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371화 (371/656)

제 371화

“이것 봐. 이 옷은 이상한 데에 주머니가 달려 있어.”

“그러게, 어깨하고 가슴에 있네.”

가슴 주머니는 얕고, 어깨 옆의 왼팔 근처에 달려 있는 주머니는 깊다.

“그러게.”

교복이나 이런 종류의 옷을 입어본 기억이 없는 멸치가 신나했다.

놀랍게도 각자의 조리복 가슴께마다 자기 이름이 자수로 놓여 새겨져 있었다.

강운종은 그 이름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져 보았다.

손 끝에 와 닿는 실의 감촉이 생경한데도 기분이 좋았다.

“이름도 쓰여 있다.”

“새 옷 좋다. 옷감도 부드럽고.”

다들 한마디씩 했다.

죄수복에는 주머니가 없으며 옷감은 뻣뻣하고 거칠다. 얼마 전까지 계속 입던 옷과 너무나 비교된다.

세 사람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역시 옷을 갈아입은 임진혁이 보였다.

그는 새로 갈아입은 조리복 위에, 새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자, 너희들도 이거 하고.”

아카데미 이름이 적혀 있는 앞치마를 두르자 뭔가 기분이 달라졌다.

신기한 고양감을 느끼며 강운종은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멸치가 나불나불 지껄이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으셨네! 형님 원래 잘생기셨는데 지금은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게 아주, 여자애들이 비명을 꺅꺅 지르면서 쫓아다닐 것 같습니다요.”

멸치가 옆에 달라붙으며 온갖 칭찬을 늘어놓는 것을 보며 강운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거 또 저런다.”

너구리가 킥킥 웃었다.

“윗사람에게 샤바샤바하는 것 하나는 자신 있다더니, 고작 저런 거였어?”

강운종이 어이없어하면서 말했다.

“운곰, 그래도 이번에는 최소한 진짜로 잘생긴 사람한테 잘생겼다고 말하잖아.”

“전에는 대체 어땠길래.”

운종은 여태까지 형님들이 멸치를 많이들 아낀다고 해서,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속 보이는 소리를 계속 하는 것이 그 비결인 줄은 몰랐다.

“저렇게 뻔한 소리를 하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의외로 다 좋아한대.”

“허.”

“저런 말이라도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거지.”

“허어어.”

강운종과 너구리는 뒤쪽에서 한 걸음 떨어져 두 사람을 구경했다.

멸치가 끊임없이 어설픈 찬양을 늘어놓는데도, 임진혁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발효기 앞에 다가갔다.

“그리고요, 또 너무나 멋지시고… 조리복도 모델처럼 잘 어울리시고,”

끊임없이 조잘대던 멸치는 이제 할 말이 떨어졌는지 임진혁의 콧구멍이라도 칭찬할 기세였다.

발효기 앞에서 진혁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말은 다 했나?”

“네?”

“이제 반죽을 꺼내자고. 이렇게 하면 되는데 말이지….”

그는 아첨의 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완벽한 무시였다.

진혁이 철벽처럼 굳건하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 멸치는 어벙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풉.”

그 표정이 너무나 웃겨서 강운종은 키득키득 웃었다. 너구리 역시 옆에서 키들거리고 있었다.

‘소년원 안에서도 나름 잘나갔는데, 그 비결이 고작 저런 거였다니.’

운종은 마음속에서 멸치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내렸다.

나름 쓸만한 녀석이라고 생각해서 오른팔로 둘 가치가 있다고 여겼는데, 이래서야 곤란하다.

‘저 녀석이랑 나는 수준이 달라.’

소년원 안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 봤자, 말단 심부름을 하는 어깨들이다.

이런 식으로 현실 세계에서 제대로 된 영업장을 가지고 완전히 가면을 쓴 엘리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말단과 최상단에 위치한 사람의 차이는 노숙자와 강남의 건물주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강운종은 마음속으로 다시 다짐했다.

‘잘 보여야지.’

저렇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속 보이는 칭찬을 하면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강운종 이놈은 키울만한 가치가 있는, 싹수 있는 놈이라고 말이다.

◈          ◈          ◈

소년들은 발효기 안에서 저마다 자신의 스테인리스 보울을 꺼냈다. 꺼낸 하얀 물체는 아까와 모양이 달랐다.

“이거 엄청 커졌어요.”

