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
경상남도 창원의 야구 경기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찌푸둥한 몸을 풀었다.
고요한 차 안.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역시 서연이는 푹 자고 있었다.
‘잘 자네.’
요즘 스케줄이 많아서 피곤할 텐데, 후속곡까지 쓰고 있고, 아주 고생이 많다.
그래도 오늘은 이 스케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제법 먼 거리를 오가야 했으니 다른 스케줄의 시간을 맞추기도 애매하고, 겸사겸사 휴식도 하라고 비워뒀다.
내가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도 관련이 있었다.
내 밑에도 매니저들이 있었기에, 사실 내가 여기까지 운전해서 오지 않아도 되긴 했는데.
‘나도 좀 쉬어야지.’
나도 서연이처럼 오늘의 스케줄은 이게 마지막이다.
명목상으론 일하러 온 거긴 하나, 휴식도 겸하는 거지.
외근 후 퇴근, 얼마나 좋아.
“서연아, 일어나. 도착했어.”
“으음.”
게슴츠레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본다.
“도착했어요?”
잠긴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니, 쩌억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새삼 그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 귀여운 외모에 너무 잘 어울리는 행동이라서.
정아도 외모만 보면 귀여운데, 걔는 성격이랑 행동이 외모랑은 완전히 따로 놀거든.
“빨리 나가요.”
우리는 바로 야구장 안으로 이동했다.
아직 경기 시간까지 한참 남아서 관객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일찍 온 이유가 있다.
구단의 유튜브 촬영도 하고, 시구도 배워야 하거든.
“관객석이 엄청 많네요. 야구 경기장 오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되게 큰 것 같아요. 이따 시구할 때 실수하면 어떡하죠?”
카메라 앞에서 귀여운 척하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서연이.
그런데 그 귀여운 척하는 모습이 귀엽게 보인다.
원래 나 이런 거 싫어했는데, 좋아했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
짧은 인터뷰를 끝내고, 구장 내 연습장에 가서 시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알려주는 사람은 이따 경기를 뛸 좌익수.
그가 서연이 앞에서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
“이 준비 동작을 와인드업이라고 해요.”
“···와인드업이요?”
서연이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고, 난 어깨를 으쓱였다.
와인드업이라 하니 와인드업이 떠오르나 보다.
좌익수의 말이 이어졌다.
“하나에 팔이랑 다리를 이렇게 올리고, 둘에 다리 내리면서 힘을 싣고, 셋에 훅! 던지는 거예요.”
서연이는 눈빛을 빛내며 자세를 따라했다.
상당히 엉성하긴 한데··· 의외로 깔끔했다.
댄스에 재능이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신체를 쓰는 것 자체에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 좋아요! 다시.”
다시 해봐도 마찬가지.
여자 연예인 시구 중에 레전드로 꼽히는 것들이 몇 개 있는데, 예감이 좋다.
어쩌면 서연이도 거기에 속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 공으로 던져볼게요. 세게 던지셔도 돼요. 다 받을 테니까 걱정 마시고요.”
“네.”
서연이는 숨을 길게 내쉬며, 배운 대로 와인드업.
다리를 내리며 공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후읍-!”
툭! 데굴데굴.
“···좋아요. 잘 던지시는데요?”
“땅에 박았는데요?”
“원래 파이어볼러들은 가끔 이래서 괜찮아요.”
“아!”
좌익수가 서연이 팬인 모양이다.
파이어볼러는 무슨.
구속이 제법 빠른 것 같긴 한데 제구가 엉망이었다.
몇 번 그렇게 엉망진창의 공을 던져보다가 우린 연습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서연이는 자세를 연습하며 물었다.
“사장님, 저 어때요?”
폼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뭘 어때. 그냥 구서연이지 뭐.”
“···욕이에요?”
“’구서연’이 욕 같이 들려?”
“···아뇨.”
서연이는 흘겨보긴 하는데, 뭐라 따지지도 못했다.
다시 자세 연습을 하던 서연이는 몇 번 더 하다가 좀 지쳤는지, 내 옆에 앉아 유튜브를 틀었다.
그런데, 그 영상이 ‘MLB 레전드 마구’영상이다.
쓸데없는 짓 하네, 또.
***
“우와! 저렇게 멀리서 던져요?”
시구를 하기 직전.
마운드를 쳐다보며 서연이가 입을 벌렸다.
멀리서 볼 땐 체감이 잘 안 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마운드가 상당히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기는 선수들이 오르는 마운드고, 넌 딱 반 정도 거리에서 던질 거야.”
“아. 오! 근데 잘 아시네요?”
그녀는 옅게 웃는 얼굴로 물었다.
“혹시, 야구 좋아하세요?”
물음에 답하기도 전, 서연이가 올라가야 할 때가 된 듯, 마스코트가 옆에 섰다.
