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85화 (18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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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책 두 놈을 처리하는 건 간단했다.

잡범이면 잡범인 대로, 멸망교단 말단이면 그건 그것대로 큰 위협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기습을 감행한 도진이 두 놈들 저승길로 보내는 데 할애한 시간은 단 4초였다.

‘역시 멸망교단 놈들이군.’

혹시나 싶어 시체를 조사해 보니 가슴팍에 멸망교단을 상징하는 검은 안개꽃이 새겨져 있었다.

‘저주 때문에 새겨진 건 아니야.’

진짜 교인을 증명하는 문신이다. 하긴 이런 음모를 꾸밀 때 멸망교단은 웬만하면 하청을 쓰지 않는 편이긴 했다.

보안 문제나 그런 게 아니라 ‘멸망을 부르는 영광스런 행위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이것만 봐도 놈들이 제대로 돌아 버린 집단인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이 사람들부터 옮겨야겠어.’

도진은 얌전히 잠든 상태로 운반되고 있던 사람들부터 옮기기로 했다.

한 놈은 저격으로, 한 놈은 무얼 해 보기도 전에 근접해서 머리통을 날렸다지만, 어쨌든 놈들 은신처 근처에서 전투를 벌였다.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는 다른 놈들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다.

‘나 혼자 빠져나가는 거야 문제 없겠지만, 이 사람들까지 챙기는 건 불가능할 테니.’

도진은 상품 운반용 철제 수레에 시체 두 구를 추가로 얹고 자리를 이탈했다.

* * *

도진이 향한 곳은 커클리가 있는 곳이었다.

“이, 이게 다 뭐야!”

식사를 하던 중이었는지 입가에 기름기가 흐르는 모습으로 나타난 커클리는 도진이 끌고 온 수레를 보고는 기겁을 했다.

“조사하다 사람을 거래하는 현장을 목격해서요.”

“그럼 이 머리 없는 놈들이……?”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커클리는 골치 아픈 눈을 했다.

“젠장, 다 죽은 건가? 이러면 안 되는데…….”

“공범들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놈들 아지트도 알고 있고요.”

“공범들이 살아 있다고 했소? 그거 잘됐군!”

커클리가 반색했다.

한데 공범에 관한 이야기만 한다.

“공범이라고 해 봐야 소규모 공급책 정도에 불과하고 진짜는 따로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걱정 마시오. 공범 놈들을 타고 올라가다 보면 노예를 유통하는 죽일 놈들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할 테니 말이오.”

도진은 다시 한번 멸망교단의 아지트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후우, 그래 봐야 이런 놈들은 다 점조직화 돼서 움직이니 뿌리를 뽑긴 힘들겠지만 말이오. 정말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같은 제국인을 노예로 부린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보시오?”

대화가 겉도는 수준이 아니었다.

뭔가 느낀 도진은 아예 대놓고 말해 봤다.

“이 죽은 두 놈은 멸망교단 놈들입니다. 은신처도 알아냈으니 가서 털죠?”

멸망교단을 언급하자 황금빛 파문이 커클리의 눈앞에 일렁였다.

‘세계율의 빛.’

어떤 사유로든 개연성이 무너지려 할 때 등장하는 시스템의 개입이다.

‘설마 지금 시점에 멸망교단의 정체가 NPC에게 알려지는 걸 아예 막아 둔 건가?’

이런 경우는 도진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유저의 개입이 아니면 절대 알려질 일이 없는 정보의 경우 NPC에게 전달 자체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소리를 들어보긴 했지만, 세계율의 빛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걱정 마시오. 당신 이름은 제대로 보고서에 적어 넣을 테니까.”

동문서답을 계속하는 커클리를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혼자서 쳐들어가는 건 미친 짓인 거 같아서 최소한 모험가 길드랑 영주까지는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노예 거래를 일삼는 조직을 소탕한다는 명분만 있어도 그 정도는 동원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예 이런 식으로 막혀 있을 줄이야.

‘그러면 성황청에 말해도 소용이 없는 거잖아.’

