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닙니다 >
사무실에 출근하니 분위기가 희한했다.
평소보다 내 얼굴에 시선이 더 많이 달라붙는다.
흘끗흘끗 쳐다보는 것도 아니다.
대놓고 쳐다보고 있는데, 툭 치면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사장님, 출근하셨습니까?”
정실장님이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의 표정에서, 입이 근질거리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직원들과 정실장님이 왜 이런 얼굴이 되었는지는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
내가 모르면 말이 안 되지.
어제 저녁부터 기사가 댐이 터진 듯이 쏟아졌다.
별이와 서연이가 출연하고 있는 ‘일도 잘하는 밴드’ 1회가 화제가 된 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이런 화제가 터지니.
최근 들어선 우리가 연예계 화제를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이 두 화제는 서로 결이 다르긴 하다.
이번 화제는 어느 쪽의 입장에선 재앙이 되었고, 우리 쪽의 입장에선 그냥 코미디였거든.
“사장님, 인터뷰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네? 어떤 거요?”
어제 터진 레모네이드 관련에 대한 인터뷰일지도 모른다.
근데 이런 건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
정실장님이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이런 걸 일일이 물어본다는 건 판단하기에 애매하다는 거겠지.
정실장님은 씩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한테 들어온 인터뷰입니다. 그런 거 아시죠? 성공 비결, 성공 신화. 사장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물 집중 탐구를 하고 싶다는데요?”
미간이 찌푸려졌다. 발자취는 개뿔.
기자들이 또 잔머리를 굴리는 거지.
GO엔터와 레모네이드 관련 인터뷰를 한다고 하면 거절할 게 뻔하니, 이런 식으로 공명심을 자극하여 대중들의 호기심을 빨아먹겠다는 거다.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바쁘다고 하세요.”
“안 그래도 그렇게 했습니다.”
“···?”
“그냥 인터뷰 들어왔다고 말씀드리려고요. 사장님한테 쏠리는 관심이 이만큼 크다, 뭐 이런 걸 보고하는 것도 부하직원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요? 하하!”
참 즐거워 보인다.
유쾌한 정실장님 덕분에 사무실의 분위기가 경직되지 않아서 좋긴 한데, 타겟이 내가 되니 썩 즐겁지만은 않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직원들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피어났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이에 대해 회의를 하기로 했다.
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기에, 스탠스와 대처에 대해 논의해 봐야지.
“지금 바로 회의 준비해 주세요. 자료는 준비하실 필요 없고, 즉석에서 띄우면서 단출하게 하시죠. 홍보팀이랑 매니지먼트팀만 있으면 될 것 같네요.”
“예, 알겠습니다!”
사무실 안에 있는 작은 회의실.
홍보팀 팀장님이 스크린에 띄운 컴퓨터를 조작하며, 평화롭고 단조로운 어투로 말했다.
“발단은 다들 아시다시피 최진솔의 실수 때문이었는데요. 여기에 네티즌들이 처음엔 흥미와 재미 위주로 반응했습니다. ‘김별이 레모네이드 데뷔조였다고?’ 하면서요. ‘AMAM’에 이어, 연속으로 ‘일도 잘하는 밴드’의 1회가 화제가 됐으니 타이밍도 좋았습니다. 네티즌들은 바로 연습생들의 연습 기간을 비교해 봤습니다. 사실 댓글 중에 이미 이수진에 대한 내용도 많이 드러나서 결론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만드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수면 위로 올라가니, 여기에 침묵하고 있던 기자들이 기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고, 다시 업계 사람들의 증언이 조금씩 덧붙여지면서 구체적으로 내용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한 시간 전에 올라온 게시글이 총정리된 글인데 벌써 베스트 최상단에 올랐습니다. 한 번 보시죠.”
팀장님은 내용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거기엔 김별과 레모네이드, GO엔터, 이수진, 그리고 나에 대한 내용이 시간 순서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네티즌들이 이렇게 무섭다.
어쩌면 평소에 GO엔터를 아니꼽게 보던 일부 업계 사람들이 한 손 거든 걸지도 모른다.
이 바닥에 모르는 이들이 드물기 때문에, 익명성 뒤에 숨어 사실을 까발리기에 이렇게 좋은 때도 없으니까.
그런데 팀장이 글을 읽어내려갈수록 얼굴이 따가워졌다.
직원들이 씩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팀장의 말은 이어졌다.
“-이렇게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대회의실에서 김유민 실장이 홀로 일어나 간부들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수진이 아닌 김별을 넣어야 한다’고 외쳤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업계에 퍼진 관계자들의 증언으로는 이 과정에서 굉장히 미친놈처럼 보였다고 한다. 와인드업의 팬들의 증언을 취합해보면, 그리 허황된 말은 아닌 것 같다. 와인드업이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김유민 실장이 고군분투한 과정을 몇 개 다 알고 있다며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여기에 관해선 링크 올린다.”
