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난 순살파 아니 순정파! (2)
분명 춘봉은 겨잣가루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박복이가 들고 온 그릇에는 가루가 아닌 물에 개어져 뭉쳐있는 샛노란 색의 겨자 떡이 들어 있었다.
“숙성이 잘되었구나.”
미리 한 시간 전에 따뜻한 물에 되직하게 개어두었기에 제대로 숙성이 된 것 같았다.
이 되직하게 개어진 겨자 뭉치에 설탕, 식초, 소금을 넣어 걸쭉하게 풀어주면 겨자 소스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만든 겨자 소스는 치킨을 찍어 먹는 머스타드 소스가 되는 게 아니라 냉채족발이나 양장피 같은 음식에 들어가는 톡 쏘는 맛이 있는 겨자 소스였다.
치킨을 찍어 먹는 달고 연한 겨자 소스 즉, 머스타드 소스는 이렇게 만들 수 없었다.
우선 머스타드에 쓰이는 겨자부터 달랐다. 머스타드 소스는 우리가 아는 겨자가 아닌 양겨자로 만들어지기에 재료부터 달랐다.
겨자의 이름에 서양의 양(洋)자가 붙어있듯이 현재 조선반도, 아시아에서는 구할 수 없는 종자였다.
아시아에 자생하는 겨자에 비해 양겨자는 쓰고 떫은 맛이 거의 없었기에 머스타드 소스를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떫고 쓴 맛을 줄이는 방법이 있지.’
되직하게 개어진 겨자 뭉치에 설탕이나 식초, 소금을 넣는 게 아니라, 따뜻한 물을 겨자가 잠길 때까지 부었다.
“어엇! 그러면 겨자가 물에 휩쓸려 가는 게 아니냐?”
“아닙니다. 형님. 이미 한번 숙성되어 뭉쳐진 겨자는 쉽게 풀어지지 않습니다.”
춘봉의 말대로 따뜻한 물에 겨자색의 노란 빛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겨자 뭉치가 풀어져 물에 섞이지는 않았다.
“이 흘러나오는 노란빛이 겨자의 떫고 쓴맛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제 다 나온 것 같으니 천천히 물을 따라내면 됩니다.”
물을 따라내자 되직하게 뭉쳐있던 겨자 뭉치가 물을 많이 쓴 밀가루 반죽처럼 질척거리긴 했다.
“이제 간장, 식초, 소금을 넣어 맛을 잡고, 꿀과 배를 갈아 넣어주면 됩니다.”
양 겨자가 아닌 아시안 겨자로 맵고, 떫은맛을 최대한 줄인 허니 머스터드 소스가 만들어졌다.
물론, 그래도 양겨자로 만든 머스타드보다는 겨자의 톡 쏘는 맛이 강하긴 했다.
“으음. 다른 게 들어가지 않았을 때는 아릿한 맛만 있었는데, 꿀과 배가 들어가니 뭔가 특이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나는구나. 그래서 이 양념의 이름은 무엇이냐?”
“그냥 겨자 양념과는 다른 맛이기에 ‘꿀 겨자 양념’으로 부를까 합니다.”
“꿀 겨자 양념이라.”
원길 형은 물론이고 다른 어멈들도 이 꿀 겨자 양념을 만드는 법을 외우기 위해 애쓰는 게 보였다.
“비밀도 아니니 요리숙 책자에도 실릴 것입니다. 지금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이걸 더 맛있게 하는 방법도 알려드리겠습니다. 박복어멈 오이지와 마늘종 장아찌를 가져오게나.”
여름에 담그어 식초 맛이 제대로 밴 오이지와 마늘종 장아찌를 잘게 다졌다.
잘게 다진 것을 꿀 겨자 양념과 버무리자 마치 허니머스타드에 할라페뇨 고추를 썰어 넣은듯한 비주얼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섞이게 되면 실제 맛도 할라페뇨의 맛과 유사했다.
“그럼 이제 닭을 튀기는 것이냐?”
“네. 하지만 그 전에 준비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씻어둔 밥을 가져오게나.”
“응? 밥을 씻었다고? 그러면 먼저 밥을 짓고 그걸 다시 씻었다는 말이냐?”
“네. 쌀로 밥을 짓기 위해 씻을 때 하얀 쌀뜨물이 나오듯이 밥을 한 이후에도 그 쌀뜨물 같은 흰 물이 나옵니다. 그 흰 물을 뺏기 위해서 밥을 씻은 것입니다.”
“그럼, 그 쌀뜨물이 몸에 좋지 않은 것이냐?”
원길은 이때까지 몸에 좋지 않은 흰 물을 먹어 왔다는 생각에 손발이 떨리는 것 같았다.
“형님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흰 물에는 몸에 좋은 성분이 더 많습니다. 제가 흰 물을 빼는 것은 오로지 씹는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물기를 최대한 제거한 씻은 쌀밥은 다시 밀가루와 섞어 튀김 가루 옷을 만들었다.
