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117화 (117/124)

< Just The Two Of Us >

‘일도 잘하는 밴드’의 황종윤 피디.

그는 김별과 구서연이 걸그룹으로 변신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에 대소를 터뜨렸다.

“역시 둘을 섭외한 건 신의 한 수였다니까!”

마치 스타를 발굴한 것 같은 어조에, 메인 작가 김연희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미 그때도 스타였어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될 줄 누가 알았어?”

“그리고 김석희 씨가 추천한 거잖아요.”

“···.”

종편 HTBC 예능국의 사무실.

적당히 들뜨고 적당히 좋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쩝, 입맛을 다시던 황종윤 피디가 벨소리를 울려대는 핸드폰에 눈길을 줬다.

그리고 눈매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네! 정실장님!”

WE엔터의 정실장.

그가 건 전화를 받고 있던 황종윤 피디의 입에서 돌연 커다란 목소리가 터졌다.

쩌렁쩌렁 사무실을 울려대는 목소리.

“당연히 되죠! 가능합니다! 예!”

이렇게 요란을 떨고 있으니,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

모두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어렸다.

WE엔터의 정실장, 그리고 기쁨을 격하게 토해내는 황종윤 피디의 목소리.

무조건 희소식이었다.

그들은 모두 한 가지 경우를 예상했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전화를 끊은 황종윤 피디가 두 팔을 하늘 높이 뻗으며 외쳤다.

“아일랜드 다 나온다!”

“···!”

“진짜요!?”

“대박!”

아일랜드의 전 멤버 출연.

기대할 수 있는 희소식 중에 가장 큰 희소식이었다.

***

희망찬 보육원.

오늘 간다는 보육원의 이름이었다.

유정아는 혀로 마른 입술을 쓸었고,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긴장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보이는 모습.

출연진들과 함께 타고 있는 버스 안.

김석희가 이런 유정아를 보며 물었다.

“정아 씨, 왜 이렇게 긴장하세요? 떨리세요?”

“···애들을 대하는 게 좀 서툴러서요.”

TV로 멀리서 볼 때와 실제로 받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그걸 알기에, 유정아는 더욱 걱정이 됐다.

자신이 평소처럼 하면 애들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평소처럼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연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심으로 상냥하게 대하는 걸 상상해봤더니 그 또한 자신에겐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때문에 유정아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에이! 애들도 다 좋아할 거예요. 정아 씨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김석희의 말을 황종윤 피디가 거들었다.

“맞아요, 정아 씨. 너무 걱정 마시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하시면 돼요. 우리가 온다는 걸 아이들은 모르고 있어요. 서프라이즈라는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 다 좋아해줄 거예요.”

“네.”

‘말은 쉽지.’

정아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른들을 대하는 건 이렇게나 간단한데.

“하아.”

유정아는 답답한 마음에 김유민에게 분노의 톡을 보냈다.

[뭐라도 말을 해봐. 보육원 가는 줄 알았으면 내가 출연을 안 했지. 그걸 왜 안 알려준 거야!!]

기다려봐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톡을 더욱 쏟아냈다.

[얼씨구? 보고 있는 거 뻔히 알아. 바쁜 척하지 마.]

[자꾸 이럴 거야? 어? 쓴맛을 본 지 좀 오래 되긴 했나 봐? 하긴 내가 요즘 너무 착했어. 어울리지 않게.]

[와! 이래도 씹는다고? 좋아. 한 번 해보자고. 기대해도 좋을 거야.]

“···.”

진짜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한숨은 쌓여만 갔고, 버스 또한 부지런히 움직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보육원.

‘···될 대로 되라지.’

유정아는 체념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

희망찬 보육원의 황찬규.

올해로 10살이 된 그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오늘 뭔가 이상해.”

황찬규의 눈치는 남들보다 더 비상한 면이 있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다들 이런 황찬규의 비상함을 알고 있었기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모두가 알 수밖에 없었으니, 더욱 그의 입에 시선이 모였다.

“오늘 뭔가 있어. 오늘 영진 쌤 쉬는 날인데도 나오고, 원장님도 쌤들도 다 엄청 꾸미고, 청소도 되게 깔끔하게 시키잖아.”

“맞아. 진짜 이상해. 원장님은 내가 본 것 중에 오늘 제일 열심히 꾸몄어.”

“오늘 토요일인데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고. 뭔가 이상하다니까?”

“대체 뭘까?”

그렇게 한창 대화를 나누며 의문을 키우고 있을 때.

보육원 앞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 나가보자!”

황찬규가 말과 함께 튀어나갔고, 다들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들은 발견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린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방송국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리고.

“유, 유정아다!”

“김별! 구서연! 이유진도 있어!”

“아일랜드다!”

“우, 우와! 일도 잘하는 밴드! 이번엔 우리한테 왔나 봐!”

폭탄이 터진 것 같은 반응이었다.

연예인으로는 김석희, 이종락, 김성혁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아일랜드, 그녀들의 얼굴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아일랜드는 이 보육원 안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가장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다들 최애가 있기 마련.

올해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황찬규의 최애는 유정아였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고, 그녀의 음악과 무대를 좋아했다.

그리고 거침없고 당당하게 행동하면서도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황찬규의 다리는 뚜벅뚜벅 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정아를 향해 직선으로 움직이는 발걸음.

눈이 마주쳤다.

‘당황하네?’

