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화 (3/327)

2. 스타쉐프. (2)

“네 감사합니다. 중간 광고 잠시 보고 오셨습니다.”

“그러니깐. 김칫국을 물김치로 끓이고, 된장도 넣는 걸 어떻게 알았냐면, 그게 국제학교 급식실의 김칫국 레시피 이기 때문입니다.”

“에? 급식실의 레시피라고? 르 코르동 블루에서 가르치는 급식 레시피에요?”

“국제학교에는 그런 레시피의 김칫국이 진짜 있는 거예요? 진짜로? 물김치로 국을 끓인다고.?”

“네. 진짜입니다. 진짜로 있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는 두 MC에게 춘봉은 진짜 그런 레시피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 그러면 양수정 씨가 호주에서 한국으로 오셨을 때 외국인들이 다니는 국제학교로 전학을 왔고, 국제학교에서 김칫국을 먹었던 거네요.”

“네. 맞아요. 저 처음에 다녔던 초등학교는 국제학교였어요.”

“이야 저 사람 대단하네. 그걸 어떻게 안 거야? 거기서 일했었어요? 설마 뒷조사하고 하는 안기부는 아니지?”

“아니 이 사람아!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기부야?”

“우리 세대가 그래요. 그 최루탄에 전경에...”

“아, 됐고요. 춘봉 쉐프는 어떻게 급식실의 레시피를 알고 있는 겁니까?”

“국제학교는 아니었지만, 프랑스로 가기 전에 학교 급식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그때 공부하면서 여러 학교의 레시피도 봤었습니다.”

“아, 그때 알게 되신 거구나. 그런데, 왜 이런 특이한 레시피가 있는 건가요? 우리나라 레시피가 아닌 거 같은데.”

“네. 사실, 이 레시피도 여러 가지 조건을 맞추다 보니 우연찮게 만들어진 레시피입니다. 외국인 학교다 보니 김칫국도 안 맵게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김치의 양념을 모두 씻어내야 합니다. 그게 사실 엄청난 중노동이거든요.”

“맞아요. 말이 씻는다는 거지 김치를 물에 담갔다 빼고 하는 걸 몇백 번이나 해야 하는 거예요. 정말 김치양념 씻는 거 힘들어요. 힘들어.”

단체 급식 경험이 있는 몇몇 쉐프들은 김치 양념을 씻는 게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네. 그래서 나온 게 양념을 씻는 과정이 필요 없는 물김치 김칫국입니다. 고춧가루 양념이 없는 물김치로 김칫국을 끓이게 되면 양념을 씻는 과정이 줄어들게 되어 조리원들이 편해집니다.”

“오오~ 그렇군요. 급식은 양이 많으니까 김치 양념을 씻는 과정을 없애서 편할 수 있고, 외국인들도 안 매우니 입맛에 맞았을 수도 있고.”

“이야, 춘봉 이 사람 이름처럼 특별한 사람이네.”

MC 임정안은 조금 전만 해도 이름이 영 안 좋다고 춘봉의 이름을 놀렸지만, 지금은 또 우디르급의 태세 전환으로 이름이 특별하다며 알랑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급식이 막 시작된 시절에는 학생 1명에게 줘야 하는 분량이 딱딱 정해져 있었습니다. 소시지 야채볶음을 예로 들면 무조건 소세지는 5개를 줬습니다. 계란말이는 4개, 삶은 달걀은 1개 이런 식으로 모든 식재료의 급식 분량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아, 그럼 그래서 김칫국에 달걀을 풀지 않고 통째로 넣은 건가요?”

“네 맞습니다. 학생 1명당 달걀 1개를 배식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데, 그게 달걀을 풀어서 하게 되면 그 분량을 못 맞추게 되거든요. 요즘이야 그냥 당연하게 넘어가는데, 급식 초기에는 이런 수량을 지키는 게 참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했던 것처럼 달걀을 풀지 않고 그대로 넣은 것입니다.”

