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들과 함께하는 연예계 생활-7화 (7/124)

< 삼위일체 >

녹음은 구태성-구서연 부녀의 집이 아닌 외부 스튜디오에서 하기로 했다.

아무리 홈 레코딩 환경이 잘 갖춰졌어도, 스튜디오만큼은 아닐 테니까.

난 별이와 함께 스튜디오 로비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태성과 구서연이 나란히 들어왔다.

“별아!”

“서연아!”

얼싸안고 방방 뛴다.

그녀들은 가식이 아니라 정말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가 매니저 생활을 하며 이런 그림을 한두 번 본 게 아니거든.

가식인지 아닌지 한눈에 보인다.

“같이 데뷔한다고 신났구만.”

선생님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흐뭇하게 바라봤다.

구서연과 별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은인인 셈. 그리고 동갑이니 더욱 마음이 가겠지.

녹음을 하는 오늘은 양쪽에게 모두 대망의 날이었다.

“너 목 관리 잘했어? 아, 아니다. 대답하지 마. 근데 목은 풀었어? 푼 다음엔 말해도 되나?”

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양어깨를 붙잡힌 김별은 걱정 말라는 듯 작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목 관리 잘했어. 지금 컨디션 좋아.”

“하아. 다행이다.”

선생님과 내 눈이 마주쳤다. 우리 둘은 서로 함박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들의 관계처럼, 우리의 관계 역시 비슷했다.

“김사장님, 앞으로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하하. 네, 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딸 바보가 따로 없다.

전부터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그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 없었다.

물론 그의 명성을 이용할 수 있는 구석은 많긴 하다.

이를 테면, 홍보라든지, 음방이라든지, 예능이라든지, 인터뷰라든지.

이용하자면 너무나도 많다.

아무래도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옛날 가수이기에, 그 혼자서 하는 건 한계가 있겠지만.

내가 작정하고 선생님을 활용하려 들면, 적당히 화제 정도는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허나, 난 그러지 않을 생각이다.

내 눈은 별이와 시시덕거리는 구서연에게로 향했다.

재능 넘치는 작곡가. 미래가 창창하다.

‘희생을 강요할 순 없지.’

GO엔터가 누구보다 옹졸하고 치졸하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괜히 그를 이용했다간 부녀가 같이 그들에게 밉보일 수 있었다.

그들이 대선배고 뭐고 고려하기나 할까.

직접 손을 뻗어 건들지는 않겠지만, GO엔터에선 앞으로 구서연의 참여를 기대할 수 없을 거다.

‘정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만, 우리도 살아야지.

그런데 이건 최후의 방법일 뿐이다.

아직 나는 믿는 구석이 하나 남아 있었다.

이 또한 음방에서 우리의 출연을 막을 때의 얘기.

정상적으로 홍보가 된다면, 다른 방법을 쓸 필요도 없다.

그러나, 베팅을 하라고 한다면, 나는 한쪽에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그들은 내 앞길을 철저하게 방해하려 들 거다.

뻔할 뻔 자. 미래가 눈에 훤히 보일 정도다.

“이제 시간 됐네요. 들어가죠.”

우리는 다 같이 녹음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조잘조잘 떠들던 그녀들의 입도 다물어졌다.

진지한 것과는 별개로 긴장도 될 거다.

별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눈매는 사나워져 있고 입술은 꽉 다물어져 있었다.

잔뜩 경계하는 고양이 같은 얼굴로 녹음실을 둘러보고 있다.

“별아.”

“네.”

난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생방송 아니야. 여러 번 다시 할 수 있고, 정 안 되면 다른 날에 다시 해도 돼.”

“아··· 네. 저 긴장 안 했어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시치미를 떼는 모습에 큭큭, 소리 죽여 웃었다.

그녀의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꽉 다물려 있던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더니,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이제 시작하자. 하던 대로만 해. 파이팅!”

내 응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녹음 부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옆에선 구서연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얘가 훨씬 더 긴장한 것 같다만, 작곡가가 긴장하는 건 별로 상관이 없지.

별이를 디렉팅할 사람은 여기에 두 명이나 있다.

