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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4화 (24/327)

23. 화식(貨殖).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가서 앓는 소리를 해라니? 난 네가 이익을 거두어들일 때라고 해서 신나게 벌어들일 생각을 했는데, 기껏 할 일이 향교에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해라는 것이냐?”

원길은 동생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큰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내 이제껏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았는데, 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냐? 그렇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면 내 길에서 상놈들처럼 물건을 팔았을 것이다.”

향교에서 재물을 서투르게 쓴다고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앓는 소리를 하면 된다고 했는데, 형은 자존심 때문인지 그 말을 하지 못한다고 화를 내었다.

현대였다면 친우들 사이에 이런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 큰 성인에 일가를 이룬 입장에선 꾸중을 들었다고 친우들에게 말하는 것이 힘든 것 같았다.

‘농담 삼아 아쉬운 소리를 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리 대나무처럼 뻣뻣하게 굴면 앞으로 무슨 일이든 힘들 것 같은데.’

춘봉은 원길이 접객까지는 안되어도 외부영업은 맡아줬으면 했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일에도 격렬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니 영업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형을 설득하기 위해 옛 선현들이 남긴 지혜를 빌려와야 할 것 같았다.

“형님. 사마천의 화식열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기분이 상해 화가 나 있는 형을 일단 앉혔다.

“재물을 쌓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화(貨)를 먼저 알아야 하며,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인 화(貨)가 증식되고 늘어나야 드디어 눈에 보이는 땅이나 금, 은 등의 유형자산을 가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형님은 무형자산인 화(貨)를 근래에 만들어 내었지 않습니까?”

“무형자산? 그게 무엇이냐?”

“사마천이 말하길 무형자산인 화(貨)를 파자해 보면 돈(貝 조개 패)이 변(化)하여 화(貨)가 되고 재물(財物)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돈(貝)을 재물로 만드는 변화(化)는 사람(人)과 숟가락(匕)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형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종이에 한자를 써가며 이야길 했다.

“사람이 숟가락을 들어 함께 밥을 먹으며 사람과의 관계를 변하게 하는 화(貨)를 형님이 만들어 냈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형의 자산인 것입니다.”

“흐음. 인맥을 말하는 것이로구나.”

“네. 이미 형님은 사마천이 이야기한 변화를 만들어 내신 겁니다. 그 변화가 이제 재물을 만들 차례인데, 그 기회를 그냥 버리시겠습니까? 훗날, 화(貨)를 만들어 재물을 모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존심 때문에 그 기회를 버린 것을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그건...”

원길은 동생의 말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베풀어 인맥을 만들었으나 그 인맥을 이용하려면 결국 자존심을 굽힐 일도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한평생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았으나 재물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아쉬운 소리를 사람들에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 고민하는 원길을 보는 춘봉은 이미 솥 안의 쌀이 익어 밥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회하지 않을 거냐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할 정도라면 이미 마음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라는 말이었다.

마음속 자존심이 더 컸다면 저리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끊었어야 했다.

‘화(貨)는 돈(貝)이 사람(人)을 다르게 변화(化)시킨다는 말이기도 하지.’

화(貨)는 사람의 본성을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이 되게도 만든다는 뜻이기도 했다.

재화를 가지게 될수록 사람은 그 재화와 마주하게 되고 이때의 화(貨)에 쓰이는 한자 匕는 비수(匕首)의 비 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즉, 사람을 먹이는 숟가락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을 해치는 비수로도 재화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근본이 욕심이 많고 소인배의 기질을 가진 형은 재물이 쌓일수록 재화(貨)의 匕자가 숟가락에서 비수가 될 사람이었다.

비수가 아니라 숟가락이 되어야 거부가 될 수 있고, 사람을 먹여 살리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비수가 아닌 숟가락이 형의 손에 쥐어질 수 있게 두 달 가까이 사람들을 먹이며 베푸는 즐거움을 찾게 했다.

“휴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냐?”

