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5화 (25/327)

24. 파급(波及)과 성장(成長).

“사례가 다르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양반집 행랑어멈을 불러 요리를 가르치는 게 같은데 뭐가 다르다는 말이냐?”

“시간과 거리가 다른 거지요. 상주가 아무리 지척이라고는 하나 오가는데, 한나절이 걸립니다. 하지만, 같은 문경에 산다면 불편하더라도 걸어서 다녀올 수가 있습니다. 그 거리와 시간 때문에 다른 것입니다.”

“그럼, 상주는 거리가 멀기에 우리 집으로 올 수 없으니 행랑어멈을 교육하는 것이고, 가까운 곳은 교육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냐?”

“네. 상주의 양반들은 거리가 멀어 먹지 못한다는 그런 심리적인 욕망이 있지만, 문경의 양반들은 다 근처에 사니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심리적인 욕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응이 다른 것입니다.”

수요와 공급, 거리에 따른 농업 입지론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허허. 내 그런 이치를 몰랐다니. 그런 이제 어떡하면 되겠느냐?”

“기다려야지요. 본인들의 닭으로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 만든 음식을 먹어본다면 차이점을 알게 될 겁니다. 그 차이점을 참을 수 있다면 오지 않을 것이고, 참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

“흥.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깐. 괜히 친하지도 않은 우리에게 맛있는 요리가 있다며 초대해서 먹이고 했던 것이 백미 2섬 때문이었어.”

“이보게 진운이 그러기엔 우리가 먹은 게 백미 2섬 이상이었어.”

“그럼 그 좁쌀영감이 진짜 우리에게 아무 이유 없이 베풀었다는 말인가? 분명, 뭔가 흑심이 있었던 것이었네.”

“좁쌀을 벗어난 것인지도 모르지. 우리가 처음 먹어보는 맛 난 것을 대접해 주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게나.”

“연훈이 자네는 늘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문제인 것이야. 그런데 진짜 상주의 양반들은 백미를 2섬이나 내고 행랑어멈들에게 요리를 배우게 했는지가 궁금하구만.”

“내 처가가 상주에 있으니 가게 된다면 한번 수소문해보지.”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재료가 절반이네. 우리 집의 닭도 곡식을 먹여 키운다면 당연히 그런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일세.”

정진운은 백미 2섬도 없으면 안 먹어야지, 그 정도도 없는 겐가 라며 꼽주던 전원길의 말에 기분이 상했었다.

마치, 더 비싸지만 싸게 준다는 그런 말투가 정진운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었다.

‘상주의 양반들은 다 바보들인가 그 돈을 내고 배우라고? 내가 먹은 걸 그대로 알려주면 똑같이 만들어 줄 어멈들은 많다고. 그게 뭐 신기한 음식이라고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정진운은 서너 번 먹어본 자기 입맛을 믿고 어멈들을 닦달했다.

그리고, 백숙은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포계와 주토피아는 그 맛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진운이 자네에게는 미안하지만, 맛이 없네. 주토피아는 아예 맛이 다른 맛이야.”

단짝처럼 붙어 노는 이연훈의 말에 정진운은 기분이 상했다.

이연훈의 말이 기분 나쁜 게 아니라, 왜 같은 요리를 하는데도 맛이 다른지를 몰랐기에 기분이 나빴다.

“행랑어멈들도 도저히 모르겠다고 하는데, 이러면 어쩔 수 없지. 연훈이 자네 집에 힘 좋은 노비 몇 빌리세.”

“힘 좋은 노비? 뭘 하려고?”

“전가네의 행랑어멈을 하나 잡아 오려고.”

“뭐?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는 겐가? 그러다 누가 다치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가?”

“행랑어멈 하나 다친다고 큰일은 나지 않아. 그저 다치게 한 값이나 물려주면 되는 것이지.”

“그래도 하지만...”

“되었고, 그래서 힘 좋은 놈들 셋을 빌려주겠나 말겠나?”

정신 나간 듯이 전씨네 행랑어멈을 납치해오겠다고 하는 정진운을 보니 자신이 지금 말린다고 될 것 같지 않았다.

