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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앙은 방송 규모가 상당한 스트리머다.
유튜브 구독자도 100만을 앞두고 있고.
그런 만큼 걸친 장비의 가격은 상당했다.
등급부터가 A등급 미만은 보이지도 않는다.
간단히 훑어봐도 A급 중에서도 옵션이 꽤 높게 잡힌 것 그리고 S급 중 가성비가 괜찮은 걸로 입고 있는 게 보였다.
문제는…….
‘시발, 도대체 마법사가 판금은 왜 입고 있는 건데?’
품질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물음표가 무수히 생산되는 세팅에 있었다.
재료가 금이랑 은이면 뭐 하나.
금괴랑 은괴로 하수구 바닥을 깔아 버리면 아무 쓸모가 없는 건데.
판금 투구에 가죽으로 만든 갑옷 상의, 하의는 또 평범한 마법사용 천 방어구다.
망토는 또 어디서 전사들이나 입을 금속 비늘 망토를… 하아.
-ㅋㅋㅋ 얼굴 좀 봐
-쉽게 보고 왔다가 현실을 직시한 눈인데
-도진이 형, 이제 정신이 들어? 도진이 형, 이제 정신이 들어? 도진이 형, 이제 정신이 들어?
도진의 반응을 본 시청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도진은 도주를 결심했다.
“음…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요?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면 될 거 같아요. 오늘은 간단히 세팅 점검만 하기로 했으니까 여기까지만 하고, 나중에 시간 맞을 때 다시 하시죠.”
좋아. 자연스러웠어.
도진은 급히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잡아!
-저 새끼 도망친다!
-방장, 붙잡아! 지금 도망치게 두면 ‘나중’은 절대 오지 않아!
크아앙이 도진을 붙잡고 늘어졌다.
“자, 잠깐만요! 절 포기하지 마세요! 진짜 말 잘 듣고 열심히 할게요!”
젠장, 눈치 빠른 것들.
도진은 혀를 찼다.
“…저 욕 먹는 거 싫어해요. 괜히 이것저것 지적했다가 크아앙 님 팬들이 악플 달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도진의 말에 시청자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부정했다.
-저희가요?
-제발 부탁드릴 테니까 크아앙 좀 개같이 패 주세요.
[‘어금니가 없는 사람’ 님께서 1,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노답 모지리 컨설팅 비용입니다… 제발 우리 방장 좀 패서 교육 좀 시켜 주세요.]
[‘동네 치과 VIP’님께서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는 도진 님 채널에 입금하고 왔습니다. 이 새끼 저희 말은 듣지도 않으니까 좀 맵게 패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도진이 도망치려 하자 방금 전까지는 축제를 즐기다가 다급해진 시청자들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하…….”
상황이 우스워서 도진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렁그렁한 눈을 한 크아앙을 잠시 보던 도진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솔직히 말해도 되죠?”
“무, 물론이죠!”
그래, 그럼 솔직히 말해 보자.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근본을 알 수 없는 누더기 골렘 같은 세팅이에요.”
“누, 누더기… 그래도 엄청 비싼 건데…….”
“값이 문제가 아닙니다. 재료만 좋으면 뭐 해요? 투쁠 한우면 뭐 하냐고요. 그거 갈아서 곤죽 만들면 그냥 곤죽인걸. 크아앙 님 장비 세팅은 비싸고 맛은 없는 곤죽이에요.”
크아앙은 상처받은 얼굴을 했지만, 시청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크아아아! 이게 사이다고! 이게 소화제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도진이 형, 걔 좀 더 혼내 주세요! 우리 말은 쳐 듣지도 않고… 아주 못된 년이에요!
그녀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외롭게 고립된 범죄자 크아앙의 진술은 이러했다.
“그게요… 제가 캐스팅이 좀 많이 느리거든요. 눈앞에 몬스터가 있으면 겁도 나고 그래서… 몸빵이 많이 튼튼해지면 심리적으로 안정도 되고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래서 가죽, 경갑도 모자라서 판금까지 섞었다?”
크아앙은 눈치를 잔뜩 보며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캐스팅이 느리면 캐속을 챙겨야지. 마법사가 판금 갑옷 입으면 페널티 붙어서 더 느려지잖아요. 판금에 지능 붙었다고 법사용이 아니에요.”
