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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41화 (14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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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성 라베스의 파편이 지상에 떨어지자 그 영향은 로스타니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낙하지점인 이누스 초원지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모든 구간 사냥터에 돌발적으로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

평소에는 보기 힘든 엘리트급, 보스급 몬스터가 자주 등장하자 사람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캬! 오늘 14시간 동안 보스 4마리나 잡았다. 보스 떴다고 메시지 뜨니까 주변 파티들이랑 몰려가서 두들겨 팼는데 존나 재밌었음.

-겨우 레벨 15짜리 뉴비한테도 보스 레이드의 맛을 보여 주시다니. 운영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ㅋㅋㅋ 뫼비우스 새끼들이 고맙단 소리를 듣는 날이 다 오네.

-ㄹㅇㅋㅋ 뫼비우스 새끼들 난이도 지랄 맞게 내려다 저번에 욕 하도 처먹어서 이번엔 좀 자제한 듯?

이벤트로 등장한 몬스터는 아이템은 드롭하지 않았지만, 경험치는 아주 달달하게 뱉었다.

적절한 난이도에 푸짐한 경험치까지.

지루한 레벨링을 하면서도 언제 주변에서 엘리트나 보스가 뜰지 기대하는 맛이 있었다.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로 주변 파티와 즉석에서 힘을 합쳐 적을 쓰러뜨리는 것도 새로운 재미였고.

유저 반응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근데 이누스 초원에서 고레벨들 노는 거 보니까 진짜 레벨업 열심히 해 둘걸 하는 생각은 들더라.

-ㅇㅇ 나도 그래. 뭐랄까 대규모로 몰려다니면서 싸우는 거 보니까 우리랑 다른 장르 게임 하는 거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난 게임 안 할 때는 무조건 도진 방송 켜 놓고 보는데, 탱커 라인 세우고 화력으로 조지는 거 보면 내 가슴이 다 뻥뻥 뚫리는 느낌임.

거기다 이번 월드 보스 레이드는 볼거리로서도 완벽했다.

도진 방송만 해도 켰다 하면 200명의 인원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대규모 보스 레이드를 하는 장면이 항상 송출되고 있는 상황.

언제 봐도 매 순간 모든 장면이 명장면이고, 하이라이트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몰랐다.

이 모든 흐름이 도진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란 걸.

도진이 회귀하기 전, 그가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던 때에 진행됐던 첫 번째 월드 보스 레이드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이벤트 시작 첫날부터 몇몇 길드 간에 충돌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이누스 초원은 다툼의 장이 되어 버렸다.

처음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감정의 골은 갈수록 깊어졌고, 나중에는 서로 상대를 엿 먹이기 위해 견제를 하고, 심하면 대놓고 공격을 하는 지경까지 갔었다.

그러다 결국 잡히는 몬스터보다 생겨나는 몬스터가 훨씬 더 많은 지경까지 세력 균형이 무너졌고.

라베스의 조각이 만들어 낸 ‘월드 보스’와 함께 이누스 초원지대를 넘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멸망의 힘이 더욱 크게 영향을 미쳤기에 다른 사냥터에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의 레벨 또한 높아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즉, 10레벨 사냥터에 30레벨 이상의 보스가 등장했던 것. 유저 입장에서는 감당 못 할 보스 몬스터에게 비명횡사를 한 것도 모자라 놈들에게 사냥터를 점거당하는 신세가 된 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1회차 때와 전개가 아예 달랐다.

월드 보스 레이드가 시작되기 전부터 ‘협력’, ‘연합’ 등을 언급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가장 먼저 이누스 초원에 들어가서 질서 있게 보스 레이드를 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미리 서로 구역이 겹칠 일 없게 조율을 마친 상태에서 움직이면 얼마나 효율 좋고 편한지 모범적 예시를 보였다.

도진은 첫 단추를 깨끗하게 끼움으로써, 질서로 질서를 만들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희가 정신없이 달리다가 여기까지 와 버렸네요.」

「아뇨, 아뇨. 저희도 앞뒤 안 보고 달린 건 마찬가진데요, 뭐. 이렇게 된 김에 저기 뭉쳐 있는 놈들 같이 처리하실까요? 안 그래도 너무 뭉쳐 있어서 저희 인원만으로는 부담됐었거든요.」

「저희야 물론 좋죠. 그럼 저 무리만 깔끔하게 처리하고 다시 좌우로 갈라지는 걸로 하시죠.」

서로 매너를 지키니 얼굴 붉힐 일이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가끔은 즉석에서 집단과 집단이 협력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는 인간 진영 전체에 적지 않은 시너지를 부여했고, 자연히 더 많은 몬스터를 잡아 죽일 수 있게 됐다.

