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8화
「혹시 약점이라도 잡히셨습니까?」
진혁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약점을 잡혀서 전용기를 타고 다닐 만한 일이 있겠나?」
「그 악독한 놈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전용기를 제공해서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꾸밀 거 아닙니까. 하나 실은 교주님의 행동거지를 전부 파악하려고 하는 거지요. 교주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놈이 이전에 역참마다 말 관리꾼을 다 우리 사람으로 갈아치웠잖아요. 경력 풍부한 일꾼이 싼값에 일해준다고 하니 나라에서 좋다고 채용했는데, 덕분에 급한 파발마가 날아들면 전부 우리에게 소식이 왔지요.」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아. 사실 내가 혼인한 상대가-.」
장유향이 코를 벌렁거리며 입을 크게 벌렸다.
「설마 그놈의 혼인 대계에 걸려 드셨습니까?!」
「혼인 대계는 또 뭔가.」
「자기가 딸을 낳으면 반드시 교주님께 시집보낼 거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놈의 딸은 이제 마흔이 넘었을 텐데, 악독한 놈 같으니라고….」
「잠깐, 잠깐. 황태명에게 딸이 있었어?」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진혁이 놀라서 물었다.
「예, 결혼하기 전에 얻은 딸이 하나 있습니다. 음지에서 정보를 관리하고 있지요.」
장유향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진혁이 눈을 깜빡거렸다.
‘미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연락할 방도가 있나?」
진혁이 알기로 미미는 자신에게 살아있는 혈연이 아버지밖에 없는 줄 알았다.
느닷없이 이복 고모가 생긴 셈이다.
「그런데 연락처를 묻는 걸 보니 그 딸과 결혼하신 건 아니군요?」
진혁은 눈을 깜빡였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 것도 우습다.
「손녀딸과 결혼했네.」
장유향이 화를 벌컥 냈다.
「이 부러운 자식 같으니! 나도 딸만 있었어도…!」
진혁이 황급히 목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그놈의 손녀딸이라서 결혼한 건 아니야.」
「그야 그렇게 생각이 드시겠지요. 하지만 그놈이 자기 딸을 얼마나 철저히 교육시켰는지 알면 놀라실 겁니다.」
장유향은 배신감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제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와 교주님의 아이를 결혼시키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자녀의 주체적인 선택을 완전히 무시하는 그 발언이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둘째치고! 자네는 혼인하지도 않았잖나.」
진혁이 지적했다.
「미리 알려주셨으면 저도 해서 토끼 같은 딸을 낳았죠!」
장유향이 고집을 부렸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고집이 셌다. 예전에도 그랬다.
한 번 마음을 정하면 다시 바꾸지 않았다. 진혁이 한 손을 들었다.
「결혼을 하고 싶으면 해.」
「!」
「일월신교는 여러 사람들이 널리 믿어야 하는 종교가 아니야.」
그는 지금 여기 존재하는 유일한 신도에게 말을 걸었다.
「한 사람이라도 진실하게 믿으면 되고, 내가 그 한 사람이면 되는 것이야. 진리를 섬기며 선한 행동을 하고, 선한 생각을 하며 널리 퍼트리고 실천하는 삶 그 자체로 충분히 온전하네. 자네는 이제까지 괴로움을 견디면서도 충분히 잘 해왔어. 그러니 이제는 개인으로서의 행복을 추구해도 될 때가 왔다네.」
「자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내공을 수련하고 싶다면 내가 돕겠네. 사랑을 하고 싶다면 여자를 만나. 돈을 벌고 싶다면 자랑하는 오리구이 실력으로 가게를 열면 되고. 하지만 신교의 부흥은.」
진혁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게는 지금 가족들이 있네. 부모님과 남매, 그리고 아내가 있지. 그들 모두가 너무나 소중해서 당장 새로운 종파를 창건할 때가 아니야.」
장유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주군께서 개인의 행복과 영달을 종교보다 더 우선에 두시는 겁니까?」
평생이 부정당한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였다. 진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신교가 진리라는 사실은 내가 알고 자네가 알지. 그런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나?」
「….」
「나는 위대한 섭리의 뜻이라고밖에 믿을 수 없는 일을 여러 번 겪었다네.」
「저도 그렇습니다. 설마 윤회의 고리를 거쳐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지요. 주군께서는 이번에 몇 번째 환생하신 겁니까?」
「?!」
진혁이 놀라서 말했다.
