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촉도관으로 가는 길(4)
땅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숲속을 뒤흔들었다.
곧이어 나무 위쪽으로 멀리 보이는 하늘에서 새까만 버섯구름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푸르르르.
망자떼를 보고도 놀라지 않던 당나귀들마저 투레질을 하며 거칠게 숨을 토했다.
“저게 대체 뭐야?”
왕이삼이 경악하며 신음을 흘리다가 서백에게 물었다.
“자네 짐작 가는 것 좀 없나?”
“짐작은 가지만 아직 확실하진 않습니다.”
“그게 뭔데?”
왕이삼이 재촉했지만 서백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일단 앞서간 마차들을 따라잡죠.”
“뭐라고? 사천당문에서 다른 마차 일은 상관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아는 게 더 중요합니다.”
“…….”
왕이삼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적한 숲속에서 때 아닌 폭발이라니. 어떻게 보면 망자떼가 나타난 것보다 더 괴이한 일!
지금까지 서백이 내린 판단은 한 번도 어긋난 적 없었다. 왕이삼은 서백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하세.”
“서두르죠.”
서백과 왕이삼은 당나귀 고삐를 쥐고 이동을 재개했다.
* * *
하늘을 뚫을 것처럼 솟아 있던 버섯구름은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만큼 폭발이 엄청났다는 뜻.
반 시진이 지났을 때, 드디어 멀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서백과 왕이삼 이전에 떠난 무림인들 삼개조 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세 대의 마차.
눈빛이 형형한 여섯 명의 무림인.
서백은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와 왕 선배가 마차 두 대를 끌고 있으니 출발한 순서대로 따져서 육 번, 칠 번, 팔 번 마차로 보면 되겠군.’
그렇다면 폭발한 것은 그 앞에 가던 오 번 마차일 터.
‘아니, 마차 한 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엄청난 폭발로 짐작해 볼 때 최소한 마차 두 대가 한꺼번에 폭발에 휘말렸을 것으로 생각됐다.
‘그럼 폭발한 것은 사 번과 오 번 마차.’
왕이삼이 무림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그러자 무림인 중 양쪽 볼에 붉은 글씨로 문신을 새겨 넣은 남자가 고갯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뭘 물어봐? 두 눈깔이 박혔으면 직접 가서 볼 일이지.”
남자는 흉포한 외모와 무례한 말투로 볼 때 정파 무림인이 아니라 사파인으로 보였다.
서백과 왕이삼은 마차를 세워 둔 뒤 앞으로 갔다.
그런데 무림인들을 지나치는 순간 둘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숲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왕이삼이 신음성을 흘렸다.
마차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숲길은 온데간데없었다. 구불구불 뻗어 있는 숲길이 중간에 갑자기 뻥 뚫린 공터가 되어 있었다.
아니, 공터라기보다는 구덩이였다.
중앙이 아래로 둥글게 푹 파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국그릇을 연상케 하는 모습.
서백은 고개를 내밀어 구덩이 밑을 쳐다봤다.
마차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예상대로군.’
그렇게 엄청난 폭발이 있었으니 마차는 물론 무림인들도 산산조각이 나서 검은 연기로 산화했으리라.
문제는 뒤에 남은 마차들이었다.
구덩이는 크고 깊지만 일류 수준의 경공을 지닌 무림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설령 경공이 형편없더라도 아래로 내려가서 반대편으로 올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마차가 걸림돌이지.’
당나귀 두 마리로는 구덩이 아래로 내려간 뒤 다시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밧줄도 없으니 반대편에서 마차를 끌어올리는 방법도 불가능.
게다가 구덩이 가장자리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군.’
불탄 나무들의 잔해가 구덩이 가장자리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마차가 지나갈 틈이 없었다.
무림인들이 여기서 멈춰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런 걸 두고 뭐라고 하더라? 맞다, 진퇴양난이었지! 하하하하!”
기분 나쁜 사파인의 웃음.
하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서백과 왕이삼의 마차를 합해서 도합 다섯 대의 촉도관행 마차들은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었다.