강운종은 이 사실이 경이로워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에는 한 손바닥으로 덮을 수 있는 크기였던 구형 반죽은 이제 양 손바닥으로도 가릴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거대한 스테인리스 보울을 가득 채운 반죽을 보자 희한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진짜 신기하다. 이게 이제 빵이 되는 건가?”

“조금 더 해야 해.”

진혁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었다.

조리대 위에 깨끗하게 세탁한 천을 깔고, 스테인리스 보울을 거꾸로 뒤집어서 반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 이걸로 뭘 해요?”

아첨이 무시당한 멸치는 좌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강운종의 곁에 달라붙어서 살랑거리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운종은 조금, 아주 조금 기분이 상했다.

‘그냥 그때그때 제일 있어 보이는 사람한테 달라붙는 거야.’

소년원 그 좁은 방 안에서는 강운종 자신이 제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지금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당장 변한 멸치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내가 또 잘나가면 다시 와서 살랑거리겠지.’

그러면 보기 좋게 엉덩이를 걷어차 줘야지, 하고 운종은 가슴 속 깊이 다짐했다.

‘진정한 사나이라면 상황이 좋지 않을 때도 계속 옆에 있어 줘야 하는 법이야. 자기 좋을 때만 옆에 있으면 그걸 어디 남자라고 할 수 있나.’

“자, 이제 이 반죽을 거꾸로 뒤집어서 펀치를 하는 거야.”

“펀치를 친다고요?”

“이걸?”

진혁이 피식 웃었다.

“가운데부터 시작해서 가장자리까지, 손으로 꾹꾹 눌러.”

맨손 끝에 와닿는 감촉은 아까와 비슷했다.

하지만 조금 더 다르다.

말랑말랑하고 차가운데, 약간 더 들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몰랑거리는 반죽을 양손으로 꾹꾹 누르니 강운종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뭐, 저렇게 살랑거리는 아첨쟁이가 날 따라다녀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어. 오히려 저렇게 진중하지 못한 애가 하나 있으면 나처럼 말수가 없고 믿음직한 부하는 더 눈에 들어올 거야.’

반죽을 만지작거리자 기분이 좋아졌다. 운종은 신나게 반죽을 마저 눌렀다.

“원래 식빵처럼 단순한 종류의 빵은 이런 식으로 가스 빼는 작업을 하지 않아도 좋아. 그런데 충분히 발효를 시켰기 때문에 이렇게 진행하는 거고.”

“가스를 빼면 뭐가 좋아요?”

진혁은 글루텐과 그 원리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반죽이 부풀며 탄력이 줄어 약해진 글루텐 막을 다시 강화시키기 위해서 가스를 뺀다.

반죽 내의 글루텐 구조가 다시 조밀해지고 탄탄해지면서 다시 안쪽의 이스트가 더 활발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다.

진혁은 나름 풀어서 설명한다고 했는데, 애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멀뚱멀뚱 올려다보는 돌머리 세 사람을 바라보면서 진혁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반죽 안에 커다란 공기 방울이 한두 개 있는 게 아니고 작은 공기 방울이 많이 들어가게 돼. 그러면 결이 촘촘한 식빵이 돼.”

“오!”

“오오오.”

너구리와 멸치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소리를 내는 동안 강운종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이해한 거지?’

운종이 신나게 주먹으로 반죽을 짓이기자 진혁이 입을 열었다.

“거기, 그렇게 하면 안 돼.”

“네?”

“여기서 펀치는 주먹으로 치는 동작이 아니고, 손바닥을 전부 사용해서 반죽을 누르면서 가스를 빼는 거야. 세게 치면 안쪽의 글루텐 구조가 무너져 버려서 빵이 부풀어 오르는 모양이 바뀌어 버리거든.”

“어어어어.”

강운종이 실망하자 진혁이 피식 웃었다.

“일단 이대로 하면 돼.”

운종이 찢어진 반죽을 수습하는 동안, 진혁은 반죽을 접어서 가스를 빼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왼쪽에서 1/3, 오른쪽에서 1/3, 위쪽에서 1/3씩 반죽을 접어가면서 다시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만드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발효기에 넣는 거야.”

“또요?!”

이제는 오븐에 넣어서 빵을 구울 줄 알았던 애들이 실망스러운 소리를 냈다.

“30분만 발효하면 돼. 그동안에는 앞으로 공부를 어떻게 할지 같이 스케줄을 짤 거야.”

운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한 강운종은 나름대로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다.

‘최소한 저 두 명보다는 낫겠지.’

