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망자 색출 작전(7)
네 명의 흑도인 중 하나인 소삼락은 어둠에 잠긴 거리를 소리 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서백의 작전에 따르면 소삼락이 있어야 할 곳은 서(西) 방위의 집.
하지만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에 있지 않았다.
지금 소삼락이 향하는 방위는 동북(東北).
목적지에 도착하자 소삼락은 미행이 없는지 거리를 한 번 살폈다.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그는 동북 방위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지만 소삼락의 안광은 구석구석에 있는 사물을 포착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곧이어 소삼락은 바닥에서 정체불명의 둥근 물체들을 발견했다.
수박처럼 둥그스름한 그것들은 사람의 잘린 목이었다.
“장수와 왕표란 놈들인가.”
북(北)과 동(東) 방위를 책임졌던 두 살수.
모든 게 예측대로였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리 없다. 장수와 왕표는 동북 방위에 있는 방앗간에 잠입했으리라. 자신의 분수도 모르는 채.
“분수를 모르면 죽어야지.”
소삼락이 비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릴 때였다.
“왜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는 겁니까?”
소삼락이 고개를 돌리자 방금까지 아무도 없던 어둠 속 구석에서 인영 하나가 걸어 나왔다.
바로 서백이었다.
“당신은 서쪽 방위에 있어야 합니다. 혹시 방향도 못 찾는 길치입니까?”
“어린 놈이 말이 심하군.”
소삼락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목을 가리켰다.
“이 두 놈은 네 작품이냐?”
“당연한 걸 왜 묻습니까.”
“일행 중에 숨어 있는 명령자를 색출하겠다더니 멀쩡한 놈들 목을 베어서 묻는 말이다. 그래, 명령자는 찾았냐?”
“네.”
“호오, 이 둘은 아닐 테고. 도화광이냐?”
“도화광은 망자일지 몰라도 명령자는 아닐 겁니다. 그의 언행을 따져볼 때 중간에 망자가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놈이 망자라면 네 일행 중 하나가 위험할 텐데?”
“왕이삼 선배 말입니까? 도화광은 송현 선배가 처리했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도화광이 그리 갈 걸 알고 있었냐?”
“당연하죠. 팔방위에 인원 배정을 할 때 일부러 순서를 짜 맞췄습니다. 네 명 다 제 생각대로 움직이는군요. 감사한 일이죠.”
“…….”
서백의 대답은 한 마디도 막히지 않고 거침이 없었다.
“모두 다 함정이라는 소리군.”
“네.”
“그럼 내가 이 집으로 온 것도 네 함정이냐?”
“맞습니다.”
“왜 이런 함정을 판 거지?”
“몰라서 물으십니까? 눈앞에 있는 명령자와 독대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집안에 있는 자는 서백과 소삼락 둘뿐.
즉 서백이 누굴 지목하는지는 뻔했다.
무덤덤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소삼락이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하하하! 내가 망자라고? 증거라도 있냐?”
“있습니다.”
“웃기는 소리…….”
“당신이 얼굴에 쓰고 있는 인피면구입니다.”
“……!”
순간 소삼락의 얼굴이 미소가 싹 사라지며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인피면구(人皮面具).
죽은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겨서 만든 가면.
소삼락은 인피면구를 써서 진짜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방주에 탄 이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사실을 서백이 폭로한 것이다.
“이건 절강성의 장인 놈을 고문해서 특별 제작한 인피면구다. 밀랍으로 붙이면 감쪽같아서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
여유롭던 소삼락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게 변했다.
“간단합니다.”
서백이 검지로 소삼락의 얼굴을 가리켰다.
“수염이 자라지 않더군요.”
“……!”
“처음 방주에 탔을 때 당신을 본 기억이 없는데 중간에 몇 번 얼굴을 목격했습니다. 도중에 얼굴을 역용술로 바꾸고 있다는 얘기죠.”
“…….”
“그런데 수염이 조금도 자라지 않는 것은 물론 매번 볼 때마다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더군요.”
서백의 말이 정곡을 찌르는지 소삼락은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없었다.
“수염은 시간이 지나면 길어져야 정상인데 설마 덥수룩한 정도를 유지하려고 매일 조금씩 자를 리는 없겠죠. 또한 그 모양이 판박이처럼 똑같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
“즉 당신 턱의 덥수룩한 수염은 가짜라는 뜻. 인피면구를 쓰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
소삼락은 뱀의 눈빛으로 서백을 노려봤다.
