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560화 (558/656)

제 560화

「자네는 이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네.」

진혁이 거절했다.

혈도객은 그 훈련을 이미 받은 적이 있다. 암살자들을 훈련하기 전에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며 자청해서 수료했다. 가혹한 훈련을 배제하면서 당시 검림, 광안마와 함께 수련 체계 자체를 새로 짰다. 이후에는 신입들이 들어오면 감독으로 봉사했다. 거의 이십여 년간 감독을 해왔으니, 어쩌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진혁보다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몸과 이 몸은 다릅니다. 확실히 감각이 둔하단 말입니다. 암흑실의 훈련은 단순히 후각과 미각만이 아니라 전신의 감각을 깨워 기감을 민감하게 하는 것. 그러니 현재 벽에 부딪혀 있는 저에게도 훌륭한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장유향이 기나긴 말을 늘어놓았다. 진혁이 아는 혈도객과 같은 태도는 아니었다. 혈도객은 과묵한 편이고 꼭 필요한 이야기만 했는데, 이 자는 말이 많았다.

「어이, 그저 태극권만 배운다며? 무공에 대한 욕심은 버렸다며?」

진혁이 반문하자 장유향이 진중하게 대답했다.

「절차탁마하는 마음을 잃은 무인은 더 이상 무인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점에 주군을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연(緣)이고, 주군을 따라왔더니 마침 암흑실의 훈련을 다시 하고 계신 것 또한 연이 아니겠습니까?」

「…말솜씨가 많이 늘었군.」

「그 녀석과 몇십 년간 티격태격하다 보면 누구라도 말이 늘 겁니다.」

「그건 그래.」

진혁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진유향이 말했다.

「안 되겠습니까?」

임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같이 하지. 오리 구이 요리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걸세.」

「제 오리 구이 요리는 완성형입니다! 더 이상 좋아질 수가 없습니다. 몇백 년 동안 개량에 개량을 거듭했단 말입니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렇게 확신하나? 진흙 오리 구이는 더 나아질 수 없다고?」

진혁이 싱긋 웃었다. 장유향이 발끈해서 단언했다.

「진흙 오리 구이에 대해서 저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자는 세상에 다시 없을 것입니다.」

진혁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고개를 가로로 흔들며 말했다.

「감초에 가시오갈피를 더해볼 생각은 하지 않았나? 황칠나무는 어떤가. 인삼이나 황기, 밤과 호두, 아몬드나 대추, 녹각은?」

견과류부터 한약재까지. 전부 다 오리와 어울린다고 알려진 약재들과 간식들이다.

「전부 한두 개씩 더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이 좋아지지는 않더군요.」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들을 하나씩 넣어본 것으로는 부족하지. 여러 개를 비율을 달리해 조합해 본 다음에 최고의 맛을 찾아야 하는 거야. 지금은 찹쌀과 백미를 섞어 오리의 안에 채우지 않나? 그것 역시 얼마든지 개선할 여지가 있네.」

「흑미나 율무를 섞어 보라는 말씀이시라면 이미 해보았-.」

「아니야,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는 율무나 흑미 말고도 수많은 곡물이 있다.

「밥에 꿀을 바르고 호두와 밤, 단호박을 넣어 연잎으로 감싸 먹는 음식도 있지 않나. 하물며 삼계탕에도 흰 찹쌀과 함께 밤을 넣지. 오리 속을 무엇으로 채울지 마지막으로 고민한 게 언제인가?」

장유향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시기적으로는 백 년쯤 된 것 같군요.」

「그릇도 그래. 황하의 모래를 섞은 진흙으로 그릇을 구워, 두 개의 그릇으로 감싸서 구우면 어떤가? 그편이 더 편리하지 않겠나?」

얼마 전 아랍 왕녀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진혁은 세계의 진미를 맛보았다. 당연히 오리 고기 역시 그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서양에서 흔히 곁들이는 아스파라거스를 비롯하여 한국에서 자주 함께 내놓는 깻잎과 부추 등등, 다양한 채소를 조합해 보았다. 견과류는 물론이고 과일 전반, 파인애플이나 두리안 같은 열대 과일 또한 조합해 보았다.

오리고기를 굽는 방법 또한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다른 쉐프들이 조리하는 것을 보기도 했고 직접 기획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해보기도 하였다. 굽기도 하고 튀기기도 하며 찌기도 하고 삶기도 했다.

그래서 진혁은 자신이 오리고기에 대해서는 꽤 잘 안다고 생각했다.

‘진흙 오리 구이는 확실히 맛있지만, 거기에 안주하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아.’

그러나 장유향은 진혁의 말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주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얇은 알루미늄 호일로 오리를 감싸고, 진흙 그릇을 덮어서 오리를 구워내는 가게들도 있습니다. 그럼 서너 시간이면 충분히 오리 구이를 구워낼 수 있지요. 그렇게 빠르고 편리한 방식으로 요리를 하면, 열이 골고루 전달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고안한 진흙 바르기 방식이어야만 합니다.」

바르는 것도 어렵고, 바른 것을 떼어내는 것도 번거롭다. 능숙한 직원이 하더라도 시간이 걸린다. 그 수고를 대신해야 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든다. 인건비는 당연히 음식값을 올리는 데에 일조하며, 이 진흙 오리 구이가 고급화되는 데에 기여했다.