유정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황찬규는 마침내 그녀의 앞에 섰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누나, 진짜 팬이에요.”

“···고마워.”

어쩔 줄을 몰라하는 유정아.

황찬규는 비상한 눈치로 확신할 수 있었다.

되게 조심스러워하고 있고, 톡 건들면 깨질새라 눈치를 보고 있다.

자신들이 보육원 아이들이라 그런가 보다.

평소에 알던 유정아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무척이나 포근하게 다가왔다.

“누나 되게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아요.”

“어?”

“진짜 팬이에요.”

황찬규의 얼굴에 따사로운 미소가 번졌다.

***

“하고 싶은 노래 있어?”

함께 일을 하며 가까워진 김석희가 편하게 물었다.

유정아는 곧장 대답했다.

“네. 있어요.”

아까부터 이런 말이 몇 번이고 귀에 들어왔었다.

‘미리 보는 아일랜드 콘서트’라고.

각자 사랑받는 개인 곡들이 있고, 단체 곡도 있으니, 곡 걱정 없이 그저 하던 대로 공연만 하면 된다는 거다.

보육원 아이들도 다 그걸 바라고 있을 거라면서.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어.’

다들 자신들의 곡을 하는 걸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하던 무대를 그대로 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유정아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황찬규. 그 아이의 미소가 눈앞에서 계속 아른거렸다.

다른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 또한 잊혀지지 않았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어둡지 않고 밝다. 애들은 애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그 아이들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희망을 주고 자신감을 주는 것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만 있다면 그건 분명히 좋은 노래다.

다만 자신의 성격이 꼬였기 때문일까.

자신이 만약 저 입장이 됐다고 상상해보자면, 대놓고 희망찬 노래는 듣기가 너무 싫을 것 같았다.

보육원 이름도 ‘희망찬 보육원’이다. 자신이라면 왠지 아니꼽고 지겨울 것이다.

뭘 안다고.

“’Just The Two Of Us’요. 그런데 조금 개사하고 싶어요. 한국어로 조금 바꾸기도 하면서.”

원래는 사랑 노래다.

연인과의 이별 후,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하는 곡이다.

하지만 이 곡에는 이런 가사가 있었다.

Just the two of us.

우리 둘만 있으면.

We can make it if we try.

우리가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해.

Just the two of us.

우리 둘만 있으면.

Building castles in the sky.

하늘에 성을 짓는 것도 가능해.

Wasted water's all that is.

흘러가버린 물들은 보내줘야지.

And it don't make no flowers grow.

그 물로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Good things might come to those who wait.

좋은 것들은 기다리는 자에게 올 거야.

“개사를 하고 싶다고?”

“네. 이 노래, 꼭 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유정아는 난생 처음으로 곡 작업이라는 것에 관여하고자 했다.

비록 정식으로 발매하는 곡도 아니며, 단 한 번의 무대일 뿐이었고.

거창하게 작곡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개사일 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놀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스스로 커다란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자신이 개사한 가사에 따라서 연주의 분위기가 살짝 달라질 수도 있고, 편곡을 고칠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진 모른다.

유정아는 그저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뿐이었다.

***

구서연과 김별, 이유진, 김석희, 이종락, 김성혁이 문자 그대로 머리를 맞댔다.

그들의 머리 아래에는 유정아가 가사를 쓴 종이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가사를 쓰는 동안,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며 얘기했었다.

그만큼 유정아의 표정과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과연 어떻게 개사하고 싶었기에 그런 눈빛을 했을까?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던 그 가사가 마침내 완성됐다.

작곡은 물론 작사에도 일가견이 있는 김석희는 명곡, ‘Just The Two Of Us’를 떠올리며 가사를 읽어내려갔다.

+

우리 둘만 있으면.

우리가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해.

우리 둘만 있으면.

하늘에 성을 짓는 것도 가능해.

흘러가버린 물들은 보내줘야지.

그 물로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좋은 것들은 기다리는 자에게 올 거야.

+

기존의 가사를 그대로 번역한 것도 있었다.

개사를 한다고 했음에도 이게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이 가사들이 이 곡을 선택한 핵심적인 이유라는 거겠지.

그리고 그 밑으로, 그녀가 직접 개사한 가사가 있었다.

+

우리 둘만 있으면.

우린 모든 걸 만들어낼 수 있어.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휴양지가 될 거야.

수정 같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게 보여.

흘러가버린 물은 아주 약간일 뿐이야.

우리는 이 물로 아름다운 무지개를 피우자.

아주 쉬울 거야.

우리 둘만 있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

“···.”

“···.”

“···.”

다들 말이 없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하고 싶다고 말한 건지, 어떤 마음으로 개사를 하겠다고 한 건지.

이들은 이 가사를 보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별거 아니에요. 그렇게 많이 만지지도 않았고.”

유정아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멋쩍어 하는 건지 부끄러워하는 건지 모르겠다.

김석희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잘했어. 우리 이걸로 공연하자.”

유정아가 진심을 담아, 난생 처음으로 가사에 관여한 곡.

그리고 재즈.

“편곡도 좀 손봐야 할 것 같아. 자, 이제 모여봐. 가사도 나왔으니까 한 번 맞춰보자.”

“네.”

아일랜드의 멤버들이 가진 곡들과 더불어.

아이들을 위한 하나의 특별한 무대가 확정된 순간이었다.

< Just The Two Of Us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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