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난 순살파 아니 순정파! (3)
원상은 형에 이어 아버지까지 감탄하며 닭튀김을 먹자 어떤 맛인지 궁금하여 조심스레 입에 먹었다.
[바사삭!]
입안에서 바싹하게 씹히는 튀김옷의 식감과 그 안에서 쫄깃하게 탄력을 안겨주는 닭고기가 느껴지자 놀라웠다.
‘겉이 바싹하게 튀겨지며 속에 있는 닭고기의 육즙을 가둔 것이구나. 튀김이라는 것이 이런 음식이었구나.’
겉은 바싹하게 씹는 맛이 있고, 속은 촉촉한 고기의 맛에 왜 형과 아버지가 맛있다고 어서 먹어 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제삿날 먹어왔던 기름에 구워지는 지짐이와는 그 맛이 달랐다.
하지만, 뭔가 기름에 튀겨졌기에 3개를 먹을 때는 느끼한 것이 올라왔다.
“형님. 그냥 먹기만 하면 기름 맛이 강해집니다. 여기 꿀 겨자 양념을 올려서 먹어 보십시오.”
원종은 원상이 먹으려는 닭튀김 위에 오이지와 마늘종이 잔뜩 들어간 머스타드를 올렸다.
“오! 오이지의 아삭함이, 마늘종의 진한 향이 기름의 느끼한 무거운 맛을 잡아주는구나. 그리고, 닭고기인데도, 뼈를 발라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내겐 너무 좋구나.”
“그러고 보니 그렇네. 닭고기를 먹는데, 뼈를 발라내지 않아도 된다니 너무 편하잖아.”
원길 형도 뼈를 발라내는 수고 없이 고기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좋아했다.
“두 분 형수님들도 괜찮으십니까?”
“저도 정말 맛있어요. 닭고기만 튀겨 준다고 했을 때 밥이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이렇게 밥이 고기에 붙어 있으니 한끼 식사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다행입니다. 그리고 이건 두 형수님을 위해 따로 준비한 것입니다.”
덕구 어멈에게 따로 일러두었던 것이 튀겨져 올라왔는데, 척 보기에도 먼저 튀겼던 것보다 크기가 큰 닭튀김이었다.
“동생아 그건 무엇이기에 따로 형수들에게 주는 것이냐? 크기도 더 큰 거 같고 뭐가 다른 것이냐?”
“네 부위가 다릅니다. 이건 닭의 가슴살로 만든 것입니다.”
“닭의 가슴살? 그건 왜? 오오! 설마 닭가슴살을 먹으면 가슴이 커지는 것이냐?”
원길의 말에 원상은 물론이고 아버지까지도 눈이 쏠렸다.
그리고 형수들은 얼굴이 벌게졌다.
“흠흠. 그게 무조건 그렇다는 것은 아니구요. 닭의 가슴살은 닭의 부위 중에서 가장 많은 살코기가 있는 부위인데...”
말을 하다 입을 닫고 고민을 했다.
‘단백질과 비타민이 많고, 지방이 적으며 칼로리가 낮아 근육을 늘리는 것에 좋다고 이야길 하면 과연 알아들을까.’
“이 닭가슴살의 살코기는 몸의 근육을 만들어 주며, 쓸데없는 군살을 빼주는 기능을 합니다. 그래서 나와야 할 부분을 나오게 할 수 있고, 들어가야 할 부위는 들어가게 해줄 수 있는 부위입니다.”
“오, 그렇다면 가슴을 크게 할 수 있다는 거구나. 마누라 어서 잡수시오. 두 개, 아니 세 개를 잡수시오!”
“아니, 저이가!”
큰형수는 형에게 눈을 부라리면서도 형의 말에 따라 닭가슴살 튀김을 입으로 가져갔고 둘째 형수도 은근히 자신의 앞으로 들고 갔다.
“그리고, 이 닭의 가슴살은 순정(純情)을 나타내는 부위이기도 합니다. 닭의 여러 부위 중에서 가장 흰색을 가지고 있는 부위이기 때문입니다.”
“닭의 순정이라. 그렇지. 여인의 속가슴 또한 희디희면 좋은 것이고 그것이 여성성을 상징하는 것이겠지. 닭가슴살 고기는 아주 많은 것을 나타내는구만. 너는 이런 것을 어디서 본 것이냐?”
“에? 그건... 아, 얼마 전에 집안에 방문했던 자를 기억하십니까? 비봉산에서 비둘기와 여러 새를 키우고 있다는. 그자가 이야기를 해준 것입니다.”
“오, 한양의 세도가들에게 비둘기를 판다고 하더니 뭔가 이유가 있었구만.”
원길 형은 닭가슴살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며 음미하듯이 닭가슴살 튀김을 씹었다.
“확실히 일반 닭고기와는 다르구만. 뭔가 퍽퍽하고 딱딱한 그런 느낌인데, 이것이 영양분이 밀집된 그런 느낌인건가? 맛보다 영양을 생각한다면 이 닭가슴살이겠어.”