“아니에요! 요구 스탯만 맞추면 패널티 없어요. 그래서 근력이랑 민첩 올려 주는 장신구로 요구 스탯 맞추고, 판금 갑옷은 레벨이랑 근력 요구치 낮은 걸로 맞춰서 패널티는 없어요.”
오호라. 바보치고는 머리를 꽤 굴렸다.
문제는 나쁜 머리는 굴리면 굴릴수록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한다는 거다.
“그러네요. 크아앙 님은 잘못이 없네요.”
“정말요? 역시!”
“머리 나쁜 게 죄는 아니니까요. 나쁜 건 크아앙 님 시청자분들이에요. 이러고 있는 걸 그냥 방치를 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네?”
-억울합니다! 저 새낀 우리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고요!
-지금까지 시참으로 교육했던 시청자들 단체 오열…….
-지금 저희도 경악 중입니다. 영업 비밀이라고 여태 장비창을 죽어도 안 보여 줘서 저희도 지금 봤습니다.
죄인들이 단체로 억울하다며 아우성을 쳤다.
“자, 잘 들으세요.”
도진이 손가락으로 장비창 사진을 위에서부터 쭈욱 훑어내렸다.
“이렇게 바꾸면 됩니다.”
“전부요?
“전부.”
“바, 바지는 마법사용인데요?”
“지금 하의에 붙어 있는 보너스 스탯이 뭐죠?”
“크, 크리티컬…….”
도진은 다시 한번 물었다.
“마법사는 크리 세팅이 거의 불가능한 건 아실 텐데… 왜 이런 거예요?”
“…S급인데 싸기도 하고 인생은 한 방이니까요.”
“가성비로 S급 챙겼다까지만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뭐… 등급도 있으니 B급보단 낫겠네요. 어차피 금방 갈아야 할 장비기도 하니까 하의 정도는 가져가죠.”
“돈 엄청 깨지겠네요.”
크아앙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이에 도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으로 말했다.
“이 장비들 팔면 다음, 다다음 레벨대 장비까지 세팅하고도 남아요.”
“어떻게요?”
“크아앙 님 레벨에 맞는 B급 장비로 싹 맞춰요. 그게 지금 세팅보다 훨씬 나을 거예요.”
“그… 실력이 안 되면 돈이라도 써야 한다고 시청자들이 그랬거든요.”
“돈을 쓰는 건 상관없죠. 근데 크아앙 님은 돈을 버렸어요.”
크아앙이 은근슬쩍 시청자들에게 죄를 돌리려 했으나 도진은 단칼에 그 시도를 잘라 버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뭣들 하냐? 치과 갈 돈으로 도진 님 채널에 후원 안 박고?
-와, 우리 방장은 이 와중에 킬각을 보네 ㅋㅋ
도진은 크아앙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잘 들으세요. 무조건 메인이 캐스팅 속도예요. 이게 크게 붙은 장비로 맞추는 거예요. 지금 장비들도 하나하나 뜯어 놓고 보면 좋은 것들이니까 필요한 사람 찾아서 제값 받고 팔면 되고요. 급하게 처분할 거 없어요. 알겠죠?”
“넵.”
“그렇다고 계속 들고 있으면 안 돼요. 어차피 사람들 레벨은 계속 오르고, 그러다 보니까 장비 아이템 감가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니까 적당한 가격에 팔아 치우고 잊어요.”
“적당한 가격에 미련 없이 처분하기. 확인했습니다.”
크아앙은 열심히 메모를 하며 교육을 받았다.
-저, 저……! 우리가 말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이제라도 저러니까 얼마나 다행임. 잘못하면 우린 계속 어금니 마모됐을 텐데.
자기 방송에서는 폭군으로 군림하던 크아앙이었으나 오늘은 어림도 없었다.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해요. 일단 불, 물, 바람, 전기, 땅. 이렇게 다섯 속성 1성 마법 하나씩 정해서 하루에 300번씩 쓰세요. 매일 이것부터 하고 다른 걸 하는 겁니다.”
“사, 삼백 번씩이나요!?”
“별로 오래 안 걸려요.”
“그건 도진 님 기준이고 전 엄청 오래 걸릴 거예요…….”