그리고 두 달간 베풀게 했던 즐거움이 형은 손에 비수가 아닌 숟가락을 쥐게 만들었다.

“말씀드렸듯이 친인들과 맛있는 걸 먹는다고 집안 재물을 많이 썼다고, 그래서 아버지께 크게 꾸중을 들었다고만 이야기 해주시면 됩니다.”

“그래... 내 알았다.”

한번 자존심을 버리고, 아쉬운 소리를 하기로 한 형은 두말하지도 않고 따라줬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에게 사마천의 화식을 써먹는 방법은 대학교 외식 창업학과에 겸임교수로 출강했을 때 자주 써먹었던 방법이었다.

지나가는 손님에게 호객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써먹었던 방식인데, 먼저 자신이 만든 음식을 캠퍼스 내에서 팔라고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라고 했다.

공짜음식을 싫어하는 대학생은 없었고, 음식을 준다는 사람에게 웃어주며 음식을 잘 먹어 줬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웃으며 먹어주는 기쁨을 요리사가 알게 되면, 소극적이었던 아이들도 고객에게 쉽게 다가가 자신의 요리를 권할 수 있게 되었었다.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서로가 즐거워진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자신이 한 요리를 타인에게 팔 수도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방금 사람들에게 베풂의 기쁨이 자존심보다 더 좋고, 그렇게 하면 화식(貨殖 재물을 불리다)이 된다는 결정을 한 원길은 충실하게 화(貨)를 쌓아갈 터였다.

***

“허허. 이 친구 크게 꾸중 난 것이 사실인가 보구만.”

“그 사람 좋으신 춘부장께서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렇게 했겠나.”

“그러게 너무 퍼주더라니. 이거 받아먹은 게 있다 보니 미안해지는구먼.”

“그래 미안함을 좀 가지게나. 나눠 먹었던 닭만 150여 마리에 토끼가 200마리네. 쌀이나 곡식까지 치면 어마어마할 거네. 그래서 당분간은 자네들에게 음식을 대접해 주고 싶어도 해줄 수가 없네.”

“황소라도 한 마리 잡아먹었다면 경을 치셨겠구먼. 사내대장부가 닭을 좀 먹었다고 꾸중을 듣다니.”

“그래도 많긴 많네 그려.”

“그런데, 이거 자네가 슬퍼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슬퍼해야 할 일이로구먼.”

“그러게 이제 누구 집에서 밥을 먹나.”

향교에 모인 친우들은 아버지께 크게 꾸중을 들었다는 전원길을 다독였으나 그 바탕에는 아직도 아버지께 혼나고 사는 것이냐고 비꼬는 것도 어느 정도 있었다.

“뭐 딴 집 갈 일 있나? 이제 올 때 자네들이 먹을 걸 좀 들거나 오게나.”

“그럴까 닭이 없으면 무명이라도 들고 가야 하겠구먼.”

“하긴 내가 먹은 닭만 한 10마리 될 듯하이. 그럼 갈 때 닭을 한두 마리 가지고 가면 되겠는가?”

양반들은 맛있게 먹었던 것이 있다 보니 다시 백숙이나 포계, 주토피아를 먹기 위해 기꺼이 닭이나 토끼를 들고 가겠다고 했다.

이는 춘봉이 원했던 작은 변화였다.

흔히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듯이 조선 시대에는 한동네 사람들이 혈족인 경우가 많았고, 밥을 얻어먹더라도 돈이나 재화를 줘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피가 섞여 있는 친족인데, 왜 정 없이 그런 걸 주고받느냐는 ‘혈족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음식을 해먹이고 했음에도 공짜처럼 먹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춘봉은 재료를 가져오면 먹을 것을 해주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양반들에게 재화의 교환과 가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밑밥을 인맥 만들기처럼 깔아 둔 것이었고, 형을 영업담당 이사처럼 움직인 것이었다.

그냥 약선 요리 전문점을 만들어 장사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는데, 아직은 양반들의 마인드라던지 화폐 문제로 인해 시기상조였다.

