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71화 (71/124)

< 노래가 미친듯이 구려. 와, 심각한데? >

즉흥연주란, 서로 연주를 통해 대화하며 호흡을 맞춰가는 것.

별이와 서연이는 잼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엔 조금 헤매는 듯 보였다.

서연이도 힘들어 했지만 그래도 키보드와 베이스, 드럼이 있으니 대충 맞춰갈 수 있었는데, 별이는 보컬이라 더 힘들어 했다.

즉석에서 보컬로 멜로디를 짜내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니까.

반면, 김석희와 김성혁, 이종락은 즉흥연주의 경험이 꽤 있는지 능숙해 보였다.

얼굴에 은은한 미소까지 띠며 마음껏 제 실력을 뽐낸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막 하는 것 같은데, 서로가 서로를 맞춰주고 있으니, 귀가 호강할 만한 음악이 실시간으로 탄생하는 모양새.

아마 지금 이 즉흥연주는 컨텐츠 2회에 그대로 나오겠지.

우리가 발매할 곡은 3회에 뮤비를 통해 나온다고 해도, 즉흥연주는 음원으로 내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이 연주도 어떻게 보면 뮤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장면보다 더 흥미롭고 좋은 장면이 어디 있다고.

서연이와 별이가 적응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단조롭고 간단한 멜로디를 만들어내며 받쳐주는 데 급급했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리드하기도 한다.

서연이도, 그리고 별이도.

조심스럽게 시도한 리드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훌륭하게 받쳐주니, 신이 난 모양인지 얼굴에 함박 미소가 지어졌다.

조금씩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서연이는 확 삘이 꽂혔는지.

페달을 밟더니 징징징- 하며 디스토션을 잔뜩 먹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숨을 쉬기는 하는지 입술을 깨물며 양손을 쉴 틈 없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오!”

“와!”

지켜보는 이들의 입에서뿐만 아니라, 연주하고 있는 그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현란한 연주를 보면 그럴 수밖에.

별이는 이를 받쳐주기 위해 얇고 높은 가성을 은은하게 내지르기도 했다.

이쯤 되니, 슬쩍 걱정이 일었다.

혹시 사람들이 우리의 정식 음원보다 이 합주를 더 좋아하게 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이상은 없을 것 같았다.

헤비 메탈 곡으로 활동할 것도 아니라서 뭐가 더 인기가 많든 상관없지.

뭐가 됐든 사람들이 좋아해 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귀족의 파티 같기도, 정겨운 시장통 같기도 한 즉흥 연주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마치 합의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스탭들 사이로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정작 연주를 한 그들의 얼굴에서도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게 묻어 있었다.

“어휴, 힘들어. 다들 왜 이렇게 잘해? 나 따라가다가 진짜 죽는 줄 알았잖아.”

“형, 저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손 떨리는 거 봐요.”

“이감독님, 우리 잠시 쉬었다 갈 수 있을까요?”

다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진이 빠져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고, 나는 서연이와 별이에게 다가가 물을 건네주며 말했다.

“왜 이렇게 잘해? 연습했어?”

“에이, 연습은요.”

자기도 잘했다는 걸 아는지 서연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겸양을 떨었다.

별이는 그저 하얀 이를 드러냈는데, 참 예쁘게도 웃는다.

“둘 다 너무 잘했어. 이제 곧 녹음 들어갈 테니까 거기서도 마음껏 실력발휘 해봐. 예열은 충분하지?”

그녀들에게 물었는데 대답을 한 건 이종락이었다.

“사장님, 사실 우리 일밴드가 너무 좋긴 한데 감질난 것도 좀 있었거든요? 와. 그런데 이번에 진짜 제대로 한풀이하는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해요.”

“저한테 감사할 게 뭐가 있어요. 곡을 만든 분은 따로 계신데요.”

“성혁이 형한테도 고맙고, 사장님한테도 감사하죠. 헤비 메탈을 한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흔쾌히 수락해 주시고, 거기다 이 컨텐츠 덕분에 제가 이분들이랑 이런 연주도 할 수 있게 된 거니까요. 저희를 직접 섭외하신 것도 사장님이잖아요.”

그냥 흥분되고 신이 난 김에 내뱉는 말 같았다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멋쩍게 웃기만 하자, 별이가 방금 전의 내 물음에 대답했다.

“예열은 충분한 것 같아요.”

자신감이 넘치는 듯, 눈동자 안에서 스파크가 팍팍 튀고 있었다.

방금 전의 즉흥연주를 보며 느낀 여운이 가시지 않은 걸까.

저 맑게 빛나는 눈빛과 마주하고 있자니, 가슴이 묵직해졌다.

“···별아.”

“네?”

