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2화
저쪽에서 카메라 때문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작업은 순조로웠다. 그는 공기층이 많이 들어간 흰 식빵이 크림을 흡수해 눅눅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팬케이크 반죽을 사용해 팬케이크를 구워낸 것이다. 씹히는 맛이 다르니 일부러 반죽을 얇게 펴 발랐다. 이제 그 위에 연어 타르타르를 올리고, 다시 팬케이크를 올리고, 또다시 연어 타르타르를 바른다. 카메라 때문에 생겼던 소란이 멈추고 나서 담당 작가가 다가왔다.
“이번에는 발효 시간이 30분이잖아요? 그 시간 중에 중간 인터뷰하기로 했는데, 아예 발효가 필요 없는 빵을 선택하셨네요.”
“예.”
“그럼 전체 만들기가 다 끝난 다음에 인터뷰하시도록 조정해 드릴까요?”
“…… 그럼 완전히 완성되고 난 후 인터뷰를 30분간 진행하고 나서 심사가 진행되지요?”
“네.”
“가능하면 지금 해도 될까요? 이게 만들고 바로 먹어야 맛있는 종류라서요.”
“지금 바로 손 떼고 중간 인터뷰 진행하시는 거로, 어떠세요?”
“알겠습니다.”
담당 작가가 메인 피디에게 이야기하고 온 후 바로 중간 인터뷰를 시작했다.
“친부모와 처음 만나서 먹은 게 연어였어요. 미국에서 자란 아들 입맛이 미국식일 거라며 일부러 양식 레스토랑에 갔거든요. 친어머니는 거기서 처음 먹어보는 훈제 연어 샐러드가 맛있다고 하면서 안심하셨어요. 낯선 땅에서 뭘 먹고 사는지 걱정하셨는데, 이런 걸 먹고 자랐으면 다행이네 하고 눈물을 보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연어를 선택하셨습니까?“”
“네. 양어머니는 아보카도를 매일 아침 갈아서 드시거든요. 두 분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연어와 아보카도를 베이스로 해서 케이크 위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부모님과 친부모님 둘 다 계시지 않았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테니까요, 네 분이 텔레비전을 보고 저를 자랑스러워 하시는 만큼 제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만들 겁니다.”
“다른 분들과 달리 샌드위치용 식빵이 아닌 팬케이크를 만들고 계신데요, 그 이유가 뭘까요?”
“장식에 시간을 많이 쏟기 위해서, 일부러 발효가 필요 없는 빵을 골랐습니다.”
“제일 유력한 우승 후보는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이희주 사회자가 던진 질문에 브라이언이 피식 웃었다.
“저…… 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지만, 저도 상대하기 쉬운 사람은 아니니까요.”
“자신이 아니고 누군가가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면요?”
“임진혁 쉐프…… 일까요?”
“그건 또 뜻밖이네요?”
“임진혁 쉐프가 아니었으면 부모님을 찾지 못했을 테니까요.”
“임 쉐프의 실력이 우승할 만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없었다면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브라이언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제가 있는 이상 그건 어려울 겁니다.”
브라이언 다음에 중간 인터뷰를 하게 된 사람은 유키코였다. 이희주가 웃으며 물었다.
“여기 이 크림에서는 얼그레이 향이 나는데, 어떤 걸 만들고 계신 건가요?”
“홍차 잎과 달걀노른자, 홍차 리큐르 등 재료를 섞어서 직접 만든 얼그레이 커스터드 크림이에요. 어떤 케이크 위치가 될지는 조금 후에 아시게 될 겁니다.”
“오렌지를 작게 잘라서 계속 삶으시던데, 어째서 그렇게 하셨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장식용 오렌지 콩피입니다. 콩피는 설탕에 졸인 오렌지 껍질을 말하는데, 오렌지 껍질에서 쓴맛이 빠질 때까지 서너 차례는 삶아줘야 해서 그래요.”