「이번이 두 번째가 아니었단 말인가?」
「황태명에게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그 역시 여러 번 환생했다고 하나?」
「그놈은 아주 독한 놈입니다. 환생할 때마다 장사를 해서 돈을 모으고 이곳저곳에 소금과 금, 그리고 보석을 묻어 두었지요.」
「허허.」
「저도 그 녀석만치는 아니지만 제법 모아놓은 재물이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또다시 태어날지 모르니 최대한 꼬불쳐 놔야지요.」
진혁이 물었다.
「그럼 질문을 바꾸지, 이번 생에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내를 얻어 사는 것은 이제 싫습니다.」
「….」
「이전에 혼인을 하여 자식을 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나면 전부 남이 되어버립니다. 자식이 있어도 자식이라고 부를 수가 없지요. 정이 들어도 그저 그때뿐인 것을요.」
장유향은 한 번 해보았기에 다시 해보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새 아내를 얻어 정을 쌓아도, 옛사람과 계속해서 비교를 하게 됩니다. 이미 없는 사람과의 추억을 이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진혁은 현재로 돌아왔다.
원래 가족으로 돌아와, 어떻게든 현대에 적응했다.
하지만 장유향에게 있어 과거의 경험은 오히려 달콤한 독과 다르지 않았다.
다시 태어날 때마다 완고하고 고집 센 그가 새로운 사회와 달라진 문화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진혁은 완고한 한 쌍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과연 그 눈동자는 진혁이 알던 젊은이의 것과 달랐다.
그러나 강건하고도 굳건한 의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내공을 쌓고, 쌓고 또 쌓아도 다시 스러지고 사라져 버립니다.」
「….」
「그러니 지금 다 늙은 몸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해주시려고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장유향이 히죽 웃었다.
「살 만큼 살았고, 즐길 만큼 즐겼습니다. 다시 보기 힘든 미인과 살기도 해 보았고, 부유하기 그지없는 삶도 살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을 거쳐도 다시 태어나자 모든 것이 전부 제로로 돌아갈 뿐입니다. 이 장유향, 한때 갖고 있었던 것은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던 시절. 그때 받아주신 분은 아버지 교주님 한 분밖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게 이제 남은 것은 신교의 재건에 이 한 몸을 바치는 것뿐입니다.」
진혁이 이마를 짚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교주님께서 저를 위해 신교의 중흥을 포기하시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놓아주시려 하는 모습에는 진실로 감격했습니다.」
「이봐.」
아무리 진혁이라도 이 시점에서 ‘너를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위해서인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장유향,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일월을 포기하려고 생각했던 적은 단 일초도 없음을 여기서 맹세합니다.」
이미 수차례의 삶을 거쳐왔다고 이야기하는 노인의 눈동자는 아직도 희망을 놓지 않으며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여러 번 다시 죽고 태어나면서도 그 결심이 흔들리거나 바래지 않았단 말인가?」
「물론입니다! 교주님 역시도 그러하시니 이렇게 가공할 만한 양의 내공을 갖게 되신 것이 아닙니까.」
「….」
「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이제 일월신교는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지요. 좁쌀만 한 내공을 가지고 혼자서 동굴 속에서 비급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놈처럼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독문 무공은 알고 있습니다. 이 비급을 필사하여 신교의 교리와 함께 묻어 두면, 후세에 누군가 와서 이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혁은 장유향의 손을 보았다. 먹으로 얼룩진 양손을 보며 그가 물었다.