“이야, 이런 디테일 엄청납니다. 급식실에서 일했었기에 나올 수 있는 디테일이에요.”

“그럼 김칫국에 된장이나 옥수수, 완두콩 넣은 것도 그런 이유인가요?”

“네. 영양성분의 균형과 편식하는 걸 막기 위해 국에 옥수수와 완두콩도 같이 넣었습니다. 물론, 개수를 정확하게 맞추어서 넣었습니다. 그게 급식 초창기의 가이드 라인이었습니다.”

“이야 난 김칫국에 옥수수나 완두콩 넣는게 르 코르동 스타일인지 알았지.”

“저도 프랑스 요리사들이 한식을 이상하게 퓨전한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리지날로 한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니 신기합니다. 자 그럼, 우리의 크리스탈 양수정 씨는 어느 급식 한상이 더 좋았는지 결정하셨습니까?”

“네에.”

양수정은 결정을 내렸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럼, 리모컨을 눌러주세욧!”

“네. 눌렀습니다.”

“헛. 그러고 보니 양수정 씨 밥 굶고 왔어요? 전춘봉 쉐프의 급식은 물론이고 최현하 쉐프의 급식도 다 먹었네요. 회사에서 밥 안 줘요?”

“네에. 진짜 밥 안 줘요. 막 방울토마토 4개랑 삶은 달걀 1개 야채 샐러드만 주고 그래요. 오늘 김칫국에 쏘야에 계란말이에 정말 잘 먹었어요.”

양수정은 밥을 남기지 않고 배부르게 잘 먹었다는 것이 부끄러우면서 만족스러웠는지 혀를 내밀며 웃었다.

“역시 급식단 친구들이 밥을 잘 먹어요. 우리 민철이도 학교에 왜 가냐고 물으면 밥 먹으러 간대요. 엄마가 해주는 밥보다 더 맛있고, 더 잘해준 데. 우리나라 급식 정말 최고에요!”

“진짜 학교 급식실에서 매일 아이들 식사 챙겨주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드려야 해요. 그분들이 땀 흘려주시니깐 아이들이 즐겁게 밥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두 MC의 말에 쉐프들은 물론이고 방송 스태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훈훈하게 분위기를 만들었다.

“자, 그럼 우리 오늘 방송 끝나고 회식은 방송국 구내식당에서 하는 거로 어때요? 콜?”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오늘은 임정한씨가 쏠 차례잖아요.”

“이야 이 분위기에서도 이게 안 먹히네. 돈 굳힐 수 있었는데. 아까비.”

“자! 그럼, 오늘 요리를 부탁해의 승자를 확인하겠습니다. 블루핑크의 크리스탈 양수정 씨가 선택한 초등학교 첫 급식에서 먹었던 전설의 김칫국! 두 쉐프 중에 어느 쉐프의 김칫국이 더 좋았는지. 수정 씨가 승리 뱃지를 옷에 달아주시면 됩니다.”

화려한 조명이 교차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자 양수정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선 두 쉐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춘봉은 가슴 쪽에 뭔가가 걸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네에! 이번 주 ‘요리를 부탁해!’ 전설의 김칫국 메뉴 승자는 전춘봉 쉐프입니다!”

모든 조명이 춘봉을 비추었고, 그런 화려한 조명 속에서 양수정이 가슴팍에 배지를 달아주고 있었다.

“양수정 씨 미국에서 오래 계셨는데, 미국식으로 인사 좀 해주세요. 총각 쉐프 마음에 불 좀 질러주세요!”

“포옹! 포옹!”

짓궂은 MC와 쉐프들의 요청에 양수정은 모른 척해도 되었지만, 수줍게 웃으며 프랑스식 비쥬 포옹을 해줬다.

“엇! 양쪽 볼 뽀뽀도 하는 겁니까? 그건 안 시켰는데요!”

