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집으로. (1)
‘필요한 책도 필사를 다 했고, 나름 곁가지로 여러 의원에게 탕약에 대한 것도 배웠으니 이제 갈 때인가.’
장례를 치를 때도 외인이 아닌, 의술을 전해 받은 의원들과 같이 있었고, 자연스레 의맥(醫脈)에 끼어 인맥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 의술과 의원들이 가진 문제점을 알 것 같았다.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배웠어.’
현대의 의대까지는 아니라도 가르치는 과정 같은 게 있을 줄 알았으나, 전혀 그런게 없었다.
내의원에 들어가게 되면 따로 배우는 과정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의원들의 배움에는 체계가 없었다.
대부분의 의원이 중원에서 넘어온 황제내경(黃帝內經)이란 의서를 교과서처럼 여기며 배웠고, 그 외의 것은 스승에게 배우는데, 문제는 그 황제내경이라는 교과서 같은 의서가 문제였다.
황제내경은 소문 81편과 영추 81편으로 한나라 때 만들어진 책인데, 조선에 들어와 있는 황제내경의 책들이 다 같은 시기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어떤 편은 수나라 때 편집되어 넘어온 책이고, 어떤 편은 당나라나 송나라 때 재간행된 책이기도 해서 각 편마다 편자가 달라 이걸 정리하는 것만도 힘들었다.
훗날 중국에서 만들어져 들여온 본초강목(本草綱目)도 이러한 문제가 있었기에, 선조의 명으로 여러 의서를 정리하여 동의보감이란 조선만의 의서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그 일을 맡은 자가 우리가 잘 아는 허준(許浚)과 정작(鄭碏)이란 자였다.
“의서를 정리하는 것은 알겠다만, 이걸 왜 언문으로 이리 정리한 것이냐?”
전현재는 내가 떠나기 위해 정리하는 짐의 대부분이 언문으로 필사한 책이란 걸 알자 물어왔다.
“한자를 모르는 자도 이 의서들을 보고 목숨을 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식료찬요와 산가요록을 가장 먼저 언문으로 필사 했습니다. 그것이 돌아가신 상호군 어르신의 바람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흠. 그렇다면, 필사해간 책을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게. 책을 보고 건강해진다면 그 덕이 할아버지에게 돌아가겠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현재는 출신에 따른 콤플렉스로 인해 대과를 보는 것에 집착했었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을 버린 것 같았다.
‘현대 의사들은 인턴일 때 자신의 손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제야 죽음의 무게를 알게 되는 진짜 의사가 된다고 들었다. 전현재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의원의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구나.’
전순의 영감의 바람대로 일이 되었으니 저승에서도 전순의 영감은 웃을 것 같았다.
“그래. 집으로 가는 건가?”
“네. 형님. 한양에 올 일이 있으면 들리겠습니다.”
***
“이보게 자네 들었나.”
“뭘 말인가? 혹시 임금님이 돌아가신 것에 대한 일인가?”
“그건 아니네. 가까이 좀 오게나.”
처음 한양에 왔을 때처럼 육조거리 인근에서 밥을 먹으려다, 생선구이가 먹고 싶어 마포나루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마포나루는 강화도는 물론이고 서해와 전라도에서 올라오는 배들이 쏟아내는 물산과 소식들로 가득했다.
물론, 생선 비릿내는 더 엄청났다.
“내 육조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어멈에게 고기를 넣으며 들은 이야기인데, 태상왕(세조)이 승하하신 지 채 하루도 안 되었는데, 병조판서였던 남이를 쳐냈다고 하더구만.”
“응? 남이면 그 경복궁에 들어왔던 호랑이를 잡았던 용맹한 장수 아닌가? 이시애의 난리도 토벌했던.”
“맞다네. 바로 그 장수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으라고 했다만, 아직 상중인데 너무 빠르구만.”
“주상이 크며 본 것이 다 그런 것인데, 당하기 전에 자기 사람으로 병조를 꾸리겠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이거 또 난리가 나는 거 아냐?”
“쉿! 소릴 낮추게...”
신나게 떠들던 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듣고 있자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도련님. 저들의 말이 참말일까요? 난리가 일어날까요?”
삼식이는 영주에서 일어났던 단종 복위 운동의 실패와 몰살당하는 것을 보고 컸기에 혹시나 또 그런 참사가 일어날지 두려운 듯했다.
“아니,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몇몇의 목이 떨어지고 귀양을 가겠지만, 예전처럼 난리는 나지 않을 것이다. 어서 먹고 일어나자꾸나.”
원종은 이미 남이 장군이 억울하게 죽고, 구성군 이준이 귀양가는 일을 다 알고 있었다.
‘지금 왕인 예종도 내년이면 죽을 사람이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고. 다음 왕은 나름 길게 집권하는 성종이니, 그때 제대로 사업을 시작할 준비나 하자.’
