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97화 (595/656)

제 597화

『이건…!』

진혁은 두루마리를 받아들었다.

두루마리는 기름종이로 감싸져 있었다. 그 기름종이는 가마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덕분에 땀에 푹 절어 있었다.

『이렇게 보관하면 다 젖어 버리지 않겠나?』

그는 기름종이를 벗겨버리고 안쪽에 돌돌 말려 있던 종이를 펼쳤다. 진혁의 타박에 장유향이 히죽 웃었다.

『거, 주군께서는 젊으시니 이러한 현대 문물에 익숙해지시지 않았습니까?』

안쪽 두루마리는 랩으로 한 겹 더 감싸져 있었다. 진혁이 랩을 벗기며 혀를 찼다.

『어차피 이렇게 씌울 거, 기름종이는 왜 씌운 건데?』

『원래 비급은 전부 기름종이로 보호하는 겁니다. 그래야 피가 묻어도 안쪽은 멀쩡할 거 아닙니까?』

『아니, 됐어.』

장유향이 주름진 얼굴에 환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땀이 차서 기름종이를 덧발라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좋더라구요.』

『금고도 있고 보관함도 있는데 말이지.』

『제가 피와 땀을 흘려 직접 쓴 비급을 외부에 맡길 순 없습니다.』

『알았어, 알았어.』

진혁은 한 장 한 장 종잇장을 넘겨 보았다.

『허어.』

내용보다 글씨를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다. 낯익은 필체를 보자 절로 반가운 마음에 미소가 떠올랐다.

‘글씨체가 전혀 변하지 않았군.’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필체다. 명문가에서 당당하게 자란 자답게 글씨에도 기상이 늠름하며 활달한 것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기에 좋았다.

『어떻습니까?』

손의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인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옛 시절과 현대에 한자가 바뀐 부분이 있어 특징적인 오류가 몇 개 보였다. 이전에도 짐작했지만, 정식 교육은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얼굴은 몰라도 나중에 글씨만 봐도 알아볼 수 있겠다.’

진혁이 미소를 짓고서 비급을 한 장 한 장 넘기자 장유향이 조급하게 물었다.

『보시기에 만족스러우십니까.』

『아, 잠깐만. 내용은 안 봐서. 글씨 잘 썼네.』

『주구우우운!』

장유향이 다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려고 하는데 진혁이 다시 막았다.

『잠깐만, 잠깐만.』

그는 다시 맨 앞장을 펼쳤다. 그는 무공 수련을 위한 심법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전수한 무공이었으나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왜 회음혈이 아니라 음교혈에서부터 진기 순환을 시작하는 거야?』

진혁이 질문을 던지자 장유향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주군께서 음교혈부터 시작하라 하셨습니다.』

회음혈은 회음부에 있는 혈자리이며 음교혈은 그보다 한 치 위에 있다. 혈에 있어서는 다만 한 치의 차이도 크나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진혁이 혀를 찼다.

『쯧, 틀렸어. 회음혈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하지만 저는 이대로 계속해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여태까지 축기가 느렸군. 차라리 가문의 심법을 제대로 익히는 편이 나았을 수 있겠어. 정공이 아무리 느리더라도 시작부터 잘못된 방법으로 운기조식을 하는 것보단 빨랐을 게야.』

『주군께서 저만을 위한 무공을 만들어 주셨는데 수하가 어찌하여 게으르게 이전의 무공을 취하겠습니까.』

진혁이 킥킥 웃었다. 그는 과거의 혈도객이 얼마나 무공을 중히 여기며 내공에 신경을 썼는지 알고 있었다.

『가문의 심법을 통해서 내공을 쌓아 봤는데 그것도 잘 안 됐지?』

『병행을 해 보려 했으나 주군께서 만들어주신 불완전한 심법이 더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래, 사실을 바로바로 말해주는 편이 좋지. 다시 해보자고.』

진혁이 장유향의 백회혈에 손을 댔다. 노인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말했다.

