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4화 (4/327)

3. 환생인 건가?

‘윽 뭐가 이리 갑갑해...’

춘봉은 땀으로 축축해진 등판의 찝찝함에 잠을 깼다.

‘엇, 몇 시지? 내가 몇 시간이나 잔 거야. 끄으으 왜 몸이 안 움직이는 거지.’

춘봉은 분명 잠을 많이 잔 거 같은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의아했다.

“막내 도련님 정신이 드세요?”

박복 어멈은 식은땀을 흘리며 힘없이 누워있던 막내 도련님이 눈을 뜨자 기뻤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숨이 끊어져 버릴 듯이 가늘게 숨을 쉬는 모습에 마음을 졸였었다.

다행히 아침에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는 것 같자 얼른 숟가락으로 미음을 떠먹였다.

‘물인가? 아니 맛을 보면 숭늉인가?’

춘봉은 마침 목이 말랐기에 입으로 넣어주는 물을 받아 삼켰다.

미지근한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그제야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유 미음(米飮)을 다 드셨으니 병 따위는 다 떨쳐버리고 일어나실 겁니다요. 더 드릴까요?”

춘봉은 배가 고파 더 달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힘이 없어 그런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더 달라고 입만 오물거렸다.

“어머나, 더 드신다니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얼른 가서 더 가져올 테니. 기다리세요.”

아주머니는 급하게 방을 나갔는데, 그제야 춘봉의 눈에 천장이 보였고,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긴 어디지 내가 과로해서 입원한 건가? 입원한 병원이라고 하기엔 뭔가 천장이나 벽지가 이상한데.’

춘봉은 주변을 제대로 살펴보고자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어딘가에 몸이 묶여 있는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자 갑갑했다.

겨우 용을 써 이불 밖으로 손을 꺼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제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 법한 그런 작은 아이의 손이 이불 밖으로 나오자 이게 자신의 손이 맞는지 의문이 생겼다.

‘이 작은 손이 내 손이라고?’

없는 힘을 끌어모아 손가락을 움직여 봤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엄지와 검지가 움직였다.

아이의 손이 자신의 손이라는 것을 깨닫자 춘봉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문경 전(全)씨... 조선 시대... 역병... 양반가의 셋째... 이름은 원종...

‘이게 뭐야?’

춘봉은 갑자기 떠오른 기억들에 혼란스러웠는데, 머리를 때리는 것처럼 강력한 기억들이 머리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먼저 자신을 낳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 올랐다... 아니 우리 어머니는 안 돌아가셨는데...? 우리 어머니는 건강히 계신다고! 그리고 형들? 뭐? 난 외동아들이라고...

상반되는 기억들이 떠올라 두 인격의 기억이, 두 어머니의 추억이, 여러 형제의 기억이 서로 엉켜 들었다.

많은 기억이 떠올라 머리가 혼란스러워 터질 것만 같을 때 어느 순간 기억들이 서로의 틈으로 스며들어 합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두 개의 삶을 살았던 것처럼 기억들은 합쳐져 하나가 되었다.

춘봉은 생소한 기억이 자신의 기억이 되자 이게 진짜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부터 들었다.

‘과거로, 그것도 조선 시대로 시간을 역행하는 게 가능한 거야?’

설령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한들, 뭔가 타임머신 비슷한 걸 움직였거나 가동한 것도 없었고.

그냥 뜬금없이 엎드려 자고 일어났더니 조선 시대 아이의 몸에 와 있었다.

‘그럼, 원종이라는 아이가 죽고 내가 들어온 건가? 햐... 이건 내가 고민한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은데... 이게 꿈은 아닐까? 악몽 같은 그런거.’

하지만, 이불과 몸이 부대끼며 느껴지는 감각은 분명히 진짜 감각이었고, 등에서 느껴지는 땀에 젖어 찝찝한 감각 또한 이게 진짜 현실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도련님 미음 대신 죽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방금까진 이름도 몰랐던 아주머니를 자신이 박복 어멈이라고 불러왔다는 게 떠올랐다.

‘이게 내 기억인가? 아니면 몸의 주인인 원종이란 아이의 기억인가?’

