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140화 (14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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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퀘스트가 열린 지 일주일이 조금 넘게 지난 시점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앞과 뒤에 덧붙어 있는 자잘한 인사말을 제외한 핵심 내용은 이러했다.

[태평양 시 2월 10일 00시 00분을 기점으로 사전 준비 퀘스트 ‘못다 한 일’이 종료되며, 본격적인 월드 보스 레이드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아직 사전 준비 퀘스트를 진행하지 못한 모험가님들께선 남은 기간 동안 퀘스트를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이제 본편이 시작될 예정이란 소리.

구독자 중 고레벨 위주로 가려 뽑은 200인 공격대에 더해 일시적 동맹을 맺은 길드까지, 연합의 총원은 1,500명을 넘을 정도.

사실상 ‘서로 돕고 삽시다’보다는 ‘우리 서로 뒤통수는 치지 맙시다’에 가까운 관계이긴 해도, 이 정도면 다른 집단이 훼방을 놓는 건 방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 정도면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다. 남은 건…….’

마지막으로 안배할 것은 테레사와 소소가 이번 이벤트에서 높은 기여도를 쌓을 수 있게끔 하는 것.

‘나랑 파티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기여도는 보장되겠지만, 그래도 더 먹으면 좋으니까.’

일반 퀘스트부터 대규모 이벤트까지 정말 목숨 걸고 게임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한 끗 차로 보상의 급이 달라지고, 숨겨진 요소인 히든 피스에 닿고 못 닿고가 결정 나기 때문.

해서, 도진은 이벤트에 앞서 테레사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기여도 수치를 한껏 끌어올릴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했다.

“…렇게만 하면 되는데, 할 수 있겠어요?”

[“그,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제가요……?”]

“만약에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를 말하는 거니까 벌써부터 겁먹을 거 없어요. 그 스킬 아껴 뒀다가 각이다 싶을 때나 제가 신호할 때 그것만 쓰면 되는 거니까 어려울 것도 없고.”

[“…벼룩만도 못 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해 볼게요. 저 같은 건 최선이라도 다해야겠죠…….”]

“…….”

테레사가 이렇듯 자신감이 바닥을 치는 상태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도진에게 조언을 듣고, 플레이 영상도 보고, 따로 교육까지 듣고 들어갔음에도 퀘스트를 끝까지 클리어하지 못한 것.

이는 실력 문제보다는 딜러와 탱커 중간 어디쯤에 있는 그녀의 과도기적 상태가 문제였으나… 도진이 그렇게 위로를 해도 테레사는 여전히 의기소침해 있었다.

“어쨌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든 연습을 하든 제가 말한 것만 신경 쓰면 돼요.”

[“네…….”]

테레사에 대한 안배까지 마쳤다.

소소는 도진과 테레사에게 힐과 버프를 먹여 두면 알아서 기여도가 팍팍 오를 테니 됐고.

“이렇게 보면 진짜 힐러 클래스가 사기긴 해. 인맥만 좋으면 웬만한 건 다 날로 먹으니…….”

난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굴러야 하는데 말이지.

천민 딜러와 황족 힐러 간의 시스템적 불합리함에 대해 생각하며, 도진은 침대로 향했다.

훌륭한 게이머가 되기 위해서는 컨디션 관리에도 힘을 쏟아야 하는 법이었다.

* * *

2월 9일 23시 57분.

도진은 제국 동부 이누스 초원지대 근처에 있었다.

이곳이 월드 보스 레이드의 전장이 될 예정인 장소였다.

도진은 자신뿐만 아니라 함께하기로 한 사람들 전부를 끌고 온 상태였다.

그들 앞에서 예언자 노릇을 하는 건 쉬웠다.

사전 퀘스트 최초 클리어 보상으로 라베스의 조각이 떨어질 장소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는 말 한마디로 개연성이 생겼으니.

‘피곤하다…….’

월드 보스 레이드 공격대 인원 중 상당수를 도진 채널에서 열성팬으로 활동 중인 사람 위주로 모아일까.