“마차는 두 대인데 사람은 둘뿐이군. 다른 두 놈은 어디 갔냐?”
사파인이 묻자 서백이 대답했다.
“망자에게 당했습니다.”
“망자? 우리가 지나갈 때 망자는 못 봤는데?”
“여기 숲은 망자밭입니다. 산 사람의 핏물이 뿌려지자 망자가 되살아났습니다.”
서백의 말을 듣고 무림인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사파인은 놀라기는커녕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사천당문이 은원보 두 개를 선뜻 내주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라니까.”
그가 서백과 왕이삼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망자판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도움 될 놈들은 아닌 것 같군.”
눈앞에서 대놓고 무시당하자 왕이삼이 발끈했다.
“뭐라고? 사파의 쓰레기가 어디서 망발이냐?”
“깨끗한 줄 아는 행주보다 쓰레기가 나은 법이지.”
“뭐야? 이놈이 정말…….”
그때였다. 땅바닥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서백이 척척 걸어가더니 무언가를 집어 들며 말했다.
“마차가 폭발한 증거를 찾았습니다.”
“……!”
그 말에 모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림인들이 서백의 주위에 둥그렇게 모였다. 드잡이질을 하려던 왕이삼과 사파인도 서백 옆으로 갔다.
“이게 증거입니다.”
서백이 집어든 물건은 숯처럼 새까맣게 타 버린 나무토막이었다.
“뭐야? 불탄 나무 아냐?”
“맞습니다.”
“화재가 났으니 불탄 나무가 증거라는 거냐? 세 살배기 어린애도 맞추겠다!”
사파인이 비웃으며 말할 때, 서백이 나무토막을 슬쩍 옆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햇빛 한 줄기가 나무토막에 반사되어 사파인의 눈을 비췄다.
“큭, 뭐하는 짓이냐?”
“여기 검날이 박혀 있습니다.”
무림인들이 다시 보자 서백 말대로 부러진 검날이 나무토막에 박혀 있었다. 서백은 검날에 햇빛을 반사시킨 것이었다.
“이건 그냥 나무토막이 아닙니다. 마차가 폭발하고 부서진 잔해입니다.”
“마차 잔해라고? 그럼 검날이 왜 거기에…….”
“망자들과 싸우다가 부러졌겠죠.”
“……!”
서백의 얘기는 들을수록 놀라웠다.
망자가 곳곳에서 출몰하는 숲길. 그렇다면 촉도관행은 지옥 한복판을 뚫고 가는 길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충격을 받은 무림인들이 입을 다물고 침음하고 있을 때, 서백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구덩이를 지켜봤다.
‘역시 짐작한 대로다.’
서백은 모든 일의 전후 사정을 알아차렸다.
마치 화상이 그리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폭발 때 있었던 일이 서백의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사천당문은 이런 일이 생길 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촉도관행을 계획한 사천당문.
스무 명의 무림인들은 발에 족쇄가 채워진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지옥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던 것!
“왜 그러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속 시원히 좀 말해 봐라.”
왕이삼이 궁금함을 못 견디고 물었다.
“이 모든 일은 사천당문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서백은 마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옮기고 있는 물건은 폭약입니다.”
“뭐라고? 폭약?”
“네.”
왕이삼을 비롯한 무림인들은 깜짝 놀랐다.
반면 서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무림인도 하나둘 있었다. 그들 역시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촉도관으로 가는 길, 이런 한적한 첩첩산중 숲속에서 달리 폭발할 물건이 있을 리 없습니다. 폭발은 우리가 옮기고 있는 마차 때문입니다. 마차에 실린 것은 폭약입니다.”
서백이 자신의 추리를 설명했다.
그러자 무림인 중 청의를 걸치고 얼굴이 여인처럼 흰 청년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건 잘 알겠다. 그런데 폭약이 왜 폭발했지?”
“불씨가 옮아붙었을 겁니다.”
서백은 등에 멘 검을 들어서 궤짝을 덮고 있는 검은 천을 들춰 보였다.