『지금 운기조식을 할까요?』

『아니, 입 다물어 봐.』

그는 노인의 전신을 다시 한 번 살폈다. 내공이 이전보다는 조금 늘어 있었다.

‘이전보다는 두 배 정도 늘었군. 이번에 오리구이를 하면서 자신의 선천진기를 쓴 건 아니야.’

진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장유향이 자신의 생명력까지 깎아가며 요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크게 걱정했다. 크나큰 근심을 덜어낸 그는 임독양맥과 같은 중요하고도 넓은 동맥은 물론이고 전신 세맥도 탁기로 막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지난번에 가르쳐준 태극권은 계속 하고 있나?』

『예, 물론입니다. 매일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조금이나마 갖고 있는 내공이 늘어난 것에는 태극권 덕분도 있을 것이다. 그가 물었다.

『더 강해지고 싶나?』

장유향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더 강해지면 안 됩니다.』

『왜?』

『그럼 다시 태어나는 데 너무 오래 걸립니다. 빨리 죽어야 새로 커서 제대로 알게 된 심법을 익히죠.』

『엄한 소리를 잘도 하는군.』

노인이 어린애가 떼를 쓰는 것처럼 항의했다.

『거, 황태명 그놈도 같은 생각 하고 빨리 죽은 거라니까요. 주군께서는 지금 연치가 많지 않으시고 유명인이니 다시 태어나서 찾아오기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주군께서 반박귀진의 경지에 올라 계신 데 저희가 보필하려면 마땅히 젊은 몸으로 무공을 익히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럼 왜 사냐?』

『예?』

『무거운 몸이 하루하루 삐걱거리면서 늙어가는데 어디 접싯물에라도 코 박고 죽지 않고 어째서 살아 있냐고.』

장유향이 송곳니가 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어디 말해보라고.』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최고의 오리구이를 맛보여 드리기 위해서였지요. 지금 어제의 오리구이에 만족하셨으니 저의 원은 이루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저의 무공을 시작부터 끝까지 정리하여 남기는 것이었습니다.』

즉 비급 완성까지 마쳤으니 두 개의 원을 진혁이 타이르듯이 말했다.

『여태까지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났다고 해서 꼭 같은 일이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법도 없지. 윤회의 고리는 수백만의 영혼을 관리하고 있으니 말일세, 성긴 하늘의 그물 사이에서 물고기 한 마리쯤은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도 있지 않나.』

노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움푹 들어간 눈을 껌뻑였다.

『주군.』

『거, 자꾸 주군 주군 하지 말게나.』

좀처럼 감정의 동요를 하지 않는 진혁이 눈에 띄게 불쾌해하는 모습을 보며 장유향이 해죽이 웃었다.

『어렵게 찾은 수하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계시는군요.』

진혁은 더 이상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바윗돌처럼 무감한 얼굴로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하지만 장유향은 평소와 달리 집요했다. 예전이라면 주군의 품위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고개를 조아리고 입을 다물었을 터다. 하지만 진혁이 편하게 하라고 계속했기 때문인지 지금은 계속해서 말을

『태명이 그 자식이 눈앞에서 떠나 버리니 당혹스러우셨죠. 저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테니 안심하십시오.』

속마음을 들킨 진혁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네가 있건 없건 내가 신경 쓸 것 같나.』

『아버지께서 살아 계신 데 제가 어찌 감히 이 세상을 뜨겠습니까? 광안마 그 새끼는 원래 지가 세상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놈이라 멋대로 먼저 간 겁니다. 저는 제 의사로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팔을 들어 올려 흙 가마를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

『주군께서 하사해주신 겁니다. 황제가 천금을 가져와 바꾸자고 해도 바꾸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염려는 마십시오.』

『흠.』

진혁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 감정을 눈치채는 것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배려해서 하는 말을 듣는 것도 어색했다.

『절대 먼저 죽지 않겠습니다. 약속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진혁을 봐왔던 과거가 있는 황태명과 장유향은 진혁이 눈썹만 추켜올려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부 읽었다.