시작하기도 전에 팬 서비스를 하느라 진이 빠져 버렸다.

‘사진만 100장 넘게 찍은 거 같네.’

그래도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게 검증된 팬들인 데다 함께 월보레 뛰자고 모인 사이인지라 거절 없이 다 같은 앵글에 얼굴 넣고 스크린샷을 찍어 줬다.

지금은 그나마 레이드 시작 3분 전이라는 핑계로 각 파티별로 나뉘어서 대기 중이라 좀 낫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시선들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도진은 애써 그러한 시선에서 신경을 거두며 1파티. 즉, 자신과 함께 움직일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긴장이라도 되는지 계속 다리를 떨며 방패를 만지작대고 있는 테레사.

평소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테레사 옆에 붙어 있는 소소.

한쪽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가면을 쓰고 침묵하고 있는 탄토.

그리고 탄토와 반대쪽에 서 있는 거구의 흑인 성기사 로터스까지 5인이 1파티 멤버였다.

[멸망의 별 라베스의 조각이 로스타니아에 떨어집니다.]

공지된 시간이 되자마자 월드 메시지가 떴다.

“어어어……!”

주변 사람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저 멀리 광활한 초원 한복판에 검붉은 유성이 떨어진 것이다.

쿠우우웅.

아주 먼 거리임에도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멸망의 별 라베스의 조각이 로스타니아에 떨어졌습니다.]

[이누스 초원에 대규모 균열 사태가 일어날 것입니다!]

[균열에서 태어난 재앙의 권속들이 로스타니아를 유린하기 전에 막아 주십시오!]

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

[바리: 정보가 맞았군요.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유리한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겠네요. 귀한 정보였을 텐데 선뜻 공유해 줘서 고마워요. 이 도움, 잊지 않고 나중에라도 갚도록 하죠.]

참여 의사도 가장 먼저 밝히더니, 정보 공유에 대한 인사도 신라가 가장 빨랐다.

신라 길드장 바리에 이어 도진과 잠시나마 동맹 관계를 맺기로 한 다른 길드에서도 고맙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도진은 받은 메시지에 대해 일괄적으로 별거 아니라는 내용의 답신을 복붙 해서 뿌린 뒤 공격대 인원에게 전파했다.

“초반에는 우리가 맡은 구역 위주로 탐색만 하는 거 기억하시죠? 공대 단위까진 아니어도 파티 단위로는 뭉쳐 계시고요. 통제 잘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았어요’, ‘도진 님 따라다녀도 돼요?’ 등 각종 대답이 튀어나온다.

“자, 그럼 다들 재밌게 즐기자고요.”

도진을 위시한 약 200명의 인원이 이누스 초원으로 진입했다.

* * *

떨어질 때부터 균열을 품고 있던 라베스의 조각은 초원지대 전부를 균열화 했다.

그 안으로 진입하자 균열 안의 작은 균열이 수없이 생성돼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작은 균열 하나하나가 슬라임을 닮은 덩어리를 쏟아냈다.

슬라임들은 땅에 녹아들어, 짐승이나 몬스터의 모습으로 다시 솟아올랐다.

마치 땅속에서 초원에 살았던 생물들의 정보를 흡수해 변신하는 것처럼.

“이거 상상했던 거보다 훨씬 더 와일드한데?”

흑인 성기사 로터스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감탄했다.

“…예상하긴 했지만, 예상이 들어맞는 게 꼭 좋은 건 아니군요.”

탄토도 가면을 고쳐 쓰며 한마디 거든다.

그들 말고도 초원지대에 들어선 모두가 압도적 광경에 경직되어 있었다.

“일단 간부터 보죠. 탱커분들 전열 세워 주시고, 1시 방향 균열 있는 자리부터 밀어내고 공간 확보할 겁니다.”

도진이 앞으로 나서며 지시를 내리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사 누나도 지금은 다른 탱커분들이랑 같이 움직여요. 다들 고레벨 탱커분들이니까 보고 배울 게 많을 거예요.”