“껍질만 있는 게 아니라 과육도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맞아요. 과육이 어느 정도 있어야 먹을 때 씹는 맛이 더 납니다.”
이희주가 얼그레이 커스터드 크림을 살피며 물었다.
“홍차는 개인 취향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 같은 경우가 좀 더 무난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굳이 얼그레이로 고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얼그레이는 베르가못 향이 진해서 꽃향기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취향을 타던데요. ”
“그이가 나를 보고 있으니까요.”
유키코가 꽃처럼 눈부시게 웃었다.
“그는 청혼할 때 제게 얼그레이 케이크를 만들어 주었어요. 이 얼그레이 케이크 위치는 그 케이크를 샌드위치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거예요.”
“지금 저희 텔레비전 쇼에서 프러포즈 하시겠다고 선언하시는 건가요?”
“…….”
유키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그이가 근육이 약해져서 재활운동을 하는 중이거든요.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내 앞길을 막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해요. 추억의 얼그레이 케이크 위치를 통해서 그런 일 때문에 제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고 싶습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고마워요.”
세 번째로 인터뷰를 한 사람은 루이스 강이었다. 그는 미니 크루아상과 식빵, 두 종류의 반죽을 만들어 발효시키고 있었다. 오른쪽에 쌓여 있는 버터와 풋콩, 옥수수와 명란젓, 으깬 감자와 마요네즈가 눈에 띈다. 이희주의 시선이 명란젓에 잠시 멈추는데 루이스는 신경 쓰지 않고 요리에 대해서만 간단히 설명했다.
“그리스 정교회에서 사순절의 첫 번째 월요일 금식기간에 먹는 타라마살라타(ταραμοσαλ?τα)라는 에피타이저가 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그리스가 원조라고 하고 터키에서는 터키가 원조라고 하는 음식입니다. 프랑스에서도 꽤 자주 먹는 요리입니다. 제가 파리에서 즐겨 먹던 타라마살라타는 올리브유와 소금, 레몬주스와 오이, 토마토를 사용한 레시피였는데 그게 아주 맛있었어요. 그래서 그 레시피를 개량해 샌드위치로 만들었습니다.”
풋콩이나 옥수수, 감자나 버터 따위는 당연히 샌드위치에 흔히 들어가는 재료지만 명란젓은 독특해서 눈에 띄었다. 원래 하려던 질문이 있었지만,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이희주가 먼저 그 질문부터 했다.
“그리스에서도 명란젓을 먹어요?”
“정확히는 생선의 알과 내장을 먹습니다. 타라마가 생선 알, 살라타가 샐러드지요. 보통 대구나 잉어, 숭어의 알과 내장을 씁니다.”
“그래서 명란젓을 대신 가져오셨군요.”
“날치알은 톡톡 터지는 맛이 있지만, 여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철갑상어 알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제가 구상하는 샐러드에는 명란이 딱입니다.”
“상상이 안 가는데요, 빵 안에 명란젓과 감자, 옥수수가 들어가 있는 겁니까? 막도 씹히고 좀 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군요.”
“맛보면 놀라실 겁니다.”
“예, 기대해 보겠습니다.”
마지막 인터뷰 대상은 임진혁 쉐프다.
‘그 임진혁 쉐프가 과연 이번에는 뭘 준비했을까?’
이희주 사회자를 따라서 카메라가 움직였다.
이번 대본에는 임진혁 쉐프의 케이크에 대한 리액션이 중요하다는 언급이 있었다.
저 선량하고 멀쩡한 젊은 청년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기괴하고 기이한 케이크를 만들어내니 이번에는 또 어떤 기괴한 모양을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시청한다는 사람도 조금 있다고 한다. 이희주는 놀랄 준비를 하고 말을 걸었다.
“임진혁 쉐프님, 지금 준비하고 계신 건 어떤 컨셉이십니까? 이번에는 밀실 살인 사건 같은 걸 재현하신 건 아니겠죠?”