“아 촌스럽게 저건 비쥬란 인사법이라고!”

“전춘봉 쉐프! 미국을 점령한 블루핑크의 크리스탈 씨가 해주는 볼 뽀뽀 그 느낌은 어떤가요?”

“그... 그게 김칫국 냄새랑 쏘야 냄새가 납니다.”

김칫국과 쏘야 냄새가 난다는 말에 스튜디오가 뒤집어졌다.

“으하하하! 여고생에게 떡볶이 냄새가 난다는건 들었는데, 김칫국 냄새라니 이거 크흐흐흐.”

“뒈박! 축하드립니다. 방금 안티 50만 명 생겼어요! 이거 편집하지 마요! 하하하.”

오디오 편집점을 찾지 못하게 다른 이들도 웃으며 오디오를 가득 채웠다.

양수정도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데 저는 이 김칫국 냄새를 좋아해요.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냄새처럼 좋아요.”

양수정은 부끄러움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김칫국의 냄새마저 좋다며 웃었다.

“저도 한국인이라 그런지 이 김칫국 냄새 좋아합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에요.”

양수정은 춘봉 쉐프도 김칫국 냄새를 좋아한다며 웃어주자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 웃었다.

서로 눈빛이 오가며 요리를 부탁해의 녹화가 끝이 났다.

***

[야, 진짜 물김치로 김칫국 끓이면 맛있음? 크리스탈이 울면서 먹는거 보면 찐으로 맛있는 것 같은데.]

└나도 방금 방송보고 해봤는데, 맛이 미묘하다. (자취요리 3년차 총각)

└넌 르 코르동 블루 안 나왔잖아. 맛이 다를 수밖에 없지.

└시바. 르 코르동 블루에서 진짜 김칫국 가르쳐 주냐?

└가르쳐줌. 이제 오이소박이도 정규강습 메뉴라고 하더라.

└미친. 한국 음식 프랑스에 다 빼앗기겠네. 짱개처럼 요리 국적 세탁은 안 하겠지?

└모르지. 프랑스가 유럽의 짱개라고 하잖아.

[전춘봉 쉐프가 하는 청담동 레스토랑 거기 비싸? 미슐렝 투스타라는데, 한번 가보고 싶은데. 거기 많이 비싸?]

└으니야 별로 안 비싸. 나는 몇 번 가봤는데, 한 30만원?

└몇 번 가봤는데 왜 가격을 모름?

└내가 계산 안 해서 모르지. 검사 남자친구가 계산해주거나 아빠가 준 플레티넘 카드로 그냥 결제해서 가격은 잘 몰라.

└너 한남더힐 살아?

└어? 어떻게 알았어? 너도 한남더힐 살아?

└허언증 오지네. 홈페이지 보니 가격이 1인당 10만원대네. 주말에 한번 가봐야겠다.

[근데 크리스탈이 미국식으로 인사하면서 볼 뽀뽀해주는 거 보고 나만 설레냐? 나도 수정이 만나면 미국식 인사받을 수 있는 거냐?]

└양심 없네. 거긴 거울 없어?

└오징어 냄새 안 나게 씻고는 다니지? 오징어는 데오드란트 필수다

└저 잘생긴 쉐프니깐 해달라고 해서 해주는 거지 아무나 볼 뽀뽀 인사 안 해줌.

└그래서 지금 쉐프 되려고 요리학원 등록하러 간다!

└요리사 되면 다 해줄거 같지? ㅎㅎ

“선배님. 방송 나간 효과가 장난 아닙니다. 다음 달 예약 주문이 벌써 다 마감되었어요.”

“다행이네. 난 양수정에게 냄새난다고 해서 욕 전화 올지 알고 조마조마했다.”

“아니, 욕 들을게 겁났으면 왜 그러셨어요? 그래서 연락처는 땄어요?”

춘봉과는 군대 선후임으로 만나 4년째 함께 일하고 있는 이진현이 능글맞게 웃으며 물었다.