괜히 그쪽을 움직이면 멸망교단을 잔뜩 자극하게 될까 봐 갈팡질팡했는데 그게 다 소용없는 고민이었다니.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상상도 못 했던 벽 앞에서 도진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 * *

세상사 생각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현실 앞에서 도진은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했다.

물론 혼자서 들어가서 무쌍을 찍는다는 건 계획이 아니라 망상이니 이 선택지는 고려할 생각이 없었다.

‘말단 애들이 만만해졌다고 다 만만한 게 절대 아니거든.’

지역, 시기, 상황에 따라 레벨 조정이 이루어질 걸 기대한다 해도 멸망교단이 제대로 된 수작질을 꾸미는 현장이다.

멸망교단 내에서 중간쯤 위치하는 놈만 튀어나와도 현재 도진으로서는 감당하는 게 버겁다 못해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심지어 세계율의 빛까지 등장해 NPC의 개입을 막는 벌집이다.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하는 셈이니 벌집도 그냥 벌집이 아니라 말벌집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가자.’

혼자 조용히 마무리하기엔 글렀고.

테레사, 소소, 탄토만 불러서 돌입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게 줄지 않고.

그래서 도진은 아예 일을 크게 벌이기로 했다.

“누나!”

도진은 바로 천지현을 찾았다.

“누나, 이번에 내가 하고 싶은 콘텐츠가 하나 있거든?”

도진의 말에 천지현이 물었다.

“어? 무슨 콘텐츠? 어디 예능이라도 나가고 싶어?”

“예능? 뜬금없이 무슨 예능이야?”

“아니, 갑자기 콘텐츠 얘기를 하길래. 네가 먼저 뭘 하겠다고 하는 애가 아니잖아. 그래서 아이돌 나오는 예능에라도 나가고 싶은 건가 했지.”

말하며 이미 천지현은 스마트폰을 든 상태였다.

뭐가 됐든 도진이 하겠다면 회사는 대환영일 테니 바로 보고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뭐든 말만 해.”

천지현은 아예 콘텐츠 팀장, 마케팅 팀장과 함께 3인 단톡방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내가 히든 퀘스트 하나를 얻었어. 근데 이게 혼자서 해결하기엔 버거워서 사람이 좀 많이 필요할 거 같거든.”

“응응.”

“예전에 월드 보스 퀘스트 때 기억나지? 사람들 모집해서 대규모 공격대 꾸렸던 거.”

“당연하지. 그때 실시간 방송 반응이 얼마나 좋았는데. 콘텐츠팀이랑 마케팅팀 전부 특별 회식에 금일봉에…….”

말을 하던 천지현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설마… 또 그런 이벤트 한대? 그런 소리는 없던데?”

“아니, 이벤트는 아니고. 내 개인적인 퀘스트. 인원도 그때만큼 모으진 않을 거야. 대신 돈을 좀 크게 쓰고 싶거든.”

“걱정 마. 웬만한 금액이면 다 오케이일걸? 어차피 구체적인 내용은 네가 설명하면 되니까 약식 보고만 먼저 할게.”

토도도도독 하고 무서운 속도로 스마트폰 액정을 터치하는 천지현.

약 5초 뒤 천지현의 스마트폰이 통화 수신음을 뱉었다.

* * *

오영식 팀장은 바로 화상 회의실로 향했다.

“마케팅 쪽은?”

이미 대기하고 있던 마케팅팀 직원에게 짧게 물었다.

그쪽 팀장은 뭐 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외부에 나가 계셔서요. 지금 오시는 중입니다.”

“소통은?”

“제가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됐어요.”

고개를 끄덕인 오영식이 손을 휘저었다.

빨리 시작하라는 의미였다.

화면에 도진이 나타났다.

[“오랜만이네요, 팀장님.”]

도진의 인사에 오영식이 웃으며 답했다.

“오랜만이라 너무 아쉽네요. 도진 씨 얼굴 자주 봐야 제 고과도 팍팍 오를 텐데 말이에요. 그래도 이번에 또 제대로 실적 낼 거 같아 든든한데요.”

도진이 쓰게 웃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죠.”]

“그렇게 말씀하셔도 기대할 겁니다. 우리 팀에선 이미 도진 씨 관련된 콘텐츠는 거의 신앙이에요, 신앙.”

