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59화 (59/124)

< 트로트를 해보자고요? >

레모네이드의 최진솔이 팀킬을 저질렀던 바로 그 라디오 스튜디오.

잘못은 최진솔 혼자 저질렀지만, 이곳도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제작진이 설명을 잘 안 해서 이렇게 된 거다, 최진솔과는 별개로 여기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하며 비난이 일어났다.

뭐 극히 일부분이긴 해서 내가 볼 땐 신경 쓸 만한 것도 아니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또 그런 마음이 아니거든.

아무튼 피디와 작가들의 간곡하고도 애절한 부탁에 오늘은 여기에 별이와 함께 찾았다.

우리야 잘못한 게 단 하나도 없어서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긴 한데, 라디오 스케줄도 우리에게 나쁘지 않지.

“별아, 넌 그런 실수하면 안 돼. 소리는 계속 들어가는 거야.”

“네, 알고 있어요.”

최진솔의 일이 있었던 만큼, 그녀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정도 여파가 있었으니, 아마 앞으로 출연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 거다.

이제 더 이상 같은 실수는 찾아보기 힘들겠지.

별이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요, 오빠. 혹시 이 질문은··· 어떻게 답해요?”

작가가 나눠준 질문지의 한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다음 컴백은 언제쯤 하냐는, 아주 평범하고도 무난한 질문이었다.

난 별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질문지도 질문지인데, 그녀가 내게 하고 싶은 질문인 것 같기도 했다.

“우리한테 곡이 엄청 쏟아지고 있어. 그런데 괜찮은 곡이 그리 많지는 않대. 그 약간의 좋은 곡들은 A&R팀이 계속 작곡가랑 얘기하면서 다듬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하나둘씩 완성될 거야. 별아, 너도 빨리 내기보단 좋은 곡들로 채우는 게 좋지?”

“네.”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쉬워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모든 가수가 그렇듯이 그녀 또한 빨리 앨범을 내고 싶나 보다.

사실 활동 자체는 ‘일도 잘하는 밴드’에다가 행사, 화보, 광고까지 하고 있긴 하다만, 행사와 예능만으로는 음악적인 갈증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 거겠지.

이건 회의에서 나왔던 안건이기도 하다.

그녀도 그렇지만 팬들도 비슷한 것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빨리 컴백을 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글을 봤기 때문에 별이도 빨리 컴백하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다시 질문지를 바라보고 있는 별이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회의에서는 ‘어쩔 수 없다’, ‘기다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긴 했지만.

이대로 기다리기엔 나도 왠지 조금 아쉽다.

별이가 팬들의 아쉬움을 보며 그들을 만족시켜주고 싶어 하는 거라면, 나는 별이의 아쉬움을 보며 그녀를 만족시켜 주고 싶었다.

난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별아.”

“네?”

“우리 유튜브 컨텐츠나 해볼까?”

눈을 깜박이면서 날 바라본다.

퍼뜩 떠오른 생각이라서 어설프고 황당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썩 나쁜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다듬다 보면 꽤 쓸 만해지겠지.

“어떤 거요?”

“’일도 잘하는 밴드’ 1회에서 트로트 불렀잖아. 그거 반응도 엄청 좋았고.”

얼마나 반응이 좋았냐면.

-김별 트로트 진짜 맛깔 난다. 안 되겠지만, 정말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긴 한데, 트로트도 하나 내주시면 안 될까요?

이 댓글이 유튜브에서 2만 이상의 좋아요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트로트를 정식으로 발매할 수는 없다.

이것저것 막 하다 보면 당장의 반응은 좋을 수 있으나, 커리어와 정체성이 엉망이 될 수도 있거든.

하지만 유튜브 컨텐츠라면 괜찮지.

팬들이 예전부터 유튜브 컨텐츠를 목놓아 외치기도 했으니까.

“유튜브 컨텐츠로 트로트를 해보자고요?”

그녀의 눈에 흥미가 가득했다. 목소리도 확 밝아졌다.

나는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진지하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부캐로 해보는 게 어때? 콩트 같은 것도 섞으면 재밌을 것 같은데.”

“네, 전 좋아요.”

한 번 생각이 이렇게 뻗어 나가니, 다른 장르가 아쉬워진다.

별이가 트로트만 잘하는 것도 아닌데.

“일단 트로트 먼저 해보고 반응 보면서 다른 장르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해. 락이나 알앤비도 잘할 수 있잖아.”

“네, 전 좋아요.”

뭔들 안 좋을까. 눈빛이 아주 초롱초롱하다.

꽤 좋은 대안을 낸 것 같아, 마음이 절로 흡족해졌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런데 부캐는 어떤 컨셉이에요? 이름은요? 장르마다 부캐는 계속 다르게 하는 거예요?”