“맞습니다. 형님. 닭가슴살은 튀기지 않고, 그냥 불에 익혀 먹어도 되며, 닭고기 부위 중에서 가장 많은 영양소가 밀집되어 있기에 건강에도 좋을 겁니다.”
“좋구만. 좋아. 그런데 이 요리의 이름은 있느냐? 그냥 닭튀김이라고 하기엔 뭔가 아쉬운데.”
“이름을 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굳이 이름을 정한다면 ‘닭순쌀 튀김’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습니다.”
“닭순쌀 튀김이라. 이름도 좋군.”
원길 형은 좋다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계속 먹었고, 다들 1인당 한 마리는 먹자 닭튀김의 느끼함에 젓가락을 놓았다.
식초를 넣어 산미를 가미한 물김치를 다들 마셨는데, 확실히 치킨 순살은 그 한계가 명확했다.
사랑으로 돌아가시는 아버지에게는 첩인 원홍이에게 줄 닭가슴살 튀김도 따로 챙겨주었다.
***
“자, 요리숙의 어멈들도 닭순쌀 튀김을 하는 법을 배웠으니 이제 시식을 하게나. 그리고 덕구 어멈은 부엌으로 가서 뼈 백숙을 맡아주게.”
닭순쌀 튀김에 쓰일 씻은 쌀밥을 만들기 위해 미리 큰 솥에 밥을 했는데, 일부러 시간을 달리해 누룽지를 잔뜩 만들어 두게 했다.
그 누룽지가 있는 솥에 순살을 제거하고 남은 닭 뼈를 넣어 뼈 백숙을 끓이게 했다.
순살을 제거했다고는 하나 뼈에 붙은 살들이 많았고, 그런 닭 뼈로 백숙을 끓이게 되면 집안의 노비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많은 치킨 요리 중에서 뼈가 있는 치킨의 맛과 비교했을 때 맛이 떨어지는 순살치킨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수확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오자, 종들은 쌀을 비롯한 여러 곡식의 수확을 했고, 자동화 기계가 없는 시대이니만큼 종들은 거의 온종일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들마저도 놀지 못하고 벼 이삭을 줍고 노동을 해야 하는 시대였다.
그런 중노동을 했으니 종들의 얼굴은 검게 타들어 갔고, 힘에 부쳐하는 게 내 눈에도 보였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먹는 식단에는 곡식류인 탄수화물만 있었지 단백질은 전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일부러 순살 치킨을 했고, 살이 조금이라도 붙어있는 뼈 백숙으로 종들의 배를 부르게 해주고 싶었다.
내 곁채 마당에 돗자리가 깔렸고, 개다리소반 상이 줄줄이 놓였다.
“박복 어멈 닭 부속물은 챙겼나?”
“네. 근위(筋胃)와 내장을 챙겼고, 닭 알집도 챙겼습니다요.”
근위는 다들 알다시피 닭의 위(胃)인데 현대에서는 그 모양과 식감이 쫄깃쫄깃해 마치 닭의 똥꼬와 같다고 닭똥집으로 부르는 부위였다.
먹이를 그냥 삼키는 조류의 특성상 소화를 위해 삼키는 모래가 있는데, 이 모래가 위에서 삼키지는 먹이를 으깰 수 있게 해주는 소화 기관이었다.
즉, 실제로는 닭의 똥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내장 부위였다.
“절반은 튀김 옷을 입혀 튀기고, 나머지 절반은 나무 꼬치에 끼우게나.”
닭 근위를 나무 꼬치에 끼우며 닭 내장도 섞어 끼워 직화로 구웠다.
간장 양념을 발라 자글자글 소리를 내며 구워지는 근위와 내장이 피어내는 단백질이 타는 냄새는 평상시 고기를 먹지 못하는 종들의 위를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불멍을 하듯이 아이들이 직화구이 앞으로 모여들었고, 채 익지도 않은 것을 주워 먹으려고 하는 자들을 말리기 바빴다.
깨끗이 씻은 닭의 내장은 따로 깻잎과 산초, 소금을 넣어 탕을 끓였는데, 내장의 특성상 아무리 깻잎과 산초를 넣는다고 해도 닭 비린내가 날수밖에 없었다.
‘고추나 후추가 있다면 저 냄새를 어떻게든 조져볼 수 있겠는데, 너무 아쉬워.’
비린 냄새를 없애고자 산초와 생강, 마늘을 더 때려 넣는 방법밖에 없다는 게 아쉬웠다.
그리고, 닭을 잡을 때 닭의 몸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던 미성숙 달걀도 내장탕에 같이 넣었다.
미성숙 달걀은 닭 알집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만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특별한 맛이 있는 부속물이었다.
식감은 단단한 노른자의 느낌인데, 탄력 있는 탱글탱글함과 쫄깃한 맛이 일반적인 달걀노른자와는 또 달랐다.