그의 이름 소삼락은 가명이었다.
애초에 이름이 수십 개인지라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를 지경.
이름뿐 아니라 소삼락은 얼굴도 매번 바뀌었다.
그는 자신이 죽인 자의 얼굴 가죽을 벗겨서 인피면구로 만드는 버릇이 있었다.
청부살인을 할 때면 이전에 죽인 자의 인피면구를 써서 얼굴을 바꾸고 유유히 현장을 탈출하곤 했다.
아무도 그의 진짜 얼굴을 모른다는 살수!
그런데 약관도 안 된 소년이 한눈에 비밀을 알아차릴 줄이야.
소삼락이 분노한 것도 당연했다.
계속해서 서백은 소삼락의 정체를 폭로했다.
“방주가 출항하던 날 허겁지겁 방주에 탄 서생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모습이 보이지 않더군요.”
“…….”
“바로 당신이 서생입니다. 그동안 수로채와 흑도인들을 망자로 만들다가 방주에서 탈출할 때 인피면구를 쓰고 우리 일행을 따라온 것입니다.”
“눈썰미 하나는 제법이군.”
스윽. 소삼락이 허리춤의 환도로 손을 가져갔다.
“내가 서생인 줄 알았다면 지금처럼 둘만 있는 일은 피했어야지?”
“뭐가 무서워서 피합니까. 당신과 독대하려고 일부러 작전을 짰는데요.”
“뭐라고?”
“명령자의 목을 베고 싶었거든요. 송현 선배도 기꺼이 응해 주셨죠.”
“…….”
“당신이 명령자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모릅니다만 상관없습니다. 목을 베면 알게 될 테니까요. 단순무식한 방법이지만 뭐 어떻습니까? 때로는 단순한 게 최고죠.”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도록 부릅뜨고 서백을 노려보던 소삼락이 어느 순간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세 치 혀 한번 잘 놀리는구나!”
잠시 천정을 보며 광소하던 소삼락이 얼굴에서 미소를 싹 지우며 말했다.
“그래. 나는 명령자이자 절강성 최고의 살수다. 너 같은 애송이가 내 검초를 받아 낼 수 있을 성싶으냐?”
“네.”
서백이 당연하다는 듯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피면구를 쓰는 것은 실력이 부족해서 얼굴을 숨기고 도망치려는 것 아닙니까?”
“뭐야?”
“명문정파의 무공을 익힐 운도 실력도 재능도 없어서 평생 흑도의 살수로 살아온 자가 대수로울 것은 없습니다.”
“이 새끼가 진짜…….”
“그래봤자 고작 일개 살수입니다.”
“죽어라, 이 개자식!”
소삼락이 벼락처럼 달려들어서 순식간에 환도를 네 번 후려쳤다.
상대의 양팔과 양다리를 노리는 도법.
네 번의 검초 중 하나라도 당한다면 치명상을 입어서 더는 운신할 수 없게 된다. 상대의 신법을 봉쇄한 다음 최후의 일격으로 목을 베는 것이다.
원래 소삼락은 검법이 표홀했지만 서생에서 중년의 도검수로 정체를 바꾼 뒤 검은 버리고 환도를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손에 익은 검법 대신 임기응변의 수법을 쓴 것이었다.
검법이든 도법이든 상관없었다.
약관도 안 된 꼬마쯤은 일 초도 못 버티고…….
까까까깡.
귀청이 찢어져라 터진 검성에 소삼락은 깜짝 놀랐다. 동시에 그는 손아귀가 저릿해서 하마터면 환도를 놓칠 뻔했다.
서백이 대검을 들어서 그의 검초 네 번을 막은 것이었다.
그것도 딱 한 번의 초식만으로!
단 한 번 검을 부딪쳤을 뿐인데 소삼락은 연속 공격을 펼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그는 과거 무당파의 최고 고수와 검을 섞은 적이 있었다.
당시 단 일 초식에 패배를 직감하고 재빨리 도망쳤다. 무당파 고수가 보기 드문 호인이라서 망정이지, 법도를 따지는 다른 명문정파의 고수였다면 끝내 추격해서 소삼락의 목을 베었으리라.
