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추격대의 비밀(5)
소림과 무당 같은 명문정파에 비해 역사가 짧은 철장방은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다.
일단 명문정파보다 심후하지 못한 내공심법을 보완해야 했다.
하지만 수대에 걸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희대의 천재가 나오지 않는 이상 소림, 무당, 화산, 곤륜 등 내로라하는 문파의 심후한 내공심법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철장방은 한 사파와 전쟁을 벌여서 멸문시킨다.
그리고 입수한 사파의 비급에서 철장방의 내공심법을 보완할 방법을 깨닫는다.
파괴력을 배가하기 위한 사파의 외공 수법.
바로 약물을 쓰는 것이었다.
각종 약재와 독극물을 조합한 약물에 두 손을 담근 다음 손바닥으로 돌벽을 치며 수련한다. 십 년 이상 거듭하면 손바닥은 강철처럼 단단해져서 바윗덩이도 두부처럼 으깨는 경지에 오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철장방은 사파의 외공에다 철장방의 내공심법을 함께 운용하는 수법을 개발했다. 철장방이 원했던 필살의 무공이 완성된 것이다.
바로 철장비뢰공(鐵掌飛雷功)의 탄생이었다.
철장방은 철장비뢰공의 정체를 철저히 숨겼다.
언젠가 중원무림을 놓고 다른 명문정파를 상대할 때 그들을 충격에 빠뜨리려는 계책이었다.
이후 철장비뢰공은 철저히 방주에게만 전수되었다. 무림에서 가장 정보가 해박하다는 소림사도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할 정도였다.
천리형은 어려서부터 방주인 아버지의 엄격한 지도에 따라 철장비뢰공을 수련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꼬마가 지금 철장비뢰공을 입에 담은 것이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손일서가 훔친 비급이 바로 철장비뢰공이었다.
설마 손일서가 타문파의 무림인에게 철장비뢰공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말인가?
안 그래도 괘씸한 터에 만약 그랬다면 더욱 용서할 수 없는 일!
“네놈이 어떻게 철장비뢰공을 알고 있지? 손일서 놈이 비급을 보여 줬냐?”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천리형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아니오. 석가장에서 봤습니다.”
“석가장?”
“저는 석가장 출신입니다. 소림사의 장격각에 비할 수준은 못 되나 석가장의 서고에는 중원무림의 모든 무공이 기록되어 있죠.”
천리형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석가장? 그런 곳이 있었나?
지금까지 석가장이라는 세가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었다. 그렇다고 서백이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서백이 천리형의 생각을 읽고 말했다.
“석가장은 사천 서쪽에 외따로 있는 세가라서 들은 적이 없을 겁니다.”
“흥! 그래서, 그 대단한 세가가 네놈을 중원무림에 파견한 것이냐?”
“비슷합니다.”
“소원이라면 철장비뢰공으로 죽여 주지.”
“제가 말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철장비뢰공을 쓸 생각 아니었습니까?”
척.
서백이 검을 쥐고 있는 천리형의 왼손을 가리켰다.
“방도들을 해친 검법이 제법 표홀하지만 원래 실력이 아닌 듯하군요. 방도들은 망자가 된 충격에 당신의 일검을 피하지 못했을 뿐.”
“그래서?”
“당신은 오른손잡이입니다. 지금 왼손에 검을 든 것은 좌수검법을 수련해서가 아닙니다. 왼손잡이인 척 흉내내며 저를 속이다가 불시에 오른손으로 철장비뢰공을 시전할 속셈이 아닙니까?”
“……!”
“상대 눈에 빤히 보이는 건 병법이 아니죠.”
“…꼬마 놈이 눈썰미 하나는 제법이군.”
서백이 모든 술책을 꿰뚫어 보자 천리형의 표정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천리형이 왼손에 든 검을 서백처럼 땅에 수직으로 꽂았다. 그리고 황포를 휘날리면서 서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쌍장에 죽는 게 소원이라면 들어 주마!”
소매자락에서 천리형의 두 손바닥이 빠져나왔다.
그의 손바닥은 마치 두 개의 철사위처럼 검은 색을 띠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철장비뢰공의 수련이 끝나면 약물에 담가서 독기를 제거했기 때문에 손바닥 전체가 흑색으로 물든 것이었다.
평소에는 무림인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장갑을 착용하고 다니는 천리형.
