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96화 (594/656)

제 596화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의 말에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진희가 작게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운 요리 아닌가 싶었는데 진짜 맛있다. 먹기만 해도 기운이 나는 느낌이야.”

“좀 더 먹어.”

진혁이 고기를 좀 더 손질하여 덜어 주었다. 임진희는 오물거리며 오리고기를 씹었다. 지쳐서 굳어 있던 표정이 풀어지며 행복한 미소가 얼굴 전체에 번졌다.

‘장유향에게 보여주고 싶어지는 광경이네.’

진혁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가서 그 녀석이 어느 정도로 무학적 성취를 이루었는지 확인해야겠어.’

아버지가 눈앞의 접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를 맛보면 얼마나 정성 들여서 요리했는지 알 수 있지. 밤도 그렇고 단호박도 그렇고 먹기 좋게 다듬었잖아. 밤은 부스러지니까 그냥 넣기 마련인데 한 번에 수저로 전부 들어 올릴 수 있게 같은 크기로 잘랐네. 그냥 볶음밥을 만들면서 이렇게 하는 건 봤어도, 단순히 찌면 되는 찰밥에 이렇게까지 하다니. 보통 정성이 아니네.”

진혁이 살짝 미소지었다. 아버지가 계속해서 이어 말했다.

“오리 굽기랑 빵을 굽는 건 다른 일이지만 그래도 근본은 같지 않냐? 바로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거지.”

“맞습니다.”

“진희 네가 미국에 가서 하는 일도 근본은 같은 거야. 언제나 누가 먹는지 먼저 생각한다니 좋구나.”

임진희가 오리고기를 씹으며 말했다.

“애들이 가지고 놀아도 되고, 놀다가 먹어도 돼요. 실제로 애들이 놀 때 어떤지 알아보려고 제가 가족 단위로 참여자들을 모집하자고 제안했어요.”

“아주 좋은 생각이구나.”

“실제로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봐야지.”

“제가 가면 바로 프로토타입 키즈 카페를 런칭하고, 애들을 놀게 한 다음에 반응을 지켜볼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반응이 좋은 블록들 위주로 구성해서 새로 짜고 다시 두 번째 시험을 거치려구요. 제약회사의 임상 시험처럼 하는 거지요.”

임진희가 양손으로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어 가며 설명했다. 아까보다 훨씬 활기차 보였다.

식사를 마치며 어머니가 말했다.

“진희야, 어디 가서도 몸조심하고. 식사는 거르지 마.”

“예.”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3개월이면 금방이잖아. 어차피 금방 만날 거, 공항에는 안 나갈란다.”

진혁이 덧붙였다.

“회사에서 배웅할 거예요.”

“그래, 여기서 미리 인사할게. 조심히 가라.”

어머니는 묵직한 비닐봉지 손잡이를 임진희의 손에 쥐여주었다.

“고추장이랑 김치 좀 담았어. 네 친구인 혜영이란 애하고 같이 담근 거다. 미국 가서 김치가 먹고 싶을 때 꺼내서 먹어.”

“엄마! 이런 건 안 줘도 되는데요.”

“그래도 자식 멀리 보내는 데 맘이 편치 않네.”

문을 나서며 어머니가 진희에게 윙크를 했다.

“엄마는 국제결혼도 환영이란다.”

임진희가 입을 딱 벌렸다.

“아휴, 참! 엄마도!”

“호호호. 조심히 들어가, 가서 몇 분이라도 더 자고.”

“그래요, 알았어요. 다음엔 이런 거 절대로 챙기지 마요, 엄마!”

“알았어, 알았어.”

가족들이 부산스럽게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          ◈          ◈

다음 날 아침, 진혁은 아침 일찍 떠났다.

소망시를 향해 혼자 달려간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비서와 함께 행동해야 하기에 뛰어갈 수는 없었다.

진혁이 ‘해와 달’ 본점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팔랑팔랑 넘기며 물었다.

“오늘 빠뜨린 일이 있나?”

“회장님께서 교재는 다 되었는지 여쭈시던데요.”

“내일까지 준다고 전해줘.”

그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강의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첫 수업 시간에는 좋은 음식 재료를 고르는 방법을 하는 것이 좋을까?’

진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지금 만나러 가는 자를 떠올렸다. 장유향은 분명히 재료에도 신경을 썼지만, 조리 도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흙 가마를 갖게 된 이후에 부쩍 신이 나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제과제빵을 선택한 학생들이 자신이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조리 도구를 갖출 수 있도록 조언하는 게 제일 먼저 나오는 게 낫겠다. 그러면 조리 도구를 열거하고 어떤 것을 만들지에 따라 필요한 도구를 갖추는 것부터 하라고 해야겠어.’

“베이킹에서는 계량이 제일 중요하지. 그러니 계량컵부터….”

진혁은 교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모델링 초콜릿 레시피를 작성했던 때가 저절로 떠올랐다.

“이것도 나름 재미있는데?”

무공의 비급을 작성하는 것과도 같아 즐거웠다. 한 사람에게 귀로 속삭여 주는 것과 달리, 이런 형태로 설명서를 만들면 다양한 사람에게 빠르게 전파할 수 있다.

그는 인쇄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인터넷의 발전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정보 공유의 용이성에 대해서 생각하며 계속해서 교재를 썼다.

“대표이사님, 도착했습니다.”

운전사가 말했다. 그는 자신이 작성하고 있던 문서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도착했다고? 아직도 첫 시간에 수업해야 할 내용을 적고 있는데.”

한 비서가 물었다.

“뭘 쓰고 계신데요?”

“계량 도구가 중요한 이유, 적절한 계량 도구의 재질, 그리고 좋은 계량 도구를 알아보는 방법.”