그런데 지금 약관도 안 된 소년의 검초가 그때 무당파 고수와 필적하지 않은가?
대체 무슨 무공을 익혔길래……!
“네놈… 정체가 뭐냐… 무당파? 화산파? 아니, 두 문파의 검법이라기엔 지나치게 강맹해… 대체 정체가…….”
“사천 석가장입니다.”
서백의 목소리가 유난히 싸늘하게 들리는 찰나, 한 차례 거센 질풍이 소삼락의 전신을 휩쓸었다.
휘이이잉.
이어서 소삼락의 몸에 네 줄의 검광이 박혔다.
파파파팟.
丰
석가검법 제사로(第四路) 봉가소공구(鳳歌笑孔丘).
쩍.
서백의 검이 처음에는 소삼락의 목을, 다음으로 가슴을, 다음으로 단전이 위치한 곳을 가로로 양단했다.
마지막으로 수직으로 벤 검이 어깨죽지에서 사타구니를 거치며 소삼락을 세로로 양단했다.
여덟 개의 소삼락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이어서 바닥과 충돌하자 소삼락이었던 고깃덩이는 수십수백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철푸덕, 철퍽, 철퍽.
석가검법에서 가장 잔인하고 패도적인 검로 중 하나인 제사로.
마지막 검획은 원래 정수리를 베는 것이었지만 서백은 소삼락의 머리를 보존하기 위해 검을 살짝 비껴가게 했다.
혈선충의 심맥을 가르지 않고 잠시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곧이어 소삼락의 잘린 목이 입에서 혈선충을 내뿜었다.
쐐애애액…….
그러나 혈선충 세례는 힘없이 날아오다가 축 늘어졌다.
석가검법 제사로는 단지 망자의 목을 베서 무력화 시키는 것을 넘어서, 망자를 해체해 버리는 검로였으니 당연한 일.
“끄윽… 끅끅…….”
소삼락이 목울대를 끅끅거리며 간신히 말했다.
“눼에 노오무으은… 주거따아…….”
“그 꼬라지로 말을 하다니 노력이 가상하군.”
서백은 창가로 갔다.
거리에서 혈귀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어서 조종해 봐라. 어서.”
“끅끅… 끄윽끅…….”
소삼락이 정신 조종을 하는지 혈귀들이 서백이 있는 집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혈귀들의 움직임은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굼뜨고 비틀거리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모습.
“명령자라는 것도 고작 이 정도였군.”
“눼에 노오옴…….”
“그만 죽어라.”
서백이 검으로 혈선충의 심맥을 찍었다.
퍽. 꽥.
심맥이 검에 찍히자 소삼락의 잘린 목이 두 눈을 부릅뜬 채 혈선충을 혀처럼 길게 빼물었다.
그러자 느리지만 집을 향해 이동하던 혈귀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이어서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명령자의 정신 조종이 끊긴 것이었다.
“확실히 정신 조종은 가능한 것 같군.”
반면 방금까지 혈귀들의 움직임으로 볼 때 망자 하나하나를 따로 조종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또한 조종한다고 해도 망자의 능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 보통의 혈귀에 불과했다.
다만 수로채처럼 피를 흡수했을 경우는 동작이 신속할 뿐더러 용력이 높아졌을 테니 조심하는 게 좋으리라.
또한 수로채는 서로 몸을 얽어서 다리를 만들지 않았던가. 명령자가 조종하는 망자가 어느 정도 지능을 가지는지 좀 더 조사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하나 더.
혈귀들의 숫자가 수천수만에 이를 때는 명령자를 특히 주의할 것. 대규모의 혈귀떼에게 포위당하면 끝장이니까.
명령자를 색출해서 정신 조종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보려고 했던 작전은 성공리에 끝났다.
서백은 검끝으로 조심해서 소삼락이 얼굴에 쓴 인피면구를 벗겨냈다. 왠지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또 시간을 소모했군.”
방주의 최종 도착지 낙양까지 가지 못하고 방주에서 내렸으니 그만큼 소림사행이 늦춰진 셈이었다.
그러나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명령자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얻었으니까.
“참, 도화광은 망자였으려나, 아니면 그냥 산 사람이었으려나?”
서백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가서 물어보자.”
서백은 송현과 왕이삼이 있을 장소를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