“그럼 더더욱 해야겠네요. 그게 다 숙련도가 부족해서 그런 거예요. 500번씩 하는 걸로 바꿀게요.”
“헉……!”
“1성 마법 속성별로 하루 500번씩 무조건 숙련작 하기. 크아앙 님이 잘하는지 잘 감시해 주셔야 합니다.”
도진이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넵! 저희가 잘 감시하겠습니다!
-저희만 믿으세요~
-크아앙 넌 뒤졌다 진짜 ㅋㅋ
크아앙이 울상을 지었다.
마치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를 보는 대학생 같은 눈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녀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당장 떠오르는 지시 사항을 전부 전달한 도진이 말했다.
“그럼 제대로 된 교육은 사흘 뒤에 하는 걸로 하죠. 그때 시간 되죠?”
하려고 마음을 먹었더니 뒤로 미루기 싫었다.
아예 손을 안 대면 모를까, 크아앙은 전체적으로 고인물 입장에서 보면 발작 버튼 같은 존재였다.
그냥 뉴비도 아니고 판금 갑옷을 입고 점프를 해 대는 마법사… 맑은 눈의 광인한테 어떻게 훈수를 참겠냔 말이다.
“그럼 3일 동안 훈련하고 4일 뒤에 뵙죠.”
“네. 열심히 해 볼게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크아앙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이때쯤 타이밍 좋게 소소가 돌아왔다.
도진은 테레사, 소소와 함께 시간을 좀 더 보내다 맛집을 찾아 저녁을 먹으러 갔다.
하지만 크아앙은 그대로 남아 시청자들의 질타와 응원 속에서 숙련작을 했다.
* * *
약속된 날, 도진과 크아앙이 다시 만났다.
“저 완전히 장비 세팅 다시 했어요!”
만나자마자 두 팔을 활짝 펼치며 크아앙이 자랑했다.
이제야 좀 제대로 된 마법사라 할 만한 모습이다.
도진처럼 스탯 괴물이면 방어구 선택을 마음대로 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평범한 마법사가 가벼운 경갑옷도 아니고 판금을 섞어 입다니.
보기만 해도 속터지는 세팅이었는데, 이제 좀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숙련작은 안 빼먹고 제대로 한 거죠?”
“넵넵, 물론이죠! 하루 500번씩 하는 거 잊지 않고 했죠. 어제는 100번씩 더 했어요!”
말이 500번씩이지.
이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크아앙처럼 캐스팅이 유독 느린 사람들은 마법을 쓸 때 발생하는 집중력 소모를 견디지 못하는 부류가 많았다.
실제로 그녀는 첫째 날 마법을 연속적으로 사용하다 멀미를 호소하며 주저앉기도 했고, 방송을 끝낸 뒤에는 구토까지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이틀, 사흘을 이어서 훈련하면서 그녀의 1성 마법 숙련도는 꽤 많이 상승해 있었다.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해 볼까요?”
도진의 말에 크아앙이 진지한 표정으로 속성 화살 마법 시리즈를 순서대로 시전했다.
‘120레벨대 마법사가 1성 공격 마법을 캐스팅 하는 데 평균 3초라.’
객관적으로 끔찍하게 느린 수준이었다.
하지만 크아앙으로서는 눈부신 발전이었다.
-우리 방장이 5번 연속 실패 없이 마법을 시전하는 날이 오다니!
-도진 님,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흘 동안 이 악물고 훈련하는 거 봐서 그런지 약간 눈물 나려고 그런다…….
경악스럽게도 그녀의 1성 마법 평균 시전 시간은 5초를 넘겼었고, 그마저도 성공률이 7할에 불과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도진의 말을 듣고 장비 세팅 싹 갈아엎고, 마법 회로에 부하를 잔뜩 주는 마법 숙련작을 한 덕에 눈부시게 발전한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인 크아앙이 잔뜩 뿌듯한 표정을 짓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보셨죠? 보셨죠? 저 이제 마법 실패 거의 안 해요! 이게 다 도진 님 덕분이에요!”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는 크아앙을 보며 도진이 말했다.
“제가 뭘 했다고요.”
정말.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이러면 곤란했다.
사람다운 법사가 되려면 아직 잔뜩 굴러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