구태성 선생님, 그리고 나.

“한 번 쭉 불러보자. 처음부터 끝까지. 살릴 건 살릴 테니까 실수해도 멈추지 말고 불러.”

“네, 사장님.”

비로소 녹음이 시작됐다.

헤드셋에 손을 얹고 지그시 눈을 감은 김별.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음악에, 그녀의 목소리가 덧씌워진다.

부드럽고 청량하며, 단단하고 호소력 짙다.

솔로 가수의 노래가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중요한 게 바로 귀를 붙잡는 목소리다.

사람들로 하여금 한 명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매력.

그리고 그 매력은, 별이의 목소리에 아주 차고 넘치게 담겨 있었다.

“와···.”

입을 쩍 벌리며 탄성을 내뱉는 서연.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선생님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실소를 터뜨렸다.

“괜히 왔네. 건들 구석이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노래한 김별.

그녀는 부스 바깥의 사정을 모르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아직 긴장이 다 안 풀렸나 봐요. 처음부터 다시 할게요.”

“···!”

“···!”

둘이 경악하는 가운데, 나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지금 노래한 건 그녀의 실력이 100%로 발휘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녀의 노래를 봐줬던 때는 솔로를 위한 보컬로 바꾼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그 뒤로도 그녀의 옆에서 꾸준히 노래를 봐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보컬의 모든 부분이 괄목할 정도로 달라진 건 아니었다.

아무리 솔로용이라고 해도 보컬은 보컬이니, 언제든지 다른 사람들과 목소리가 어우러질 수 있지.

솔로 가수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하는 것처럼, 그리 드라마틱하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존재감은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발전 속도가 괴물 같았지.’

그녀가 연습실에서 했던 말마따나.

걸그룹으로 데뷔한 것보다 나와 함께 나온 게 훨씬 더 좋은 선택지였다.

자칫 잘못했으면, 이런 재능을 가지고 하향평준화 될 뻔했잖아.

“괜찮아. 다시 한번 해보자. 말했지? 실수해도 된다고. 이렇게 다시 하면 돼.”

“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노래했다.

그렇게 녹음이 순식간에 끝났을 때.

서연은 넋이 나간 얼굴로 말했다.

“아빠···. 이번에 진짜 영혼을 끌어서 도와줘야 돼. 알았지? 이거 성공할 것 같단 말이야.”

“걱정 마. 나도 귀 있어.”

“이 음악 마음에 안 들어 했을 땐 언제고.”

“그땐 별이가 없었잖아.”

“···.”

귀여운 두 부녀를 번갈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들은 할 일을 끝마쳤다는 생각에 긴장이 탁, 풀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사정이 다르다.

나중에 이들에게 부탁하지 않으려면 벌써부터 느슨해져서는 안 되지.

녹음을 끝내고 부스에서 나온 별이.

내 앞에 서서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이 꼭 칭찬을 바라며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같아 보였다.

“너무 잘했어.”

“정말요?”

“어. 정말로.”

그녀의 얼굴에 헤실헤실 웃음꽃이 폈다.

녹음실에 들어올 때는 고양이였다가, 녹음을 끝내니 강아지가 됐고, 지금은 아기 같다.

진짜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해야지.

일단 녹음이 끝났으니, 뮤비부터.

홍보는 그 다음이다.

***

뮤비 제작사, ‘플라워 프로덕션’.

밤 11시가 넘어 자정을 향해가는 시간.

이곳은 여느 회사의 낮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쟤네는 데뷔부터 확 떠버렸네.”

휴게실에 모여, TV를 보며 농땡이를 치고 있는 감독들.

TV에는 잘나가는 공중파 예능이 틀어져 있었다.

“노래 좋던데요? 애들 비주얼도 좋고.”

“그러게. 아깝네. 우리가 찍었으면 더 잘 찍을 수 있었는데···. 쯧.”

6명의 파릇파릇한 신인 걸그룹, 레모네이드.

투자를 아끼지 않은 그 대형 뮤비를 놓친 것에 이들은 배가 아팠다.

“형중아, 너도 봤지? 그것보단 내가 더 때깔 좋게 뽑잖아.”

