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47화 (147/271)

147

도진은 상태창을 띄웠다.

도진

레벨: 136

클래스: 진리의 서

근력: 48

민첩: 51

체력: 315

지능: 602

스킬: ( 1 ) [열기]

특성: ( 5 ) [열기]

레벨, 업적, 훈련 등으로 올라간 순수한 능력치만 표기된 상태창.

레벨에 비해 비대한 순수 스탯의 숫자는 언제나 도진에게 큰 만족감을 주는 존재였다.

도진

레벨: 136

클래스: 진리의 서

근력: 184

민첩: 187

체력: 551

지능: 1150

스킬: ( 1 ) [열기]

특성: ( 5 ) [열기]

그런데 오늘은 장비 보정치가 더해진 걸로 표시를 해도 만족감이 상당했다.

유물이 좋긴 좋다.

목걸이 하나 유물로 바꿨다고 다른 장비 보정치를 다 합한 만큼의 기초 능력치가 올라간 걸 보니.

“후아, 긴장된다.”

순수 능력치/보정 능력치 표기를 바꿔가며 보고 있는 도진 옆에서 심호흡을 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건 테레사였다.

오늘 도진과 테레사는 인스턴스 던전에 테스트를 하기 위해 온 참이었다.

“긴장은 무슨. 그때 잡았던 기분 나쁘게 생긴 놈이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 아냐?”

물론 당연히 소소도 끼어 있었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하지 않나.

테레사가 가면 소소도 따라붙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 나 오늘 이거 처음 써 보는 거란 말야.”

그렇게 말하며 테레사가 소중히 들어 올린 건 방패였다.

그녀가 이번에 얻은 유물 아이템 「청금석 방벽」.

“앗!”

소중히 방패를 살피던 테레사는 방패에 먼지가 묻은 걸 발견하고는 깨끗한 수건을 꺼내 열심히 문질러 닦았다.

그런 그녀를 소소가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왜 난 안 주는 건데.”

서늘하게 읊조린 소소가 시선을 옮긴다.

도진 쪽이었다.

“저기요.”

웬만하면 먼저 말 거는 법이 거의 없는 소소가 먼저 말을 걸다니.

도진은 약간 놀란 눈으로 소소를 봤다.

“네?”

“난 왜 저런 거 못 받은 거예요?”

그리 말하며 소소가 가리킨 건 테레사가 애지중지하고 있는 방패였다.

“……?”

“나도 엄청 고생했는데 왜 난 겨우 S급 장비만 얻고, 쟤는 저런 거 받았냐고요.”

소소가 이러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테레사가 저 빌어먹을 방패를 얻은 뒤로 하루 24시간 중 정말 눈 뜨고 있을 때는 숨도 안 쉬고 자랑질을 해 댔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배경화면도 저거, 메신저 프로필 사진도 저거, 유튜브 배너도 저거, 하다못해 자기 방에는 액자까지 만들어 걸었다.

「크으으! 소소야, 오늘은 치킨 먹을래? 이 유. 물. 오. 너. 언니가 쏜다!」

유물, 유물, 유물.

그놈의 청금석, 청금석.

소소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건 소소의 사정이었고.

“…기여도 상위 10명만 받는 거라서요.”

질문을 받은 도진으로서는 할 말이 이거 말곤 없었다.

상위 10명한테만 주는 거니까 10명 안에 못 들어가면 못 받는 거다.

이거 말고 다른 이유가 있나?

“후우.”

소소가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쟤가 그러던데. 그쪽이 조언해 준 대로 해서 얻은 거라고.”

“뭐… 그렇긴 하죠?”

“다음부터 쟤한테 조언해 줄 일 있으면 나한테도 좀 해 줘요. 그래야 저 꼴을 덜 보죠. 얼마나 피곤한 줄 알아요?”

정말 피곤에 절은 얼굴로 하는 말.

그 치열했던 전장에서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던 소소를 이렇게까지 지치게 만들고, 이런 말까지 하게 만들다니.

여러모로 놀라운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유물 가지고 저 정도면 약과지.’

테레사와 소소.

유물을 얻고 못 얻고가 갈린 관계에서 이 정도 티격태격하는 수준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긴 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도진이 돌발적으로 월드 보스를 잡아 버리는 바람에 상위권에서 아예 배제된 대형 길드들이 현재도 지랄을 하는 중이다.