“휴. 알았네 빌려주지. 하지만, 잠시만 기다리게. 상주에 처갓집이 있으니 내 처갓집에 가서 한번 알아보고 오겠네.”

“오, 좋은 수로군. 그쪽은 돈을 주고 배웠다는 어멈들이 있으니. 뭔가를 알 수 있겠지. 자네가 상주 쪽에서 알아 오는 동안 내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도록 하겠네.”

***

“이, 이보게 진운이! 일이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네.”

“뭐가 요상하다는 말인가? 상주에 갔던 건 어찌 되었나?”

“그래 그 상주가 이상하다는 말일세. 상주에 좀 산다는 양반집들은 다 포계와 주토피아를 먹고 있었네. 덕분에 지금 상주 인근에는 닭이나 토끼가 씨가 마를 정도야.”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렇다면, 상주 양반들은 백미 2섬을 들여서 정가네에서 다 요리를 배웠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네. 원길이 집에 2섬을 내고 배우기보다는 원길이 집의 요리숙에서 배웠던 어멈들에게 백미 1섬을 주고 배운다고 하네. 같은 요리인데, 반값으로 배울 수 있으니 상주에서는 양반가마다 서로 가르쳐주겠다고 하고, 배우겠다고 하며 난리이네.”

“허참. 그게 무슨 난장판인가. 웃기는구만.”

“그만큼 그 포계나 주토피아란 요리가 대단하다는 거고, 백미를 내가면서도 먹고 싶다는 거겠지. 그리고, 자네처럼 상주에서도 몇몇 양반들이 자체적으로 맛의 비밀을 알아내려 했지만, 못 알아내고 결국 다 쌀을 지불하고 배웠다고 하네.”

“이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한다.”

“그래서 내가 처갓집의 행랑어멈을 데리고 왔네. 우리 집 어멈에게 가르칠 때 같이 배우면 될 것이야.”

“오, 그렇게 하면 되겠군.”

“물론, 백미 1섬이네. 싫으면 말고.”

“쳇. 반값이라고 하지만, 너무 비싸지 않나.”

“하하하.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 그래서 안 배우게 할 건가?”

“이런 빌어먹을. 알겠네. 우리집 어멈을 데리고 가서 배우게 하게나.”

포계나 주토피아를 만들어 먹기 위해 행랑어멈의 납치까지 생각했지만, 이미 상주에서는 그렇게 요리를 돈을 주고 배우는 게 당연할 정도로 정착이 되고 있었다.

***

“도련님 비봉산에도 지금 닭이 없답니다. 상주 인근에서 상인들이 씨암탉까지도 다 사간다고 난리랍니다.”

“허허 이거 참, 전해 듣기는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그래서 새털만 가지고 온 것이냐?”

“네. 겨울이라 씨암탉을 빼고는 닭을 다 잡아서 봄이 와야 새로 닭이 생길 거랍니다.”

“알았네. 박복 아범이 수고했네. 이제 봄까지 새털을 가지러 가지 않아도 되니 쉬게나.”

비봉산자락에서 새 농장을 운영하는 김일란의 서라벌 닭은 내가 모두 쓸어 왔지만, 일반 잡닭들은 상주의 상인들이 싹 쓸어 간 것 같았다.

“원종아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 상주의 양반들은 그 상도덕(商道德)이란 것도 없는 것이냐? 우리에게 요리를 배워가서는 그걸 반값에 다 퍼트리다니. 이러면 우리가 요리숙을 만든 이유가 없지 않으냐.”

화식을 깨우친 이후 상도덕까지 외치는 형을 보니 격세지감이었다.

“아닙니다. 형님. 당장은 손해 갔지만, 크게 본다면 이득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득이라는 말이냐? 다음에 네가 새로운 요리를 해서 요리숙을 열게 된다고 해도 그 요리가 또 반값에 팔려 버릴 것이지 않으냐.”

“그렇게 되겠지만, 닭과 토끼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인해 닭과 토끼가 더 많이 키워지게 될 것이고. 더 흔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우리도 이득인 것입니다.”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 이득이 가는 것이지 않으냐. 우리에겐 이득이 없잖으냐.”