누룽지 뼈 백숙과 근위 튀김, 근위 꼬치, 닭 내장탕까지 차려지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종들은 기뻐하며 술을 내어왔다.
복만이라 불리는 종은 척 보기에도 말술을 마시게 생겼는데, 막걸리가 든 탁배기를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술판을 만들고 흥을 올렸다.
“맨날 이렇게 고기 먹었으면 좋겠다. 헤헤.”
“나도나도. 고깃국에 쌀밥은 언제나 좋아.”
아이들이 좋아하며 먹어대니 부모들도 그 모습에 즐거워 했다.
“아니, 이집은 종들에게도 이렇게 고기를 주는 것이오?”
“오늘이 무슨 날이오?”
영덕에서 작은 형을 따라온 종들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는데, 그들은 이런 잔칫상 같은 먹거리에 놀랐다.
“이렇게 크게는 처음이지만, 막내 도련님이 뭔가 뭔가를 연구하시고 남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우리에게 먹으라고 나누어 주신다네.”
“캬 그 연구가 무슨 연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좋은 연구인가 보오. 자 한잔 받으시오.”
“이제 매해 문경으로 올 날만 기다리겠구만. 허허허.”
이런 작은 먹거리에 행복해하는 종들을 보니 뭔가 내가 다 먹여 살려야 하는 직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책임감이 느껴졌다.
노비 제도에 대한 생각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무작정 노비해방을 하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단, 노비해방이든 뭐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재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저 요리하고 남은 부산물이나 값싼 것들을 배불리 먹여주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
“내년 봄이 오면 요리숙에 행랑어멈을 보내도록 하마. 그전까지는 네 형수가 주토피아나 밥비거를 해주겠지.”
작은 형수는 집에 있으면서 내가 만든 요리를 먹고 마음에 들었는지 요리숙을 기웃거렸는데, 결국 덕구 어멈에게 요리를 배웠다.
“형님. 겨울 따뜻하게 보낼수 있는 이걸 입고 가세요.”
새털을 넣은 롱패딩 3벌을 원상 형에게 주었는데, 무명으로 짠 옷에 새털을 넣고 다시 그 위를 베로 감싼 패딩을 보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를 몰라했다.
도포를 벗게 해서 패딩을 입혀주며 한겨울에 입는 방한 옷이라고 했다.
“흠. 확실히 가죽옷에 비하면 가볍기는 한데, 이게 따뜻하겠는냐?”
“입어보시면 아실것입니다. 아마 등에서 펄펄 끓는 열이 느껴지실 겁니다.”
“나이기온(拿移氣溫)? 따뜻한 기운을 붙잡아 옮긴다는 뜻이냐?”
“네. 아마 내년 겨울에는 이 나이기온 외투를 구하지 못해서 난리가 날것입니다요.”
아주 먼 미래 경쟁상대가 될 수도 있는 나이키 짝퉁으로 등판과 왼쪽 가슴에 나이기온 한자와 한글. 곡선을 나타내는 날렵한 로고까지 새겨 넣었다.
“하하하.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원상형은 아예 도포를 입지 않고 롱패딩을 겉에 걸치고 영덕으로 돌아갔다.
날이 추워지자 텃밭에서는 상추가 노랗게 죽어가기 시작했고, 밖에서 키우던 달팽이들도 추위에 죽어 버렸다.
지렁이는 추위를 피해 보고자 꾸물거리며 땅속으로 들어갔는데, 마치 동면을 하는 것처럼 움직이지를 않았다.
“사계절이 없는 곳이라면 좀 더 빨리 개량이나 식량 생산을 할 수 있을 텐데, 뭘 좀 하려고 하면 겨울 추위가 초기화시켜버리니. 뭔가를 할 수가 없구나.”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종들은 김치를 담그고, 겨우내 먹을 양식준비를 했는데, 소금이 부족해서 그냥 물에 삭히는 물김치가 있을 정도였다.
소금(素金) 흰색의 금이라고 부를 정도로 소중하고 귀한 물건이니만큼 그 가격도 높았고, 화폐로 쓰일 정도로 누구나 필요한 물건이 소금이었다.
“천일염을 만들게 되면 암염이나 끓여 만든 자염(煮鹽)을 대체할 수 있을 텐데.”
전생의 가게에서는 주로 맛소금을 사용했었지만, 장(醬)을 담그거나 할 때는 알이 굵은 천일염을 사용했었고, 조리 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으로 염전견학도 했었다.
염전을 만들어 바닥에 타일이나 장판을 깔고 증발시켜 천일염을 만드는 방식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소금은 나라의 전매 물품이라 뭘 하려고도 해도 할 수도 없고. 아 진짜 돈 벌 구멍 만드는 게 힘이 드는구나.”
100여 장이나 만들어 둔 패딩이 있지만, 이것도 겨우내 홍보해서 팔아야 돈이 될 터였다.
그리고, 원상형이 영덕에 잘 도착했다는 기별이 오기도 전에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