지인에게만 파는 알음알음 소문이 난 가게도 아니고 일반 가정집도 아닌 그런 어중간한 스텐스의 영업부터 시작하는 이유였다.

먼저 고객이 될 수도 있는 수요층을 만들고 나서 떠밀리듯이 장사를 해야 했다.

그래야 거부감 없이 어쩔 수 없이 장사할 수밖에 없구나 하는 납득을 시킬 수 있었다.

“헌데, 자네들이 닭을 들고 와도 소용이 없을 수도 있네. 우리 동생이 키우는 닭은 잡곡을 먹이고 닭에게도 보양식을 먹여 정력에도 좋고, 덩치도 커서 하여튼 일반 닭과는 다르네.”

“오, 닭에게 잡곡을 먹여 키우다니 역시 다르구만.”

“그래서 백숙에서 그리 고소한 맛이 나는 것이었군.”

“어쩐지 그래서 나도 집에서 해 먹어보고 싶어서 행랑어멈을 닦달했는데도 맛이 다르더라니.”

“그럼 어쩔 수 없이 무명천이라도 들고 가야겠구먼. 어제저녁에 포계가 아주 땡겼거든.”

“맞아. 우리 행랑어멈에게 포계를 해라고 하니 아예 어찌하는 줄을 모르더군. 아, 이야길 하다 보니 먹고 싶어졌어.”

원길은 아버지께 꾸중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친우들에게 하게 되면 자연스레 친우들이 재화를 들고 올 것이라 했던 춘봉의 말이 맞아떨어지자 참으로 신기했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은 가끔 시키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게 만들기도 했다.

“행랑어멈들의 솜씨가 없는가 보이. 그런 행랑어멈들에게 포계나 주토피아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도 있네.”

“오!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가 자네 집에 폐를 끼치러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행랑어멈을 자네 집으로 보내면 되는 건가?”

“그렇게 하면 되긴 하는데, 행랑어멈에게 요리를 알려주는데 한 명당 백미 2섬을 받네.”

“응? 2섬? 잡곡이 아니라 백미로? 그게 정말인가?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허허. 이 친구 배포가 확실히 커졌구먼, 그깟 요리를 배우는데, 백미 2섬이라니. 그러니 아버지께 꾸중을 듣지.”

원길은 상주의 양반가 어멈들을 가르쳤던 요리숙 1기를 기억하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다들 부정적으로 나오자 당황했다.

“백미 2섬을 내고 배울 바에는 그냥 우리 집 닭도 곡식을 먹이고, 하다 보면 맛있게 될 것 같은데.”

“아닐세. 그래도 맛이 다르다니깐 그러네. 상주의 양반가 행랑어멈들을 이미 다섯 명이나 가르쳤네. 그리고, 백미 2섬이 비싸다고 느껴지면 포계를 안 먹어야지. 그 돈도 없는 겐가?”

“그래, 없네. 난 백미 2섬이 없어서 행랑어멈에게 요리를 가르치지 못하겠네. 그깟 닭 한 마리 요리하는 데 그리 비싼 돈을 써야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네.”

“맞아. 집안이 곤궁한 나도 안 되겠네.”

바로 전에까지만 해도 닭이든 무명이든 들고 집으로 방문하겠다던 사람들이 기분이 상했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리 집 어멈은 저 집 어멈보다 요리 솜씨는 떨어지지만, 백미 2섬짜리 요리에 못지않은 백숙을 하네. 오늘은 우리 집으로 가세나.”

“그럼 오늘은 최가네에 방문해 보지. 흠흠.”

순식간에 바꿔버린 분위기에 놀란 원길은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형님. 요리숙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 이야기를 한 것입니까요?”

“아니 왜? 내가 못할 말을 한 것이냐? 나는 당연히 상주의 진기주처럼 백미 2섬을 내고 어멈들을 보내겠다고 할 줄 알았다.”

“형님 그건, 케이스가 다른... 아니 사례가 다른 겁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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