“하하하. 형님. 왜 그리 조급하십니까?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게 이득이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길은 자신을 안심시키듯 이야기하는 동생의 말에 진정이 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저놈이 내가 입을 잘못 놀려 사고를 칠까 봐 알려주지 않는 것이로구나. 에잉.”

춘봉도 요리숙을 통하여 요리와 미식을 보급하려 하는 이유는 재화의 이익도 있었지만, 판을 크게 만들기 위해 미식이란 문화를 퍼트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한데, 상주의 상황을 보고 있으니 들판에 씨앗을 뿌려두기만 했는데, 줄기가 자라 꽃이 피고, 다시 그 씨앗이 퍼져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추구했던 것들이 더 빨리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복 아범. 목장(木匠)을 불러오게나.”

“네. 뭔 만들어야 한다고 할깝쇼?”

“대문 옆에 다는 현판(懸板)과 동구밖에 세울 현판을 만든다고 하게.”

***

“전가 요리숙이라. 현판을 대문 옆에 다는 건 이해가 된다만, 동구 밖에 세운 이유가 있느냐?”

“네. 그 현판의 화살표를 보고 여기로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아니, 상주의 어멈들에게 백미 1섬으로 배울 수 있는데, 두 배나 비싼 우리에게 오겠느냐?”

“하하하. 형님. 그 반값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게 될 것입니다.”

원길은 배우는 가격 차이가 두 배나 나는데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라 말하는 원종이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쌀이 썩어 문드러져도 반값인 곳으로 가지 2배나 비싼 우리에게 오는 게 이치에 맞는 거냐?”

원길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진짜 그리될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춘봉이 장담한 것처럼 요리숙에서 요리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박복 아범 목장에게 현판 하나를 더 만들어 달라고 하게. 매달 5일 요리숙이 열린다고 알리는 현판이네.”

“허어. 이거 참 신기하구나. 원종아. 너는 이렇게 사람들이 찾아올 것을 알았느냐? 2배나 비싼 우리에게 배우려고 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어떻게 예상한 것이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다 반값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냐?”

“네 단편적인 상식으로 백미 2섬과 백미 1섬의 차이만 본다면 저렴한 곳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허나.”

“허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 속에 담겨있는 내용이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요리숙은 저와 덕구 어멈은 물론이고 박복 어멈이나 다른 가르쳐 줄 사람이 많습니다. 허나 사설로 가르치는 어멈들은 집안에 묶인 몸이라 혼자이지 않겠습니까?”

“오호. 그건 그렇구나.”

“거기다. 우리는 요리숙에서 배웠다는 수료증과 요리 방법이 담긴 책자를 줍니다. 더불어 언문까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받은 책자를 읽을 수 없으면 안 되기에 글도 알려주고 있는 겁니다.”

“그렇구나. 겉으로 보이는 2배의 가격 차이가 아니라 그 속의 내용이 차이가 나니 비싼 우리 쪽으로 오는 것이로구나.”

“네. 이런 상세한 사항을 형님도 알았다면 저처럼 예측했을 것입니다. 이참에 형님도 요리숙에서 요리를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마천의 화식 열전에 나오는 중국 제나라의...”

“그래 배우겠다. 요리를 배우겠다.”

“에? 제나라의 이야길 안 듣고요?”

“그래. 당연히 깊이 있게 뭔가를 알고 있던 자가 제나라 시대에 돈을 불렸다는 것이겠지.”

“네 맞습니다. 그 내용입니다.”

“그럼 더 들을 필요도 없겠구만. 깊이 있는 일을 배워 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형님 그러면 갓을 벗고 유건(儒巾)을 쓰십시오. 그리고 요리를 하는 남자를 위해 만든 앞섶가리개를 하십시오.”

나중을 위해 남자가 요리숙에 오면 쓸 수 있게 앞치마가 아닌 앞섶가리개를 만들었었는데, 그걸 형이 쓰게 되자 감개무량했다.

좁쌀 양반 같았던 형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진 것 같아 기뻤다.

“흠흠. 그런데 나는 쌀 안 내도 되는 거지? 난 공짜다. 알았지?”

음. 좁쌀인 건 여전한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