그러나 지금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검은 쌍장을 본 자는 모조리 죽여서 입막음했으니까.
“죽어랏!”
천리형이 쌍장을 각각 서백의 가슴팍과 복부를 향해 내질렀다.
쉬쉭.
마치 검은 천 조각 두 개가 허공에 떠서 날아드는 것 같은 진풍경.
천리형의 쌍장은 그냥 맞아도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부러질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철장비뢰공의 오랜 수련으로 내공이 실린 쌍장의 위력은 소림의 장법에 비할 만큼 파괴적이었다.
그런데 서백은 피하기는커녕 코웃음을 쳤다.
“확실히 위력은 대단해 보이는군요.”
쌍장이 서백의 가슴팍과 복부를 박살내 버리려는 찰나, 서백이 몸을 비틀며 기이하게 움직였다.
스스스스.
그러자 천리형의 쌍장은 허공을 짚고 말았다.
천리형은 깜짝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서백이 있는 곳이었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감쪽같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닌가?
천리형은 얼른 쌍장을 회수했다. 끝까지 내질렀다가는 쌍장이 자신의 반대쪽 손목을 분질러 버릴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억지로 쌍장의 방향을 바꾸자 양팔의 근육이 놀라서 뒤틀리고 경련이 일었다.
“크윽!”
그때 천리형의 등 뒤에서 서백의 목소리가 들렸다.
“철장비뢰공은 허공을 쳐서 상대를 쓰러뜨리는 비법이라도 있는 모양이죠?”
맹수가 초식동물을 갖고 노는 듯한 말투.
“받아랏!”
천리형이 몸을 뒤집으며 쌍장을 내질렀다.
병장기를 쓰지 않는 권각술, 그중에서도 장법은 상대에게 최대한 근접해야 되기 때문에 역습당할 위험이 높은 고난도의 무공이다.
하지만 철장비뢰공은 단순히 장법의 위력을 높이는 무공이 아니었다.
철장방 비전의 신법을 가미하여 상대에게 순식간에 접근한 뒤 장법으로 마무리 짓는 수법.
철장비뢰공이 외공과 내공을 조화롭게 수련해야 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부웅 부웅.
철장방의 신법과 조화된 철장비뢰공의 위력은 천리형의 옷소매에서 바람소리가 들릴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나 서백은 살짝 몸을 비틀면서 천리형의 쌍장을 재차 허공으로 흘려 버렸다.
“이런 미꾸라지 같은 놈이……!”
천리형은 쉴 새 없이 쌍장을 내질렀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천리형의 쌍장이 적중하려는 찰나 서백의 장포는 구름처럼 흩어지며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계속해서 비껴갔다.
결국 수십 차례 쌍장을 뻗었지만 단 한 번도 타격하지 못한 천리형은 뒤로 뛰어서 세 걸음을 물러난 뒤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헉…….”
“제아무리 패도적인 장법이라도 상대를 가격하지 못하면 망치로 연기 때리기나 마찬가지인 법입니다.”
“네놈…….”
천리형이 분노를 못 참고 이를 갈 때, 무엇 때문인지 과거 아버지에게 철장비뢰공을 전수받을 때가 생각났다.
당시 아버지는 이렇게 당부했다.
-철장비뢰공은 외공과 내공이 모두 경지에 올라야 하니 절대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아라!
그러나 천리형은 나이를 먹으면서 내공 수련은 멀리하고 외공 위주로 수련을 했다.
혈연을 중시하는 문파나 세가와는 달리 천리형이 반드시 철장방의 방주를 물려받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파의 외공은 속성으로 수련이 가능하지만 내공심법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성격 급한 천리형으로서는 기다릴 수 없었다.
-먼저 외공을 완성하고 방주가 된 다음 내공은 이후에 수련해도 충분하다.
한시라도 빨리 강해져서 철장방을 휘어잡는 것이 급선무!
그리고 지금 천리형은 생전 처음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만약 외공과 내공을 동등하게 수련했더라면 오늘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텐데…….
세상에는 후회할 때가 가장 적시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무림은 다르다.
무림에서 후회할 때는 이미 목이 떨어지는 순간인 것이다!
“시시하군요. 십성으로 펼친 철장비뢰공의 위력이 고작 그겁니까?”
서백의 한 마디에 천리형은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 개새끼… 죽어랏!”
천리형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서백의 복부로 쌍장을 내질렀다.
