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배 이유진 >
새벽 4시.
깜깜하고 텅 비어 있다시피 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토록 이른 시간에 차를 몰고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유형중 감독과 몇 번의 회의를 통해 끝이 난 준비.
이제 남은 거라곤 촬영뿐이었다.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
눈을 반쯤 감은 채, 입을 쩍 벌리며 하품하는 구서연이 보였다.
나는 그 앞에 차를 세웠고, 그녀는 차에 오르며 높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머리 끝이 다 마르지 않았다. 씻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덜 깬 모양이다.
그 와중에도 목소리는 참 밝은 게, 당장 졸린 것보다는 기대감이 더 큰 듯했다.
“별이도 일어났대요.”
“알아요.”
“아! 사장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리고 오늘 저도 데려가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은 비몽사몽인데 입은 웃고 있다.
난 곁눈질로 이를 보며 픽, 웃었다.
“그래.”
촬영장에 꼭 가고 싶다고 말하길래, 나는 그러라고 했다.
곡을 구할 방법이 요원해 곤란하던 차에,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줬으니 이 정도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냥 동아줄도 아니고 황금 동아줄. 그리고 앞으로 더욱 더 튼튼하게 자랄 것이 분명했다.
“사장님, 저 엄청 기대돼요. 별이는 오늘도 되게 예쁘겠죠? 헤어랑 메이크업, 스타일링도 연예인처럼 꾸밀 테니까 평소보다 더 예쁠 것 같아요.”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는다.
앉아 있는 게 편한지, 목소리의 톤은 점점 다운되어 갔다.
“아! 그리고 사장님. 혹시 음악 만들 때마다 들려드려도 돼요? 아빠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사장님한테 물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나야 당연히 콜이다. 별이를 타겟으로 한 음악만이 아니라 만드는 족족 들려줬으면 좋겠다.
별이한테 잘 어울릴 것 같으면 편곡을 하자고 제의하면 되니까.
“그럼, 괜찮지. 나한테는 얼마든지 물어봐도 돼. 그런데 나한테만 들려주지 말고 선생님한테도 들려드려. 서운하시겠다.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데.”
“하하!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차가 부드럽게 움직이길 몇 분.
그녀는 거의 반쯤 잠이 든 얼굴로 나지막이 말했다.
“사장님 덕분에 저 데뷔하게 됐어요. 다음에 또 좋은 음악 만들면 제 거 써줄 거죠? 진짜 진짜 더 열심히 할게요.”
신호가 걸려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눈이 완전히 감겨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어, 나는 정면을 바라보며 살살 페달을 밟았다.
깜깜했던 하늘이 서서히 푸르게 밝아지고 있었다.
***
파주의 스튜디오.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애들의 눈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와···.”
“···.”
세트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구서연은 탄성을 냈고, 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침만 삼키고 있다.
난 그런 별이의 감상을 깨지 않고, 옆에 얌전히 섰다.
“···여기서 촬영하는 거예요?”
작게 낸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세트를 구경하던 그녀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투명한 눈빛에는 기대감, 설렘, 감격 등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 다 네 노래 때문에 모인 거야. 여기 전부 다 네 뮤비 촬영하려고 준비된 거고. 오늘 네가 주인공이야.”
“아···.”
“감독님이 완전히 네 팬 됐더라? 프로필이랑 노래 보고 푹 빠지셨대. 회의할 때도 엄청 의욕적이셨어.”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팬이라는 단어에 설레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유형중 감독님이 뚜벅뚜벅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우리가 오기 전에도 엄청 바쁘게 움직이고 계셨겠지.
그럼에도 피곤함이 엿보이기는커녕, 세트장을 훑는 눈빛은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저기, 감독님 오신다.”
팬이라고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뮤비를 맡은 감독님이기 때문일까.
별이는 살짝 긴장한 얼굴이 되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별이에게로 향한 유형중 감독의 눈매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반갑습니다. 노래 듣자마자 팬 됐어요. 오늘 잘 부탁드릴게요.”
“제, 제가 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말을 듣고 있던 스탭들의 입에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
그 웃음에 당황한 별이. 그녀를 바라보는 스탭들의 얼굴에서 푸근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메이크업 시작하시죠.”
“네!”
***
“우, 우와! 너 진짜 예쁘다! 장난 아니야!”
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링까지 끝내고 나온 별이의 모습에 서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이런 모습이 어색한 지, 쭈뼛대고 있었다.
“사장님, 저··· 잘 어울려요?”
