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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보니 무슨 납치범이 애들 협박하는 대사 같지만, 어쩌겠나.
정말 엄마랑 아빠 다시 보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상황인 것을.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긴 균열 생성 과정에서 바깥과 차단된 상태다."
학생들 사이로 두려움이 더 깊어진다.
하지만 심하게 동요하거나 당황하거나 놀라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정도는 내가 다 알렸어. 시간 낭비 말고 실속 있는 이야기나 해."
헐떡대며 말하는 제니아.
보아하니 그녀가 다른 학생들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한 모양이었다.
"그럼 상황은 대충 이해했다는 거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꿀꺽 하고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굴 안을 채웠다.
질식할 것만 같은 긴장감 속에서 모두가 도진에게 집중했다.
"이쪽 부근 사마귀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 놈들이 적극적으로 먹이 찾기를 시작하면 숨어 있는 데도 한계가 오겠지. 그렇다고 도망치기엔 부상자도 있고, 도망쳐서 갈 곳도 딱히 없다."
흑흑, 하고 누군가가 울기 시작했다.
팔이 잘린 학생을 간호하고 있는 여학생이었다.
공포와 절망은 전염성이 강한 독이다.
울음이 번지기 전에 도진은 주의를 다시금 자신에게 돌렸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를 지킨다. 쥐 죽은 듯 가만히 숨어 있으면 사마귀들한테 들키기 전에 구조대가 올 가능성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도 차라리 여기서 싸우는 게 생존확률이 높을 테니."
"그, 그것들이랑 싸우라고요?"
살집 있는 남학생 하나가 질린 투로 말했다.
"부상자를 제외해도 지금 여기 칼잡이가 넷에 나까지 마법사가 네 명. 전력은 충분해."
"우, 우린 아직 학생이라고요!"
도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밖에 돌아다니는 벌레 새끼들한테 부탁해 봐. 아직 학생이고 어리니까 살려 달라고."
죽음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가는 데 순서 없다는 말은 이 세계에선 더욱 잔인하게 통용되는 현실이었다.
누구 하나 숨 쉬는 소리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걸 깬 건 휴이였다.
"그래. 우리 절망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하자."
앞으로 한 걸음 나오며 휴이가 말했다.
"알려 주세요. 저희가 뭘 하면 될지."
도진이 이마 부근을 가리켰다.
"놈들 약점은 여기다."
"놈들은 머리가 없잖아요."
여학생 하나가 반사적으로 한 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커다란 입만 달려 있고 그 위로는 납작해서 아예 머리통이 없는 거처럼 보이거든. 근데 그게 맹점이다. 시각, 후각, 청각을 포기한 놈이 지닌 유일한 감각기관인 더듬이가 여기 달렸잖아."
"더듬이……?"
"그래, 더듬이."
저분 말이 맞아. 휴이가 도진의 말을 긍정하고 나섰다.
"납작한 머리통이랑 더듬이가 붙어 있는 곳을 맞으니까 사마귀 놈이 아예 움직이질 못했어. 꼭 그……."
무언가 궁리를 하던 휴이가 확 하고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중요 부위를 얻어맞은 남자처럼!"
그런 휴이를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미친 새낀가?’
아니, 맞는 얘기긴 한데…….
조금 생각해 보니까 정말 딱 들어맞는 비유이긴 했다.
그렇다고 저놈이 정상인 건 아니지만.
애써 휴이를 무시하며, 도진은 말을 이었다.
"급소랄 게 없는 놈한테 유일한 약점이 이곳이다. 신경이 몰려 있는 그 부분을 때리면 발작을 하든 덜덜 떨든 제대로 움직이질 못하게 돼. 거길 공격한다고 바로 죽지는 않지만, 죽일 시간을 벌 수 있다."
거기까지 말한 도진은 학생들 중 검을 차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너랑 너랑 너 그리고 너까지."
한쪽으로 손을 휙휙 젓는 도진의 움직임에 맞춰 검술학부 학생들이 엉거주춤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네가 가르쳐. 어떻게 하면 급소를 노릴 수 있을지. 넌 해 봤잖아."
도진이 지목한 건 휴이였다.
"…해 보겠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는 휴이.