“넌 대체 못하는 게 뭐야?”

그녀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말려 올라갔다.

“사장님, 저도 자신 있어요.”

“그래.”

“···!”

“농담이야, 서연아. 너도 못하는 게 뭐니?”

“···.”

서연이가 날 노려봤다.

얘는 이렇게 가끔 놀려주는 맛이 있다.

뿔이 난 표정이 너무 귀엽고 재밌어서.

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는데, 카메라는 어느새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이진국의 얼굴은 싱글벙글 그 자체. 내 당황하는 모습을 본 그가 큭큭, 웃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대단한 양반이네.’

***

서연이와 함께 일본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스케줄.

서연이와 나는 인터뷰를 위해 우리 회사의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기자가 올 터.

인터뷰의 주제는 대부분 일본 진출에 관한 거였다.

“사장님, 우리 거기에 며칠 있을지 진짜 몰라요? 대충이라도요.”

“모른다니까? 스케줄은 11개 잡혀 있긴 한데, 거기서 얼마나 더 추가될 지 몰라. 적당할 때 보고 빠질 거야. 그래도 아예 쭉 있는 건 아니야. ‘일도 잘하는 밴드’ 녹화도 있으니까 왔다 갔다 해야 돼.”

당분간 피곤하겠지만, 국내의 유일한 고정 스케줄이니 그건 웬만하면 하는 편이 좋다.

그런데 정 안 될 것 같으면 피디에게 말해 한 회 정도는 빠져야지.

그 정도는 괜찮을 거다.

“그래도 사장님이라면 대충 감이 올 거 아니에요.”

“글쎄? 유진이랑 정아 영화 촬영 끝나기 전엔 올 것 같은데.”

“뭐야, 얼마 안 있다 오네. 전 뭐 몇 달 있는 줄 알았죠. 하아. 그런데 일본어는 어떡하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데.”

“기본적인 것도 몰라? 곤방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뭐 이런 거.”

“그 정도는 알죠.”

“그럼 됐어. 일본어는 차근차근 공부하고, 차라리 일본 연예계에 대해서 공부하는 게 나을 거야. 뭔 말인지 알지? 국뽕은 세계 어느 나라에든 다 먹히는 거야. 분야에 따라 다르긴 한데, 아시아는 대체로 비슷해. 어? 해외의 스타가 그걸 안다고? 우리나라의 이 작품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뽕을 채워주는 거지. 어설프게 일본어 공부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더 잘 먹혀.”

“오! 그렇겠다. 그럼 가요계부터 살펴볼까요? 그리고 또 그거 알죠? 원래 너무 유명한 것만 아는 것보다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걸 좋아하는 게 더 잘 먹히는 거.”

“음?”

“아이! 그, 있잖아요! 숨은 명곡이나 숨은 원석 같은 거요. 노래가 너무 좋은데 안 뜬 경우나, 아니면 가수는 너무 실력이 좋은데 곡을 잘못 만난 경우들이요.”

의욕이 아주 넘치네. 그건 좋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아주 남아돌아? 그런 걸 찾는 게 쉬운 줄 알아? 어설픈 거 아무거나 막 내밀면 역효과 날지도 몰라.”

“누가 아무거나 막 내민대요? 좋은 거 찾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거 찾을 시간에 차라리 일본어를 더 익히겠···. 하암!”

말을 하다 말고 입이 쩍 벌어졌다.

어제 너무 늦게 잤더니 피로가 몰려온다.

서연이는 이런 날 보며 눈을 좁히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게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출근했어요. 어제 늦게까지 촬영했으면 그냥 푹 쉬시지.”

질문이 아까부터 대체 몇 갠지.

어째, 내가 기자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난 구기자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어제는 별이 뮤비 촬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됐고요.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트로트 때보다 좀 더 투자했거든요. 그리고 오늘 일찍 출근한 이유는 이 인터뷰가 끝나고 바로 퇴근을 하기 위해서죠.”

그녀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금 상황극 하는 거예요?”

“재미없어?”

“네. 진짜 많이 피곤하신 것 같아요.”

“···.”

“그래도 밥은 같이 먹고 가요. 아! 운전은 하지 마시고요. 그러다 사고 나요. 아무튼 큰 그림이 있었네. 아예 퇴근을 일찍 해버리는구나?”

다시 하품을 쩍, 쩍, 두 번쯤 더 했을 때 기자가 왔다.

우리는 인사를 길게 나눈 뒤에야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일본 진출.

이건 우리나라 팬들에게 알린다기보단, 일본 팬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이 더욱 컸다.

그들이 서연이의 일본 진출로 떠들면 서연이를 조금이나마 지켜봤던 이들도 관심을 기울일 거고, 이는 곧 약간이나마 화제가 된다는 뜻이니까.

