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44화 (44/327)

44. 파떡파떡!

“도소주와 함께 먹어야 하는 떡국이라고?”

원길은 원종의 말에 떡국을 살폈다. 흰색의 둥근 그릇에 뽀얀 흰 국물이 담겼고, 그 국물보다 더 하얀 둥근 떡이 국물 속에 잠겨있었다.

그 위로는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로 만든 황백고명이 올라가 있었는데, 그 옆으로 반투명한 나물 고명이 놓여 있어 색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세 개의 고명은 삼각형의 무늬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놓였는데, 그 삼각형의 중심에는 간장으로 볶은 잘게 썰린 고기가 올려져 있었다.

“오! 떡국이라고? 뭔가 보기가 좋구나. 흰색의 떡에 4색 고명이라니. 이 반투명한 것은 박나물이냐?”

“네 여름에 말려두었던 박입니다. 국물이 시원하니 한번 드셔 보십시오.”

차례 후 제삿밥을 이미 나눠 먹은 후였기에 다들 배가 불렀지만, 떡 위에 예쁘게 올려진 고명의 모습에 숟가락이 움직였다.

“음. 이건 꿩이구나. 국물을 꿩고기로 내었구나. 그리고, 올려진 이 고기도 간장으로 볶은 꿩이고... 음, 볶을 때 산초로 맛을 살렸구나.”

“네 맞습니다.”

원길 형은 요리숙을 맡고 난 이후 재능이 개화하듯이 입맛이 민감해졌는데, 이젠 웬만한 재료는 다 알아맞힐 정도였다.

“국물은 뜨끈하고 떡은 쫄깃하며, 고명으로 맛을 다르게 먹을 수도 있으니 좋구나. 그런데, 떡을 일부러 이렇게 둥글게 한 것이냐? 왜 이런 모양을 한 것이지?”

“설날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해(年)가 되면 새로운 해(太陽)가 뜬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둥근 떡은 바로 그 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럼, 해가 너무 많지 않으냐? 하늘에는 해가 하나인데.”

“새해의 1년 내내 뜨고 지는 수많은 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면 1살을 더 먹는다는 뜻도 됩니다.”

“이걸 먹으면 한 살을 더 먹어? 에잉. 그러면 이거 못 먹겠다.”

“아니 형님. 상징적인 겁니다. 상징적인거! 이거 안 먹어도 해가 바뀌었으니 1살 더 먹지 않습니까?”

“흠.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한 살 더 먹는다는건 슬픈거지.”

원길형은 아버지를 슬며시 쳐다보았다.

“그래 원길이 말처럼 설날이 되어 나이 하나를 더 먹는 것이 슬픈데, 1살 더 먹는 걸 상징하는 떡국을 먹으면 서럽지 않겠느냐? 너희 둘은 안 늙을 것 같으냐?”

“아버님. 반대로 생각하십시오. 떡국을 안 드시고, 한 살 덜 먹었다고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후후. 나이 안 먹었다고 우기는 떼쟁이가 되어란 말이냐. 하하하. 그렇다면 이걸 단순히 떡국이라 부르지 말고 첨세병국(添歲餠국)이라고 부르거라. 나이를 먹는 떡국이라고 해야 다른 떡국들과 차별이 되고, 나도 나이를 먹지 않기 위해 다른 떡국을 먹을 것 아니겠느냐?”

“오, 아버님. 맞습니다. 설날에 먹는 떡국은 첨세병국이라고 하고, 다른 평상시에 먹는 떡국은 그냥 떡국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냥 편하게 떡국이라 부르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설 명절에 먹는 떡국과 평상시 먹는 떡국을 따로 명명해야 기록과 역사에 남기기 좋을 것 같았다.

“형님. 요리숙에도 이 첨세병국 요리를 추가해 주십시오.”

“오냐. 그러마. 그런데, 이 둥근 떡을 복(福)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느냐? 새해 덕담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니 이 떡국의 떡을 많이 잡수시면 복도 많이 받는다는 그런 의미도 될 것 같고. 어떠냐?”

“맞습니다. 형님. 그렇게 복이라고 해도 되고, 떡이 둥근 엽전과도 닮았으니 돈도 많이 벌라는 그런 뜻으로 쓸수 있을겁니다.”

“돈? 엽전을 먹는다니... 사람들이 쓰는 엽전은 손 떼까지 묻어서 지저분한데, 그걸 상징해서 먹는다니. 그건 좀...”

원길 형은 떡국이 돈을 상징하는 건 영 아니라면 인상을 썼다.

‘아 형님. 미래에는 동전을 상징해서 돈 많이 벌라는 의미도 된다구요!’

***

“덕구 어멈. 왜 저리 가래떡이 많이 남았는가? 사람들이 안 먹던가?”

