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한명회의 집에서. (1)
“좌의정 어른. 저 친구가 맞습니다. 저 친구가 요리숙을 만든 전원종이라는 친구입니다.”
“아니! 기주 형님이 아니십니까? 여긴 어인 일로?”
나를 잘 안다는 듯이 이름을 부르며 나온 이는 나와 6촌 관계인 진기주였다.
“어쩌다 보니 한양으로 오게 되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구나.”
상주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 한양에 그것도 실세 중의 실세라는 한명회의 집에서 마주쳤으니 반갑기도 했지만, 걱정도 되었다.
“이거, 큰일이로구만. 진가의 행랑어멈이 만들어 내는 요리에 다들 최고라고 했는데, 진짜가 나타나 버렸으니 이 어찌하면 좋으리오.”
신숙주는 둘의 만남에 큰일 났다는 듯이 이야길 했지만, 사실 그런거 보다는 오늘 나올 요리가 어떤 요리일지가 더 궁금했다.
‘요리를 만들었던 그 행랑어멈에게 요리를 가르친 게 저 어린 도령이라고 하니 참으로 신기하구나. 어찌 부엌 밥을 더 오래 먹은 행랑어멈보다 더 음식을 잘할꼬.’
“그래, 오늘 진기주 자네의 행랑어멈은 무슨 요리를 한다고 했는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이기에 이미 만들고 있사옵니다. 저쪽이옵니다.”
진기주의 안내를 받아 가보니, 바닥에 큰 솥이 놓여 있었는데, 그 솥 안에 숯불을 피우고 솥 위에 닭을 꼬치로 꽂아 돌리며 간장과 조청을 겉에 바르고 있었다.
“한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다는 내촌(內村)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 마을의 단합을 위해 만드는 요리로군.”
“혹시 이 요리도 저 전도령이 만든 것인가?”
한명회는 진기주에게 물어보면서도 눈은 나를 보고 있었다.
“요리를 완전히 창조한 것은 아니옵니다. 다른 음식들에서 조합을 하여 만들어 낸 음식이라 딱히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옵니다.”
“으음.”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내었으니 그것은 창조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어린 도령이 대단하구만. 그럼, 어린 도령은 우리에게 어떤 음식을 해주겠는가? 우리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어야 하네.”
한명회는 그냥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신숙주가 나서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라고 압박을 줬다.
“어떤 재료가 있는지 보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저 청지기를 따라가 보게. 내 집에 없는 재료라면 조선 팔도에 없는 재료일 테니 무엇으로 만들든 한번 만들어 보게나.”
자신의 집에 없으면 조선 팔도에도 없다고 이야기하는 한명회의 광오한 말에 웃음이 나왔지만, 청지기를 따라 들어간 광을 보니 그가 한 말이 진심이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한명회와 한번 만나기를 원하는 자들이 선물로 들고 온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심지어 얼음까지도 있었다. 그러다 내 코를 간지럽히는 냄새를 맡았다.
‘이건...’
냄새를 따라 움직이다 보니 상앗빛의 덩어리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치즈와 버터로 구나!”
조선시대로 와서 처음 보는 치즈와 버터였다.
“이, 이걸 써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그런데, 수유(酥油)로 되겠습니까? 주인마님이나 다른 어르신들도 밍밍한 것보다는 강한 맛을 좋아하십니다.”
청지기는 수유를 이미 먹어본 듯이 이걸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며 충고를 해주고 있었다.
“이 수유가 있기에 할 수 있는 요리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레촌 요리를 변형한 내촌 요리를 선택한 기주 형은 나름대로 모임에 맞는 요리를 잘 선택한 것이었다.
레촌은 장시간 불에 구우며 냄새를 퍼트려 그 냄새로 사람의 식욕을 자극하고,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껍질 살들이 사람의 눈을 만족스럽게 하는 음식이었다.
그런, 내촌 요리를 이기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다른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 위해서도 수유를 활용한 요리가 필요했고, 거기에는 쇼맨십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갖은 채소가 필요하며, 얇게 포를 떤 돼지의 갈빗살이 필요합니다. 혹시 새우도 있습니까?”
“새우는 날랜 이를 보내 사 오게 하겠습니다. 그거면 됩니까?”
