, 열기를 받으면 딱딱했던 것들이 부드러워지며 다시 뭉쳐지게 된다.’
한명회는 입안에서 씹히는 쫄깃한 수유의 식감을 다시 느꼈다.
‘한 핏줄에서 난 종친들은 서로 떨어져 견제하지만, 수유처럼 온도가 오르게 되면 언제든지 다시 붙어 큰 덩어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핏줄이 가진 힘이다.’
열기에 의해 들러붙는 수유들처럼 당금의 주상과 구성군 이준, 남이가 하나로 들러붙게 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내 입속에서 씹히고 뜯겨져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이 수유처럼 종친들은 뜯겨져야 한다. 더 들러붙기 전에 뜯어 먹어야지 뭉쳐져 커지지 않는다.’
한명회는 입안의 것을 삼키며 그동안 고민해 왔던 일의 결론을 내렸다.
“하하하 내 목소리가 컸었나? 별거 아니네. 그냥 너무 맛이 있어 감탄사가 나온 것뿐이니 계속 먹게나. 다들 들도록 하게. 그런데, 이 밥의 이름이 신대감이 이야기한 것처럼 황금밥인가?”
“아직 음식의 이름을 정하지 않은 것이라, 따로 하문하실 것이 없으시면 그대로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로 하지. 황금밥... 꽤나 어울리는 이름이야. 그리고 전도령은 한양에 있는 동안 어디에서 머무르는 건가? 머물 곳은 있는가?”
“그게, 아직...”
“친족이니 제가 거하는 다연재에 같이 묵을 예정이옵니다.”
“그렇군. 핏줄이 최고이지. 내 조만간에 한번 부르도록 하지. 우리는 안으로 자리를 좀 옮기세나.”
아직 밥을 먹고 있는 자도 있었지만, 한명회의 말에 숟가락을 내려놓고,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원종아. 우리도 저기로 가자. 그리고 이 황금밥 조제법도 알려줘야 한다.”
“네. 알려드리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헌데, 형님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입니까?”
능청맞게 웃는 진기주를 따라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야 당연히, 벼슬이라도 얻어볼 요량으로 신숙주 대감에게 붙은 것이지. 그런데, 듣기로는 주상전하께서 내리신 벼슬을 네가 거부했다고 하던데, 왜 벼슬을 거부한 것이냐? 나 같으면 바로 출사를 했을 것이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형님도 운이 좋아 출사를 하게 되면 신숙주 대감의 끈을 잡고 있어야지 다른 끈을 잡으시면 안 됩니다.”
“하하하. 그건 당연한 거 아니더냐? 꽂아준 사람의 뒤에 서야지.”
당연한 소릴 한다고 웃는 진기주를 보니 줄을 바꿔 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신숙주의 줄을 잡고 있다면 연산군이 즉위하기 전까진 안전할 터였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우리도 이만 돌아가지요.”
이날 한명회와 신숙주를 비롯한 세 명이 방 안으로 들어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알 수 있는 일이 금세 벌어졌다.
***
방설환을 만드는 일로 내의원에 있으니 전현재가 급히 뛰어와 잡아 이끌었다.
“너는 이걸 어찌 알았느냐?”
“뭘 말입니까?”
“남이 장군의 일 말이다. 오늘 의금부에서 남이 장군을 잡아 가두었다. 역모의 혐의다.”
“아,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거야 전에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의금부 도사와 나장들이 하는 이야길 들었다구요. 그래서 형에서 출사를 늦추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이상하다는 말이다. 어찌 일개 도사와 나장의 말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냐?”
정현재는 이해하지 못한다며 계속 물었다.
“형님.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한 일입니다. 새로이 왕이 되면 전대 국왕의 총애를 받던 이들을 계속 써야 할지 바꾸어야 할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그리고, 주상전하가 세자일 때 스승이 한계희 영감입니다. 당연히 그쪽을 우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파벌간에 솎아내는 것이로구나.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우리는 그저 본분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원종 도령! 어디 있소? 좌의정께서 찾으시오!”
원종은 급히 자신을 찾는다는 관리가 오자 전현재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식, 의원의 본분에 충실하자고 해놓고는 벌써 한명회에게 줄을 섰구만. 그럼 나도 저쪽에 서야 하는 것이로구만.”
***
“응? 이 길은 좌의정 댁으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소만.”
“맞소이다. 종친이신 잘산군(乽山君)의 댁으로 가는 길이오. 좌의정 나리 께서 사위이신 잘산군께 전도령의 요리를 먹이고 싶어 하시오.”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성종이 되는 잘산군을 만나게 될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조선 시대 왕 중에서 운빨이 제일 좋은 왕인데 기록처럼 키가 크려나.’