물기를 뺏다 한들 밀가루와 섞이자 어느 정도의 점성은 남아 있었다.
“자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숙성시켜둔 닭고기를 튀기면 됩니다.”
재워두었던 닭고기를 하나하나 들어 밀가루와 쌀밥으로 만들어 둔 튀김 옷을 입혔다.
튀김 옷을 꾹꾹 눌러 달고기와 튀김옷이 분리되지 않게 확인했고, 달구어진 기름에 넣었다.
[타닥 파라라닥!]
흰색의 튀김옷을 입은 닭고기가 기름 속으로 사라지고 기름에 신나게 튀겨지는 소리만이 사람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마치 지붕을 두드리는 봄비의 두드림 소리 같기도 하였고, 꽃가마 창문을 두들기는 낭군님의 두드림과도 같은 소리에 다들 할 일을 잃고 튀겨지는 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원길은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를 더 가까이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포계를 했을 때는 기름이 솥의 바닥에만 있었기에 이런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 소리를 들으니 너무 신기하네요.”
다들 튀김을 할 만큼 기름을 듬뿍 부어 요리해본 적이 없다 보니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를 처음 듣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튀김 소리에 요리숙의 어멈들도 설레여 하며 튀김 솥을 바라봤다.
“이렇게 기름 안으로 들어간 재료가 솥 바닥을 치고 다시 위로 떠 오르면 익었다는 거네. 그러면 건져주면 되네.”
튀긴 순살 닭고기를 건져 옆에 일렬로 세웠다.
“어머나. 보세요. 쌀알의 크기가 커졌어요.”
“쌀밥이 튀겨지며 커진 거구나. 그런데, 저건 무슨 맛일까? 쌀밥 맛일까?”
“귀한 쌀을 기름에 튀겼다니.”
“너무 호화롭습니다. 귀한 백미를 귀한 콩기름에 튀기다니. 이건 만드는 법을 안다고 해도 해 먹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지? 우리 집안도 1년에 한 번 먹을 수 있으려나.”
가까이서 보는 어멈들은 쌀을 튀긴 것이 너무 신기하다며 시장 구경 나온 계집아이들처럼 구경했다.
처음 순살치킨을 생각했을 때 튀김 옷으로 쌀가루를 입힐까도 했지만, 시선을 끄는 포인트를 위해 밥알이 그대로 쓴 것이 제대로 적중한 것 같았다.
사실 튀김이란 음식은 귀함과 천함이 공존하는 음식이었다.
기름을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천하다고 할 만큼 모든 음식을 튀겨 먹지만, 기름을 구하기 힘든 환경에서는 1년에 한번이나 튀겨 먹을까 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조선은 기름을 구하기가 힘든 곳이었다. 행랑어멈들의 이런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구경만 하지 말고 그릇을 준비하게나. 식초를 넣어 신맛을 강화한 물김치도 꺼내고 아버님이 드실 수 있게 준비하게!”
처음 보는 튀김에 정신이 팔렸던 어멈들이 급하게 움직여 먹을 준비를 했다.
간장, 식초를 섞고, 마늘과 파를 잘게 썰어 넣은 간장 양념장과 오늘 처음 본 꿀 겨자 양념, 그리고 곱게 간 소금까지 찍어 먹을 수 있는 3가지의 양념이 종지에 세팅되었다.
“한번 튀긴 것은 어느 정도 후 다시 한번 튀기는데, 이렇게 하면 맛있어 보이는 갈색의 튀김이 된다.”
초벌로 한번 튀겼으나 흰 밀가루와 쌀밥이 가진 색이 흰색이라 먹음직한 튀김의 노란 빗이 아니었다.
튀김의 예쁜 색을 위해 치자(梔子) 나무의 열매를 물의 우려 쓰기도 하지만, 치킨의 경우에는 재벌을 하기에 치자열매까지는 필요가 없었다.
다시 한번 기름에 튀겨내자 아주 군침이 도는 노란 갈색의 황금 튀김 색이 되었다.
튀김을 꺼내 기름을 털어내자 흰쌀밥이 노란 튀김옷에 상감 되어있듯 박혀있는 것 같았다.
[서걱, 서걱, 서걱!]
맛있게 튀겨진 순살 튀김을 45도 각도로 비스듬하게 칼질해 그릇에 담았다.
젓가락으로 짚어 한입에 바로 먹을 수 있는 크기였다.
“덕구 어멈이 내가 한 그대로 튀겨주게나. 그리고 저것은 먼저 튀겨 올리게.”
“네이.”
수 쉐프나 마찬가지인 덕구 어멈에게 조리를 맡기고 아버지와 형 내외에게 음식을 올렸다.
“나도 쌀밥을 튀긴 게 제일 궁금했다.”