그러면서 내 후년에 왕이 되는 성종을 생각하다 보니, 자신보다 1살 많은 아이라는 게 떠올랐다.
‘11살이면 지금 미리 안면을 익혀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잘산군(乽山君)에게 미리 밑밥을 깔아둘까.’
사실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왕자에게 큰 호의를 미리 베풀어 두면 나중에 왕이 되었을 때 이득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더구나 11살의 어린 나이라면 우정을 빌미로 나중에 청탁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11살인 잘산군의 마음에 들만한 선물이 없었다. 그저 예종이 죽기 전인 1년 안에 한양으로 와 어린 성종과 안면을 익혀야 할 것 같았다.
수원의 외가도 세조의 붕어(崩御)로 인해 혼인할 수가 없었기에 외가로 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
“도련님. 무갑산 고개의 휴식 장소입니다.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그러지.”
양주로 올라갈 때와는 다른 루트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이천 무갑산을 지나고 있었다.
고갯길에는 물이 솟는 샘이 있으면 자연스레 쉬어갈 수 있는 휴식 장소가 만들어졌는데, 무갑산 고갯길에도 마찬가지로 물가 옆에 휴식 장소가 있었다.
대략 10여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니, 네놈의 얼굴이 무서워서 가까이 있기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저기 끝에서 기다리다 우리가 떠나면 그때나 물을 먹어라! 어딜 여기로 끼려고 하느냐!”
“어윽! 얼굴보고 경기 일으킬뻔했네.”
“어우 무서워라. 꿈에나 볼까 두렵구나.”
“쯧쯧쯧. 마마를 심하게 앓아 얼굴을 얽기도 했지만, 참으로 못생겼구만.”
이야길 듣고 못생겼다는 사람 얼굴을 보니, 험상궂은 걸 떠나서 너무 못생긴 게 문제였다.
‘어두운 피부에 곰보 자국도 심하고, 이마에 머리카락도 없구나.’
얼굴 형태도 두꺼비의 골상이라 천한 관상이었다.
“아니, 내가 못생긴 것에 너희들이 도와준게 있냐? 아님, 피해를 준게 있냐? 씨부럴! 한번 맛좀 봐라!”
외모 지적에 화가 났는지 두꺼비처럼 생긴 자가 일어섰는데, 키가 190cm는 될 것 같았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서는 자신의 얼굴이 꿈에 나올까 걱정했다는 중년인을 잡아서는 바로 패대기를 쳐버렸다.
“엄마얏! 저치는 사람이 아닌가 보우. 장승 귀신 아니우? 어쩜 저리 크우?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휴식을 취하던 여자는 벌떡 일어선 모습에 화들짝 놀랐고, 남자들도 거구의 몸집에 놀랐다.
“내가 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냐?”
화가난 두꺼비는 지게를 지던 작대기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강조했다.
“어이쿠 저놈의 난폭한 본성이 이제 나오는구나! 이보슈! 좀 도와주시오!”
금방이라도 지게 작대기에 맞아 사람이 다칠 것 같자, 달유와 오추가 짐을 내려두고 달려 나갔다.
“이 잡것들은 또 뭐야!”
창날은 달리지 않았지만, 손목 굵기의 창대를 들어 공격하는 두 사람을 보자 두꺼비 장한은 다른 이들은 젖혀두고 달유와 오추에게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나무와 나무가 마주치는 ‘탁탁’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금세 ‘퍽퍽’하는 살을 두드리는 소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은 두꺼비 장한이 아니라 달유와 오추였다.
***
두꺼비 장한이 든 지게 작대기와 달유의 창대가 교차할 때 두꺼비 장한은 창대를 덥석 잡아끌었는데, 마치 어른이 아이의 팔을 잡아끄는 듯이 달유가 끌려갔다.
“힘이 장사다! 크헉...”
달유가 뭐라 더 이야기하기 전에 두꺼비 장한의 주먹이 배에 꽂혔고, 달유는 묽은 물을 토하며 꼬부라졌다.
오추는 달유가 박살나는 것을 보았기에 좀 더 조심하려 했으나, 큰 덩치와는 다르게 움직임도 재빨랐고, 오추는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게 달유 옆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아까 내게 못생겼다는 연놈들 다 어디에 있느냐!”
마치 호랑이 울음소리처럼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는데, 몇 사람은 소리에 놀라 자기 짐도 놔두고 도망치기 바빴다.
“별것도 없는 입만 산 것들이 내 얼굴을 가지고 말이야! 네놈들도 마마님의 곰보 자국이 얼굴에 생기길 기원하마! 으하하하!”
두꺼비 장한은 한번 호탕하게 웃고는 자신의 짐을 들었는데, 소금지게였다.
“소금 장수인가?”