“잘하고 와.”
“네. 마구 보여드릴게요.”
서연이의 이름이 구장 내에 울리자, 관객들이 환호를 마구 내질렀다.
엄청 잘나가는 아이돌도 야구장에선 이런 환호를 받기 힘든데, 아마 모두 ‘일도 잘하는 밴드’가 잘나가고 있는 덕분일 거다.
대중성은 진짜 이런 데에서 제대로 실감이 난다니까?
마스코트가 이끈 곳에 선 서연이.
타석엔 타자가 자세를 잡고 있었고, 포수도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서연이는 아까 배운 거랑 연습한 건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느닷없이 허리를 앞으로 푹 숙이더니, 양팔을 ‘새’처럼 90도로 벌렸다.
“···!”
“···!”
아주 찰나, 정적에 휩싸인 창원 구장.
그리고 다음 순간.
홈팬이고 원정팬이고 할 것 없이, 웃음과 함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아!”
“킴브렐! 킴브렐이다! 크하하하하!”
“푸하하하! 와아! 미쳤다!”
지금은 전성기가 지났지만 한때 MLB를 씹어 먹었던 마무리 투수, 크레이그 마이클 킴브렐.
실력도 실력이지만 특유의 자세 때문에 훨씬 더 유명해진 그는 KBO팬들 모두 알고 있을 정도였다.
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까 유튜브로 이상한 거 보더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기기까지 했다.
그래도 관객들이 죄다 배를 부여잡고 웃고 있는 바람에, 서연이의 얼굴에서도 활짝 웃음꽃이 폈다.
나름 뿌듯한 모양.
그녀는 다시 제대로 와인드업을 하더니, 손에서 공을 뿌렸다.
휙-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야구공.
모두의 시선이 느릿느릿한 공을 따라갔고, 이내 공이 스트라이크존 한복판에 들어와 ‘퍽’, 포수의 글러브에 안착했다.
“우와아아아아─!”
“구서여어언!”
“구브렐! 구브렐! 구브렐!”
모두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여자 연예인 시구 사상 첫 손가락에 꼽힐 레전드 장면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
[구서연 WE엔터에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로 이적하나?]
[LAD, 구브렐 트레이드로 불펜 강화 꾀하나?]
[WE엔터 김유민 “구브렐은 절대 내줄 수 없다.” 강경한 입장 밝혀.]
[뉴욕 양키즈 단장, “김유민은 과욕을 부리고 있다. 유정아, 김별, 구브렐 모두를 갖고 있는 욕심쟁이.”]
“하하.”
아까도 그랬지만 이번엔 진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저건 기사의 제목이 아니다. 당연하지, 기사가 저 모양이면 저건 더 이상 기사라고 부를 수 없다.
커뮤니티에 퍼진 게시글의 제목들이다.
KBO를 보는 한국 사람들, 그리고 MLB를 보는 한국 사람들 모두 아주 신이 난 듯, 갖가지 다양한 합성 짤들이 실시간으로 대량생산되고 있었다.
내가 ‘AMAM’ 별이 수상소감 때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고인 모습과, 몸빼바지를 입고 밭일하는 서연이의 모습이 2분할 사진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귀농한 구브렐에 김단장 눈시울 붉혀···?”
헛웃음을 뱉으며 서연이를 바라봤다.
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히죽히죽 웃고 있다.
“그래도 반응 좋죠?”
“···뭐 좋긴 하네. 많이.”
“그럼 됐죠.”
“···그럼 됐지.”
세상에 이런 식으로 화제를 만들어낼 줄은 또 몰랐네.
진짜 얘는 스타성을 타고난 모양이다.
아이스크림 매장은 제법 한산했다.
덕분에 우리도 방해없이 아이스크림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근데 그린티는 진짜··· 사장님, 이건 아니지 않아요?”
“서연아, 민트 초코가 더 선 넘었어. 그럴 거면 양치를 해.”
“···!”
언제 웃었냐는 듯 씩씩대고 있다.
그리고 전부터 느꼈듯이, 얘는 웃는 것도 귀여운데 이렇게 뿔이 난 모습이 더 귀엽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팬들도 다 이렇게 봐서 이젠 ‘구서연 분노 모음집’ 같은 영상도 나오고 있다.
참 희한하다니까? 착한 게 눈에 훤히 보여서 화를 내도 전혀 밉게 보이지 않는달까?
“사장님, 근데 우리 바로 돌아가요?”
“그럼?”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매장을 나와서 다시 차에 탔는데, 서연이가 대뜸 이렇게 물어왔다.
“날씨도 쾌적하고, 오늘 한 건 하기도 했고, 맛있게 아이스크림도 먹었고, 이제 스케줄도 없고, 기분도 좋은 것 같은데 바로 들어가긴 좀 아쉬워서요.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가?”
