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18화 (118/124)

< 은은하게 퍼지는 콧노래 >

황찬규와 아이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다 진짜 예쁘지 않냐? 실물이 진짜 미쳤어!”

“정아 누나도 되게 귀여웠어!”

“그리고 엄청 착해! 카메라 없는 곳에서도 똑같았어! 그리고 아까 별이 누나는-“

오늘이 너무 꿈같아서, 그리고 내일이 너무 기대돼서.

아이들은 쉽사리 눈을 붙일 수 없었다.

황찬규 또한 천장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꼬리가 내려갈 줄을 몰랐다.

‘정아 누나 진짜 예뻤어.’

내일은 드디어 무대를 볼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무대를.

“설마 우리한테 올 줄은 몰랐는데···.”

“진짜 왔어. 이거 꿈 아니지?”

황찬규와 아이들은 그렇게 한참을 떠들고 나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항상 보던 보육원 앞마당에 무대가 만들어졌다.

악기들과 마이크, 스피커, 그리고 연주자들과 가수.

황찬규와 아이들은 활짝 웃는 얼굴로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첫 무대는 뭘까?’, ‘어떤 곡들을 부를까?’ 기대하면서.

마이크 앞에 처음 선 사람은 구서연이었다.

“짜잔! 첫 무대는 나야!”

“와아아! 누나!”

“통기타 들고 있어! ‘우리’ 부르는 거 맞죠!?”

서연의 표정과 아이들의 표정이 같아졌다.

그녀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진다.

“맞아. ‘우리’ 부를 거야.”

포근한 어쿠스틱 곡이었다.

그러나 분명 편하게 듣는 곡일진대, 이 무대를 보는 아이들은 흥분이 주체가 안 됐다.

틈만 나면 함성을 내지르고, 열광하기 바빴다.

물론 이런 잔잔한 곡만 한 건 아니었다.

구서연의 데뷔곡이자, 기타 솔로로 엄청나게 유명해진 곡, ‘Escape’.

서연은 통기타 대신 일렉 기타를 들었다.

그 유명한 기타 루프를 코앞에서 보고 듣는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다음 무대에 올라온 가수는 이유진.

그녀의 곡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데뷔곡인데 빌보드 차트에서 대성공을 거둔 곡, ‘I Am Addicted’.

“와아아아!”

“우와···! 와아!”

“헐!”

실제로 눈앞에서 본 이유진의 댄스는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턱이 쩍 벌어졌다.

다음은 김별의 무대였다.

아이들은 그녀의 모든 곡들을 사랑했다.

헤비메탈, 트로트, 힙합, 드라마 OST, 데뷔곡 ‘So Happy’와 후속곡 ‘Hang Out’, 그리고 정규앨범.

곡이 너무 많아서 이 모든 곡들을 다 들을 순 없었지만,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모두 하나같이 경이롭고 황홀했다.

‘이제 정아 누나 차롄가?’

아직 안 나온 멤버는 유정아 한 명.

황찬규의 시선이 그녀를 쫓았고, 유정아는 핸드 마이크를 들고 무대 중앙에 섰다.

“내가 낸 곡은 하나밖에 없어. ‘Face’. 알지?”

“네에!”

“페이스!”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유정아는 더 이상 자신들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어조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인지 다른 멤버들보다 상냥하진 않았으나, 자신들을 바라보는 표정과 눈빛에서는 꿀이 떨어지는 듯했다.

“지금까지 중에 제일 크게 환호해줘야 돼. 알겠지?”

“와아아아!”

“꺄아아아!”

열띤 함성을 듣고는 싱긋 미소를 짓는 유정아.

무대는 바로 시작됐다.

밴드에 맞춰, 핸드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꿈에 그리던 장면이 바로 지금 이 순간 펼쳐지고 있으니, 깊숙한 곳에서 감정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황찬규는 이런 감정을 꾹꾹 억눌렀다.

울면 함성을 못 지르니까.

찬규와 아이들은 그녀의 부탁대로 목이 찢어져라 함성을 내질렀다.

그동안 유정아와 몇 번이고 눈을 마주쳤다.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커다랗게 눈을 뜬 자신과는 달리, 그녀는 시작부터 끝까지 부드러운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밴드 연주에 맞춰서, 춤까지 추며 하는 생라이브.

그녀들의 실력이 좋다는 건 이미 전세계가 알고 있었으나, 아예 도장까지 찍어버리는 모양새였다.

라이브가 미쳤다.

생라이브인데도 실망스럽거나 불안하기는커녕, 팬심이 더욱 짙어져만 간다.

그렇게 그녀의 무대가 끝났고.

그제야 황찬규는 왈칵 울음을 터뜨릴 수 있었다.