“아, 넵!”

자, 전진!

도진의 외침에 맞춰 200명의 인원이 우르르 움직였다.

들소의 형상을 한 검붉은 슬라임들이 공격대를 향해 돌진해 왔다.

“원딜 화력 집중!”

도진의 신호에 맞춰 원거리 딜러들이 슬라임 들소 떼를 향해 화력을 퍼부었다.

들소들은 고체와 액체 중간쯤 위치한 살덩이를 뭉텅뭉텅 흘려 대면서도 화력의 장벽을 뚫고 그대로 탱커 라인과 충돌했다.

“탱커들 피 관리해요! 무슨 피가 이렇게 확 빠져!”

“어억! 이거 한 마리 한 마리가 죄다 던전 네임드급인 거 같아요!”

“근딜들 달라붙어요!”

월드 보스 레이드란 이름에 걸맞게 적 몬스터는 한 마리 한 마리가 최소한 한 던전의 네임드 몬스터 정도는 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개체들이었다.

“원딜들, 지금부터 섬광 찍히는 몬스터 점사할 겁니다. 공격 준비!”

그러나 이쪽은 총인원 200명의 인원을 자랑하는 대규모 공격대다.

《섬광창》

도진은 들소 주제에 두 발로 서서 박치기를 해 대는 건방진 슬라임 들소의 가슴팍에 광점을 찍었다.

광점이 터지며 섬광을 발하자 그것을 본 공격대원들의 공격이 집중됐다.

쾅, 퍽, 쐐액, 콰직 등 온갖 효과음이 겹치며 체고 3미터가 넘는 덩치의 슬라임이 완전히 터져 버렸다.

“근거리들은 탱커한테 바짝 붙어있는 몬스터들 처리하고, 원거리는 지금처럼 하나하나 확실히 숫자 줄여 나갈 겁니다!”

도진은 공격대를 짜면서 근딜의 숫자는 최소한으로 잡고, 원딜은 100명이나 포함시켰다.

그중 절반 이상이 마법사이고.

처음 발표할 때도 그렇고, 방금 전까지도 본인이 마법사라 마법사들을 많이 뽑아 준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이젠 아니었다.

든든한 전열 뒤에서 압도적 화력으로 위협적 적을 격살하는 마법사들의 위용은 든든함을 넘은 무언가였다.

[가까운 곳에서 보스가 태어났습니다!]

경고 메시지와 함께 전방에서 여러 개체의 슬라임이 합체하며 거대한 실루엣이 만들어졌다.

“고, 고블린?”

그 정체는 6~7미터가 넘는 키를 가진 고블린이었다.

고블린이 팔을 뒤로 당기더니, 확 하고 뻗었다.

쭉 하고 늘어난 고블린의 팔이 탱커 라인의 정중앙을 때렸다.

“크읍!”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생존기를 돌린 탱커 넷이 4미터쯤 쭉 뒤로 밀려났다.

“어어억!”

탱커들과 뒤섞여 기회가 올 때마다 치고 빠지던 전사나 도적 등이 같이 휘말려 부상을 입었다.

후속 공격이 이어지면 충분히 위험할 상황.

하지만 기껏 합체 변신까지 마친 슬라임 고블린은 다음 공격을 잇지 못했다.

등장과 동시에 도진이 광점을 찍었고, 신호만 기다리던 원거리 딜러진의 집중된 화력에 바로 즉사해 버린 것이었다.

‘역시 쪽수로 미는 게 답이라니까.’

도진은 계속해서 아군에게 위협이 될 적을 골라내 일점사 표식을 찍었다.

그렇게 유독 크고 강한 개체들을 바로바로 처리해 주니 근거리 딜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최초 목표로 삼았던 지점에 도달한 도진은 멀리서 피어나는 불길한 마나의 기둥을 바라봤다.

저곳이 라베스의 조각이 떨어진 지점.

이번 월드 보스 레이드의 최종 목표가 있는 그라운드 제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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