“음. 어떻게 할까? 이건 회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음악을 어떻게 보여줄지도 고민해봐야 하고, 콩트적인 재미는 또 어떻게 섞을지도 고민해보고. 아, 그런데 이름은 김별 부캐니까 김달 어때?”

“아.”

올라갔던 입꼬리가 착 가라앉았다.

“···회의해볼게.”

“네, 좋아요.”

“김해는 어때? 아니면 김선달-”

“···.”

“회의해봐야겠다.”

“네, 좋아요.”

별이와 간단하게 얘기를 마치자, 작가는 그녀를 데리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부스 바깥에서 피디와 함께 이를 지켜보며, 방금 전 말했던 것들에 대한 생각을 이어갔다.

트로트 하니까 서연이가 후속곡을 썼다며 보내줬던 곡이 떠올랐다.

댄스곡에 트로트 향을 살짝 가미했다면서 혁신 어쩌구 하던데, 내가 들어봤을 땐 그냥 신나는 트로트였다.

생각난 김에 한 번 들어보려고 막 이어폰을 꺼내려던 때.

부스 안의 대화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김별 씨는 언제쯤 컴백하세요?”

“아, 저 트로트··· 헉!”

“···트로트요?”

고개를 번쩍 들어 부스 안에 있는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떨고 있었다.

“···어떡해요?”

“하하···.”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라이브 방송 때도 서연이의 데뷔를 스포하더니, 별이는 스포가 특기인 모양이다.

시선을 돌려 채팅창을 바라봤는데, 역시나 채팅이 쏟아지고 있었다.

-트로트?ㅋㅋㅋㅋㅋㅋㅋ 진짜로 트로트라고?

-헐. 아니 WE엔터 제정신이야? 사장 보고 있나? 아무리 그래도 트로트 컴백은 아니지ㅠㅠㅠ

-난 트로트 좋은데? 엄청 잘 부르더만.

-여기 터가 안 좋나?ㅋㅋㅋㅋ 다들 왤케 실수함?

-근데 얘는 누구랑 다르게 너무 귀여운 실수네ㅋㅋ 이런 실수는 인정이지.

***

ARMnet에서 진행하는 래퍼 오디션, ‘쇼앤프루브’.

래퍼 지원 영상과 프로듀서 싸이퍼 영상으로 서서히 화제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방송으로는 아직 1회도 나오지 않았지만 녹화는 진행 중인 상태.

현장에서는 지금 막 2차 오디션이 시작되고 있었다.

2차 오디션은 시청자들과 프로듀서에게 이미지와 실력을 각인시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무대.

어쩌면 앞으로의 그 어떤 무대들보다도 더 중요할지 몰랐다.

이곳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그 이미지가 앞으로 쭉 이어질 테니까.

김종수의 순서는 중간.

눈앞에서 탈락하고 합격하는 래퍼들을 바라보며, 주변에 앉은 래퍼들이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오! 좀 하는데?”

“이게 탈락이라고? 와, 합격컷 미쳤다.”

“합격이야? 음. 잘하긴 했지. 근데 이 정도면 나도 합격일 듯? 하하.”

그 와중에, 김종수는 한마디 말도 내뱉지 않았다.

랩을 시작한지 딱 1년. 그것도 군대에 복무 중일 때였다.

그간 사운드 클라우드에 곡을 올린 적도 없고, 활동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런 경력이 없더라도 종수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곳에 나온 건 모두 그 목표 때문.

“김종수 씨.”

드디어 종수의 차례.

무대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긴 하나, 긴장감도 불안감도 없었다.

무대에 오른 김종수는 앞에 앉아 있는 심사위원들과, 양옆 관객석에 앉아 있는 래퍼들을 찬찬히 훑어봤다.

“오, 여유 있는 표정. 긴장 안 돼요?”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물었다.

“네, 긴장은 안 됩니다.”

다른 지원자들도 비슷한 대답을 했으나, 종수는 진심으로 긴장이 되지 않았다.

자신감도 자신감이지만, 자신의 목표는 2차가 아니라 더 높은 곳에 있었으니까.

“랩을 시작한지 이제 1년 됐네요?”

“네. 군대에 있을 때 시작했습니다.”

“아, 그래요? 여기엔 뭐 때문에 나왔어요?”

심드렁하게 정해진 질문들을 던지는 심사위원.

김종수도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대답을 내뱉었었지만.

이 질문에는 담담하게 답할 수가 없었다.

종수는 자신이 상상으로 그렸던 미래가 현실에서도 펼쳐지기를 바라며 말했다.

“음원 미션을 보고 왔습니다.”

“우승도 아니고 음원 미션?”

“예. 김별 선배님 팬이라서요. 피처링을 꼭 받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어?”