“무대가 그렇게 좋았어? 나 잘하지?”

피식 웃으며 하는 유정아의 말에, 울음을 터뜨리고 있던 찬규의 입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너무 좋아요!”

“그래,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좋아해줘.”

찬규는 목이 끊어질 듯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

이어지는 아일랜드의 무대.

유정아는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무대를 꾸몄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무대들을 통틀어봐도 가장 규모가 작은 무대였다.

하지만 가슴은 뻐근할 정도로 뿌듯함이 가득 차올랐다.

‘나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구나.’

평소에 팬들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아이들이 내비치고 있는 행복한 표정이 계속 자신을 자극한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모두 아이들 덕분이었다.

아일랜드의 타이틀 곡을 시작으로, 미니 앨범의 4곡을 모두 마쳤다.

악기가 연주를 멈추고, 노래도 멈췄다.

아이들의 얼굴 위로 아쉬움과 기쁨이 동시에 떠올랐다.

하지만 자신을 포함한 출연진들과 스탭들의 얼굴에선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직 남아 있는 특별 무대가 하나 있었으니까.

유정아는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아쉬워?”

아이들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씩 대답하기 시작했다.

“네! 아쉬워요!”

“아니에요! 너무 좋았어요!”

“언니! 당연히 저도 좋았죠!”

“이럴 땐 그냥 좋았다고 하는 거야. 다 끝났잖아.”

귀여운 반응에 출연진들과 스탭들 사이로 잔잔한 웃음이 흘렀다.

유정아는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안 아쉬우면 안 해야겠다.”

“···!”

“···네?”

“사실 하나 더 준비한 무대 있었는데···. 에이! 안 해야지. 안 아쉽다는데.”

“아, 아니에요! 아쉬워요! 엄청 아쉬워요!”

“아쉬워요! 죽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일어나다가 발이 꼬여 넘어지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구! 조심해야지! 괜찮아?”

앞으로 튀어나가, 아이를 일으켜주고 무릎을 털어주는 유정아.

아이는 창피한 지 얼굴이 시뻘게져서 말했다.

“하, 하나도 안 아파요! 넘어진 게 아니라 그냥 앉은 거예요!”

“뻥 치시네.”

“진짜예요!”

“거짓말인 거 다 티 나거든?”

정아는 혀를 차며 아이를 마저 살피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너희들 무서워서 장난도 못 치겠다. 한 곡 더 해줄 테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 다치지 말고. 알았어?”

“네!”

“네!”

정아는 곡에 대한 설명도 없이, 뒤를 흘끗 보며 신호를 보냈다.

구서연의 기타, 김석희의 피아노, 김성혁의 베이스, 이종락의 드럼.

잔잔한 반주가 흘렀다.

음악은 지금까지 나왔던 것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으나, 아이들의 집중력은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유정아의 입술이 벌어지며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 둘만 있으면, 우리가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해. 우리 둘만 있으면 하늘에 성을 짓는 것도 가능해.”

담담하게 툭 툭 뱉어내는 보컬.

그녀의 몸은 아주 살짝씩 흔들리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긴 머리칼이 휘날리고 있다.

그렇게 놀랄 만한 보컬 테크닉이 있지도 않고, 음악 또한 지금까지의 곡들에 비해 별로 화려하지 않았으나.

마치 그림 속에 들어온 듯,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묘한 공기가 흘렀다.

틈만 나면 열광하고 함성을 질렀던 아이들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뚫어져라 유정아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 소리 없이, 조용히, 지금 이 순간순간을 뇌리에 선명하게 새기듯이.

“수정 같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게 보여. 흘러가버린 물은 아주 약간일 뿐이야.”

아이들이 그렇듯, 유정아 또한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시선을 길게 마주쳤다.

지금 이 순간순간을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주듯이.

“우리는 이 물로 아름다운 무지개를 피우자. 아주 쉬울 거야.”

진심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다만 울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유정아는 아이들에게 동정하는 눈빛을 보내지 않았다.

보컬처럼, 담담한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우린 뭐든지 할 수 있어.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에 못 할 것은 없어.

유정아가 아이들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였다.

“흘러가버린 물들은 보내줘야지. 그 물로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좋은 것들은 기다리는 자에게 올 거야.”

지금까지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은 모두 떠나보내고, 좋은 것들을 가슴에 품자.

“우리는 이 물로 아름다운 무지개를 피우자. 아주 쉬울 거야.”

그럼 머리 위로 쏟아지던 비가 무지개가 되는 것처럼, 좋은 것들이 오게 될 테니.

“우리 둘만 있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유정아가 직접 개사한 ‘Just The Two Of Us’의 무대가 끝나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는 대신 박수를 보냈다.