「왜 컴퓨터에 입력해서 인쇄소에서 출력하지 않고 직접 쓰는 건가?」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 비급이 노출되게 되잖습니까!」
「혼자 컴퓨터에 입력해서 인쇄해도 되잖나….」
「컴퓨터 쓸 줄 모릅니다.」
「미안하네.」
장유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주군! 주군은 젊어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고 있을지 몰라도 저는 스마트폰이니 태블릿 PC니 하는 것들이 싫습니다! 글자도 쪼끄맣고 읽기가 힘든 데다가, 잘못 꽂으면 충전기 선이 부러지고 물에 맞으면 바로 고장이 나 버립니다! 6천 위안을 넘게 줬는데 한순간 만에 박살 나 버렸을 때의 그 설움을 아십니까!」
진혁이 눈알을 굴렸다.
「거, 짜증 내지 말게. 내가 새로 사 줄게.」
「됐습니다. 비급을 만드는 데에 전자 문명의 이기 따위 필요 없습니다. 귀한 단계연 벼루까지 구했고, 직접 만든 먹을 갈아서 종이에 한 장 한 장 만들면 됩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비급이 될 겁니다.」
「자네 가문의 무공이라면 그거 말이지?」
「아닙니다. 주군께서 저에게 맞게 개조해 주신 그 무공입니다. 주군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비밀로 해주십시오. 다른 분에게 전수해주시면 안 됩니다.」
「내가 그걸 왜 전수하겠나?」
「어디~ 보자~ 싹수 있는 젊은이가 있군! 내 이놈에게는 그 무공이 걸맞겠어! 하고 냉큼 만들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놈에게 또 비슷한 걸 만들어 주시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알았어, 알았어. 그럴 일 없을 거야.」
진혁이 웃었다.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지금 이 세상에 어디 함부로 무공을 익히겠나. 혈육에게도 그저 태극권만 전수하고 있네.」
「무당파는 사라졌고 모양만 남은 태극권이 이상한 형태로 이루어지던데 그걸 가르쳐 주고 있단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저 건강 체조 같은 걸세.」
장유향이 눈을 빛냈다.
「그거, 저도 가르쳐 주십시오.」
「…자네도 알고 있지 않았나?」
「제 나이가 몇 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제 무공도 다 까먹어 갑니다. 옛날에 알던 것들 중 정말로 제대로 알던 것만 살아남아 있지, 타 문파의 체조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랩니다.」
「자네에게 필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잊은 것이 아닐까?」
진혁이 놀리듯 말하자 장유향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제 손녀가 아니라 그놈의 손녀하고 혼인하시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내기는 제가 이겼는데.」
진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니, 자네는 혼인조차 하지 않았잖아. 태극권을 배우고 싶다는 건가, 아닌 건가?」
「농이 많이 느셨습니다. 당연히 배우겠습니다. 당장 짐을 꾸려서 출발하지요. 어느 성(省)에 계십니까? 어디라도 당장 찾아가겠습니다.」
진혁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한국에 있네.」
「한국이요? 그런 이름의 도시가 있습니까?」
「아니, 다른 나라야. 자네 여권은 있나?」
장 노인이 눈알을 굴렸다.
「중국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데요….」
「….」
서로 나눌 이야기는 적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진혁은 나이가 있으니 아예 건강 검진도 풀코스로 받으라고, 장 노인을 차에 태워 아예 황 그룹 소속의 병원에 보내 버렸다. 그리고 미미를 따로 만났다.
「그분이셨나요?」
미미는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진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맙소사! 그런 줄은 전혀 몰랐어요. 할아버지와 유난히 사이가 좋으시다고 만 생각했지요.」
「정말로 사이가 좋았습니까?」
「할아버지는 까다로운 분이셨는데, 그분을 만나고 오면 항상 기분이 좋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