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84화 (184/271)

184

아이들의 안내에 따라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을과 동떨어진 산속에 위치한 오두막이었다.

마치 마술과 마법이 박해받는 세계관의 마녀들이 숨어사는 집처럼 보였다.

물론 이 세계는 그런 곳이 아니기에 저건 마녀의 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단순한 사냥꾼들의 쉼터다.

‘신기한 건 이런 데서 여자가 혼자 살고 있다는 건데.’

나이는 30대 후반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듯이 눈매가 거뭇한 여자는 다행히 쉼터에 혼자 있었다.

도진은 아이들에게 잠시 기다리라 한 뒤 오두막으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누, 누구야!”

여자가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를 쳤다.

누군가가 오두막에 나타난 것이었다.

여자는 품속에서 꺼낸 날붙이를 내밀었다.

“나야, 나. 로먼트라고.”

상대가 이름을 밝히자 여자가 거의 눈을 까뒤집으며 신경질을 냈다.

“로먼트? 이 머저리 새끼! 가뜩이나 불안해 죽겠는데 사람 깜짝 놀라게 하고 지랄이야!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아니지, 내가 당분간 여긴 얼씬도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제기랄, 나도 오고 싶지 않았어! 그래도 이건 알려 줘야 할 거 같아서 온 거라고.”

“뭐? 또 시답잖은 걸 핑계로 찾아와서 아랫도리 불룩하게 만들고 염병하면 오늘이야말로 계집애가 될 줄 알아.”

도진은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지랄 마! 그땐 술에 취해서- 아이, 시발!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라고! 도토리 새끼가 죽었다고! 길거리에서 몸뚱이가 세 조각이 난 상태로 발견됐어!”

아마도 오늘 죽은 사람 얘기를 하는 모양이다.

즉, 저들은 그와 아는 사이이며, 그의 죽음에 매우 불안해할 이유가 있는 자들이란 뜻이었다.

“데톨… 그 병신이 죽었다고?”

“그래. 그 자식이 했던 말 기억나지? 그…….”

“그만. 술이랑 약에 절어서 하는 병신 같은 소리에 휘둘릴 거 없어.”

“아니, 지금 그런 말이 나와? 그 새끼가 뒤졌다니까! 그리고 그 자식만 귀신 봤다는 소릴 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 어쩌자고! 지금이라도 물러 보시든가!”

자, 여기까지.

이 정도 들었으면 저놈들은 확신범이다.

지금 당장 저 머리를 터뜨려도 신께서 ‘아이고, 잘했다’ 하고 칭찬해 줄 만큼 개연성이 쌓였다.

그러니 이제부터 무엇을 하든 일정 수준까지는 면죄부가 발행될 거라 봐도 되겠지.

“참아.”

도진은 살기를 내비치는 아이들의 어깨를 잡아 진정시킨 뒤 오두막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싸우느라 도진의 접근은 눈치채지도 못했다.

“저기요.”

순진한 목소리로 도진이 둘을 불렀다.

부러질 듯 고개를 돌리는 두 사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도진이 대자연에서 빌린 돌덩이가 선사한 충격이었다.

* * *

기절했던 남녀는 퍽 하고 가해진 짧고 강렬한 전기충격에 정신을 차렸다.

비명도 못 지르고 묶인 상태로 펄떡 뛰다시피 경련하며 눈을 뜬 두 사람은 제 처지를 바로 이해했는지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읍읍!”

“웁웁웁!”

입이 막혀 말도 못 하고 버둥대는 둘을 조용히 지켜보던 도진은 다시 한번 전기충격을 가했다.

번쩍 하는 충격과 함께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수조 밖으로 나온 생선처럼 펄떡였다.

퍽.

퍽.

퍽.

말없이,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간결한 섬광과 충격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 과정 속에서 묶여 있는 남녀는 자연적으로 터득했다.

자신들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면 전기충격이 뒤따른다는 것을.

“…….”

“…….”

교육이란 게 꼭 말로 할 필요성이 있는 행위가 아니다.

이렇게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는 것도 훌륭한 교육이라 할 수 있었다.

‘음, 이건 교육보다는 훈련에 가깝나?’

