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집으로. (2)
“자네 소금 장사해서 얼마나 버는가? 그리고, 장가 밑천은 모았는가? 이름은 또 뭔가?”
“소인은 금산이라고 하온데. 장가는... 쩝. 제 얼굴을 보십시오. 천형(天刑)을 받은 얼굴입니다. 뭐, 천형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리 잘난 얼굴도 아닙니다. 이런 꼴이니 장가 밑천을 모은다고 뭐가 바뀌겠습니까?”
“허허. 그래도 사람 일 모르는 거 아닌가? 천생연분을 만날 수도 있는 거고, 운이 좋아 어린 과부라도 주울지 어떻게 알겠는가.”
“희망을 품기 싫습니다요. 그런데, 왜 저를 붙잡아 두려고 하시는 겁니까요? 제가 저치들을 때렸다고 잡으시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이런, 내가 잡는 게 표시가 났나?”
원종은 멋쩍게 웃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티가 많이 났던 것 같았다.
“자네의 그 힘 때문이네. 그 정도로 강한 힘이라면 무과를 준비하여도 되었을 터인데,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없는 겐가? 뛰어난 용력을 갖추었음에도 소금 장사를 한다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그러네.”
“무과라... 소인도 그 생각은 했었습니만, 출신이 번잡하여 출사를 할 수 없는 몸입니다.”
“출신이? 혹, 연좌제 때문에 출사를 할 수 없는 것인가?”
원종은 혹시나 해서 역모에 얽힌 집안인가 싶어 물었다.
“네. 아버지가 절도사 이징옥의 밑에 있으셨습니다.”
‘이징옥이면, 세조의 계유정란 이후에 일어났던 북방반란 사건인데.’
세조시대 일어났던 반란 사건은 크게 2개가 있는데, 이징옥의 난과 이시애의 난이었다. 둘 다 북쪽 함경도에서 일어났다는 것과 여진족과도 연관이 있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이시애의 난이었다.
남이 장군이 활약한 이시애의 난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반란이었는데, 사실 난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사건이었다.
하여튼, 역모에 얽혀 출사하지 못하는 몸이라고 하니 더 좋았다.
“그럼, 그 힘 좋은 곳에 쓰지 않겠는가?”
“좋은 곳이 어디입니까요?”
“바로 나를 호위하는 것이네. 어떤가?”
“도련님을 호위하는 게 어떻게 좋은 곳에 힘을 쓰는 것이겠습니까? 무뢰배로 저를 쓰시려고 이렇게 회유하시는 거라면 일없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곰보에 두꺼비처럼 생긴 무뢰배의 모습이었지만, 의외로 생각이란 걸 하는 자 같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도 보통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휘하에 두고 싶은 욕심이 났다.
“그럼. 나를 호위하는 것이 왜 좋은 일인지를 보여줘야 하겠구만. 삼식아. 마을 촌장에게 가서 의원이 병자들을 진료할 공간을 내어 달라고 하거라. 길게는 못 보고 이틀 동안만 환자들을 봐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네? 네네. 알겠습니다요.”
삼식이는 머리를 굴려 진료공간을 핑계로 잠잘 공간까지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의, 의원이셨습니까?”
“식료의라 할 수 있지. 짐을 들고 따르게나.”
역시나 이틀간 병자들을 봐주겠다고 해서인 지 꽤 좋은 거처를 제공받았다. 짐을 내려놓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한둘씩 와서 기웃거리기 시작했는데, 산골인 만큼 병자가 많은 것 같았다.
“밖에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 것 같으니, 이 수건으로 코 아래를 가려 묶고, 사람들을 줄 세우게. 이렇게 묶는걸세.”
원종은 정 사각형의 수건을 반으로 접어 마스크 두건을 만들어 썼다.
“제 얼굴이 흉악하게 생겨 병자들이 놀랄까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것보단 병자들을 마주할 때는 입과 코를 가리는 것이 좋네. 병자들의 나쁜 기운이 코와 입으로 들어올 수 있기에 막는 것이지. 자네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 쓸 것이네.”
병균이나 세균에 관해 설명할 수 없어 기운이라고 뭉뚱그려 이야길 했지만, 다들 기(氣)의 존재를 믿기에 이해했다.
그리고, 험상궂다 못해 흉악하게 생긴 금산이 나서 줄을 세우자, 먼저 진료받으려고 깡다구 부리는 환자나 보호자가 일절 없었다.