대중들의 궁금증은 이렇게 확장이 된다.
칭찬할 놈이 있으면 그놈을 더 파서 더 칭찬하고, 묻을 놈이 있으면 그놈을 더 파서 더 묻어버린다.
한 사건 안에 그 둘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면?
관심이 맞물려, 이렇게 순식간에 커다란 화제가 되는 것이다.
“캬! 우리 사장님, 멋지시다!”
정실장님의 말에 모두가 큭큭대며 웃었다.
내 얼굴은 빨개졌다.
아무튼, 중간에 나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껴 있긴 하나.
결론은 간단했다.
이수진과 레모네이드는 대중들의 웃음벨이 되었다는 것.
그 외는 딱히? 우리가 알아둬야 할 것들이긴 한데, 딱히 신경 쓸 만한 내용은 아니다.
이제 그들에 관한 건 우리에게 있어 하등 중요하지 않게 됐거든.
그런데 그때.
노크 소리가 울린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직원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찾아오셨습니다···.”
“누가-”
직원의 얼굴 뒤로, 반쯤 죽어가는 최이사의 얼굴이 보였다.
어쩐지 문이 열릴 때 사무실이 고요하더라니.
난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진 회의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직원들이 회의실을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회의실엔 최이사와 나만 남았다.
난 앉아 있는데 그는 앉지도 않은 채,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지? 미안하게 됐어.”
여상한 말투엔 변함이 없었으나, 그의 얼굴과 목소리엔 영 힘이 없었다.
비굴하고 처량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겠지.
난 그것까진 건드리진 않기로 했다.
우리가 뭐 칼로 찔러죽일 사이도 아니고.
내가 미친개가 되어 물어뜯는 느와르면 몰라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와르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냥 여유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저쪽에선 커다란 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가볍게 다룰 만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게 됐거든.
“앉으세요.”
그는 자리에 앉으며 다시 태연하게 물었다.
“회의하고 있었어? 우리 관련된 내용이지?”
문이 열릴 때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을 테니, 난 선선히 긍정했다.
“예.”
“결론이 어떻게 나왔는지 물어도 될까?”
이전엔 위협적인 분위기라도 풀풀 풍겼지, 지금은 그 분위기가 싹 빠지다 보니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어찌 보면 군대나 사회나 똑같다.
같은 곳에 소속됐을 때는 세상에서 제일 험악한 미친놈처럼 보여도, 한 발 물러나서 보면 그냥 아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이사도 그러했다. 내 눈엔 그냥 아저씨처럼 보였다.
이 또한 내가 여유가 많아진 덕분이겠지.
“딱히 결론은 없어요. 우리가 대처할 것도 아니고. 그냥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한 정도입니다.”
“···그래?”
우리는 잠시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입을 다물었다.
얼마 전까지도 눈에 힘이 넘치던 양반이었는데, 제 신변에 위협이 가니 그 빛도 흐릿해졌다.
가치관과 인성이 조금 엇나간 아저씨, 내일이 걱정되는 직장인.
고작 그 정도였다.
“새벽에··· 대표님이랑 술 한잔 했어. 논란이 점점 확대되던 때였는데, 갑자기 그 시간에 부른 거면 뭐겠어. 딱 하나지.”
“···.”
“책임지라더라. 그런데 이런 일 있으면 항상 해오던 방식이 뭔지 알아? 그냥 침묵하는 거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괜히 뭔가 조치를 취하면 일이 더 커지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날 이렇게 내치려는 걸 보면··· 그 양반도 너희가 성장하는 거 보고 어지간히 배가 아팠나 보더라. 속으로 내 탓도 많이 했겠지. 이수진 대신 김별이 있던 데뷔조 멤버대로 데뷔했으면 어땠을까? 네가 우리 회사에 계속 있었다면 어땠을까? 구서연도 그대로 들어왔을까? 유정아도 계속 회사에 있었겠지? 와인드업도 지금보다도 더 성장했을 수도 있었겠지? 뭐 이런 생각이 든 것 같아. 그 양반도 늙었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말이 많은 게, 정말 힘들긴 한가 보다.
그런데 하소연을 하려는 건지, 부탁을 하려는 건지 목적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뭔가 부탁을 하면 칼 같이 끊어낼 생각을 하면서.
그는 내 눈을 계속 쳐다보다가 입꼬리를 내렸다.
“···아무래도 괜히 온 것 같네.”
역시 부탁을 하려 했나 본데, 내 눈에서 견고한 거절의 의지를 읽었나 보다.
지금 우리가 잘나가고 있고 여유가 생겼다고는 하나, 과거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저 별볼일 없는 아저씨가 침몰한다고 하여, 내가 손을 내밀어줄 이유는 아무데도 없다.