「같은 전장에 있던 다른 길드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월드 보스 레이드를 진행한 건 명백한 독단이자 이기적 행위이다.」

스피어 길드원 중 하나가 SNS에 쓴 글이다.

「그는 어떤 위험한 사태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월드 보스 공격을 통보도 없이 저질렀다. 이는 자칫 이누스 초원에 있던 사람 모두를 대참사에 휘말리게 했을지도 모를 어처구니없는 우행이었다. 결과가 좋았다고는 하나… 결국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건 역시나 한국인 특유의 저급한 국민성에 기인한…….」

몇 번의 생략을 거쳐야 할 만큼 주절주절 길게 개소리를 지껄인 놈도 있었다.

일본 길드인 야마토 길드원이라는데, 이놈은 길드에서 제명됐다.

이외에도 볼멘소리를 한 사람도, 집단도 꽤 있었다.

하긴 억울할 만도 하다.

지금 언급한 스피어랑 야마토는 원래대로라면 이번에 유물을 하나씩 건졌어야 할 길드이니.

심지어 1회차 때에는 지금처럼 10개가 아니라 3개밖에 유물이 안 풀렸었다.

공략 과정이 워낙 지저분해서 전체 점수를 까먹다 보니 3개까지 줄었던 거겠지.

그때도 3개 풀린 유물 가지고 지지고 볶고 싸웠던 걸 생각하면…….

‘저 정도는 양반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도진은 참다 참다 지팡이로 방패를 후려치는 소소와 비명을 지르며 방패를 몸으로 감싸는 테레사를 바라봤다.

‘잘들 논다.’

개그 듀오를 구경하는 사이 목적지인 인스턴스 던전 <가시비늘 둥지>에 도착했다.

* * *

<가시비늘 둥지>는 말 그대로 보스 몬스터 ‘가시비늘’이 자리를 잡은 던전이었다.

월드 보스 레이드 전후로 해서 고렙 유저들 사이에서 일종의 챌린지 던전이 되어 있는 난이도가 꽤 높은 곳이다.

보스룸까지 가는 길에 깔린 리자드맨 등도 까다롭지만, 전체 난이도 대부분을 보스인 가시비늘이 차지하고 있어 마지막에 파티가 전멸하는 경우가 잦다.

“방송 안 켰죠?”

심호흡을 하는 테레사에게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전투 장면은 당분간은 공개돼선 안 될 게 많았다.

괜히 이번에 유물을 얻은 사람 중에 유물의 능력을 밝힌 사람이 없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진 힘도 중요하지만 그걸 상대가 모르는 건 더 중요하기 때문.

“시작하죠.”

도진의 말에 테레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던전에 입장했다.

인던 활성화 메시지가 뜨자마자 전방에서 적대감으로 가득한 거친 숨소리가 다가왔다.

톱날검과 스파이크가 잔뜩 달린 방패로 무장한 리자드맨들이었다.

놈들은 노란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에 인간이 들어오자 광폭하게 달려들었다.

도진은 습관적으로 마법을 뿌리려다가 아차 하고 회로를 식혔다.

‘먼저 레사 누나부터 테스트해 보기로 했었지.’

사전에 테레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 것이다.

도진이 손을 쓰면 잔몹은 순식간에 사라질 테니, 먼저 자기가 이것저것 해 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 말대로, 테레사는 약간 설레는 얼굴로 달려드는 파충류와 인간 중간을 사는 놈들을 맞이했다.

아름답게 세공된 「청금석 방벽」이 톱날검과 충돌했다.

투웅.

테레사는 깜짝 놀랐다.

묵직하게 전해져야 할 충격이 정말 경미하게 느껴졌던 것.

받는 충격이 줄어서 경직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테레사와 반대로 공격을 한 리자드맨은 엄청난 반발력에 톱날검 든 손이 머리 위로 확 튀었다.

탱, 투웅, 텅.

이어지는 다른 놈들의 공격도 테레사는 솜씨 좋게 방패로 막아 냈고, 리자드맨들은 방패를 후려치고 반발력에 밀려 물러나고만 반복했다.

“오오… 오오오……!”

유물 등급 방패의 놀라운 성능에 테레사의 눈이 갈수록 커졌다.

그러다 방어만 하던 그녀가 공격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다만 무기가 아닌 방패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아직 숙련도가 부족해서 동레벨 몬스터를 상대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방패를 사용하는 공격 스킬들.