아버지가 튀김을 집어 입에 넣기도 전에 원길 형이 손으로 낼름 집어 먹었다.
[아삭, 자삭!]
기름에 튀겨져 빠삭해진 튀김옷의 강렬한 소리에 다들 원길 형의 입만 쳐다봤다.
“아... 쌀밥이.쌀밥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그냥 고소한 느낌이야.”
원길은 닭튀김의 곁에 붙어있는 쌀밥이 유과(油菓)에 붙은 곡식처럼 맛을 낼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쌀밥은 맛이 아닌 바싹하게 씹히는 식감을 위해 튀김의 곁에 박아 넣은 것이었다.
‘맛있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 요리의 재료라고 했는데, 맛이 아닌 식감을 위해 들어가는 재료라니.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원길은 자신이 나름대로 공부했던 요리란 것과 그 괘가 완전히 틀린 음식을 보게 되자 혼란스러웠다.
“하, 한개 더.”
원길 칼로 썰지 않은 손바닥 반만 한 큰 튀김을 들어 꿀 겨자 양념(머스타드소스)에 찍어 먹었다.
“오오! 겨자 양념임에도 아릿한 향이 없다니. 만드는 것을 직접 보았지만, 이런 맛일 줄이야. 처음 맛보는 양념이야. 새로운 맛을 알게 되다니. 허허.”
혼자 먼저 먹고, 혼자 감탄의 혼잣말을 하던 원길은 그제야 아버지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버지를 챙겼다.
“아버님. 이 맛은 정녕 처음 먹어보실 겁니다. 이 꿀 겨자 양념에 찍어 드셔 보십시오. 신기한 맛일 겁니다.”
아버지는 겨자 맛이 특이하다며 설레발을 치는 원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겨자의 씨앗에서 나온 맛인데, 처음 먹어본다는 맛이 가당찮기는 하느냐? 겨자는 겨자 맛일 뿐이지.”
“아버지 일단 드셔 보십시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진심이란 듯이 고사성어까지 쓰는 원길의 모습에 전기환은 웃으며 꿀 겨자 양념을 듬뿍 발라 닭튀김을 입에 넣었다.
“으음. 방금 튀겨 뜨끈뜨끈한 느낌을 상대적으로 차가운 겨자 양념이 차갑게 만들어 주는구나. 음. 입안에 향긋한 겨자의 물결이 흐르는 구나.”
전기환은 겨자 양념의 시큼한 맛에 반응하여 혀 밑에서 솟구치는 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침이 닭튀김에 박히듯 붙어있는 밥알을 눅눅하게 만들기 전에 급하게 고기를 씹었다.
전기환은 바싹거리는 이 식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왠지 처음 씹어보는 식감이지만, 어디서 먹어 본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이런 느낌의 식감을 느꼈더라... 그래. 그거로 구나. 어디서 느껴본 식감이라고 생각했더니 기억이 났어. 바로 메뚜기를 구워 먹었을 때 느꼈던 그 바싹거리는 식감이로구나.’
전기환은 자신이 막내인 원종보다도 더 어렸을 적 누나가 잡아 구워 줬던 메뚜기 구이가 생각 났다.
‘그래, 갑각으로 보호되던 메뚜기를 씹었을 때의 바싹거리는 식감이 이와 같았구나. 불에 익은 메뚜기 갑각의 느낌이 쌀밥이 튀겨진 이 식감과 같구나.’
어릴 때 밀양으로 시집간 누이가 떠올랐다. 구운 메뚜기가 뜨거울까 후후 불어 식혀 자신의 입에 넣어주었던 그 어리던 누이가 생각났다.
양반 가문이라 먹을 것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먹어보았던 메뚜기의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았었다.
아니, 어린 시절 누이가 먹여주었기에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고 기억하는지도 몰랐다.
아무런 걱정 없이 길을 돌아다니며 메뚜기를 잡아먹던 그때가 그리워서 그 텁텁한 메뚜기의 맛이 좋았다고 생각되었는지도 몰랐다.
아련하게 어린 날의 자신이 느꼈던 그 식감을 기억하게 해주는 맛이었다.
“맛있구나. 옛 추억을 기억나게 하는 맛이야. 원상이와 너희들도 어서 먹어보아라.”
자식과 며느리들에게 얼른 먹으라고 이야길 하면서도 누이에게도 이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전기환이었다.
*
[작가의 말]
요리를 잘 몰랐던 예전에는 같은 겨자로 냉채족발의 톡 쏘는 겨자소스도 만들고, 달콤한 허니 머스타드도 만드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머스타드는 양겨자라고 애초에 맛이 다른 겨자로 만들더군요.
매운맛, 쓴맛, 떫은맛이 양겨자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머스타드 소스를 직접 만들어 보겠다 하시는 분들은 꼭 양겨자 가루를 구매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치킨샐러드를 냉채족발양념 겨자소스로 먹게 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