“촉도관행이 출발할 때 사천당문은 세 가지 주의 사항을 말했죠. 폭약이 터질지 몰라 우려해서입니다.”
“……!”
무림인들은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백의 말을 듣고 나니 확실히 그랬다.
사천당문이 지시한 주의 사항. 검은 천을 걷지 말 것, 불을 밝히지 말 것. 모두 폭약 옆에서 금지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이 검은 천은 방수 처리가 되었군요. 폭약에 습기가 스며들지 않게 한 것이겠죠. 하지만 한 가지 효과가 더 있습니다. 불씨를 막는 것입니다.”
“…….”
“불을 밝히지 마라, 연초도 피워서는 안 된다, 왜 그런 주의 사항을 말했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그럼 다른 마차를 신경 쓰지 말라고 한 것도?”
청년이 묻자 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쇄 폭발을 피한 것입니다. 마차들이 가까이 붙을 경우 한 대가 폭발하면 연이어 폭발할지 모르니까요.”
“……!”
잔뼈가 굵은 무림인들도 이번만큼은 침을 꿀꺽 삼켰다.
흔적도 없이 마차를 날려 버린 위력의 폭약.
폭약이 터지면 피해가 막심할 거라는 걸 사천당문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괴이한 주의 사항을 지키라고 단단히 명령했던 것이다.
마차 한두 대쯤은 잃을 것을 감안한 술책!
무림인들이 침음하고 있자 사파인이 킬킬대며 말했다.
“뭘 그리 놀라냐? 사천당문 놈들이 한두 놈 죽더라도 몽땅 죽지 않게 배려해 줬구만. 아주 고마운 놈들이군, 아주 고마워!”
사파인의 빈정거림에 모두 얼굴을 찌푸릴 때, 서백은 자신이 추리한 것을 계속 설명했다.
“마차 한 대, 어쩌면 두 대는 여기서 망자들과 마주쳤을 겁니다. 무림인들은 검을 들고 싸웠겠죠. 아시다시피 망자는 목이나 팔다리를 베도 잘 죽지 않습니다. 무림인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다가…….”
서백이 불탄 나무토막을 들어 보였다.
“검은 천을 찢고 폭약이 담긴 궤짝을 쪼개 버린 겁니다. 이 검날은 그때 부러진 것입니다.”
“폭약이 흘러나왔겠군?”
“네. 폭약이 공기에 노출되자 폭발한 것이죠.”
무림인들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백의 말은 논리정연하고 앞뒤가 들어맞아서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탄 나무토막을 보고 그 모든 일을 추리해내다니…….
무림인들은 이제 서백을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약관도 안 돼 보이는 꼬마가 대단하군.
그러고 보니 서백도 사천당문이 뽑은 스무 명의 무림인에 들어가지 않는가?
즉 검법 또한 상당한 수준이라는 뜻.
“이제 이 길은 마차가 지나가지 못합니다.”
누가 봐도 알 법한 너무나 당연한 말.
그러나 서백의 입에서 나오자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림인들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 되지?”
왕이삼이 묻자 서백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군요.”
그때 청의를 걸친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실은 다른 길이 하나 있소. 숲에 갈림길이 하나 있는데 그쪽으로 빠지면 촉도관으로 갈 수 있소.”
“……!”
낙담하던 무림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백이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물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쯤 되돌아가면 숲속에 나 있는 짐승길 말입니까?”
“맞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오는 길에 짐승길이 있길래 봐 두었습니다.”
짐승길은 산에서 짐승들이 지나다니느라 수풀이 밟혀서 죽는 바람에 만들어진 길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니 숲을 지나치면서 무림인들 중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서백은 그 길을 발견했고 또 기억하고 있었다.
“저는 그 길로 가겠으니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서백이 부탁하자 청년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자네 덕분에 우리 모두 살았군!”
왕이삼이 호탕하게 웃으며 청년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청년이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감사는 나중에 하셔도 늦지 않소.”
청년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잠시 후. 왕이삼을 포함한 무림인들은 청년이 안내한 길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