물론 돈과 시간을 들여 좋은 재료를 써서 공들인 고급 요리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있다. 상류층 손님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 점이 더 차별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진혁은 과거 거지들의 음식이던 이 진흙 오리 구이가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이 방식을 개선하는 점을 이것저것 떠올리게 되었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요리를 하더라도 완벽한 방법은 없어.」

「주군!」

「그 어떤 초식에도 ‘완벽한’ 초식이란 없듯이 말이지. 그저 가장 최선에 가까운 방법이 있을 뿐이지.」

「그건….」

「고여 있는 물은 결국 썩기 마련이다, 자네도 이야기하지 않았나.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스스로 만족하게 된 건가?」

진혁은 호통을 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순수한 의문을 말로 꺼냈을 뿐이다.

장유향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

「….」

진혁도 유향도 침묵했다. 고요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에 한참이나 머물러 있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진혁이었다.

「지금도 자네, 진흙 오리 구이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나? 천여 년 전의 맛을 그대로 살려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 오리 구이 말일세.」

장유향이 고개를 숙였다.

「…교주께서는 당시 산해의 진미를 맛보아도 크게 감흥이 없으셨지요. 상어의 지느러미와 제비집 구이에도 동요하지 않으시던 분이, 저희가 모르는 음료 이름까지 꺼내며 오리 구이를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

「교주님께서 좋아하시던 맛이기에 저에게는 완벽했습니다.」

임진혁은 눈을 깜빡였다.

그에게도 그런 음식이 있었다.

어머니의 된장국.

소금 간이 맞지 않는 달걀말이와, 텁텁한 된장국. 하얀 쌀밥에 김치. 직접 만든 두부를 넣어서 끓인 아욱 된장국은 어머니가 식탁에 자주 올리는 메뉴였다. 두부 만드는 실력이 그리 좋지 못한 탓에 두부가 맛이 없는데도 꿋꿋이 계속해서 식탁에 올리셨다.

회귀한 뒤로 그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된장국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다. 그 된장국은 추억이자 기억이며 고향이었기에, 이미 맛을 따질만한 계제가 아니었다.

‘…내가 실수했군.’

여든 노인.

그는 어미 개를 바라보는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진혁은 할 말이 없었다. 입을 다문 채 눈을 깜빡였다.

‘그저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까워, 요리사로서 기량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해 주고 싶었을 뿐인데.’

수없이 환생하는 동안, 지켜온 맛.

당시에도 맛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충분히 맛있다.

이 맛에는 이미 자부심과 존경심, 그리고 한없는 애정이 담겨 있다.

「이 맛을 지키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장유향이 발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진혁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시대가 흐르며 재료도 사라지고, 맛도 변했다.

감초는 달콤하며 독을 중화시키는 성질이 있어 한방에서 널리 사용한다. 최근에는 건강을 위한 디저트나 음료에도 쓰이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감초와 지금의 감초는 미묘하게 맛이 다르다.

오리는 품종 개량이 되어 껍질이 더 얇아졌다. 방목해 키우는 오리들은 점점 더 덩치가 커졌고 살이 늘었다. 전에는 좀 더 키워서 잡았다면 지금은 전보다 훨씬 일찍 잡는다. 또한, 먹이는 사료에 따라서 고기의 맛도 달라진다는 사실 역시 연구했다. 일부러 이런저런 먹이를 바꿔가며 먹인 후에 요리하기도 한다.

「최대한 들오리와 같은 맛을 내기 위해서, 오리 농장에서는 오리를 풀어서 키우고 있습니다. 별도로 곤충도 사육하여 제공하고 있는 등, 신경을 써왔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장유향에게 진혁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알아보지도 않고 함부로 이야기해서 미안하네.」

「주군께서는 그 어떤 일로도 사과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주군의 위엄이-.」

광안마가 매일같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말투 역시도 똑같다. 진혁은 그만 풋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 말을 하던 장유향 역시도 웃어버렸다.

「풋.」

「크흐흐흐.」

「전부터 계속 이야기했지만 한 번 더 이야기하지. 어차피 환생하지 않았나, 지금 여기에 있는 장유향은 과거 그 인물이 아니야.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진심 어린 충고에 장유향이 허리를 숙였다.

「그렇게 살아가기로 하셨군요.」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 그리고 진흙 오리 구이는 지금도 맛있어. 더 맛있어질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야.」

「외국의 대통령이나 왕족이 순방할 때에도 꼭 대접하는 요리입니다.」

「그래, 확실히 그럴 만했어.」

「추천하신 다른 요리 방법들은 하나씩 시험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더욱 정진하여 주군을 놀라게 해드리겠습니다.」

◈          ◈          ◈

다음날.

무하마드는 달리기 동료를 맞이했다. 장유향이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하오.』

한 비서가 중국어를 영어로 통역해 주었다. 무하마드 역시 인사했다.

「달리기를 같이 하는 동료가 생겨서 좋군요.」

옆에서 운동화 끈을 매고 있던 진혁이 말했다.

「오늘부터 장 어르신 역시 미각 훈련에 같이 참여하게 될 겁니다.」

「뭐?」

무하마드 왕자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는 그대로 멈춰서 말했다.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훈련이 아닌가? 당장 이 달리기만 해도 소화하기 어려울 텐데.」

한 비서는 방금 무하마드 왕자의 말을 통역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장유향은 무하마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눈치챘다. 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중국어로 당당하게 선언했다.

『내 중화의 저력을 보여주겠네!』

무하마드 왕자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왕궁 생활을 오래 해온 노회한 정치가답게 그 역시 눈치가 빨랐다.

「지금 이 노인분께서 달리기로 나를 이기겠다고 말씀하신 건가?」

한 비서와 임진혁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두고 보자.』

「어디 직접 달려 봅시다.」

두 사람은 힘차게 앞으로 달려나가 버렸다. 무하마드의 수석 경호원인 카심이 스톱워치를 손에 쥔 채 중얼거렸다.

「아니,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데요.」

다른 경호원들이 무하마드 왕자를 좇아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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