테레사는 타이밍을 맞춰 방패로 리자드맨 하나를 후려쳤다.

쾅.

살벌한 소리가 리자드맨의 머리통에서 울렸다.

그대로 뒤로 넘어가는 리자드맨.

방패의 성능이 워낙 좋다 보니 그걸 기반으로 하는 방패 스킬의 공격력도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테레사는 신이 나서 짧은 둔기와 방패를 열심히 휘둘렀다.

적의 공격을 아무렇게나 막으면, 오히려 공격한 놈이 충격을 받아 큰 빈틈이 생기니 그때 공격을 하면 필중이었다.

‘이거 딜러일 때보다 오히려 사냥 속도가 더 오른 거 같기도 하고……?’

안정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속도마저 딜러일 때와 엇비슷한 수준이 나올 정도라니.

유물의 성능을 직접 체험한 테레사는 기쁨의 눈물이라도 흘릴 거 같은 심정이었다.

‘무조건 S. 우리 방벽이는 유물 중에서도 S급이야. 분명해.’

테레사의 테스트가 대충 끝나고, 도진이 개입하면서 보스룸까지 이어지는 길이 순식간에 뚫렸다.

난이도 높기로 소문 난 <가시비늘 둥지>지만, 그래 봐야 그건 일반적인 인스턴스 던전을 기준으로 뒀을 때 이야기.

유물 등급 방패로 무장한 탱커를 앞에 세워 두고 딜을 뿜어내는 도진이 있는 파티에게 잔몹 구간은 식은 죽 먹기일 수밖에 없었다.

“벌써 보스……?”

새 방패로 이것저것 해 보는 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테레사는 보스룸이 나온 게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보스전에서 해 볼 게 있으니까…….’

그렇게 테레사가 생각하고 있을 때 도진이 말했다.

“할 거 다 했죠?”

그러면서 인벤토리에서 물약을 꺼내서 입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부작용을 각오하고 능력을 끌어올리는 종류의 도핑제였다.

월드 보스랑 싸울 때는 뒤가 어떻게 될지 몰라 써먹지 못했던 걸 지금은 마음껏 때려 붓는다.

테레사가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약물 중독 상태에 빠진 도진은 바로 보스룸으로 들어갔다.

-크르르……!

다른 놈들과 달리 붉게 빛나는 눈을 가진, 전신의 비늘이 날카롭게 서 있는 거대한 리자드맨이 몸을 일으킨다.

허겁지겁 도진 앞으로 나서며 방패를 들어 올리는 테레사.

그리고 터질 듯한 근육을 과시하듯 두 팔을 벌리며 포효하는 가시비늘.

치열한 보스전을 예고하는 듯한 대치 장면이었으나.

《초월》

도진의 등에서 뻗어 나온 마력으로 이루어진 날개 같은 형상은 이 싸움이 절대 길게 가지 않을 거라 말하고 있었다.

도진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빠르게 흐르기 시작한 마나와 그로 인해 일어나는 고양감.

포효하는 가시비늘을 향해 도진이 손을 뻗었다.

원래도 빠른 그의 마법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완성되어 날아간다.

《암석충격탄》

-크아아… 퀡!

제 머리만 한 돌덩이에 얻어맞은 가시비늘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단 한 방에 엄청난 대미지와 충격을 입고 그로기에 빠진 것이다.

“……?”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테레사가 인지하기도 전에.

그녀의 뒤쪽에서 엄청난 숫자의 마법이 연사되었다.

불, 전기, 물, 얼음, 바람…….

도진은 가진 마나를 다 써 버릴 기세로 날려 댔고, 최초의 그로기에서 회복되지도 못한 채 그걸 다 얻어맞은 가시비늘은 넝마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파멸 룬」의 힘까지 실어 최후의 일격을 꽂아 넣자 이미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가시비늘은 머리통이 사라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

뻣뻣한 동작으로 돌아보는 테레사.

황금빛 마력이야 매번 뿌려 대던 거지만, 그게 저렇게 일정한 형상을 이룬 적은 없었다.

월드 보스 때도 안 보여 준 거니까… 이번에 얻은 유물 혹은 능력이겠지.

테레사는 단어 그대로 걸레짝이 된 가시비늘의 시체를 힐끔 보며 생각했다.

‘…우리 방벽이 사기 아니었구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