“어서 오게나. 자네를 기다린다고 다들, 간식도 먹지 않고 있었네.”
일전 한명회의 집에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한명회가 손수 나서 나를 이끌었는데, 안채에서 잘산군과 부인 한씨를 보게 되자 그의 이런 모습이 이해되었다.
‘나중 공혜왕후가 되는 한명회의 딸이 몸이 약했다고 하더니 딸 사랑에는 한명회도 어쩔 수가 없구나.’
실제 한명회는 예종에게도 딸을 시집보냈었고, 성종에게도 딸을 시집보냈었다. 두 왕의 장인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예종에게 시집 보낸 딸은 16살에 아이(인성대군)를 낳은 후 산후병으로 17살에 죽었었다. 어린 나이에 낳은 인성대군 또한 2살에 죽이었기에 한명회는 크게 슬퍼했다.
그리고, 성종에게 시집간 막내딸 한씨도 몸이 좋지 않아 병석에 누워있는 날이 많았으니, 이런 딸을 챙기는 한명회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몸이 아프더라도 성종의 원자를 낳아주길 원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집간 딸이 아프다면 마음이 쓰이는 게 당연하지.’
실제로 보게 된 잘산군은 같은 나이 또래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키가 컸고, 인상이 날카로웠다. 반면에 부인 한씨는 원종보다 1살 많았는데, 병색까지는 아니라도 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신묘한 요리를 잘하여 사람들의 식욕을 끌어올리는데 재주가 있다고 들었다. 우리 앞에서 요리하여 올릴 수 있겠느냐?”
“네 물론입니다. 대군마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명회의 집에서 요리하며 주방 도구의 부족함을 느꼈었다. 그래서 유기 장인들에게 철판 볶음밥용으로 쓸 수 있는 유기로 만든 칼과 뒤집개도 만들었다.
이미 재료가 다 준비되어 있었는데, 한명회 집에서 본 청지기가 완벽하게 준비해주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청지기에 몇 가지를 더 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몸이 약한 부인 한씨를 위해 돼지 갈빗살은 더 잘게 썰어 볶았고, 채소들도 좀 더 얇게 볶았다.
물론, 잘산군 부부가 웃을 수 있도록 철판 볶음밥을 함에 있어 칼로 두드리고, 계란을 던져 뒤집개로 깨 후라이를 하는 묘기도 부려주었다.
그리고 수유는 그때보다 2배 더 많게 볶음 방에 올려 치즈 밥처럼 만들어 주었다.
“어머. 아버님! 처음에 아버지가 황금밥이라고 하셨을 때 그 색이 와 닿지 않았는데, 정녕 누런 황금의 색입니다.”
“하하하. 그렇지. 내 그래서 특별히 너에게 이 음식을 준비한 것이다. 이걸 상추 쌈에도 싸서 먹을 수 있고, 다른 반찬을 올려서 먹어도 좋더구나.”
“장인어른께서 특별하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신 연유를 알 것 같사옵니다. 수유를 이렇게 해서 밥에 올려 먹을 줄은 몰랐습니다.”
한명회와 잘산군 부부가 맛을 품평하며 먹을 때, 원종은 급하게 한가지 요리를 더 올렸다.
“외람된 말이지만, 부인께선 이것을 드십옵소서.”
원종은 청지기가 가져온 재료를 정리하여 큰 대접에 밥을 넣고, 철판 볶음밥을 하며 준비했던 채소들을 둥근 방사형으로 올렸다.
그리고, 방사형의 중앙에는 잘게 다진 소고기와 계란 노른자를 올렸는데, 밥 위에 올려진 재료들의 색이 형형색색으로 갖추어지자 마치 그림 작품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른 버전으로는 계란 노른자 생것 대신 노른자만 따로 스크램블을 만들어 황금밥처럼 한가득 올렸다.
“오! 당근과 무를 채 썰어 삶았고, 콩나물, 미역, 상추, 버섯, 도라지를 잘게 다져 올렸구나. 이렇게 많은 재료가 들어가다니 이 음식은 무엇이라 하느냐?”
“비빔밥이라고 합니다. 밥을 비벼 먹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렇게 간장과 참기름을 올려 숟가락으로 비벼 드시면 됩니다.”
현대에 알려지기로는 비빔밥의 옛말이 골동반(骨董飯)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틀린 말이었다.
옛사람들이 밥과 고기 채소를 비벼 먹던 것을 혼돈반(混沌飯)이라 부르다가 중국 강남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섞어 먹는 것을 골동갱(骨董羹)이라고 불렀고, 이게 골동반이라고 전해졌었다.