쉬이이익.
소맷자락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로웠다.
일생의 모든 공력을 담은 철장비뢰공 쌍장!
천리형의 지금 동작은 약점 투성이였다.
서백을 요절내겠다는 생각만으로 쌍장을 뻗었기 때문에 전신의 모든 급소가 드러날 만큼 자세가 무너진 것이다.
자신의 약점은 생각하지 않는 동귀어진의 수법.
만약 이번에도 서백이 쌍장을 피한다면 온힘을 쏟은 천리형은 허무하게 패배하리라.
그런데 서백이 쌍장을 피하지 않는 게 아닌가?
“이제야 좀 십성 같아 보이는군요.”
텅. 서백이 땅바닥에 발을 꽂으며 진각을 밟았다.
동시에 천리형과 똑같은 동작으로 그를 향해 쌍장을 뻗었다.
스스스스.
다음 순간 서백과 천리형의 쌍장이 박수를 치는 것처럼 허공에서 서로 부딪쳤다.
쩌억.
-이겼다!
천리형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철장비뢰공의 위력만큼은 자신했지만 서백이 신법으로 피해 버리니 방법이 없던 찰나, 서백이 스스로 나서서 쌍장으로 맞설 줄이야!
약물로 단련된 천리형의 쌍장은 바위도 두부처럼 뭉개 버렸다. 제아무리 내공이 심후한 고수라고 해도 근골이 바위보다 단단할 수는 없는 법.
-먼저 네놈의 양손을 뭉갠 뒤 양팔을 분질러 주마!
그때였다.
천리형은 무언가 따끔한 기운이 양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내공 대결?
이상했다. 철장비뢰공을 맨손으로 받았으니 서백의 손목은 이미 분질러졌어야 되는데…….
대체 어떻게?
이윽고 양손바닥을 통해 서백의 내공이 흘러왔다.
눈앞의 꼬마는 약관도 안 된 나이.
대충 잡아도 천리형의 나이가 두 배는 많았다. 내공보다 외공을 주로 수련했지만 십여 년 넘게 쌓인 내공은 무시할 수 없을 터.
천리형은 내공 대결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흡. 천리형은 숨을 멈추며 내공을 쏟아 냈다.
순간 서백의 양손바닥에서 내공 진기가 거친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아니, 이건 해일이었다!
-저 나이에 이토록 심후한 내공이…….
곧이어 서백의 내공 진기가 천리형의 쌍장을 뒤덮는 찰나, 천리형은 입을 딱 벌리며 경악하고 말았다.
마치 한겨울에 강의 얼음을 깨고 손을 집어넣은 것처럼 양손에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얼음과 같이 차가운 내공으로 상대의 기혈을 굳혀 버리는 내공심법.
-빙공(氷功)?
과거 중원 무림은 빙공을 쓰는 문파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수법이 매우 악독했기 때문에 빙공을 전수하는 문파는 사파로 몰아서 무림의 공적으로 낙인 찍었다.
이후 빙공은 수십 년 전에 사라져서 중원 무림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약관도 안 된 소년이 빙공을 출수하다니?
문득 짚이는 게 있었다.
중원 무림과 달리 아무 방해 없이 빙공을 전수하고 수련하는 곳.
그곳은 바로……!
어느새 천리형은 양손의 감각이 사라져 있었다.
냉랭한 빙공 진기는 빠른 속도로 그의 양팔을 타고 올라와 전신의 혈맥으로 퍼졌다. 천리형의 전신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천리형은 추위를 못 이기고 이빨을 딱딱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덜덜 떨며 말했다.
“이건 중원의 무공이 아냐. 이건 서장의 무공…….”
“서장이라뇨. 누가 들으면 서장이 천하 무공의 근원지인 줄 알겠습니다.”
“그, 그럼 대체 어떻게…….”
“말했잖습니까. 저는 석가장 출신이라고요.”
서백이 빙공만큼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석하게도 석가장의 무공 중에 장법은 없습니다. 이건 석가장의 석가심결입니다.”
“……!”
순간 천리형은 귓가에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정말 소리가 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서 일어난 변화이기 때문에 천리형 혼자만이 실제 소리가 난 것처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쩌저저적!
혈맥을 타고 몸속을 파고든 빙공 진기가 천리형의 심장을 돌덩어리처럼 꽝꽝 얼려 버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