이 기억이 춘봉이라는 자신의 기억인지 아니면, 원종이란 자신의 기억인지도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저분께 말을 놓아도 되는 건가.’

춘봉 아니 이제 원종이 된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박복 어멈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낳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젖을 물리고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어머니와 같은 분이지만, 신분은 노비였기에 늘 반말로 대했다는 것이 뭔가 어색했다.

하지만, 금세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춘봉의 관념이 아닌 전원종의 관념이 섞여버린 것이었다.

“자 어서 드세요. 얼른 병을 떨치시고 일어나셔야 합니다.”

춘봉은 생각도 많고 혼란스러웠지만, 박복 어멈이 계속 떠먹여 주는 죽을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그리고 배가 부르자 자연스레 수마(睡魔)가 찾아왔고, 다시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잠에서 깨면 몇 개월간 준비했던 미향의 가게 테이블이길 빌었지만, 지금 춘봉의 눈에 보이는 건 나무로 된 대들보였다.

‘꿈이 아니었어. 휴...’

“자, 일어나셨으니 다시 죽을 드세요.”

자신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박복 어멈이 다시 죽을 먹여줬고, 죽을 배부르게 먹으면 또다시 깊은 잠이 드는 생활을 며칠이나 이어갔다.

‘그런데, 왜 아버지나 형은 나를 만나러 오지 않는 거지? 다른 가족이 어떻게 되더라...’

생각을 하자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아버지인 ‘전기환’에 대한 기억은 한정적이었다.

몸이 아프지 않았을 때도 문안 인사나 식사를 할 때만 겨우 아버지를 뵈었다는 기억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와는 다르게 막냇동생을 살갑게 대해주는 큰형과 작은 형이 떠올랐다.

외동아들이었던 춘봉은 원종이가 되어 형들이 생겼다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작은 형은 작년에 데릴사위로 장가를 갔고, 첩 소생의 배다른 동생도 두 명이나 있구나. 한데...’

기억을 더듬다 보니, 이 이복형제 두 명에 대한 기억과 정보가 참으로 난감했다.

아버지가 첩을 통해 낳은 자식이긴 하지만, 첩의 신분이 노비 출신이다보니 이복동생들을 노비처럼 대하고 있었다.

‘아, 양반과 양인의 사이에서 난 자식은 서자(庶子)라 부르고 양반과 천민 사이에 난 자는 얼자(孼子)라고 따로 부르는구나.’

잘 모르거나 궁금한 것은 또 다른 자신의 기억에서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조선 시대 첩의 자식이면 다 서얼(庶孼)이라 부르는 건 줄 알았는데, 그 서얼이란 말이 서자와 얼자를 합쳐서 지칭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그리고, 서자와 비교해서 얼자들은 대부분이 노비가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런 계급사회에서 양반으로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며 춘봉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복 어멈 내가 며칠이나 쓰러져 있었지?”

“거의 열 나흘이나 이 방에 계셨어요, 이제는 이불을 걷고 혼자 일어나실 정도가 되었으니 역병을 이겨낸 것이옵니다. 우리 도련님 참으로 장하십니다.”

정신이 있던 날이 며칠 되지 않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듯했다.

“도련님을 진맥했던 동천(東川) 너머 의원이 역병으로 쓰러진 자는 보름이 지나서 일어나면 병을 이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여튼 이제 도련님은 다 나으신 것 같아요.”

박복 어멈은 어린 도련님이 역병을 이겨낸 것이 기쁘고도 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정을 담아 손발을 주물러주고 물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었다.

춘봉은 자신이 쓰러져 있던 열 나흘 동안 방에서 자신을 간호해준 박복 어멈에게 어머니의 정이 느껴졌는데, 어머니를 일찍 여윈 원종이의 마음 때문인지 가슴이 아려왔다.

“그런데, 박복 어멈 이번 역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이 역병이 천연두였어?”

“천연두요? 그게 무엇입니까요?”

“아. 그게, 그러니깐...”

춘봉은 천연두(天然痘)라고 이야길 하면 박복 어멈이 당연히 알아들을 거로 생각했는데, 전혀 모르자 난감했다.