[라베스의 조각이 지닌 멸망의 힘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도진이 만든 사소한 변화는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왔다.

이외에도 도진이 부른 변화는 또 있었다.

-근데 여기저기 방송 돌아다녀도 제일 시원시원하게 밀고 나가는 건 도진이네네. 더 많은 인원이 몰려다니는 데보다도 더 빠름.

-인원 더 늘어나 봐야 전체적인 움직임만 굼떠지는 거지. 어차피 일정 인원만 넘기면 화력은 충분하니까.

-그것보단 도진 공격대 구성이 특이해서 그런 듯. 비슷한 숫자라도 화력이 부족한 공격대도 있거든. 마법사 비중이 엄청 높은 게 진짜 큰 장점인 거 같아.

-나도 보면서 그렇게 느꼈음. 법사 비중이 거의 절반 가까이 되는 거 같은데, 공대를 이렇게 짜니까 화력이 미쳤더라.

-이제 앞으로 고렙 마법사는 길드에서 모셔 갈 듯 ㅋㅋ 평소엔 몰라도 이런 대규모 이벤트 때 써먹으려면 모셔 가야지.

-가뜩이나 숫자도 없는데 성장도 느려서 100렙 넘는 법사 환상종 취급이니까. 미리미리 확보해 놓으려고 하겠지.

그건 바로 마법사에 대한 인식 변화였다.

도진의 등장으로 잠깐 재평가되는 시늉만 하다가, 결국 ‘도진’ 할 거 아니면 하면 안 되는 클래스로 낙인찍힌 게 마법사였다.

그런데 이번에 도진이 공격대 인원 절반을 마법사로 채워 넣고서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보스들을 갈아 버리는 모습을 보여 주니 인식이 완전히 뒤바뀐 것.

-신들린 콘츄롤로 평범한 법사의 인권을 바닥에 처박으셨던 진 센세께서 직접 법사의 인권을 되살려 주셨다. -도진복음 1장 1절.

-마법사 게시판은 오늘부로 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마법사 게시판 일동은 진과 일체가 되며, 그에 대한 공격은 마법사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밑바닥 인식 속에서 꾸역꾸역 마법사로 레벨 100을 찍은 용사 100인은 도진과 함께 법사 인권 운동가로 길이 기록해야 한다고 본다.

이에 도진에 대한 평가는 날이 갈수록 고점을 갱신했다.

평소 마법사 게시판에서 도진이 날뛰는 바람에 역으로 평범한 마법사가 욕먹는 거라고 투덜대던 사람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누군가 도진을 언급하면, 투덜의 ㅌ만 꺼냈다간 바로 화형대 올리고 장작 쌓고 「점화」해 버릴 것만 같은 광신적 분위기가 법게를 휩쓸고 있었다.

* * *

200인 공격대를 하나의 전차처럼 써먹으며 전장을 휩쓴 도진은 잠시 안전지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각자 묶인 파티 단위로 흩어져 쉬고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월드 보스 레이드의 중심지인 이누스 초원에서 가장 높은 전과를 기록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평소에 천대 받다가 전장의 주인공 취급을 받고 있는 마법사들은 한껏 들떠 있는 상태였다.

“이상하네요.”

물끄러미 왁자하게 떠드는 마법사들을 보던 탄토의 말이었다.

“아상하다니, 뭐가요?”

육포나 먹을까 하고 인벤토리를 뒤적이던 도진이 반응했다.

탄토 정도 실력자의 감은 무시할 수 없다.

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 무조건 체크하고 넘어가야 했다.

그런데.

“아뇨, 뭐랄까… 이렇게 묻어 가는 식으로 경험치를 먹는 건 처음이어서요. 주로 혼자 게임을 하기는 했어도 어딜 가나 2인분 이상은 항상 했었는데…….”

약간 아쉬운 투로 하는 말은 도진이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이었다.