고개를 끄덕여 준 도진은 나머지, 로브를 입은 셋을 바라봤다.
무식한 칼쟁이들은 이 정도면 됐고.
"이젠 너희인데……."
몸 쓰는 게 특기인 놈들도 벌벌 떠는데 책상 앞에서 마법서나 읽고 있던 애들은 오죽할까.
한눈에 봐도 겁에 질린 정도가 더 심했다.
‘이런 애들한테 조금이라도 어려운 걸 시켰다간 사달이 나겠지.’
경험 없는 사람이 생사가 걸린 전투에서 실수를 안 할 확률이란 게 얼마나 될까.
그걸 간과하고 경험 없는 사람에게 중요한 걸 시킨다?
그럼 실수한 사람이 아니라 그걸 지시한 사람 잘못이란 게 도진 생각이었다.
"잘 들어. 너흰 가장 자신 있는 주문으로 내가 지정하는 목표만 공격한다. 전투가 어지럽게 돌아간다고 우왕좌왕하지 마. 무조건 내가 지정하는 놈한테 꽂아 넣으면 돼. 알겠지?"
제국 아카데미 마법학부 2학년이면 최소한 4성 마법사 초입은 넘어섰다고 봐도 된다.
엘토마기아로 치면 황색위 정도.
이전에 만났던 시살라 오멘과 비슷하거나 그 윗줄 정도 된다는 뜻이다.
일점사만 제대로 된다면 화력에 보탬이 될 만했다.
【진.】
그때, 밖을 경계하던 아네모네가 긴장된 목소리로 도진을 불렀다.
도진은 왜 그러는지 묻지도 않았다.
"다들 숨 죽이고 기도해. 사마귀들이 여길 발견 못 하고 지나치게 해 달라고 말이야."
밤은 아직도 깊었다.
그리고 또한 차가웠다.
* * *
부상자 둘이 내는 옅은 신음 말고는 들리는 소리가 거의 없었다.
우는 사람도 입을 틀어막고 울고 있었기에 그랬다.
고요의 정도가 누군가의 심장이 크게 뛰면, 그 소리가 굴에 울릴 것만 같았다.
이런 경험이 숱했던 도진을 제외한 다른 인원의 긴장은 한참 전에 이미 역치를 넘겼다.
툭.
아네모네가 도진의 팔을 건드렸다.
도진과 시선을 맞춘 아네모네가 이를 드러냈다.
싸울 준비를 해야 할 거 같다는 의미로.
‘결국 이렇게 흘러가나.’
익숙한 전개다.
전생에도 이런 위기에서 운이 따라 줬던 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때마다 정말 열심히 발버둥 쳤던 기억이 난다.
‘결과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긴 했어.’
떠올린 기억의 끝은 결국 씁쓸함이었다.
도진은 떠오른 장면 장면을 잘게 부수어 다시 기억의 밑바닥에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조용히 소년, 소녀들에게 말했다.
"온다. 준비해."
없어졌던 숨소리가 돌아왔다.
두려움으로 흐트러진 호흡이 내는 소리였다.
* * *
앞을 보지 못하는 사마귀가 열심히 먹이를 찾아 사방을 더듬거리며 전진한다.
투둑, 투두둑.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더듬이로 땅바닥을, 바위를, 벽을, 나무를, 주변 모든 것을 탐색하며 움직이기를 한참.
사마귀의 더듬이가 잠시 멈췄다.
토독.
다시 조심스레 바닥을 더듬는 벌레의 유일한 감각기관.
혹시나 놓친 진동이 있나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의미한 먹이의 활동은 발견되지 않았다.
조바심과 허기를 동시에 느낀 사마귀는 좀 더 거칠고 과감하게 이동했다.
그러다 내리막길을 만난 사마귀는 마구잡이로 전진했다.
"와, 왔다!"
공교롭게도 그곳이 바로 도진과 아카데미 학생들이 숨어 있던 작은 굴이었다.
멘티스 프레데터가 나타난 걸 본 검술학부 학생 하나가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터뜨렸다.
그러기만 했으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텐데.
너무 긴장했는지 그 학생은 신호도 없이 앞으로 팍 튀어 나갔다.