***

호시노 하즈키는 기사를 보며 반색했다.

평소에 동경하던 구서연이 일본에 진출한다는 인터뷰.

호시노가 구서연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일본 내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AMAM’의 무대였다.

이제 막 한 곡을 낸 신인이 ‘AMAM’에 있는 많은 가수들을 이겨내고, 네티즌과 기자들로부터 ‘무관의 제왕’이라는 타이틀을 받았으니까.

신인이고 베테랑이고를 떠나, 그 정도의 무대를 한다는 건, 가수로서 충분히 동경할 만한 사유가 된다.

3인조 아이돌 그룹이 쫄딱 망해버린 뒤, 신생 회사에서 솔로 가수로 데뷔한 호시노 하즈키.

그녀는 구서연과 같이 저렇게 화려하게 데뷔하지 못했다.

실력도 있고 비주얼도 좋다는 평가가 많아서 일부의 관심을 끌긴 했으나.

문제는 곡과 컨셉.

난해하기도 했으며, 솔직히 자신이 보기에도 형편없었다.

호시노는 구서연의 팬이 된 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그녀에 대해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점점 팬심과 동경심이 급격히 커져갔다.

국가도 그렇고 가진 재능도 그렇고, 너무 먼 대상이라서 그런지 질투가 나기보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도 곡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쩌면 구서연처럼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구서연이 일본에 진출한다니.

“나랑 마주칠 일이 있을까?”

호시노도 완전히 망한 건 아니라서 방송이나 라디오 스케줄은 간간이 있긴 했다.

확률은 낮지만, 어쩌면 그녀를 마주칠 수 있겠다.

“진짜 만나면 어떻게 하지?”

고작 상상일 뿐인데, 호시노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

“서연아.”

“···.”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돌아보니, 역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일본으로 출국할 때부터 그러더니, 입국하고 난 뒤에도 계속 저렇게 진흙 속의 진주를 찾겠답시고 음악을 듣고 있다.

평소에 듣지 않았던 다른 나라의 음악을 스스로의 의지로 열심히 듣는 건, 그녀가 성장하는 데 거름이 될 테니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나와 서연이, 박실장님을 포함해, 함께 일본으로 넘어온 우리 일행이 묵는 일본 호텔의 식당.

박실장님은 서연이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부를까요?”

“···아뇨. 아무거나 잘 먹기도 하니까 그냥 많이 시키죠. 알아서 먹게.”

우리는 음식을 시켰고, 나는 그 와중에도 집중을 잃지 않고 있는 서연이를 빤히 바라봤다.

진주를 찾지는 못해도 지금까지 열심히 들은 게 있으니, 이따 저녁에 출연할 라디오는 물론 내일 있을 토크쇼에서도 말할 게 많을 것이다.

내가 처음에 말했던 의도는 단순히, 가볍게 뽕을 채워주자는 의미에서 내뱉은 말이었는데.

혹시 또 모른다.

이런 일본 음악에 대한 그녀의 깊은 관심이 그녀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으로 돌아와, 화제가 될지도.

그러니 한껏 집중하는 그녀를 방해하는 건 좋지 않다.

뮤지션으로서 성장하는 걸 방해할 뿐 아니라, 화제가 될 가능성마저도 낮추는 셈이니.

잠시 후,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는 음식이 가득 세팅됐다.

서연이는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귀에서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그녀를 방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다들 대화를 할 때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난 밥을 먹으면서도 서연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저런 노력이 영양분이 되어, 언젠가 우리에게 충분한 보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서연이의 젓가락질이 느려졌고, 미간이 꿈틀거렸다.

난 음식을 씹으며 이 모습을 관찰하듯이 바라봤다.

‘설마.’

이젠 그녀의 젓가락질이 완전히 멈추었다.

미간을 좁히며 눈동자를 굴려댄다.

그러더니, 좁았던 미간이 매끄럽게 펴지고,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녀는 시선을 올려 나를 바라봤다.

반짝거리는 눈. 이어폰을 빼며 내게 말했다.

“사장님! 찾았어요!”

“진짜?”

“들어봐요! 곡은 완전 처참하게 구리거든요? 근데 노래는 잘해요.”

“흐음.”

그녀가 건네주는 이어폰을 귀에 꽂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내가 서연이한테 그랬던 것처럼,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내 표정을 관찰하듯이 바라봤다.

“···그러네.”

“잘하죠?”

“노래가 미친듯이 구려. 와, 심각한데?”

“···.”

물론 노래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노래도 잘하긴 했다.

좀 많이.

< 노래가 미친듯이 구려. 와, 심각한데?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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