진심이 전달된 걸까?

유정아는 말했다.

“원곡이 엄청 좋아. 찾아서 들어봐.”

구태여 개사한 가사를 설명하지 않았고, 이 곡을 들려준 이유를 입에 담지 않았다.

노래했으니 그걸로 됐다.

콘서트처럼 시작했던 ‘일도 잘하는 밴드’의 무대는.

그렇게 영화처럼 끝이 났다.

***

핸드폰 광고 촬영 현장.

오늘의 유정아는 아이돌 유정아가 아닌, 배우 유정아다웠다.

내가 익히 알고 있고, 대중들에게 익숙한 유정아의 모습이다.

단정하게 내려와 찰랑이는 머릿결, 고급스러움과 세련미를 강조하는 듯한 착장.

새하얀 세트 위에 투명한 단상 하나만 놓여 있을 뿐인데.

그 옆에 유정아가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는 프로페셔널하게 광고를 찍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나도 몰랐네. 정아한테 그런 면이 있을 줄이야.’

어제 방송된 ‘일도 잘하는 밴드’.

아이들을 생각하는 정아의 마음이 저 단상처럼 투명하게 방송됐다.

현장에 나와 있는 광고주는 아주 싱글벙글 좋아 죽으려 하고 있었다.

광고 촬영 전날 유정아의 이미지가 다시 한번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갔으니, 저렇게 좋아할 만도 하지.

방송이 끝나자마자 유튜브에 업로드된 유정아의 무대.

조회수는 굉장히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유정아는 어떻게 저러지? 저렇게 담담하게 노래하는데 왜 울컥하냐고ㅠㅠㅠㅠ

-와 진짜 유정아가 명배우이긴 한가 보다. 어떻게 저런 표정, 저런 눈빛, 저런 말투로 이렇게 감동을 주냐?

└그게 바로 명가수라는 증거!

-것보다 무대 지렸다. 배경도 스토리도 비주얼도 가수도 관객도 음악도 가사도 다 최고야···.

-유정아 재즈 미쳤네. 이런 차분하고 세련된 재즈 좋아하는데 다 제치고 보컬만 보더라도 유정아랑 되게 잘 어울리는 느낌.

-ㅋㅋㅋㅋㅋㅋ이 노래 안 그래도 명곡인데 커버곡 쏟아지겠다ㅋㅋㅋ 나도 계속 흥얼거림ㅋㅋ

-이 언니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었어??? 대체 매력의 끝이 어디인가요????

-노래가 너무 차분해서 계속 들어도 안 질리는 매력이 있음. 이 영상 비 올 때마다 들어야겠다.

사람들이 정아에게 또 다시 홀려버렸다.

그녀의 새로운 면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정아가 이런 모습을 거짓으로 꾸며낼 리가 없다는 건 대중들이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멋진 장면의 탄생에 그저 뜨거운 환호만을 보내고 있었다.

광고 촬영 중 쉬는 시간.

그녀는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빙그레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맞이해줬다.

“잘하네. 좋았어.”

“응.”

“정아야. 댓글 좀 볼래? 어제 방송 반응 되게 좋은데.”

“됐어. 안 봐.”

난 그녀를 오랜 기간 봐왔다.

그렇기에 그녀가 이렇게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민망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대중들의 반응을 보며 흐뭇해하고 싶지 않은 걸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그래.”

그런데 그 무대를 콘서트에서 해, 말아?

이제 곧 시작될 아일랜드의 국내 콘서트 투어.

팬들은 그 무대를 해주길 바라겠지만, 과연 정아가 그걸 원할까?

감독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 정아.

난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을 굳혔다.

‘원하지 않겠지.’

굳이 그녀의 의견을 묻지 않기로 했다.

“오빠.”

감독과 얘기를 마치고 다가온 정아가 말했다.

“나 투어에서 그 노래 해도 되지?”

“뭐?”

“’Just The Two Of Us’.”

“···너 댓글 안 보겠다고 한 이유가-”

“그거랑 무대는 다르지. 왜 그래? 아마추어처럼.”

헛웃음이 터졌다.

어쩐지 익숙함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지금 착장과 비주얼도 그렇고, 드디어 내가 알고 있던 정아가 나타난 느낌.

난 미간을 좁히고 있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라.”

정아 솔로 무대 레퍼토리 늘고 좋지 뭐.

팬들도 엄청 좋아하겠다.

그렇게 잠시 대화가 끊겼을 때.

희미한 허밍 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흐음~”

그녀가 방송에서 부른 ‘Just The Two Of Us’.

콧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은은하게 퍼지는 콧노래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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