‘더듬이… 더듬이!’
오직 더듬이를 공격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쉬익!
그런 그의 행동은 필연적으로 멘티스 프레데터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저 병신이!"
학생 하나의 급발진에 도진은 멘티스 프레데터에게 쏘려고 준비한 「섬광창」을 캔슬하고, 재빠르게 「바람 화살」을 날렸다.
"아악!"
목표물은 뛰쳐나간 바보의 다리였다.
마법에 적중당한 바보는 갑작스런 통증에 놀라 그대로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쐐액-!
그리고 찰나의 틈을 두고 멘테스 프레데터의 돌진 베기가 바보의 목이 있던 곳을 찢고 지나갔다.
하마터면 공기가 아니라 사람이 찢길 뻔한 위기.
"막아!"
멘티스 프레데터는 바로 넘어진 인간을 공격하려 했으나 도진의 외침 그리고 다른 사람의 대처가 더 빨랐다.
"핫!"
휴이가 나서서 멘티스 프레데터의 더듬이를 정확하게 가격한 것이었다.
숨 새는 소리를 내며 자기 머리, 아니 더듬이를 어루만지려는 사마귀.
"앞에 칼잡이들 한번 쳤으면 물러나!"
지시하는 도진의 마법회로에서 마법이 뛰쳐나갔다.
이리저리 흔들어 대는 사마귀의 퇴화한 대가리를 정확히 노려 광점을 찍는다.
피이이- 하는 고주파가 울리고, 이어 섬광이 터졌다.
"뭐 하고 있어? 제일 자신 있는 걸로 갈겨!"
넋 놓고 구경만 하던 마법 꿈나무 셋도 허둥지둥 마법을 쏘았다.
바람, 불, 물.
세 가지 속성 마법이 두서없이 멘티스 프레데터를 두들겼다.
다리, 집게, 몸통.
조준은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다 명중하긴 했다.
하긴. 서 있는 놈도 못 맞추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흥분해서 막 갈기지 마! 마법회로 과부하 안 걸리게 잘 관리해라! 마나 고갈 안 되게 신경 쓰고!"
귀에 때려 박히도록 고함치며 도진은 멘티스 프레데터에게 연속으로 마법 공격을 했다.
주기적으로 더듬이 부위에 충격을 주며 마비시키는 건 당연했다.
멘티스 프레데터는 무식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놈.
단 몇 초만 날뛰게 두어도 사상자가 속출할 것이었다.
도진과 학생 셋의 마법 공격을 연속으로 얻어맞은 멘티스 프레데터는 곧 축 늘어졌다.
"그만!"
무력화를 하자마자 사격 중지를 명령한 도진은 밖을 경계하는 아네모네를 바라보았다.
‘제발 이놈이 무리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놈이어야 하는데…….’
전투는 필연적으로 강한 진동을 발생시킨다.
근처에 멘티스 프레데터가 있었다면 진동을 느끼고 이쪽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
반대로 진동이 발생하더라도 감지가 가능한 거리 안쪽에 앞 못 보는 사마귀 놈들이 없다면 무사히 넘어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큰일 난 거 같아. 흥분한 벌레들 냄새가 가까워지고 있어.】
먹잇감을 발견하여 흥분한 벌레는 조금은 다르고, 평소보다 강렬한 체취를 뿜는다.
그러한 냄새가 아네모네에게 알리고 있었다.
힘든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음을.
"방금 예행 연습 했으니까 잘할 수 있지? 지금처럼만 하자. 육체파들, 괜히 흥분해서 썰리지 말고 딱 마비까지만 시켜. 화력은 이쪽에서 담당할 테니까."
그런데 잠깐. 저 새끼는 왜 엎어져서 날 원망스런 눈으로 보고 있어?
아, 내가 쏜 애구나.
"세 토막으로 잘릴 걸 구해 줬더니 눈빛이 괘씸하네? 겨우 그거 맞고 누워 있지 말고 일어나서 일해. 그리고 생각 없이 튀어 나가지 마. 매번 구해 줄 거라 생각하지 말라고."
도진은 힐링 포션 한 병을 바보에게 던졌다.
저런 바보 손까지 빌려야 하는 게 지금 처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