“아, 저 그게... 도련님이 뭔가 특이한 음식을 만드신다는 생각에 여유있게 좀더 만들어 둔다는 것이 그만...”

설날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떡국을 알리기 위해 만들라 한것인데, 설날이 지났음에도 한자 길이의 가래떡이 20여 줄이나 남아 있었다.

물론, 만든 지 며칠이 지났기에 딱딱하게 굳어 칼로 썰기도 힘들어 보였다.

가래떡을 녹인 후 다시 썰어 떡국을 만들어 먹으면 되었지만, 며칠 연속 떡국을 먹으면 물릴 것 같았다.

광에 들어가 뭐가 있나 살펴보니, 겨울이 되기 전에 수확한 대파가 잔득 쌓여 있었다.

‘오, 겨울 초입에 수확한 겨울 파가 이리 많이 남아 있었구나.’

봄이 오면 보릿고개라는 무서운 고개와 춘궁기의 배고픔이 문제였지만, 봄에 씨를 뿌려 여름 초입에 수확하는 여름 대파도 있었기에 대파는 어느 정도 써도 될 것 같았다.

“덕쇠 아재. 대파는 써도 되지?”

“헉, 헉... 네, 대파는 됩니다요.”

내가 광에 들어가면 보고를 하라고 했는지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덕쇠 아재가 대파는 잔뜩 써도 된다고 했다.

짐승을 잡기 위해 사두었던 철사로 석쇠를 만들었는데, 사냥꾼인 오추가 나름대로 손재주가 있어. 그럴 듯 하게 석쇠를 만들어 내었다.

“거두어들인 올가미 철사를 이용해서 석쇠를 여러 개 만들어 주게.”

오추가 석쇠를 여러 개 만드는 동안, 가래떡을 먹기 좋게 10cm 크기로 잘랐는데, 한겨울 굳어버린 가래떡을 써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석쇠에 대파를 그대로 올려서 굽게나.”

“네? 흙이나 뿌리는 제거하지 않아도 됩니까요?”

덕구 어멈은 대파에 묻은 흙을 씻거나 뿌리를 잘라내지 않고 석쇠에 그대로 올린다는 말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냥 통째로 올리면 되네. 미심쩍으며 내가 하는걸 보고 나서 따라 해도 되네.”

대파의 흰 부분이 석쇠의 중앙에 오게 줄을 세운 후 화로 위에 그대로 석쇠를 올렸다.

[타닥, 타닥, 파앗~.]

대파의 뿌리털과 겉면이 타며 내는 소리가 났고, 파즙이 터지며 향긋한 대파 굽는 냄새가 퍼졌다.

“엇! 이건 무슨 냄새냐? 무슨 음식을 하는 것이냐?”

음식 맛을 구분해 내는 혀와 더불어 냄새도 잘 맡는 개 코도 각성했는지, 원길 형이 나타났다.

“고기 없는 구이를 하는데, 마침 잘 오셨습니다. 도와주실 일이 하나 있습니다.”

“고기 없는 구이? 신기한 것을 하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내가 도울 일이란 게 무엇이냐?”

“소스…. 아, 아니. 찍어 먹을 양념을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간장과 조청, 식초를 섞어주시면 됩니다.”

“오냐 내 금방 만들어 오마.”

대파가 구워지는 동안 다른 석쇠에는 잘라둔 가래떡을 올려 굽기 시작했다.

“도련님. 대파가 시커멓게 타고 있는데, 괜찮은 겁니까요? 대파가 그냥 타버리면 버려야 할 터인데...”

“덕구 어멈 그게 아니네. 오히려 아주 좋게 조리가 되고 있는 거야.”

멀쩡한 대파를 태워 버릴까 걱정된 덕구 어멈은 안절부절못했다.

사실 이 대파구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덕구 어멈의 저 행동이 당연했다.

대파의 아래 흰 부분이 검게 타 숯처럼 되자, 그제야 석쇠를 불 위에서 치웠다.

“자 오른손으로는 대파의 타지 않은 초록색 부위를 잡고, 왼손으로는 숯처럼 검게 타버린 부분을 잡으세요. 그러곤 이렇게 뽑아내면 됩니다.”

원종은 이야기하기 바쁘게 오른손을 위로 올려 대파를 뽑았는데, 다 타버린 것 같은 대파의 겉 부분과 속 부분이 분리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속심이 나왔다.

“이걸 먹으면 됩니다. 음. 수확한 지 좀 되었지만, 여전히 단맛이 좋구나.”

대파가 원래 가지고 있던 칼칼하며 강한 맛은 사라지고, 은은한 단맛이 나는 잘 익은 대파의 맛이 느껴졌다.

“오! 어찌 이런 맛이. 신기합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것입니까요?”

덕구 어멈은 겉이 시커멓게 타버린 대파의 속살이 살아 있고, 끝내주는 맛을 내자 놀랐다.