튜브를 던져줄 생각도 없다.
그냥 그렇게 가라앉는 걸 무심하게 지켜볼 생각이다.
“그런데··· 삼촌이 조카 챙겨주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
뻔뻔하고 반성의 기미도 없다.
더 이상 대화할 가치도 없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지만.
문득 저 푸념 섞인 물음에 훈계하고 싶은 마음 정도는 들었다.
가슴 깊은 곳에 꿍쳐 두었던 작은 복수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닙니다.”
인생 후배로서의 따끔한 일침이다.
이 짧은 말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무너졌는지,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던 얼굴이 무너져 내렸다.
사실 저 뻔뻔한 물음을 던졌을 때부터 나약한 속내를 드러낸 것과 같다.
더 이상 해주고 싶은 말도 없어서, 나는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세요. 저 바쁩니다. 성공한 회사의 대표로서 할 일이 많아요.”
“···.”
패잔병처럼 찾아온 주제에 투항한 장수 대우를 바라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지.
그래서 가차없이 내쫓기로 했다. 사실 정신을 차렸었더라도 내쫓으려 했다.
패잔병은 패잔병답게, 바깥을 떠돌아야지.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
레모네이드, 그중에서도 이수진은 소위 말해 ‘나락’에 갔다.
빠져나오지 못할 수렁으로 떨어져 내린 듯했다.
인성 논란으로 자숙해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논란이 터졌으니 이제 어쩔 수가 없겠지.
최이사도 회사에서 쫓겨나갔다고 들었고, 그 자리엔 권본부장이 올라갔다 한다.
오로지 자기 안위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인데, 지금쯤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바쁘게 일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평화롭게.
나와 우리 회사, 그리고 별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호감이 더욱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
‘일도 잘하는 밴드’의 다음 방송도 화제가 됐다.
이번엔 소아 병원이었는데, 분위기가 사뭇 달려졌다.
서연이가 아이들의 행동대장이 되어 병원에 공연뿐만 아니라 웃음까지도 선물해준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서연이의 뒤를 빨빨대며 쫓아오는 아이들.
하나같이 밝고 순수한 표정들이라, 불쌍함과 동정심이 들기보다는 보는 사람의 얼굴에도 웃음이 지어졌다.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쁜 사람이야? 맞춘 사람이 일등이야!
-뭐가 일등인데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누나요!
-정답! 잘했어!
-우우우!
어쩌면 서연이와 딱 수준이 맞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만, 시청률은 높았고 반응은 뜨겁기만 했다.
A&R팀은 여전히 김별의 첫 번째 정규앨범의 곡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워낙 별이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가 높아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런 만큼 기대해도 좋을 결과물이 나오겠지.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정아와 유진이는 서로가 선생이 되었다가 제자가 되었다가 하며, 서로 스파르타 교육을 강행했다.
자기들끼리 등을 돌려가며 서로의 등짝에 채찍질을 하고 있으니,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밖에.
순한 맛과 매운 맛이 붙어 있는데, 얘네도 의외로 쿵짝이 잘 맞는 것 같다.
“야, 너 오늘 실수하면 어디 가서 나한테 연기 배웠다고 하지 마.”
“실수 안 하면요?”
“···오디션 통과했다고 이제 아주 연기가 만만하지? 나한테 배웠는데 이런 간단한 연기도 못하면 그냥 혀 깨물고 죽어야 돼! 네 역할이 쉬운 거지, 네가 잘하는 게 아니라고. 네가 지금 자만할 때야?”
“이게 어떻게 봐서 자만이에요. 저 자만한 적 없어요, 언니.”
“자만이야!”
귀가 따갑다. 쟤는 언제쯤 철 들까.
친한 친구가 생겨서 신난 건 알겠는데, 지금 우리는 피크닉 가는 게 아니라 일을 하러 가는 거다.
나는 혀를 쯧, 차며 말했다.
“그럴 시간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도와줘.”
“내가 그동안 얘를 얼마나 잘 알려줬는데!”
“그럼 집중하게 좀 놔둬라.”
“내가 지금 방해하고 있다는 거야? 하! 참나. 오빠가 몰라서 그렇지, 이게 다 긴장 풀어주려는 세심한 배려야, 배려! 오빠가 스승의 마음을 알기나 해? 제자 있어? 데려와 봐! 어떻게 생겼나 낯짝 좀 보게.”
천하제일의 효녀를 슬하에 둔 구태성 선생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얘도 내가 키웠는데, 안면몰수해도 정도가 있지.
영화, ‘스타는 다시 무대로’의 대본 리딩장으로 향하는 길.
이렇듯 차 안의 분위기는 평화와 약간은 동떨어져 있었다.
<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닙니다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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