“보면 모르... 그,그렇수다. 저치들이 먼저 나를 공격해서 나도 반격을 한 것뿐이오. 내 잘못은 없소이다.”
두꺼비 장한은 말을 타고 남자 종을 넷이나 부리고 있는 어린 양반을 보자 처음처럼 막무가내로 이야길 하지 못하였다.
“사람 얼굴을 가지고 뭐라고 했다면 맞을 짓 한 거지 뭐. 박복아 삼식아 저 패대기 처진 사람과 달유와 오추를 챙기거라.”
내가 사람들을 챙기자 뚜꺼비 장한은 은근슬쩍 눈치를 보곤 도망치려고 했다.
“그 소금은 어디서 가지고 온 거요?”
“임영대군 어르신의 가마에서 받아온 것이오. 밀염이나 정염은 아니오.”
“그럼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오?”
내가 의도적으로 떠나지 못하게 질문을 하고 있다는걸 눈치챘는지 두꺼비 같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하하하. 해코지 하려는 게 아니외다. 우리 사람들이 드는 짐이 있는데, 사람이 다쳤으니 어딘가에 묵어서 쉬어야 할 것 아니겠소. 이 근방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안내나 해주시오.”
“아 그렇다면 저 재를 넘으면 마을이 하나 있소이다. 내가 짐을 좀 들어 주겠소.”
두꺼비 장한은 달유와 오추가 내려둔 짐을 자신의 소금지게에 올렸는데, 소금과 책까지 해서 70~80키로의 무게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힘이 장사로구나. 이런 힘이라면 그냥 소금 장사로 놔두기엔 아까운데.’
“소금 장사는 오래했소?”
“이제 두 해가 좀 넘었소이다. 그런데, 도령은 내가 무섭지 않소?”
두꺼비 장한은 말을 몰아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이야길 거는 양반도령이 신기했다.
백이면 백 모든 사람은 자신의 외모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멀리했었다.
특히나 양반은 더 그랬다.
하지만, 그런 눈살 찌푸림 없이 그냥 일반적인 같은 사람으로 대해주는 것이 신기했다.
“이 마을이구만. 삼식아. 저치와 같이 가서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는 집이 있는지 물어보거라.”
***
“저.저기. 도련님. 이 마을에는 우리가 묵을 곳이 없다는데요.”
“그게 무슨 말이냐? 머물 곳이 없다니. 오승포를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삼식이는 내 눈치를 보다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두꺼비 장한의 눈치도 보다가 하더니 말을 이었다.
“저치의 인상이 무서워서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다고 묵게 해주지 못하겠다고 합니다요. 오승포나 돈을 준다고 해도 다들 저치를 보곤 고개를 저었습니다요.”
“뭐? 그게 말이 되냐?”
“도련님. 말이 됩니다요. 저자의 얼굴을 보십시오. 흉신악살까진 아니라도 폐가망신 정도는 되는 얼굴입니다요.”
“아니,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이냐?”
원종은 화를 내었지만, 그것이 조선 시대의 평균적인 수준이었다.
아니, 미래까지도 이어지는 외모지상주의였다.
“양반 나리 저는 그냥 가겠습니다요.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제가 없어지면, 이 마을에서 편히 묵으실수 있으실겁니다요.”
두꺼비 장한이 절을 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놓칠수 없었다.
‘안돼! 내가 그 힘 써먹을 거라고!’
*
[작가의 말]
나중에 성종이 되는 잘산군(乽山君)은 자을산군(者乙山君) 이라고도 부르는데, 당시 세로쓰기와 띄어쓰기가 없다 보니 세로로 써진 잘(乽)이 자을(者乙)이 되었다는 썰도 있습니다.
후대에 들어 잘산군이냐 자을산군이냐 하는 논란은 왕의 아들인 봉군호에 갑을병정의 을(乙)을 쓴다는게 법도에 어긋난다고 하여 잘(乽)로 굳어지는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동의보감을 허준이 만들어야 겠다고 마음먹고 개인이 만든 것이라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실제 동의보감은 선조의 명으로 만들기 시작했으며, 여러 명이 참여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참여한 유의 정작(鄭碏)이란 자가 있는데 그는 말 그대로 양반 의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내의원이나 전의감에는 등재되지 않았으며, 실제 좌랑벼슬을 가진 채 동의보감에 참여했었습니다.
유의 정작 같은 경우에는 평상시에는 관리로서 본 일을 하다 왕실에 병으로 인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의관들과 같이 진료를 보았다고 되어있습니다.
후대에 동의보감은 허준이 다 만든 거야! 하는 고정관념이 생긴 게 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 때문인데,
이런 유의나 다른 의원들도 선조의 명으로 같이 참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허준이 가장 고관이었기에 대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요즘 논문이 나올 때 대학원생이 갈려 들어갔듯이 동의보감에도 평의원들이 갈려 들어갔을 거라 추정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