“어디 무슨 맛이길래 그러느냐?”

양념장을 만들어 온 원길 형이 덕구 어멈의 감탄을 들었는지, 바로 구운 대파의 몸을 잡아 뜯어 올렸다.

“오, 타버린 겉과 안쪽이 잘 까지는구나. 음!”

원길은 입안 가득 퍼지는 칼칼한듯한 단맛에 눈을 감았다. 이제까지 먹어본 그 어느 대파들과도 맛이 달랐다.

“이것도 대파 안에 있는 즙을 겉면이 타 가두었기에 이런 맛이 나는 것이냐?”

“맞습니다. 대파가 가진 즙과 열로 인해 일어나는 열기의 맛이 섞여 이런 맛을 내는 것입니다.”

원길은 물론이고 덕구 어멈도 대파구이의 맛이 마음에 드는지 3~4개나 먹었다. 숯처럼 탄 대파의 겉을 잡았던 왼손이 숯검정이 되었지만,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럼, 여기서 변형을 줘보겠습니다. 먼저 이 구워지는 가래떡입니다.”

석쇠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가래떡을 들어 원길형이 가지고 온 양념을 찍어 먹었다.

원길 형이 제대로 간장과 식초, 조청을 섞었는지 짭조름한 맛이 떡이 가진 묵직한 식감 위에 올라탔다.

입안에서 씹히는 떡의 식감에 짠맛이 더해지니, 마치 고기가 없음에도 고기를 씹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거구나. 고기 없는 구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떡과 간장의 맛이로구나.”

“네. 맞습니다. 단순히 떡에 간장 양념을 찍어 먹었다면 이런 맛이 안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래떡에 입혀진 이 불향이 고기의 맛인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해줍니다.”

“오. 이건 마치 떡을 만들어 먹지 못해 떡방아 치는 소리를 거문고로 만들어 내었다는 백결선생의 그것과 같구나.”

“아. 네 맞습니다. 백결선생이 있었지요.”

현대에서 유행했던 없는데, 있는척하는 폰여친, 폰친구를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미 신라 시대에 없는데 있는척했던 원조가 있었다.

“겨울 고기를 먹지 못할 때 이렇게 가래떡을 불에 구워 간장양념과 같이 먹게 되면 고기를 씹는 느낌이 나는 것이지요. 그럼, 여기서 또 변형하겠습니다.”

원종은 아직 굽지 않은 대파를 가래떡의 길이에 맞춰 토막을 내었다.

그러곤, 대나무로 만든 꼬치에 가래떡과 대파를 끼워 넣었다.

“맨 처음 대파를 넣고 다음엔 떡, 다시 대파를 꼽는 형식으로 꼬치 끝까지 끼우면 됩니다. 그리고, 이 꼬치를 석쇠에 구우면서 만들어온 간장양념을 발라주면 됩니다.”

“아, 좋은 방법입니다. 찍어 먹기보다는 아예 구울 때 같이 구우며 양념을 발라 굽게 되면 더 맛이 있을 것이에요.”

덕구 어멈은 따로 찍어 먹기보다는 이렇게 양념을 발라 먹을 수 있는 방법에 신이 나서 자신이 나섰다.

그리고, 붓으로 바른 간장양념이 불에 그을려 짭짜름한 냄새를 피워내자 주위에 있던 노비들이 은근슬쩍 몰려들었다.

“다들, 꼬치에 떡과 대파를 끼우게나. 자신이 끼운 건 자신이 먹어도 되네.”

원길 형과 내 눈치를 보던 이들이 금세 달려들어 파떡꼬치를 만들었다.

불에 구워져 쫄깃한 맛을 내는 가래떡과 얼큰한 맛과 칼칼한 단맛을 내는 대파, 그리고 불에 졸여지는 간장양념이 환상의 맛을 만들어 내었다.

“너무 맛있구나. 이 형은 떡국보다 이게 더 맛있구나. 가래떡은 떡국이 아닌 이걸 위해서 만들어진 떡인 것이야. 혹시 이 꼬치의 이름은 있느냐?”

“네. 파떡파떡입니다. 파와 떡이 겹쳐있다는 뜻입니다.”

“음. 파떡파떡이라... 반복되는 작명이 이 요리의 정체성을 나타내 주는구나. 이것도 요리숙 요리에 넣어야겠다.”

“네. 그렇게 해주시면 좋습니다.”

“그리고 이건 도소주를 마실 때나 다를 때 술안주로 써도 좋겠구나. 박복아, 술 한 병 내어 오거라.”

원길 형의 말에 부리나케 술을 가져온 박복이는 술 외에도 다른 소식도 가져왔다.

“도련님. 방금 현청에서 포졸이 왔다 갔는데, 그 성달이란 자가 교형(絞刑)에 처해질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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