“10분 정도 수업할 내용인가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각 재질에 따른 맛의 차이를 이야기하려다 보니까 이것만으로 벌써 2회차 수업 시간까지 가 버렸는데.”

“그건 대표이사님만이 하실 수 있는 수업이겠네요.”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대로 작성하고 미미 씨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진혁은 흙 가마가 설치된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는 일부러 장유향에게 자신이 도착한다고 미리 알리지 않았다.

‘괜히 쓸데없는 준비를 하게 할 필요는 없지.’

뒷마당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한쪽 구석에 자리한 거대한 흙 가마였다. 가마의 우측에는 잘게 쪼갠 나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곧게 뻗은 진갈색 나무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어 유백색 속살이 훤히 드러났다. 엉성하게 얼기설기 쌓여 있는 나무를 보며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사과나무 장작을 쓰는군.”

통역사가 먼저 진혁을 보고 반가워했다.

“어서 오십시오.”

장유향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개량 한복과 비슷한 헐렁한 옷을 입고 있었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부지깽이로 가마 안의 불씨를 뒤적이며 불길을 살리느라 바빴다.

『또 무슨 구경꾼이야? 가라고 해. 오리 구이는 구경거리가 아니라고.』

장유향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다.』

그 한 마디의 효과는 엄청났다. 장유향은 뒤를 돌아보고 혼비백산하여 벌떡 일어났다.

『아이구! 오셨…나.』

장유향은 통역사를 흘끔 바라보았다. 진혁이 통역사와 한 비서에게 말했다.

“우리 둘이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앞의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통역사와 한 비서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장유향은 부지깽이를 내팽개쳤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이마를 부딪치며 격렬하게 절을 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진혁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더 이상 절을 하지 말라고 하여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손짓했다.

『…일단 일어나야 대화를 하지.』

『어제 드신 오리구이는 어떠셨습니까? 주군의 가족분들께서 흡족해하셨습니까? 주군의 마음을 촉촉하고도 따뜻하게 적시며 신하와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운 기억 속 맛이었지요.』

『새로운 견과류도 그렇고 약재도 그렇고, 향신료를 다양하게 추가했던데』

『더 넣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빼는 것이 어려웠지요.』

진혁이 장유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들어갔지.』

『감초 말씀이십니까?』

그는 화제를 돌리거나 하지 않고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니, 음식에 기를 쏟아부었잖아. 어떻게 한 건가?』

『기를 쏟아붓다니요? 그냥 평범하게 구웠는데요.』

진혁은 가마 안쪽에서 달구어지고 있는 회색 흙 껍질을 흘깃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장유향은 오늘도 쉬지 않고 오리구이를 굽고 있었다. 임진혁은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지금 구워지고 있는 오리구이를 투시하였는데 진기가 들어 있지는 않았다.

그가 질문했다.

『지금 굽고 있는 오리구이는 어제 굽고 있는 것과 뭐가 다른가?』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굽고 있습니다.』

진혁은 입술에 검지를 올리고서 곰곰이 생각했다.

『오늘 구운 오리구이는 어디로 가는가?』

『처음에는 저하고 통역사 청년하고 둘이서 구워 먹었습니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밖에 오리 구이를 먹지 않았는데도 통역사 청년이 다른 것을 먹고 싶다고 의견을 내지 않겠습니까? 요즘 젊은것들은 근성이 없습니다.』

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통역사에게 인센티브를 조금 더 줘야겠군.’

『아직 내가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을 안 했는데?』

『직원 식당의 조리사들이 관심을 보이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아예 그쪽으로 보내고 있슴다. 그날그날 다른 부서에 별식으로 제공된다고 함다.』

『그건 나쁘지 않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오리 구이 먹는 날이 언제냐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나쁘지는 않습니다.』

『어제 오리구이는 나에게 보낸다고 생각하면서 구운 건가?』

『매일 오리구이를 구울 때마다 주군께 보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굽습니다. 주군께서는 항상 수하들과 같은 것을 드셨지 않습니까? 이곳의 모든 자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저마다 주군을 위해서 일하고 있으니 이 어찌 주군의 복이 아닌가 합니다.』

진혁이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실은 어제의 오리구이에서는 이전의 구이와 다른 점이 있었네.』

『설마 잘못 구워졌습니까? 뭔가 이물질이라도 들어갔습니까! 그렇다면 이 수하가 목숨으로 사죄하겠습니다!!!』

장유향이 벌떡 일어나더니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으려 했다. 임진혁은 노인의 팔을 붙잡아 바닥에 돌진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저를 막지 마십시오!』

장유향은 있는 힘껏 바닥으로 머리를 가까이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진혁이 다급히 말했다.

『아니, 맛있었어.』

『그렇습니까?』

장유향은 바로 힘을 빼고 정자세를 취했다.

『어떤 점이 맛있었습니까?』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진혁이 대답했다.

『재료 손질을 꼼꼼하게 했더군. 그리고 화력 조절이 아주 잘 됐어. 흙 가마를 써서 그런 거지?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과 부위별로 제대로 익어 씹기에 좋은 고기 맛도 아주 좋았어. 이전보다 훨씬 발전한 티가 났지.』

『제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장유향이 심각하게 말했다. 노인의 주름진 눈가에서 뺨을 타고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벌써 죽으면 안 되지. 아직 여든밖에 안 됐잖아.』

『주군께서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장유향이 주섬주섬 허리춤을 풀기 시작했다. 바지를 슬쩍 내리자 진혁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뭔가?』

『드디어 제가 비급을 전부 완성했습니다!』

장유향은 허리에 묶여 있던 매듭을 풀어 두루마리를 꺼냈다. 회색빛 두루마리는 꼬질꼬질하니 때가 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진혁에게 건넸다.

『읽어 주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