김감독이 유형중 감독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물었다.

이곳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막내, 유형중.

아직 메인이 되어 뮤비를 찍은 적은 없으나, 그가 번뜩이는 감각을 갖고 있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하. 네, 그렇죠.”

유형중은 볼을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띠웠다.

김감독은 소리 없이 혀를 차며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너도 좀만 기다려봐. 기회는 언젠가 올 테니까. 기획사들이 큰 돈 투자하는데 죄다 경력직만 원해서 그런 거잖아. 그러면서 네가 팀에 들어오길 원하고. 그놈들 진짜 왜 이렇게 얍삽하고 쫄보인지 모르겠어.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아는데.”

유형중이 한숨을 삼키며 애써 웃으려 할 때였다.

벌컥!

휴게실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소파에 등을 붙이고 있던 감독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 지금 막 일하러 가려 했다는 듯이.

“그냥 앉으세요. 급한 일 있으면 집에 가라고 해도 안 가시는 분들이. 전 유감독님 때문에 온 거예요. 찾는 분이 계셔서.”

“저요? 이 시간에?”

“네, 이 시간에 다들 여기서 이러고 계신 것처럼.”

“크흠.”

“크흠. 빨리 가라, 형중아. 찾는 분 계신다잖아.”

“아··· 네.”

유형중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직원을 따라갔다.

그리고 아직 안 끊긴 전화를 받았다.

“예, 유형중입니다. 예. 아, 김실장님이시구나? 회사 차렸다고 하셨죠? 축하드려요. 네, 네. 아··· 네? 저···를요?”

잠깐의 통화 동안 유형중의 표정은 드라마틱하게 바뀌어갔다.

탁, 전화를 끊었을 땐, 멍한 얼굴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내가 메인으로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유형중은 고개를 털며 설레는 마음을 잠시 접어뒀다.

콕 집어서 자신에게 맡기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다른 감독들에게는 맡기려 하지 않을 만큼 예산이 작다든가.

그래. 그런 이유가 아니면 말이 안 되지.

유형중은 그렇게 기대를 접어두려 애써 노력하면서도.

헐레벌떡 책상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해봤다.

“···쯧. 그럼 그렇지.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웬만큼 투자하는 회사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심했다.

유감독은 한숨을 푹 내쉬며 음악과 프로필을 다운받았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하니까.’

처음 확인한 것은 프로필 사진이었다.

“···음. 그래도 비주얼은 됐네.”

분위기도 있고, 특히 눈이 그윽하다.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다양한 컨셉이 머리를 스쳤다.

‘이것도 어울릴 것 같고··· 비율도 좋으니까 워킹은 어떻게 찍어도 명품이겠고···.’

유감독은 다시금 스리슬쩍 고개를 내미는 기대감을 꾹꾹 눌러 담았다.

헤드셋을 끼며 무심한 클릭으로 음악을 틀었다.

의자에서 등을 떼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눈은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며, 온신경은 귀에 집중했다.

그렇게 음악이 시작됐고.

유형중의 등허리를 타고 찌르르- 전율이 흘렀다.

프로필 사진 속 김별 주변으로 세트가 생기고 미술품이 놓이고, 구도가 잡힌다.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이 씬마다 다채롭게 바뀐다.

‘···엿 같은 예산!’

떠오르는 이미지를 급하게 수정했다.

조건에 맞추면서도 최대한 퀄리티를 유지시키려 애썼다.

어느새 음악이 끝나자, 유감독은 지체하지 않고 음악을 다시 틀었다.

팽팽하게 돌아가는 머리.

손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이면지를 잡아챘고, 펜을 쉴 새 없이 놀렸다.

눈이 번쩍거리고, 상체는 책상과 닿을 정도로 구부정하게 기울어졌다.

그리고, 탁탁탁! 펜이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가수의 데뷔작, 작곡가의 데뷔작, 그리고 뮤직 비디오 감독의 데뷔작.

재능이 번뜩이는 세 명의 천재가 혼신의 힘을 쏟아내는 작품이 차차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 삼위일체 > 끝

ⓒ 쏘하이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