“도련님이 저 흉악하게 생긴이를 왜 거두고 싶어하시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요. 소금 장수보다는 저런 일을 위해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요.”
삼식이는 쟤가 할 일을 금산이 해주자 일이 편해졌다며 좋아했다.
***
“자, 어떤가? 소금 장수보다는 좋은 일인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소금 장수의 일이 나쁘다는 게 아니네. 산골 오지에 소금을 들고 가 파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지. 하지만,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 더 보람차지 않은가?”
“네. 그리고, 이 코 밑으로 가려지는 건(巾)을 쓰는 것만으로도 제 얼굴을 보고 놀라는 자들이 줄었습니다. 그것만 해도 되었습니다.”
금산은 자신의 얼굴을 반 정도 가려주는 이 수건으로 인해 자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 그럼, 자네가 내 수하가 된다면 더 멋진 수건을 만들어 주도록 하지. 어떤 건지 한번 보여줄까?”
원종은 반으로 접힌 삼각 수건의 앞에 붓을 놀렸다. 두 개의 둥근 눈과 하나의 긴 줄이 만들어 낸 스마일 문양이었다.
“이게, 무슨 모양입니까요?”
“웃음 모양이라고 하지. 사람의 웃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야. 어떤가? 이렇게 코와 입을 가렸지만, 이 웃음 모양으로 인해, 친근해 보이지 않는가?”
“이게 웃는 모양인 건 잘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흉악해 보이지 않으니 괜찮은 것 같습니다.”
금산은 내가 그려준 스마일 두건으로 얼굴의 아랫부분을 가리자 흉악해 보이던 모습이 나름대로 평범해(?) 보였다.
‘마스크를 쓰면 하관이 가려지기에 잘 생겨 진다고 했는데, 금산은 두건으로 하관을 가렸음에도 힘이 드는구나.’
피지컬이 좋은 만큼 얼굴의 흉악 피지컬도 넘사벽이었기에 스마일 두건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하지만, 금산은 내가 보여준 청동거울을 보며 무서워 보이지 않는다고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도련님을 따르겠습니다요. 그럼 저 소금은 어떻게 할까요? 이 마을 사람들에게 다 나눠 줘 버릴까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소금으로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다 돈이네. 어서 짊어지고 따르게나.”
***
원래, 집으로 돌아가며 번데기 수급을 위해 양잠을 하던 곳에 들리려고 했으나, 고부(姑婦)가 모두 과부였던 집인지라 다음에 여자들과 같이 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문경새재로 내려왔는데, 산을 넘어가는 초입에서 웬 거지 떼들이 우리를 덮쳐왔다!
“웬 놈들이냐!”
능히 보기만 해도 장사로 보이는 금산이 호통을 치고, 좌우로 달유와 오추가 창을 들어 앞을 막아서자 든든했다.
걸인들도 셋의 기세에 놀라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제자리에 섰다.
“아이고, 도련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요! 소인입니다요. 소인!”
“누구기에 나를 기다렸다는 말인가? 난 걸인과는 안면이 없는데.”
“아이고, 어르신! 소인 모가비 길근입니다요. 길근!”
웬 중늙은이가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으며 절을 했고, 소매에서 떼가 가무잡잡하게 낀 둥근 물건을 꺼내 제자리에서 던졌는데, 저글링이 었다.
“아하! 재인무리가 아니더냐? 아니, 이제는 내가 이름을 지어준 극락 서거수단이 아닌가? 그런데, 행색이 왜 그런가? 내 분명 재주를 가르쳐 주었을 때 먹고살 방도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이고, 물론입죠. 도련님이 알려주신 이 재주로 밥은 빌어먹었습니다요.”
“그런데 호남으로 내려간다고 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요. 호남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못된 현감을 만나서 가지고 있던 물건도 빼앗기고, 들고 있던 방설환도 모두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요.”
“저런. 안타깝구만. 헌데, 나를 왜 기다린 건가? 난 암행어사가 아니라 탐관오리를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데.”
“아이고, 도련님. 저희 좀 도와주십시오. 오직 도련님만이 저흴 구해 주실 수 있습니다요. 그 방설환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우리 애들이 다 죽습니다요! 살려주십시오.”
모가비 길근이 앞으로 넙죽 엎드리며 절을 몇 번이고 하자, 뒤를 따르던 다른 재인들도 따라 절을 했다.
