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48화 (14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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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의기소침해진 테레사였으나 도진이 하고자 하는 건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완전히 침묵한 가시비늘에게서 눈을 뗀 도진은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도핑을 어마어마하게 때려 박았는데도 아직 버틸 만하네.’

회로를 포함해 몸상태가 완전히 망가지려면 아직 1분 남짓한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았다.

진짜 위험한 약물까지 쓴 걸 감안하면 경이로운 수준의 내성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게 다 무시무시한 체력과 지능 스탯으로 인한 높은 저항 능력 덕이다.

“어, 괜찮아요?”

생각하는 중에 균형이 무너졌다.

역시 무리하긴 한 모양이다.

뒤늦게 약물이 다 퍼지면서 부작용이 본격화된 탓도 있을 테고.

“무슨 약을 그렇게……! 지금 정화할 테니까 잠깐만 버텨요.”

힐러인 소소가 인상을 찌푸리며 치유 주문을 준비했다.

그걸 도진이 손을 저어 말렸다.

“잠깐… 실험할 게 있어요…….”

평소보다 말이 어눌하게, 그리고 느리게 나오는 건 마비 탓이었다.

도진이 마신 약물 중에는 감각 마비가 부작용인 약물도 섞여 있던 것.

“그게 무슨……! 소소야, 빨리 좀 어떻게 해 봐!”

도진이 비틀대는 모습에 테레사는 당황했으나 소소는 아니었다.

“본인이 마다하잖아. 생각이 있겠지.”

“그래도……!”

“이 사람이 우리보다 더 이 게임을 잘 알잖아. 그럼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도와주는 거야.”

그렇게 말하던 소소가 눈을 부릅떴다.

도진의 오른팔이 갑자기 얼더니 터져 버린 것이다.

아무리 감정기복이 별로 없는 소소라도 이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진의 팔이었던 얼음 잔해가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다.

테레사, 소소 두 사람은 놀라 말도 잃었으나 도진은 아니었다.

‘어차피 실험하는 거 화끈한 게 좋지.’

일부러 마나를 역류시켜 마법회로가 있는 오른팔을 날려 버린 게 도진 본인인데 놀랄 이유가 있을 리가 있나.

팔이 부서졌음에도 통증은커녕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오히려 어지럽게 흔들리는 세상이 더 고통스러울 정도.

도진은 더 이상 버텼다간 의식이, 아니 목숨이 날아갈 것만 같은 상태가 되어서야 마지막 실험을 감행했다.

《한정회귀》

「시간 여행자」 특성이 가진 특수능력 「한정회귀」가 발동됐다.

본인에 한정된 시간 역행 능력이 발동되자 소모되었던 MP는 물론이고, 약물 부작용으로 줄어들었던 HP, 망가졌던 몸뚱이와 얼어서 부서졌던 팔이 완벽하게 복구됐다.

“……?”

“……?”

채 3초가 안 될 시간 동안 일어난 일에 테레사와 소소의 눈이 멍해졌다.

나란히 서서 자신들이 본 게 뭔지 생각하는 둘.

“음. 적응 안 될 정도로 완벽하게 돌아오네.”

멀쩡해진 오른손을 보며 감탄하는 도진.

그걸 본 테레사가 빽 소리쳤다.

“깜짝 놀랐잖아요!”

진심이 잔뜩 담긴 외침에 도진이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봤다.

‘뭐야, 왜 울어?’

테레사의 눈동자는 그렁그렁한 상태였다.

너무 놀랐다가, 안심했다가, 이젠 놀란 게 억울해져서 수막이 씌워진 것.

당황한 도진은 뒤늦게 자신이 한 행동을 곱씹어 봤다.

그러고 보니 옆에서 보고 있었으면 놀랄 법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미쳤네. 왜 그랬지?’

미리 경고라도 했으면 몰라.

아무것도 모르는 파티원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너무 빨았나.’

이는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판단력 저하가 불러온 참사였다.

약에 취해 ‘어차피 할 거 확실하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증폭되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질러 버린 거다.

“미안해요.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약이 좀 과했나 봐요. 이 정도로 작정하고 도핑한 건 처음이라 실수했습니다.”

역시 아무리 「한정회귀」라는 사기적인 능력을 얻었다 해도 과도한 도핑은 지양해야겠다.

능력 증폭이 주는 이득보다 전후로 겪는 판단력 저하가 더 치명적인 거 같았다.

‘뭐, 이번처럼 작정하고 퍼붓지만 않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도진은 두 여자의 눈치를 봤다.

아무 말 없이 노려보던 소소가 한마디 했다.

“…이상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생각 이상이네.”

혼잣말처럼 뱉었지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약을 너무 했더니 어지러워 가지고…….”

“심신미약 주장하는 마약 사범이 하는 변명처럼 들리는 거 알죠?”

“…….”

“다음부터는 깜빡이 켜요.”

그 말을 끝으로 소소는 다시 평소처럼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런 그녀를 테레사가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지?’

도진 때문에 놀란 건 이미 뒷전으로 밀려 있었다.

방금 소소가 보인 모습이 테레사에게 있어서는 더 놀라웠다.

‘쟤가 다른 사람한테 저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애가 아닌데…….’

심지어 ‘다음부터는’이라니.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손절부터 하는 애가.

테레사는 슬금슬금 도진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지금 봤어요? 소소가 도진 씨 걱정한 거.”

“예?”

“쟤가 남 팔 좀 부서졌다고 놀랄 애가 아니거든요. 자기랑 상관없다 싶으면 머리통이 터져도 슥 보고 그냥 고개 돌릴 앤데…….”

“…….”

아니, 그 정도면 이미 사이코패스는 아니어도 소시오패스 영역에는 접어든 거 같은데.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테레사는 달랐다.