[“이렇게 부담을 주시면 제가 뭘 해 보기가 무서워지는데요.”]

“어어, 그러면 안 되는데.”

그때 마케팅팀 직원이 곤란한 눈빛으로 오영식에게 다가왔다.

“저기 오 팀장님…….”

그러면서 태블릿을 내민다.

거기엔 이런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김영희 팀장님: 지금 당장 이거 그대로 보여 주세요.]

[김영희 팀장님: 오 팀장님, 괜한 헛소리 하지 마시죠. 도진 씨가 안 하겠다고 하는 꼴 보고 싶은 거 아니면.]

평소 얌전한 김영희 팀장의 살기가 느껴지는 메시지를 본 오영식은 헛기침을 했다.

“그… 도진 씨, 혹시라도 부담 같은 거 느끼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그럼 먼저 대략적인 내용부터 들어봐도 될까요?”

[“실패하면 안 되는 퀘스트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동원할 수 있는 건 다 동원하려고 하거든요. 사람이든 돈이든.”]

“영상 제작이 목적인가요, 아니면 실시간 방송까지 고려하는 건가요.”

[“실시간으로 방송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돈 문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사실 영상만 뽑아내는 방향도 제작비로 처리하면 되는 거라 딱히 문제 될 게 없는데, 실시간 방송이면 뭐…….”

그때 김영희 팀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혀 문제 안 되죠. 지금 줄 선 광고주들이 엄청 많거든요.”

뛰어왔는지 약간 들뜬 호흡을 정돈한 김영희가 말을 이었다.

“퀘스트 상세 내용은 어떻게 되나요?”

[“노예 거래를 하는 조직을 소탕할 겁니다.”]

오영식이 약간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음… 임팩트가 살짝 부족할 거 같긴 하네요. 저번에 대규모 공격대 모집했을 때는 스케일이 스케일이었으니 말이에요.”

[“그때는 월드 보스였으니까요. 스케일에서 따라가긴 힘들죠. 대신 그냥 노예 거래를 하는 일반적인 범죄조직은 아닙니다. 아마 안에 들어가 보면 인체실험 정도는 기본으로 하고 있을 테니까요.”]

“직관적이라 좋은데요? 권선징악만큼 클래식하게 사랑받는 게 드물어서.”

이후 도진과 두 팀장은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했다.

어차피 퀘스트 진행 상황을 실시간 송출하는 것이니 제작비가 크게 들어갈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번 콘텐츠 제작 비용으로 책정된 금액은 10억 원이라는 거금이었다.

도진은 이 돈을 몽땅 다 각종 소모품으로 치환해서 쏟아부을 예정이었다.

‘난이도가 높으면 어쩔 건데?’

NPC 동원 못 하게 하면 또 어쩔 거고.

100명 넘게 사람 모아서 걔들한테 온갖 폭탄에 스크롤에 포션 들려서 돌격시키면 그걸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그날 도진 채널에 공격대 모집 공지가 올라갔다.

[모집 공고]

[악독한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에 참여하실 모험가님들을 모집합니다.]

거창한 내용 따위 없는 간결한 공지였다.

하지만 이 간결한 글귀에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뭐야, 뭐야? 또 뭐 히든 퀘스트 하는 거야?

-진짜 뭐임? 맨날 혼자서 뚝딱 해결하고 영상만 올리다가 이번에는 같이할 사람 모집하는 거야?

-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나!

-레벨 제한이랑 날짜 같은 건 없나?

└자세히 보기 누르셈. 거기 다 적혀 있음.

-드디어 히든 퀘스트 공유하는 거야?

└히든 퀘스트 아닐 수도 있지. 그냥 채널 이벤트 같은 거 아님?

-뭐가 됐든 좋아. 저번에 공격대 모집할 때 떨어져서 3일을 울었는데 ㅠㅠㅠㅠ 이번에는 제발 당첨됐으면.

└레벨은 됨?

└ㅇㅇ 너랑 달리 난 레벨 높음 ㅅㄱ

공지를 올리자마자 라엘 엔터의 공식 메일함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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