만화에나 나올 법한 검정 미니 드레스와 검정 구두. 커다란 링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
시선을 빼앗길 곳은 많았지만, 내 시선은 얼굴에 고정되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데뷔곡의 제목은 ‘So Happy’.
뮤비의 컨셉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동화 속 공주가 집 밖을 나가며 즐거운 일들을 마주하는 스토리로 짜였다.
인형과 함께 놀고, 로봇 장난감과 함께 술래잡기도 하는 등 밝고 귀여운 컨셉.
그녀는 그런 뮤비 컨셉에 딱 알맞게, 소녀다운 아름다움과 동화 속 공주 같은 우아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헤메스 아티스트들의 솜씨이기도 하고, 컨셉을 잘 짠 뮤비 감독의 능력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냥 본판이 사기적이었다.
“사장님 넋 나가신 것 같아.”
“어? 아.”
서연의 말에 다시 별이를 쳐다봤다.
그녀의 입꼬리는 움찔움찔 움직이고 있었고, 눈동자엔 서서히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감을 더 불어넣어주기로 했다. 근데 뭐라고 하지?
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고 봤다.
“별아, 너무 예쁘다. 꾸민 것도 꾸민 건데, 그냥 네가 너무 예뻐.”
“정말요?”
“어. 정말이야. 누가 봐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할걸?”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눈매는 부드럽게 휘어졌다.
기분이 매우 좋은 모양이다.
그때 귓가에 작게 실소를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서연은 나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마침내 촬영이 시작됐다.
별이의 모습을 열정적으로 찍는 유형중 감독.
“컷! 완벽했어요. 너무 잘하고 있어요. 최고예요.”
그의 말대로였다. 별이에게 긴장한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인지, 감독님의 디렉팅대로 열심히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나와 서연이는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사장님.”
“응?”
“사장님은 가만 봤을 때, 말이랑 얼굴이랑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의아하게 쳐다보자.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변명하듯 말했다.
“나쁜 뜻이 아니라요. 겉모습은 무뚝뚝하고 한없이 차가울 것 같은데, 되게 따뜻한 분이신 것 같다고요. 자상하고 친절하고.”
분위기상 나도 칭찬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딱히 대답할 말을 찾기도 힘들었고.
“그래? 너도 꾸미면 귀여울 것 같은데.”
다소 뜬금없는 칭찬이었으나,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턱을 거만하게 들어올릴 뿐이었다.
“크흠. 그래요?”
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
“···거짓말이죠?”
“진짜야.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음. 진짜요?”
시선은 별이에게 고정한 채로 고개를 또 대충 끄덕였다.
옆에서 작게 툴툴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감독님의 눈이 실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거든.
“커엇! 좋습니다! 퍼펙트해요!”
그만큼 별이는 컨셉에 잘 녹아들고 있었다.
촬영에 벌써 적응했는지, 아니면 자신감이 더 붙었는지, 표정과 몸짓도 더 자유롭게 움직인다.
음악과 비주얼은 물론이고, 뮤비 역시 대중들이 입덕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대중들이 이걸 보게 된다면 팬들이 많이 만들어지리라 확신이 차올랐다.
문제는, 대중들에게 노출하는 게 힘들다는 거지.
‘음방··· 출연할 수 있으려나?’
당장 예상하기론, 회의적이었다.
***
공중파 음악방송의 공개홀.
레모네이드의 로드 매니저인 이유진은 속으로 ‘참을 인’을 수백 번 새기며 걸음을 옮겼다.
양손에는 멤버들과 팀장님이 마실 커피 캐리어가 들려 있었다.
그런데 이는 팀장님의 심부름도 아닌, 최이사의 조카, 이수진의 심부름이었다.
‘언니, 진짜 죄송한데요. 졸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러는데, 혹시 커피 부탁드려도 돼요? 멤버들이랑 팀장님도 드실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요.’
말은 공손하기 그지없었으나, 차갑게 굳어 있던 표정과 거만하게 올려다보던 눈빛은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수진이 이렇게 막나갔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앜ㅋㅋㅋ 그래서 누가 신인 아이돌이라고? 왼쪽 오른쪽? 왼쪽 매니저는 왜 멤버들이랑 같은 옷 입고 있냐?ㅋㅋㅋㅋ
-저 매니저 예쁜 걸로 유명함ㅇㅇ GO엔터 파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걸? 선 넘지 않아서 호감임.
-저 비주얼이 매니저···? 저 비주얼이 아이돌···? 어라?
나란히 서 있던 게 우연히 사진으로 찍혀 커뮤니티에 떠돌았다.
그 뒤로 저렇게 은근히 속을 박박 긁어대는 게 일상이 됐다.