그러다, 조선 후기 시의전서(是議全書)란 요리서에서 골동반을 부븸밥 이라 한글로 지칭하면서 자연스레 비빔밥으로 전해졌던 것이었다.
‘중국에서 연후 한 어원을 따를 필요는 없지. 바로 비빔밥으로 간다.’
왕족이자 정승인 세 사람이 직접 움직여 비비는 게 힘들어 보이자 내가 나서 간장과 참기름을 뿌려 밥을 비벼 주었다.
‘고추장! 고추장이 있으면 진짜 끝내주는데...사도(邪道)나 마찬가지인 간장 비빔밥이라니.’
고추장이 있었다면 맛이 두배로 맛있어졌을 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부인께오선 몸이 허약하신 것 같아 황금밥 보다는 이 비빔밥을 준비했사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황금밥보다 이 비빔밥이 더 몸에 좋다는 말인가?”
한명회가 그게 무슨 말이냐며 약간 민감하게 물어왔다. 딸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까탈스러워진 듯했다.
“기름이 몸에 좋은 음식이자 약재인 것은 맞사오나 사람의 체질에 따라 기름에 볶은 밥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부인께서는 기름에 볶음밥보다는 이렇게 참기름만 친 이 비빔밥이 더 맞을 것 같아서 그런 것이옵니다.”
“장인어른 그런 기름에 의한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비비지 않은 저 밥을 보십시오.”
잘산군의 말에 한명회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뭔가 있는가 싶어 아직 비비지 않아 채소가 곱게 올려진 비빔밥을 보았다.
“저 색을 보십시오. 오방색(五方色)이지 않사옵니까?”
“오! 그렇구나. 음양오행이로구나. 오행에는 오색이 따르니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이 모두 다 들어가 있구나.”
잘산군과 한명회의 말을 들으니 뭔가 황당했지만, 음식과 연관해 생각하니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음과 양의 기운이 생겨나 하늘과 땅이 되고 다시 음양의 두 기운이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오행을 생성하였다는 것이 음양오행사상인데, 이게 음식과 연관이 될 때에는 나름 과학적인 이론과 얼추 맞아 들어갔다.
영양학에서 보면 단백질은 고기의 색으로 붉은색이고, 탄수화물은 곡물의 색으로 흰색, 지방은 노란색, 채소는 파란색, 발효식품은 검은색을 상징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양 균형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오행의 기운을 담은 오방색은 영양학적 측면에서 보는 것과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은 바로 비빔밥이었다.
“그렇구만. 황금밥은 열기와 노란색이 치우쳐져 있는 음식이고, 이 비빔밥은 오행의 기운이 적절하게 섞여 있으니 저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되는 음식이구나.”
한명회는 그제야 내가 비빔밥을 따로 올린 이유를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간장 양념의 비빔밥을 부인 한씨가 맛있게 먹자 기뻐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어리긴 해도 식료의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내 딸아이를 진맥 한번 해주게나.”
*
[작가의 말]
세조에서 예종으로 그리고 성종으로 이어지는 왕위를 보면 참으로 재미가 있습니다.
원래라면,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20살에 요절)가 죽었을 때 장손인 월산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었어야 하지만, 세조는 손자가 너무 어려(당시 3살) 4살 더 많았던 당시 7살의 예종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장자상속의 규범을 어긴 것인데, 이는 유아 사망률이 높다 보니 조금이라도 나이가 많은 차남을 세자로 올린 것이었기에 논쟁이 없었습니다.
물론, 이때 세조가 정국을 확실히 잡고 있었기에 잡음이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예종도 1년 만에 죽어 버렸다는 겁니다.
법도상으로는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당시3살)에게 갔어야 하지만 여기서도 장자에게 계승되는 종법을 어기고, 의경세자의 차남인 잘산군(당시12살)에게 왕위가 가게 됩니다.
문제는 잘산군에게는 의경세자의 장손인 월산대군이란 형이 있었음에도 그를 거르고 차남인 잘산군에게 왕위가 간 것입니다.
이때 월산대군은 15살로 충분히 왕으로서 재위가 가능했습니다.
헌데, 나이가 더 어린 잘산군(12살)에게 왕위가 가버렸습니다.
예종이 급박하게 사망하자 장례를 다 치르기 전에 잘산군으로 왕으로 세웠는데, 이는 잘산군의 장인이 한명회였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예종이 1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종친을 중심으로 한 신진세력들을 확실하게 처리해 주었기 때문에 한명회가 자신의 사위를 왕으로 올릴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재위기간 동안에도 특별한 난리도 일어나지 않았고 자연재해도 특별한 게 없었기에 무난하게 재위했던 성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결국 성종은 운빨이 너무 좋았던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다들 오늘 로또 운빨 날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