그리고 아까처럼 죽어라 달리는 것보다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다른 두 사람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지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과제빵 이론 공부도 좀 하고. 너희가 최소한 글루텐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예에에.”

앞치마를 벗고, 다시 손을 씻는다. 이 새 선생님은 위생을 매우 중시했다.

“이론 교육실은 이쪽이야.”

“예.”

새로 받은 시간표는 소년원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새벽과 점심, 저녁 시간대 중간중간에 잡혀 있는 운동 시간을 보고 멸치가 말했다.

“뭐가 엄청 많네요.”

몇 주에 걸친 계획을 봐도, 낯선 빵 이름이 가득할 뿐이다.

바게트 만드는 방법에서부터 치즈 케이크를 굽는 방법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배울 것이 많았다.

제과제빵 자체만 해도 배울 것이 산더미 같은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심지어 오븐, 발효기나 냉각기 등을 관리하는 방법과 세척하는 방법 역시 일일이 배워야 했다.

“소년원 제과제빵반에서는 이렇게 안 배웠는데.”

거기에 손님을 접대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운종은 그 중간 중간에 끼어있는 ‘체력’ 시간에 더 관심을 두었다.

“체력 시간에는 뭘 해요? 축구?”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축구를 하기에는 사람 수가 너무 적고, 체력을 증진시키는 운동을 할 거야. 오전 시간에는 달리기를 하고 오후에는 근력 운동, 자기 전에는 다시 달리기.”

멸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까처럼요?”

정말로 심장이 멈출 것처럼 뛰었다. 그런 식으로 매일 달릴 거라고 생각하니까 아찔했다.

멸치가 떨떠름해 하는데 진혁이 웃었다.

“그렇지. 건강해야 제과제빵도 오래 하는 법이야.”

삐빅, 삐빅.

스케줄 안내만 받았는데도 30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발효기가 내는 알람 소리를 듣고서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손 씻고.”

진혁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주방으로 들어가려는 소년들을 제지했다.

“네에.”

발효기에서 다시 나온 반죽은, 아까처럼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모양이 조금 달랐다.

“이제 이 덩어리가 식빵 두 개가 될 거야.”

“네에.”

“그런데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크면 구매하는 손님 입장에서는 화가 나겠지?”

“그거야 그렇죠.”

“그래서 똑같이 나눠야 해.”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반죽을 반으로 나누었다.

뚝 갈라서 나누고 그걸로 끝이다.

너구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제빵 반에서는 저울로 재면서 나누던데요? 계량해서 반죽을 더하거나 붙이면서 조절하고.”

진혁이 멈칫했다.

“이거 안 보여?”

“뭐가 보여요?”

“이렇게 여기를 자르면 똑같은 무게가 되잖아.”

세 소년이 눈알을 굴리며 대답했다.

“…네, 안 보여요.”

너구리가 씩씩하게 물었다.

“이 저울 쓰면 돼요?”

“그래, 위에 다시 닦고.”

어찌어찌해서 반죽을 반씩 나눈 다음에 다시 다듬고 성형까지 하는데 또 한참 시간이 걸렸다.

“이대로 그냥 굽는 게 아니라니.”

운종이 중얼거리자 옆에서 너구리가 킥킥 웃었다.

“다 이렇게 해.”

“그래?”

하지만 반죽 성형을 다 끝내고 또다시 발효기에 넣어야 한다고 하자 운종은 기가 막혔다.

“아니, 하다못해 밥 지을 때도 그냥 쌀하고 물 넣고 안치면 되는데. 뭘 또 발효를 해야 된다는 거야?”

조그만 목소리로 투덜거리자, 귀신같이 알아들은 진혁이 짧게 대답했다.

“이번이 마지막 발효야.”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지.”

주먹만 한 반죽 두 덩어리가 식빵 틀 양쪽에 얌전히 앉아 있다.

“이게 부풀만한 공간을 줘야 해.”

세 번째 발효에서는 다시 60분이 지나야 한다. 초조해진 강운종이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자꾸 중간에 실수를 하고 있다.

이번 빵을 빨리 만들어 해치워 버리고 다음 빵을 만들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반죽을 주무르며 안정되었던 기분은 다시 발효를 기다리며 초조해졌다.

“그러면 기다리는 동안 저기 가서 이거 좀 읽고 있어.”

임진혁은 옆에서 다른 작업을 시작했다.

따로 주문받은 케이크의 데코레이션 작업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