아무래도 좋은 가벼운 의문을 지워 버린 도진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한 명씩 발언할 기회를 줄 거다. 본인이 잘못한 점부터 시작해서 알고 있는 걸 전부 토해 내는 게 좋을 거야. 횡설수설하거나 헛소리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다음 발언 기회는 꽤 긴 시간 후에 찾아올 거야.”

우선은 남자부터.

도진은 남자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마법으로 굳힌 진흙을 녹였다.

“우웨엑……!”

입안을 꽉 채우고 있던 진흙을 토해 낸 남자는 겁에 잔뜩 질려서는 말했다.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한테 왜 이러시는-”

토해 냈던 진흙이 입에 다시 들어간 남자는 우웁- 하고 버둥댔다.

“하아…….”

예상하긴 했지만, 참 이런 놈들 특징은 머리가 매우 나쁘다는 거다.

어차피 딱 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이지 않나?

그럼 고생이라도 덜 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굴려야지.

도진은 3초간 가해지다 1초 정도 끊어지는 전기충격을 계속 이어 갔다.

처음엔 펄떡이더니 어느 시점을 지나자 뻣뻣하게 굳었다 축 늘어지기를 반복했다.

“우우웁……!”

여자의 눈빛은 상당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자긴 말도 못 해 봤는데 왜 같이 고통을 겪어야 하냐는 눈빛.

뭐긴 뭐야, 연대책임이지.

도진은 남자든 여자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이 될 때까지 공을 들여 고통을 줬다.

100퍼센트 치명타로 들어가는 마법으로 고문을 하니 받는 입장에서는 아마 제대로 짜릿할 거다.

두 사람은 금새 죽은 생선보다 훨씬 더 탁한 눈을 갖게 됐다.

도진은 조용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막고 있는 마법을 해제해 줬다.

축 늘어져 있던 여자가 진흙을 혀로 밀어낸 뒤에 겨우 입을 열었다.

“…전, 저는 그냥 관리만 맡았을 뿐이에요.”

바로 알아듣기 힘든 진술에 도진이 다시 손을 까딱였다.

그걸 본 여자는 급히 말을 이었다.

“자, 잠깐만요! 말씀드릴 테니 제발……!”

여자는 울며불며 애원하는 투로 진술했다.

“노, 노예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여자의 진술은 이러했다.

이들은 노예가 필요하다는 자들에게 사람을 공급하는 조직이었다.

몬스터의 소행으로 꾸미든 야반도주로 꾸미든 행방불명으로 꾸미든, 사람을 납치한 뒤에 상품으로서 그들에게 납품을 했다고.

여자는 그런 상품을 모아서 관리하는 일종의 중계인 역할을 맡은 인물이었다.

“노예를 사 간 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었는데?”

“그, 그건 몰라요! 정말 몰라요! 그냥 다른 데다 노예를 유통하겠거니 생각했죠!”

여자의 말에선 진심이 느껴졌다.

이미 팔아치워 돈으로 바꾼 사람의 미래 따위엔 관심 한 조각 없는 인간의 진심.

‘처음에는 푼돈 받고 사람 몇 명 팔아치우다가 점차 사람팔이가 조직화됐다는 거군.’

공범자가 늘면서 이들은 허위 목격자 노릇까지 해 가며 사건은 은폐한 모양이었다.

‘내가 봤어! 덩치가 커다란 늑대한테 물려가는 걸!’ 하고 소문을 퍼뜨리면 가짜 사인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테니.

“저, 저희는 별것도 아니에요! 저희보다 더 지독한 놈들도 있습니다. 제가 그놈들 찾는 걸 도와드릴게요! 그러니 목숨만 살려 주세요!”

이 여자를 중심으로 사람팔이를 하던 놈들의 규모는 겨우 여덟.

여자는 자신들과 같은 점조직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는 게 이 지역의 현실이라 했다.

“네 도움 없이도 다른 놈들 찾는 건 어렵지 않아.”

악령을 봤다고 징징댔던 놈들 목록은 이미 확보했다.

대조해 보니 지금 여기 있는 남자 새끼도 여기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술 먹고 악령 타령을 하며 행패를 부리다가 유치장에 갇혔던 기록이 있다.

게다가 이름을 안 올렸어도 상관없다.