“아, 호초나 다른 향신료도 필요한데, 어디 있습니까?”
청지기의 안내를 받아 가니, 집안에서 아껴 먹던 후추 자루째 쌓여 있었다.
요리가 끝난 후 들고 갈 것까지 생각해서 큰 자루째 챙겼다.
“가장 큰 솥뚜껑이 필요하고 뒤집어서 쓸 것이기에 그 아래 불을 피울 장작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숙주나물, 아니 녹두나물을 준비해 주십시오. .”
청지기에게 필요한 것을 다 이야기 하곤 부엌을 이리저리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조리 도구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알루미늄은 불가능한 거 같고, 합금으로 주물을 떠야 하려나.’
부엌에서 내 손에 맞는 칼을 겨우 찾았지만, 지금부터 할 요리에는 다른 조리 도구도 필요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칼과 나무 주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
“오! 솥뚜껑을 뒤집은 것을 보니 볶음요리인가? 볶은 요리로는 처음 먹어보는 요리가 잘 없을 터인데. 돼지고기인가?”
“응? 저건 돼지고기 같은데. 난 돼지고기 잡내가 나서 별로인데.”
“저 내촌이라는 음식은 언제 다 되는 건가? 냄새가 계속 날아오니 어서 먹고 싶구먼.”
촤아악~.
불에 달구어진 솥뚜껑에 돼지 갈빗살을 넣자 고기가 익어간다며 뜨거운 비명을 질러대었다.
익어가는 비명이 커질수록, 갈빗살의 고기는 줄어들었고, 솥뚜껑의 아랫부분에는 돼지기름이 모여들었다. 어느 정도 기름이 모이자 기름에 후춧가루를 듬뿍 넣었고, 바로 썰어둔 채소를 집어넣었다.
촤르륵~.
달구어진 기름에 파와 당근, 호박이 익어갈 때 한옆으로 달걀을 풀어 에그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계란의 흰자는 야채들과 섞이게 볶았고, 노른자는 샛노란 빛이 강조되게 노른자만 따로 볶았다.
중간마다 기름이 부족할 때는 콩기름을 더 넣어줬고, 껍질 깐 새우를 넣으며 소금으로 간을 쳤다.
‘부잣집에서 요리를 하니 재료 걱정 없이 할 수 있어서 이건 좋구먼.’
채소가 익은 듯 보이자 마늘과 생강을 다져 넣었고, 마늘이 살짝 익은 듯 노랗게 될 때 흰 쌀밥을 넣었다.
[탕탕탕!]
그러곤, 양손에 칼을 들고 철판 볶음밥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자진모리장단으로 밥을 볶으며 칼로 솥뚜껑을 두드리기도 했고, 일부러 칼을 이리저리 움직여 재미를 주었다.
“허허! 저 무슨 오두방정인가?”
“헌데 저리 밥을 같이 넣어 볶다니 저걸 먹을 수는 있는겐가?”
“각설이가 문 앞에서 밥을 달라고 할 때 두드리는 장단과 같다고 했더니, 밥과 채소를 저리 섞어 볶는 것이로군.”
“특이하긴 하나 권장하고 싶지는 않구만.”
“음식을 하는데, 저리 요란해서야 어찌 먹을 수 있겠는가?”
현대인들이 보았다면 철판볶음밥을 하는 요리사의 쇼맨십으로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는 음식 앞에서 장난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였다.
하지만, 밥에 기름이 제대로 스며들고, 새우와 채소가 어우러들며 노랗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자 다들 철판 볶음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우 철판 볶음밥이 다 된 것 같자, 큰 밥그릇에 볶음밥을 30%만 담았다. 그리고 그 위로 잘게 썰어온 수유(치즈와 버터의 중간)를 넣어 층을 만들었다. 그 위로는 돼지 갈빗살과 숙주나물을 추가했고, 다시 볶은 돼지 숙주 볶음 밥을 올렸다.
그리고 마무리로 다시 잘게 썬 수유 조각을 올렸고, 마지막으로 에그 스크램블을 올렸다.
밥뚜껑을 닫아 밥의 열기로 수유가 녹을 시간을 두고 5명에게 밥을 올렸다.
“내촌도 시간을 맞추었습니다.”