심사위원, 지원자, 스탭 할 것 없이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그들 모두 종수의 말을 곱씹었다가, 이내 웃음이 터졌다.

한순간에 뒤바뀐 분위기.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하하하하! 김별 씨는 우리도 힘들어!”

“아! 나 지금 만드는 곡 김별 씨한테 피처링 부탁하려고 했는데!”

“아니 김별 씨는 생각도 안 하는데 둘이 아주 놀고 있어. 누가 형한테 피처링 해준대? 웃겨, 아주.”

“종수 씨. 큭큭. 아니, 그 목표 자체는 진짜 리스펙. 근데 김별 씨는 정말로 우리도 힘들 수 있어요. 피디님, 그쵸? 힘들죠? 이게 장담할 수가 없다니까? 하하하!”

종수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한없이 진지하게 답했다.

“음원 미션 때 안 되면,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안 되면 그 다음에. 그때도 안 되면··· 그 다음 기회를 노려보려고요. 될 때까지.”

“와아. 골 때리네. 어쩌면 이거 우승보다 힘든 목표일 수도 있어!”

“하하. 마음에 든다. 이런 목표는 처음인데? 신선해.”

“그럼 우선 2차에 잘해야 돼요. 알죠? 여기서 탈락하면 피처링이고 뭐고 없어요.”

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게 심호흡을 하며 스탭에게 신호를 줬다.

곧이어 흘러나오는 묵직하고 건조한 비트.

종수의 입에서는 리드미컬하지만 비트와 어울리는 묵직한 랩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랩에 빠지게 된 계기는 김별과는 전혀 상관이 없긴 했다.

랩을 하던 후임이 들어오기도 했고, 할 것도 없겠다, 그저 심심풀이로 한 번 해본 거였다.

그런데.

‘김종수 상병님···? 진짜 처음 맞습니까?’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당황한 후임의 표정을 보며 묘한 희열을 느꼈다.

시작은 이렇듯 장난과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허나,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점점 재미가 붙었고, 진지하게 공부도 하게 됐으며, 이는 어느새 꿈이 되었다.

김별의 피처링을 받는 게 꿈은 아니었지만, 그건 이곳에서 반드시 이뤄내고 싶은 단기적인 목표.

설령 이곳에서 피처링을 받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언젠간 반드시 성공해서 김별의 피처링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종수는 그 목표에 한 발짝 크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개잘해! 뭐야!”

“와. 미쳤다···.”

“···음원 미션 충분히 가겠는데?”

대중들의 머리에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인 2차 오디션.

종수가 랩을 마친 순간.

이곳에 있는 모두의 머릿속에서, 오늘의 1등 자리가 정해졌다.

***

‘일도 잘하는 밴드’에서 베이스를 맡은 김성혁.

음악 예능에 자주 출연할 정도로 그의 베이스는 업계에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베이스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재주가 있었다.

그동안 작곡에 참여한 곡들도 벌써 스무 개가 넘고, 그중에선 히트한 곡도 몇 개가 된다.

그런데 그토록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도 이런 적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

낭패한 눈빛이 모니터에 꽂혔다.

김별을 떠올리며 작곡을 시작하긴 했는데···.

“하아···.”

곡을 처음부터 다시 틀어봤다.

도입부부터 적토마처럼 힘이 센 수백 마리의 말이 전력질주하듯 맹렬하게 몰아치는 사운드.

전주를 채 다 듣기도 전에 성혁은 곡을 꺼버렸다.

“락이잖아···.”

그것도 헤비 메탈.

아주 정통 헤비 메탈이었다.

당연히 처음엔 이런 곡을 만들려는 의도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악기를 늘려갈수록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뻥 뚫린 고속도로가 훤히 보인다고 해야 할까?

정해진 길을 달리면서도 성혁은 당장 샛길로 빠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긴 했다.

원래의 목적지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곡이 그걸 원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김별의 목소리를 떠올릴수록, 뻥 뚫린 고속도로는 계속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고.

성혁은 ‘이게 아닌데’하면서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곡은 진짜 좋은데.”

자신이 곡을 만든 게 아니라, 곡이 자신의 손을 빌려 스스로를 완성한 듯한 느낌.

어색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고, 완성도 역시 뛰어났다.

지금까지 작곡한 곡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만족할 만한 결과물.

하지만 문제라면 역시.

“김별이 헤비 메탈을 할 리가 없잖아.”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잘 소화할 것 같긴 한데···.”

성혁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역설적이다. 완전히 엉망이 됐는데, 너무 잘 뽑힌 바람에 손을 댈 수가 없다.

곡을 다시 뜯어고치자니, 그건 또 너무 아깝고.

“하아.”

작업실에선 한숨만이 푹푹 새어나왔다.

< 트로트를 해보자고요?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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