장유향은 임진혁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았다.

『못 지킬 약속 같은 거 하지 말고.』

과거에서 온 자가 하는 이야기에는 진실된 울림이 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자신이 새로운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장유향이 지금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무공 비급 말인데 여기 이 초식도 틀렸어. 상단으로 내리찍기가 아니라 베기잖나. 자네는 덩치가 커서 대검을 쓰니-.』

지금의 장유향은 덩치가 크지 않았다. 여든 살 노인치고는 체구가 컸지만, 그저 보통 사람처럼 보일 뿐이다. 진혁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에게 필요한 무공을 새로 만들어야겠어.』

『지금의 태극권이 딱 좋은데요.』

『그건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고쳤으니 자네와는 어울리지 않네.』

『제가 오래오래 살게 도와주시렵니까?』

노인의 두 눈동자에 한순간 생(生)에 대한 욕망이 불꽃처럼 스쳐 지나갔다. 진혁이 키득 웃었다.

『그냥 죽기 싫으면 죽기 싫다고 하지 그래.』

그도 그렇고 광안마도 그렇고 언제나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는 수하를 선호했다.

『사실 죽기 싫습니다.』

장유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리가 다 구워졌겠군요. 오늘 저녁에는 정향을 써서 향신료를 다르게 했습니다. 오리구이, 괜찮으시지요?』

임진혁은 거절하지 못했다.

『좋아.』

두 사람은 가마를 향해서 걸었다. 장유향이 부지깽이를 꺼내어 가마 안에 걸려 있는 흙 껍데기 오리구이를 걸어서 당겼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카트 위에 흙으로 둘러싸인 오리구이가 올라갔다. 사람 머리 두 개분은 되어 보일 회색 흙 껍데기는 멀리서 보면 거대한 공룡 알처럼 보였다. 짙은 회색과 검은색으로 얼룩진 껍데기를 보면 더욱더 그랬다.

오리구이를 옮기며 장유향이 넌지시 말했다.

『비급서는 주군께 드리겠습니다.』

『그거, 수정할 부분은 고쳐서 다시 내놓으라는 얘기 아니냐?』

임진혁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장유향이 능글맞게 웃었다.

『주군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신다면 이 수하는 기쁨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그 가르침이 기존의 비급을 개선하여도 좋고 새로운 가르침을 내려주셔도 좋습니다.』

진혁이 말을 돌렸다.

『…오리구이는 같이 먹자고. 한 비서와 통역사도 부르겠네. 그 앞에서는 호칭 조심하고.』

『주군의 명령을 한마음 한뜻으로 따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투를 조심하라고!』

* * *

네 사람은 단란하게 식사를 하였다.

“오리고기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는지 몰랐는데요!”

한 비서가 감탄을 거듭했다. 통역사는 화색을 띠며 오리구이를 맛보았다.

『다른 부서 사람들이 먹을 때마다 그렇게 맛있다고 하더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네요.』

그는 같은 이야기를 한 비서에게도 전달해 주었다. 한 비서가 물었다.

“통역사님은 처음 드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장유향은 묵묵히 오리고기를 맛보았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맛에 만족한 듯 뿌듯한 표정이었다.

『맛있지 않습니까?』

『음.』

진혁은 오리구이를 맛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진기가 들어 있어.’

식사를 마치고 나서 진혁은 장유향을 따로 미팅 룸으로 불렀다.

『최근 몇십 년간 무공을 수련하는 것보다 오리를 구운 일이 더 많지?』

『수하는 꾸준히 무공을 수련해 왔습니다.』

『그래서 오리는 얼마나 구웠고 무공은 얼마나 수련했는데?』

장유향이 정자세로 서서 말했다.

『…하루에 쉰 마리 이상 구웠습니다. 무공은 새벽에 30분간 운기조식을 하며 장작을 패서 신체적인 훈련을….』

『무공 수련보다 오리 굽기를 훨씬 열심히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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