이 여자만 해도 명단에 없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찾지 않았나.

“그놈들에게 상품을 넘길 때는 어떤 식으로 넘겼지? 연락 방법은? 지금도 접선이 가능한가?”

연속해서 묻는 말에 여자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물론이죠! 요즘은 몸을 사리느라 뜸했지만, 물건을 준비했다는 신호만 보내면 수거책을 보낼 겁니다!”

“신호는 어떤 식으로 보내지?”

“그건…….”

말을 흐리던 여자는 도진의 손에서 파지직- 하고 터지는 스파크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지, 지정된 자리에 매듭을 묶어 두면 사흘 안에 수거책이 찾아와요!”

이건 아주 좋은 정보였다.

어떤 식으로 신호를 보내고, 어떤 식으로 접선을 하는지 알고 추적하는 것과 모르고 추척하는 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으니.

‘이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교차검증을 해 보면 될 일이고.’

이놈들한테는 여기까지만 듣기로 하자.

아직 정보를 토할 놈들은 넘칠 만큼 있으니.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 살려 주세요!”

그걸 자신들을 마무리하려는 행동으로 보았는지 여자는 고개를 팍 수그리며 빌었다.

남자도 겁에 질려서 구더기처럼 기어가기 시작했고.

“걱정 마. 적어도 나는 너흴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도진은 그대로 오두막을 나섰다.

정말 그냥 가나? 정말? 산 거야?

불안한 눈으로 도진의 뒷모습을 보는 여자.

그런 여자 앞에 무언가가 휙 하고 나타났다.

“헉……!”

여자의 얼굴에 공포가 깃들었다.

도진을 향해 내비치던 공포와는 결이 다른 공포였다.

“너, 너, 너는……!”

자신이 얼마 전 팔았던 여자아이가 나타난 것이었다.

“나, 난 잘못 없어! 너희 엄마가 도박 빚을 진 게 잘못이라고!”

묶인 채로 뒤로 기어가며 고개를 휘젓는 여자.

망령 군체는 그런 여자를 가만히 노려봤다.

빠드득.

그런 여자의 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

뒤틀린 자신의 팔을 멍하니 바라보던 여자의 입에서 짐승을 닮은 괴성이 튀어나왔다.

한동안 오두막은 끔찍한 비명으로 뒤덮였다.

“…….”

도진은 묵묵히 오두막 앞에서 기다렸다.

피투성이가 되어 터덜터덜 걸어 나온 아이가 말했다.

“가요, 아저씨.”

저 아이들은 복수의 자격이 있다.

반면 자신에게는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고.

알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도진은 아이들과 함께 현장을 떠났다.

이후 도진은 명단에 있는 자들을 정식으로 만나 이야기를 해 보았다.

역시나 그들 대부분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나 악령에 대한 공포로 반쯤 미쳐 있는 자들도 있어서, 고해성사를 하는 자들도 있긴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보의 신뢰성을 확보한 도진은, 며칠에 걸쳐 아이들이 지정한 ‘복수할 대상’들을 멀리서 감시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돈에 미친놈들은 분명 계속해서 활동할 거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린 끝에 도진은 그들이 상품을 팔기 위해 윗선과 접촉을 시도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인적 없는 산속 나무에 검은 매듭이라. 저거군.’

이튿날, 일단의 무리가 상품을 거래하러 나타났다.

산속에서 이루어진 거래에서 사람 일곱이 거래됐다.

「원시」로 상황을 지켜보던 도진은 조용히 사람을 사 가는 두 명의 사내를 아네모네와 함께 추적했다.

처음에는 정말 단순히 노예를 거래하는 범죄조직의 조직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놈들의 목적지를 보고는 확신했다.

‘마법으로 은폐된 동굴?’

단순 범죄조직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지.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겨우 소규모 노예 거래를 위해 준비하기에는 자금이 너무 들어가는 뻘짓이다.

이런 과투자를 했다는 건 여기서 구린 짓을 한다는 거고, 그럴 만한 놈들은 이 세계에 멸망교단을 제외하면 몇 없다.

‘여기까지 봤으면 됐어. 놈들이다.’

확신을 얻은 도진은 수거책으로 나온 두 놈이 은신처로 복귀하기 전에 처리하기로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