“케이크로 밀실 살인 사건을 재현하면 재미있기는 하겠군요.”
진혁이 살포시 웃었다. 그는 이전에 밀실 살인 사건을 본 적이 있었다.
교내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 장로의 사건이었는데, 자살로 위장했지만 실은 그 심복이 복수를 위해 죽여 버린 것이다.
인간이 몸을 빼낼 수 없을 정도로 조그마한 동그란 창 말고는 완전히 닫혀 있는 곳이었다. 진혁은 심복 놈이 축골신공을 익혔다는 것을 밝혀내 범인을 찾았다.
방과 가구, 닫힌 공간과 그 안에 있는 시체를 맛있게 재현하는 것은 새롭고 재미난 도전일 것이다.
“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이희주가 웃으며 물었다. 진혁은 굳이 진담이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만들 것은 크레송과 샬롯으로 장식한 2단 화이트 케이크 위치입니다.”
“크레송이요?”
생소한 채소 이름을 듣고 이희주가 반문하자 진혁이 설명해 주었다.
“크레송은 프랑스어 이름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물냉이라고 합니다. 양갓냉이나 물겨자, 후추 풀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자라서 물냉이라고 부릅니다.”
“크레송이 호러 영화 제목이 아닌가 생각했네요. 외국어로 <강시>나 <유령> 같은 걸 뜻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그럴 리가요. 평범한 채소입니다.”
“샌드위치에 고기가 들어가나요? 이건 채끝살 같은데.”
“잘 보셨군요. 채끝살과 미니 양배추, 당근을 넣어서 로스트비프를 만들 겁니다.”
로스트비프는 영미권에서 대단히 흔한 음식으로, ‘오븐에 구운 고기’를 뜻한다. 안심이나 우둔살, 척아이 롤, 등심 등 어느 부위를 사용해도 된다.
보통은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이는 경우가 많고 구운 채소나 요크셔 푸딩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샌드위치로 먹기도 한다.
진혁은 재료창고에 있는 고기 중 이 채끝살이 제일 맛좋게 숙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메뉴를 로스트비프로 정했다.
“빵 사이에 끼운 로스트비프라, 맛이 없을 수가 없겠군요.”
이희주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고기 굽기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약간 핏기가 남아있는 정도로, 부드럽게 익힐 겁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겠군요.”
으깬 감자에 생크림과 우유로 농도를 조절한 것이나, 간장에 충분히 절인 양파를 볶은 것 등, 곁들임 음식들 역시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이희주가 아쉬워했다.
“꼭 샌드위치로 먹지 않아도 그냥 고기로 먹어도 맛있을 것 같은데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진혁이 빙긋 웃었다. 그는 달걀노른자와 그래뉴당에 질 좋은 리코타 치즈를 넣어 부었다. 2층에 올라갈 두유 크림과 어울릴 담백할 치즈 크림을 새로 만들려는 참이다.
“이렇게 먹어야 더 맛있는 음식이니까요. 결과를 기대하시죠.”
“이야, 그렇게 말씀하신다니 이 이희주가 기쁜 마음으로 기대해보겠습니다.”
◈ ◈ ◈
쉐프들이 중간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더 이상 카메라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김선호 PD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카운트다운이 계속되면서 쉐프들은 각자 조리대 앞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제한 시간이 되었다.
“이제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5! 4! 3! 2!”
“1!”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로 1을 외치고 나서, 쉐프들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조리대 뒤쪽으로 물러났다. 스텔라 위스커스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는 격려의 말 한마디도 없이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했다.
『미리 들으셨지요? 이번에는 저희가 심사하기 전에, 일반인 방청객 여러분께서 먼저 심사를 해주십니다』
이희주가 바로 연이어 말했다.
“네 분의 쉐프님들은 자신이 만든 케이크 위치를 가지고 앞으로 나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