“저 날 바로 연락처를 물어보면 안 되지. 처음부터 들이 되면 안 되는 거야. 다음에 만났을 때 기억하라고 냄새 드립 친거야.”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깐요. 그렇지 않아도 그 장면이 뭔가 하트 시그널인가 하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썸 타는 그런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팬들에게도 항의 전화가 안 오는 거 같아요.”

“그래? 그렇게 보였어?”

“네. 뭔가 가상연애 프로그램에서 서로 눈치 보는 그런 거로 보이더라고요. 상황극 하는 느낌으로 잘 편집해준거 같아요.”

“다행이다. PD님한테 한턱 거하게 쏴야겠다. 그럼 난 진현이 너만 믿고 광주로 내려간다.”

“벌써요? 아직 시간 여유 있는 거 아니에요?”

“시간 여유가 있지만, 첫 한식 전문 레스토랑이다 보니 계속 신경이 쓰이네. 요리 잘한다고 솜씨 자랑하지 말라는 전라도다 보니 더 신경 쓰이는 것도 있고. 일단, 다음 방송 때까지는 계속 광주에 있을 테니깐 내가 꼭 있어야 하는 손님 예약이 잡히면 그때 연락 줘.”

“예 알겠습니다. 그럼, 한식 학회에서 고전 요리 관련 강연해달라고 연락 온 건 어떻게 할까요?”

“그건 못하겠다고 해줘.”

“그냥 안 한다고 하기엔 좀 아쉬운데요. 형이 해외에서 주로 있었기에 고전 한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건 이런 강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건 그런데, 거기 학회도 복잡해. 서로 자기 말이 맞다 틀리다 말도 많고. 전에 내가 복원한 요리 발표했을 때도 역사적으로 이 모양이 맞네, 저 모양이 맞네 하면서 싸움하는 것도 짜증 나고. 사료를 보여줘도 다르다고 우기는데, 아주 예송논쟁 저리 가라 하는 판이 그 판이야. 그냥 당분간은 한식 학회에서 연락 오는 거 다 못한다고 해죠.”

“넵.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죠. 운전 조심해서 내려가십쇼 쉡~.”

***

“오늘도 다들 수고했습니다. 드디어 내일이 한식당 ‘미향’이 정식으로 오픈하는 날입니다. 근 석 달이 넘는 준비 기간 동안 시스템을 만들고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일 아침 웃으면서 다시 보겠습니다. 그럼 다 같이 인사!!”

“오늘도 수고하셨고, 내일도 수고합시다!!”

짝짝짝!

정해진 구호를 외치며 직원들은 퇴근했지만, 춘봉은 체크리스트를 들고 다시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체크 사항까지 재확인하자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처음 오픈하는 한식당이라 그런지 이전 가게들과는 준비하는 과정이 달랐기에 춘봉은 몇 번이고 일을 확인했다.

이렇게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한식당 창업과 관련된 메뉴얼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경우에는 오픈전에 어떤 것을 챙기고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창업 메뉴얼이나 책자가 많았다.

그래서 정해진 체크리스트만 확인하고 점검만 하면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한식당의 경우에는 이러한 규격화되고 정규화된 메뉴얼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더구나 본인들의 노하우라며 거래처나 일반적인 재료 납품업자의 연락처도 돈을 받고 넘기는 일이 부지기수였기에 일일이 챙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광주에 내려와 제대로 잠을 잔 게 언제인지도 춘봉은 기억하지 못했다.

“와 진짜 눈꺼풀이 흘러내리네. 흘러내려.”

춘봉은 잠을 깨기 위해 고개를 흔들어 봤지만, 계속 감겨오는 눈꺼풀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엎드려서 눈 좀 붙이자. 와 잠이 오니깐 막 어지럽네.’

춘봉은 학생 때 책상에 엎드려 자듯이 테이블에 꼬부라지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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