“어후! 짜증나. 내가 지 심부름할 짬이야? 하여간에 더러운 혈연만 아니었어도. 지가 못생긴 걸 왜 내 탓을 하냐고. 이쁜 게 죄지, 이쁜 게 죄야.”
이를 악 다문 채,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짓씹듯이 중얼거렸다.
이수진이 이러는 이유는 커뮤니티에 퍼진 사진 때문만이 아니었다.
첫 음방에서 이수진이 빤히 쳐다보던 ‘문에잇’의 장윤섭.
그의 관심을 본인이 아닌 자신이 받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 매니저님이다! 제가 들어드릴게요.”
뒤에서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커피 캐리어를 순식간에 빼가는 장윤섭.
이유진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들게요. 주세요.”
“에이! 괜찮아요! 저 힘 세거든요.”
제 딴에는 상큼하다고 생각하는지 씩, 커다랗게 잇몸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붙잡을 새도 없이, 레모네이드가 있는 공용 대기실에 쏙 들어가버렸다.
“망했네···.”
제자리에서 멈춘 채, 대기실 문을 허탈하게 쳐다봤다.
“선배가 이렇게 하지 말랬는데··· 그래도 이번엔 반사신경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주변 남자들이 끊임없이 찝쩍거려 곤란을 겪던 자신에게, 선배가 단호하게 말했었다.
‘그렇게 웃으면서 대충대충 설렁설렁 넘어가면 사람들이 좋게 볼 줄 알아? 아니야. 오히려 만만하게 봐. 웃고 싶지 않을 땐 억지로 웃지 마. 사람들이 싸가지없게 볼까 봐 걱정하지도 말고. 그렇게 보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 일만 잘하면 돼. 나 봐. 일 잘하니까 아무 문제없잖아.’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유진은 기억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재수없다고 생각했었지?”
정확히 봤던 것 같다. 그는 그 뒤로도 가끔, 아니 자주 재수가 없었다.
‘그래···. 들어가자, 들어가. 지가 열불을 내든 말든 할 일만 잘하면 괜찮겠지.’
유진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손에 커피를 든 이수진은 흉흉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선배라면 이렇게 화가 난 사람들의 화를 활활 더 키우겠지만, 거기까지는 실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유진은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며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이수진이 콧김을 뿜어냈고, 멤버들은 연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팀장님이 바로 옆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을 못 열고 있는 것일 터.
저 통화가 끝나면 과연 뭐라고 말할 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 알아, 뮤비 찍었다며. 하! 열심히 해보라 그래. 어휴, 그 새끼는 현실을 몰라. 머릿속이 아주 꽃밭이라니까? 지 잘난 맛에 사는 놈이 이번에 정신 좀 차리겠지. 큭큭.”
뭔가 심상치 않은 통화 내용에 유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팀장은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아, 누가 곡 좋을 거 몰라? 그러면 뭐하냐고. 정작 중요한 홍보를 못하는데. 나중에 몇 년 지나서 유튜브 숨은 명곡 리스트 같은 데에나 이름 올리라 그래.”
확신에 찬 목소리, 그리고 보기만 해도 눈이 썩어버릴 것 같은 음험한 미소.
두터운 턱살 위에 난 까끌까끌한 수염이 말할 때마다 출렁출렁 흔들렸다.
유심히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이던 유진은 통화가 끝나갈 즈음, 슬그머니 일어나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뒤통수에 꽂히는 이수진의 시선은 좁쌀만큼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확실했다.
선배한테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었다.
‘선배는 알고 있나?’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꺼져 있는 화면. 까만 액정엔 자신의 얼굴이 비쳐 보였는데.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민은 짧았다.
유진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선배에게 보낼 톡을 작성했다.
[선배. 이팀장 이 자식이 선배네 가수 음방 출연 못할 거라고 확신하는데요? 뭔가 있나 봐요.]
‘전송’을 터치하려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잘난 척하는 선배의 표정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촤르륵 스쳐 지나갔다.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보내기만 해봐, 아주.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결국 톡을 보낸 유진은 날카롭게 눈을 벼르며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웬일인지 답장은 곧바로 왔다.
[예상하고 있었어. 아무튼 고맙다.]
“하!”
기가 찼다.
“···아예 둘 다 해버리네. 아주 영악해.”
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
그러나 마음만은 한결 가벼워졌다.
왠지 선배라면, 별거 아니었다는 듯이 깔끔하게 일을 해결하고 한껏 잘난 척할 것 같아서.
“망하기만 해봐.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 후배 이유진 > 끝
ⓒ 쏘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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