그녀는 약간 뿌듯한 눈으로 제 친구를 보며 말했다.

“드디어 우리 소소도 사회성이란 걸 가지게 되는 걸까요.”

“…그런 걸 사회성이라고 부를 정도면 그건 인간 사회는 아니겠는데요.”

“도진 씨가 몰라서 그래요. 저 정도만 해도 정말 장족의 발전이라고요.”

도진과 테레사가 속닥대는 사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소소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지저분한 데서 계속 있을 거예요? 사고 칠 거 다 쳤으면 빨리 정리해요.”

* * *

대형 이벤트가 끝난 뒤 도진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현실에선 운동하고.

게임에선 사냥하고.

던전 돌고, 퀘스트 하고, 진리의 서에 계속해서 새로운 마법도 기록하고.

한마디로 성장할 수 있는 건 닥치는 대로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혼자가 편하긴 해.’

한동안 여러 사람이랑 뒤섞여 게임하다가 여유롭게 혼자서 하고 싶은 걸 골라 하면서 돌아다니니 마음이 매우 편했다.

유튜브 쪽도 저번에 찍어 놓은 월드 보스 레이드 영상을 자르고 잘라 가며 편집본으로 업로드를 하고 있는데, 사골처럼 우려도 계속 조회 수가 대박을 치며 순항 중이다.

순항도 그냥 순항이 아니라 제트 부스터라도 단 것처럼 고속으로 질주 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워 쓰는 사이 겨울은 가고 봄이 돌아왔다.

어느 날은 춥다가 또 어느 날은 덥게 느껴지는 4월.

도진은 로트라넷 경매 페이지를 보고 있었다.

‘이 시기쯤이었던 거 같긴 한데…….’

월드 보스 레이드가 마무리되고 얼마 안 있어 로트라넷 경매에서 아주 귀한 지도 하나가 헐값에 팔린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규모가 엄청난 히든 던전의 위치가 기록된 지도였는데, 가치 감정이 제대로 되지도 않은 채 아주 싼값에 팔렸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무슨 지도가 그 지도인지 알 수 없다는 것.

‘이건 뭐 골동품점에서 유물 찾는 격이네.’

주르륵 뜨는 미감정 지도 매물에 도진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표시된 게 뭔지 알 수 없는 미감정 지도의 평균 낙찰 가격은 한화로 300만 원 선.

희귀한 사냥감이나 채집물의 위치가 기록됐을 수도 있지만, 막말로 동네 뒷산 약도일 수도 있는 게 미감정 지도다.

가끔 히든 피스를 얻는 사람이 나오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 손해를 보고, 흔하게 꽝이 나오기도 하는 콘텐츠다.

‘이를테면 값비싼 복권인 셈이지.’

그 지도를 얻은 건 평범한 유저였다.

작은 길드에 속해 있던 그는 길드원들과 히든 던전에 도전했으나 공략에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위치 표시만이 아니라 열쇠 역할까지 겸하는 지도가 소실되는 바람에 해당 던전은 공략은커녕 다시 갈 수도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결과가 궁금해서 직접 가 보려고 했더니. 이러면 차라리 그 사람들을 찾아서 같이 가는 게 나으려나?’

기약 없이 돈을 태우면서 지도 뽑기를 하느니 이쪽이 더 나을 거 같은…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 다 실패한 뒤에 정보를 공개했었다.

‘영상 봤던 건 대충 기억나는데 누구였는지 이름이 기억이 안 나.’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는 아무리 끼워 맞춰도 얼개가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결국 도진은 포기하기로 했다.

계속해서 돈을 태워 가며 도박을 하기엔 너무 낮은 확률이다.

* * *

“팀장님, 이것 좀 보셔야겠는데요.”

오늘도 눈 돌아가게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라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팀.

직원 하나가 팀장을 찾았다.

반건조 오징어처럼 널브러져 있던 팀장 오영식이 부스스 눈을 뜨며 물었다.

“또 뭔데.”

피로와 귀찮음이 덕지덕지 묻은 목소리였다.

“도진 씨 관련된 거라…….”

“뭐?”

그러나 ‘도진’이란 단어가 들리자 팀장은 언제 귀찮은 기색이었냐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뭐, 뭔데? 문제 생겼어?”

원래도 그랬지만, 월드 보스 레이드로 도진의 승승장구를 과한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도진이란 단어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도진과 함께 자체 제작 콘텐츠를 진행하는 게 오영식의 소망이기에 더 그랬다.

점수를 잃으면 안 되니 말이다.

“아뇨, 문제는 아니고요.”

직원이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메일이다.

[안녕하세요. 개인적으로 도진 님을 좋아하는 팬입니다.

우연히 희귀해 보이는 지도를 얻게 되었는데, 저는 레벨이 낮아서 도전할 수가 없어서요.

도진 님이 저 대신 즐겨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지도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S’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익명으로 온 메일이었다.

우연히 얻었다고 했으면서 보낸 스크린샷에는 100장이 넘는 지도가 찍혀 있었다.

‘저게 다 얼마야.’

도진 덕에 LOST에 대해 빠삭해진 오영식은 S라는 도진의 팬이 후원용 지도 한 장을 뽑기 위해 몇억의 돈을 태웠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장난 메일 아냐?”

“그러면 우리한테까지 메일이 안 넘어왔죠. 이미 우리 쪽 직원이 넘겨받았대요. 모험가 길드 통해서.”

“그래?”

“네.”

“우리야 땡큐지. 도진 씨가 하겠다고만 하면 또 좋은 그림 하나 뽑는 건데.”

그렇게, 이름 모를 누군가가 보낸 지도 한 장이 도진에게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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