그냥 놀고 싶다는 말이다.
그래,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말마따나 한 건 올리기도 했고, 날씨도 좋고, 다 좋으니 이럴 때 놀아야지.
바다라도 한 번 보여줘도 좋겠다.
“그럼 바다나 볼까? 바로 앞인데.”
“좋죠! 너무 좋아요!”
스트레스는 쌓이다 보면 병 된다.
적절할 때 적절하게 풀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나는 바로 네비의 목적지를 수정하고 차를 몰았다.
***
서연은 바닷가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시선을 저 멀리 던졌다.
창원 앞바다에 여러 섬들이 있어서 그렇게 뻥 뚫린 맛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만큼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좋다.’
모든 게 다 잘되고 있다고는 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들고, 후속곡에 망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도 든다.
그리고 악플과 비방글을 보기도 했다.
물론 그보다 행복한 일들이 주위에 훨씬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긴 하나.
그래도 찌꺼기는 가슴 한 켠에 차곡차곡 쌓였었던 모양이다.
“사장님.”
고개를 돌리며 그를 부르니, 그는 바다를 향하고 있던 담담한 눈빛을 그대로 옮겨 눈을 마주쳤다.
얼핏 보면 바닷가에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지루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낭비라고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장님은 바다 별로예요?”
“아니, 나도 바다 좋지. 아무 생각도 안 들잖아. 뭔가 쌓인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내리는 느낌도 받고.”
“진짜 그래요? 표정은 아닌 것 같은데.”
“뭐··· 좀 익숙해진 거겠지.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쌓인 것들이 돌아올 테니까.”
“에이, 낭만도 없어. 완전 아저씨 같아요.”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난 이제 바다 자체는 별 의미 없어. 이런 것보다는 일상 속에서 하나하나 소소하게 즐거울 만한 것들을 쌓는 게 더 낫더라고. 남들한텐 별거 아니더라도, 그건 지속적으로 마음을 좀 씻겨주거든.”
“예를 들면요?”
“음. 네가 쓸데없고 어이없는 소리하는 것도 그렇고, 별이가 챙겨줄 때도 그렇고, 정아가 틱틱대는 것도 그렇고, 유진이랑 별거 아닌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다 우리랑 관련된 거네요?”
“응. 맞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사고 치지 마. 너희가 사고 치면 내 스트레스는 누가 책임져?”
서연의 입가에 부드럽게 미소가 피어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근데 우리도 바다처럼 익숙해지면 어떡해요?”
“이건 그거랑 달라. 사람이 어떻게 바다랑 같냐?”
“뭐가 다른데요?”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지. 우리라는 느낌을 받는 거야.”
“유대감 같은 거요? 소속감?”
“뭐, 나름 비슷하지. 그렇게 보면 또 그렇게 볼 수 있는 거고.”
서연은 자세히 이해는 못했지만 시선을 돌려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바다도 조금 심드렁해지는 느낌이다.
반면, 우리는 어떨까. 곁눈질로 그를 흘끗 다시 바라봤다.
여전히 담담한 눈빛으로 바다를 보고 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무섭게 생겼다는 댓글이 문득 떠오른 탓이다.
‘하나도 안 무서운데.’
서연은 그의 말이 얼핏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바다는 매일 보다 보면 지겹기는 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지겹지 않다.
사람이랑 바다랑 역시 다른 것 같다.
매일매일 즐겁고 미소를 짓는 이유 중 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일단 오늘의 웃음 중에는 거의 100%를 차지하는 것 같았다.
서연은 더욱더 상념에 잠겼다.
그렇게 10분여가 지났을까.
서연의 눈동자에 초점이 흐려지고, 입이 벙긋거리며,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사장님.”
“어?”
“저 정말 컨디션 좋은가 봐요.”
고개를 돌리니, 그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연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저, 후속곡 뽑힌 것 같아요.”
“혹시-“
“트로트 말고요. 어쿠스틱이요.”
***
영감이란 보통 머리를 스쳤다가 바람에 흩날리듯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연은 까먹기 전에 멜로디를 흥얼거려 녹음하기도 하고, 코드를 메모해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그리고 집에 도착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영감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왔어? 서연아, 밥은 먹었고?”
“이따가 먹을게, 아빠. 녹음 좀 하고.”
방으로 들어온 서연은 컴퓨터를 켜고 바로 녹음을 시작했다.
그런데 기타를 바로 튕기지는 않았다.
기타에 손을 얹은 채, 오늘을 가만히 돌이켜봤다.
찬찬히, 처음부터 끝까지.
서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직 가사는 짓지 않았지만 제목은 정해졌다.
“우리.”
비로소 기타를 튕겼다.
제목은 ‘우리’.
멜로디는 따스했고, 마음은 포근했다.
< 우리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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