조청과 간장, 꿀을 발라 구운 닭고기의 껍질은 정말 손을 대기만 해도 바삭거리며 부서졌고,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 뚜껑이 덮여 있는 볶음밥보다는 시각적으로 바로 보이는 닭구이에 손이 갈 수밖에 없었다.
“크하! 어떻게 닭의 껍질이 이렇게 달면서도 짭짜름한 간장 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냐?”
“이 달고 짠 맛은 술을 부르는구나. 이봐라! 술을 내어오거라!”
바삭거리는 닭 내촌 요리에 사람들이 빠져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닭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난 고기를 먹을 때 꼭 밥을 먹어야 하니 이 볶은 밥도 같이 먹겠네.”
한계희는 그래도 자신이 원종이를 데리고 왔기에 일부러 밥뚜껑을 열었다.
“오! 황금 밥이로구나!”
한계희의 감탄처럼 뚜껑이 열린 밥에는 에그 스크램블이 노란빛을 내고 있었는데, 유기그릇의 노르스름한 빛과 함께 마치 밥그릇 안에 황금이 채워져 있는 것 같았다.
“각설이 타령처럼 만든 것 치고는 멋지구만. 황금이 고봉으로 쌓여 있는 느낌이라니. 어디 나도 한번 먹어볼까.”
오두방정을 떨 듯이 칼을 휘둘러 밥을 볶았기에 신숙주는 이 볶음밥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고로 선비라면 요리를 할 때도 도(道)에 맞게 요리를 해야 하고, 어긋남이 없어야 하는 법이거늘.’
“으음. 이 끈적거리는 것은 무엇이지?”
고봉으로 담겨있던 황금을 떠 입에 넣으려고 했으나, 밥그릇에서 숟가락을 잡아끄는 것 같은 점착력이 느껴졌다.
마치, 마를 갈아 먹었을 때 보았던 마즙처럼 끈끈하게 숟가락에 달라붙었다. 신숙주는 마즙을 생각하자 이것도 몸에 좋을 거라는 생각에 입안으로 떠 넣어 씹었다.
“오오. 오오!”
“오~!”
신숙주는 물론이고 황금 밥을 입으로 가져갔던 한계희도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오오거리며 입을 놀렸다.
“뭐가 오오~인가? 둘이 아주 재미있는 표정을 짓는 구만.”
한명회는 신숙주와 한계희의 오오 거리는 표정이 재미있어 자신도 황금 밥을 떠 입에 넣었다.
‘으응?’
처음 씹을 때의 느낌이 뭔가 이상했다. 노란색이던 달걀은 어디서나 보던 그 맛과 식감이었다. 하지만, 한번 두번 씹다 보니 그 느낌이 달라졌다.
‘뭔가 부드러우면서 끈끈한 이빨을 잡아끄는 식감이 있구나.’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을 한명회가 즐기자 그 쫄깃하게 씹히던 것에서 담백하고 은은한 맛이 흘러나왔다.
‘수유구나. 기력이 없을 때 먹던 그 수유의 맛이로 구나!’
달고 짠맛이 아닌 은은하게 옮아 매는듯한 수유의 맛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오오!”
한명회는 자신도 모르게 신숙주와 한계희처럼 오오! 거리며 밥을 먹었다.
수유에서 나오는 은은하고도 비린 듯한 우유의 맛 때문인지 돼지고기 갈빗살에서 느껴지는 잡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고기와 함께 볶여졌던 녹두 나물의 아삭함이 더해지자 식감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녹두 나물이 섞인 볶음밥을 먹자 다시 밑에 수유가 깔린 층이 나왔고, 그 수유 아래에는 채소와 새우로 볶아진 밥이 다시 나오니, 밥 한 그릇에서 여러 가지의 맛을 느껴볼 수가 있었다.
물론, 그 여러 가지의 맛을 어미 소처럼 껴안아 주며 합쳐주는 수유의 맛이 중심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밥에 내촌으로 구워진 닭고기 살을 올려 먹자 더 맛있었다.
“이 두 요리 모두 문경 전가에서 나온 요리이기에 서로 상성이 맞구만. 아주 마음에 들어!”
한명회는 이 황금 밥을 가족들에게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 집 여종에게도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렇군. 이 수유에 뜻이 담겨 있었구만.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