그러다 춘봉의 머리에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어린 시절 비디오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려 봤을 때 비디오 첫머리에 나왔던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불법 성인물 관람 금지’라는 경고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러니깐 이번 역병이 마마(媽媽)였어?”

“어이쿠 마마신 님이 다녀갔다면 더 큰 일이 났을 겁니다요. 그 이름은 입에도 올리시면 안 됩니다요. 퉤퉤! 어서 하세요!”

“퉤퉤!”

춘봉은 박복 어멈의 말처럼 침을 뱉으면서도 천연두가 아니었다는 말에 안도가 되었다.

사실 춘봉은 방에 거울이 없어 자신이 걸린 역병이 천연두인게 아닐까 걱정을 했었다.

천연두는 두창(痘瘡)또는 두진(痘疹)이라 불렀는데, 두창은 큰 마마, 두진은 작은 마마라고 불렀다.

창(瘡)은 한자 그대로 부스럼이 생겼고, 진(疹)은 여드름처럼 피부에 돌기가 솟아오르는 병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두창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고 생각할 정도였고, 설령 병을 이기고 살아난다고 해도 얼굴에 심각한 곰보 자국이 남게 되었기에 살아나더라도 산 게 아니었다.

특히나 여자들은 더 그랬다.

두창에 걸렸다가 살아난 여자는 그냥 죽는 것이 나았을 거라고 하기도 했다.

“마마신님이 아닌데도 아랫마을이고 윗마을이고 수십 명이 쓰러졌습니다요. 지금도 역병으로 죽은 시신이나 집을 불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요.”

박복 어멈의 말을 듣자 창밖으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가 그거였구나 하고 소름이 돋았다.

별거 아닌 감기로도 죽을 수 있는 조선 시대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게 체감이 되었다.

‘신분제가 있는 조선에서 양반으로 환생했기에 팔자가 편할 거로 생각했는데, 맹장염으로도 바로 요단강을 건널 수 있는 시대였구나.’

춘봉은 가슴이 답답했다.

***

“도련님 오늘부터는 죽이 아니라 탕반(湯飯)입니다.”

박복 어멈이 내어둔 소반 위에는 큼지막한 닭 다리가 올라간 탕그릇이 있었는데, 닭 다리의 존재감 때문인지 소반위의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백숙의 자태에 춘봉의 입에선 침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 모양이면 닭 한 마리 요리로 봐야 하겠지?’

사실 백숙과 삼계탕, 닭 한 마리를 따로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요리로 먹고 살았던 업자(?)의 입장이다 보니 이 요리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백숙이라 함은 흰 백(白)에 익을 숙(熟)자를 쓰듯이 고기가 하얗게 익는 국물 음식은 다 백숙이라 할 수 있다.

‘즉, 고기가 익으면서 흰색이 되는 조류(鳥類)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다 백숙이라고 할 수 있는거지.’

닭은 물론이고 오리나 거위 심지어 외국에서 들여온 칠면조를 통째로 넣어 요리하더라도 고기가 흰색으로 익기에 그 모든 걸 다 백숙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러니 삼계탕이나 닭 한 마리 요리나 백숙의 아래에 속하는 요리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닭 한 마리는 온마리를 넣는 게 아니라 토막 낸 닭으로 끓이며, 고기를 먹고 난 이후 칼국수를 넣어 먹거나 밥을 넣어 죽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소반에 내어놓은 백숙은 닭의 다른 부위 없이 큰 닭 다리 하나만 들어가 있었기에 닭 한마리 요리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따뜻하게 코를 간지럽히는 닭 특유의 이 비린 냄새가 얼른 자신을 먹어치우라고 유혹하는구나.’

환생한 이후 멀건 죽만 먹었기에 풍겨오는 닭고기의 육향만으로도 입안에서 침이 솟구쳐 올랐다.

손으로 닭 다리를 잡곤 부들부들하게 삶아졌을 닭 다리를 물어뜯었다.

‘으응? 이거 뭐야?’

*

[작가의 말]

천연두에 대한 상식 하나!

추녀를 뜻하는 박색(薄色)이란 말은 원래 천연두를 앓고 난 곰보 자국이 있는 여자의 얼굴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냥 못생긴 여자는 다 박색으로 칭하게 되었지요. 그만큼 천연두가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