‘그러고 보니 여자들이 없구나.’
“그 고을 수령이 방설환을 가져오라고 여인들을 잡아 가둔 건가?”
“네 도련님. 도련님과 함께 음성에서 그렇게 약을 팔고 난 이후 이번 여름 장마에 복통, 구토, 설사를 하는 돌림병이 돌았었습니다요. 헌데, 그 돌림병에 방설환이 직통으로 설사를 멎게 하고 배앓이를 멈추게 하자 음성과 괴산 인근에서는 방설환을 구하려고 사람들이 난리였습니다요.”
“오? 그런가? 내가 만들어 준 방설환을 몇 개 빼돌렸다면 꽤 재미를 봤겠구만.”
“네네. 처음에는 짭짤했습니다요. 한데, 가진 걸 다 팔고 나서도 찾는 이들이 많았고, 다른 의원들은 또 방설환이란 환약은 모른다고 하니, 음성의 현감 나리께서 우리를 잡아 가두곤 약을 내놓으라고 하셨습니다요.”
“당연히 약이 나올 수가 없었겠지.”
“맞습니다요. 흑흑.”
그때의 억울했던 감정이 다시 떠오르는지 모가비 길근은 길에서 울어댔다.
“흑흑. 음성 현감이 우리 애들 중에 반반한 계집들은 다 잡아 가두고 남자인 우리는 풀어주면서 도련님을 찾아오든지 아니면 방설환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요. 그래서 무작정 문경새재 앞에서 도련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요. 저희 좀 살려주십시오.”
“허허. 그런데 어쩐다. 가지고 있는 방설환이 몇 개 없는데.”
“도련님. 저희 애들 좀 구해주십시오. 애들을 구해만 주신다면 결초보은 하겠습니다요.”
모가비 길근이 절을 하며 울자 다른 재인들도 살려달라고 매달렸는데, 입장이 난처했다.
‘음성군의 현감이라면 그 오일장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장을 못 서게 했던 위인인데. 아무런 배경이 없는 내가 갔다가 방설환의 조제법을 빼앗기는 게 아닐까.’
서커스단처럼 묘기를 부리는 재인들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는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생각하다보니 재인 백정의 무리에서 여자들만 가두었다는 현감의 행태에 기분이 뒤틀렸다.
“음성 현청으로 가세나. 앞장서게.”
***
“허허. 어린 도령이 만들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리 어릴 줄은 몰랐구만. 문경 전씨라고? 중인도 아닌 것 같은데 의술을 익히다니 특이하구만.”
음성 현감은 방설환을 만들었다는 어린 의원이 양반이라는 신분에 떨떠름했지만, 조정에 연줄이 크게 없다는 걸 알고는 고민했다.
“네. 뜻한 바가 있어 의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가진 방설환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우선 이걸 받으시고 재인 사당패의 여자들을 풀어주시지요.”
“허허. 10여 알밖에 없다는 게 아쉽구만. 이번 여름에 이 방설환이 참으로 큰일을 했는데, 우리 현의 의원에게 그 제조법을 알려줄 수는 없는겐가?”
설마 했는데, 역시나 배앓이에 좋은 방설환에 눈이 벌게져서 욕심을 내고 있었다.
원종은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했던 이야길 꺼내었다.
“소생은 상호군 전순의 영감의 문하에서 의술을 배웠습니다. 이 방설환의 제조법을 알려드리고 싶어도 제 개인의 것이 아니다 보니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상호군? 전순의? 아! 그렇구만. 허허 그럼 이거 어쩐다.”
음성 현감은 이미 죽은 자이긴 하지만, 꼬마 도령에게도 나름의 배경이 있는 것을 알게 되자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그럼, 방설환을 삼천 개만 만들어 주고 가게나.”
“네에? 3천 개요?”
원종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길 하는 음성 현감을 보곤 말문이 막혔다.
*
[작가의 말]
역사에는 이징옥의 난이라고 쓰여있지만, 학자들은 난이 아니라,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들고 일어난 사건이라고도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단종 실록에는 이징옥이 반란을 일으켜 대금의 황제를 칭했다고 하지만, 이것도 세조가 조작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실제 채제공은 자신의 문집 번암집에 이종옥의 난이 단종 복위를 위해 일어난 일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차후 장릉의 단종 배식단에 배향되기도 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