“묻어 간다뇨!”

탄토의 말에 소소에게 과자를 먹이던 테레사가 훽 고개를 돌렸다.

“탄토 님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바짝 붙은 몬스터들 처리해 주셔서 탱커 라인이 얼마나 편했는데요.”

테레사와 마찬가지로 전열을 담당했던 로터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도진도 탄토를 칭찬했다.

“맞아요. 원딜 라인에서 아무리 화력을 집중해서 빠르게 강한 개체를 처리한다 해도 전열에 압박은 들어오게 마련이죠. 우리는 마법사 비중이 높아서 화력 공백이 좀 있기도 하고요. 그걸 커버해 줘야 하는 게 근딜 역할인데, 탄토 씨가 활약해 준 덕분에 전투가 훨씬 편해졌어요.”

그것도 두루뭉술하게 ‘참 잘했어요’가 아니라 디테일하게 그가 수행한 역할과 기여한 부분을 짚어서.

그러자 탄토의 행동거지가 눈에 띄게 어색해졌다.

탄토는 가면을 쓴 주제에 손가락으로 볼을 긁더니 일본인 특유의 겸양 섞인 말을 했다.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걸요. 이게 다 공대장님이 잘 이끌어 준 덕분이죠. 탱커분들이 잘 버텨 주시고, 힐러님들이 잘 살려 주신 덕분이기도 하고요. 전 그냥 칼질만 했을 뿐입니다.”

그냥 칼질이라.

도진은 속으로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혼잡한 전투 속에서 도진은 전장을 넓게 볼 필요가 있었다.

빠르게 위험도 높은 적을 캐치해 일점사 지시를 내려야 했고, 때로는 무너질 것 같은 탱라인을 지원사격 해 줘야 했기 때문.

그런데 위급해 보이는 위치에 화력을 지원하려고 하면, 높은 빈도로 탄토가 그곳에 나타나곤 했었다.

타 클래스 대비 빠른 기동성과 은신의 은밀성을 활용한 탄토의 움직임은 공격대 전체에 윤활유 역할을 해 줬다.

그러니 탄토의 말은 지나친 겸손이라 할 수 있었다.

‘일본 애들 특징이지.’

혹은 본인의 능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정말로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걸지도.

“어쨌든 묻어 간다고 생각할 거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5인분은 혼자서 하고 있는 거처럼 보이니까.”

“아뇨, 아뇨. 저 같은 게 무슨 그런……!”

도진의 칭찬에 탄토가 손을 휘저으며 부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진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1파티, 그리고 1공격대 인원은 이런 대규모 전투를 상정하고 짠 조합이 아니에요. 월드 보스 레이드의 최종 보스를 잡기 위해서 짠 거지.”

도진의 말에 로터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스, 그 말은 보스는 월드 보스 레이드란 게 단순히 보스급 몬스터가 쏟아지는 이벤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거처럼 들리는데요? 아니면 조각이 떨어질 장소처럼 뭔가 알고 있습니까?”

도진이 피식 웃었다.

“LOST가, 아니 뫼비우스가 이렇게 얌전하게 끝내겠어요?”

“확실히 너무 곱게 넘어가는 감이 있긴 해요.”

로터스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탄토는 ‘역시…….’ 하며 혼자 뭔가를 중얼거렸다.

감탄한 눈으로 도진을 힐끔거리면서 말이다.

그때.

“저기…….”

로브를 걸친 몇 명의 마법사들이 다가왔다.

남자 두 명에 여자가 세 명.

다섯 명의 마법사는 각자 접시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괘, 괜찮으시면 이거 좀 드세요! 제가 요리 스킬 숙련도가 꽤 높아서 맛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접시에 담긴 건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스테이크였다.

“진짜 진짜 팬이에요! 항상 마법사가 활약할 수 있다는 거 증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법사로 게임하면서 오늘만큼 속 시원했던 적이 없었어요. 진짜 공격대 멤버로 뽑혀서 행복해요.

약간 민망하긴 했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말과 눈빛에 도진은 고마움과 기쁨을 느꼈다.

전장에서 먹기엔 과하게 공이 들어간 스테이크로 배를 채운 도진은 다시 전투를 준비했다.

더 많이 죽이고 죽여서, 월드 보스를 만들고 있을 라베스의 조각을 조급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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