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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아의 경우 부상이나 출혈량 자체는 당장 죽을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대퇴부 동맥이라도 절단됐는지 출혈량이 살벌하다.
‘이대론 1분은커녕 30초도 못 버텨.’
허벅지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는 와중이다.
일일이 확인하고 뭐 하고 할 시간 따위 없었다.
멘티스 프레데터는 고정적으로 독을 지닌 개체가 아니다.
등장 지역이 다양한 만큼 각 개체의 특징이 조금씩 다르단 소리.
‘일단 포션을 쓰고 보자.’
도진은 도박을 하기로 했다.
쓰러진 여자에게 힐링 포션을 쓰기로 한 것.
판단을 내렸을 때는 이미 포션을 상처에 뿌리고 있었다.
멘티스 프레데터가 헤집은 허벅지에 포션 한 병을 전부 부었다.
‘출혈이 잡힌다.’
다행스럽게도 상처가 아물며 출혈이 줄어드는 게 보였다.
도진은 포션이 효과가 있는 걸 보자마자 절단상을 입은 팔에도 뿌리고, 직접 먹이기도 하였다.
“으윽… 모아크……!”
도진의 응급처치에 메르의 상태가 호전됐다.
출혈로 인한 쇼크 때문에 제정신은 아니지만,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닌 수준까지.
도진은 죽은 친구를 바라보며 손을 뻗는 메르의 몸을 밧줄로 선물 포장하듯 묶었다.
“굴로 옮기자.”
아네모네가 들기 편하도록 손잡이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커다란 입에 안정적으로 걸쳐진 손잡이에 이끌려 메르가 데롱데롱 매달렸다.
도진과 아네모네는 그렇게 살아남은 소녀를 데리고 굴로 복귀했다.
“메, 메르!”
그러자 제니아의 복부를 누르고 있던 빌이 깜짝 놀란다.
자신과 같은 검술학부 학생인 메르가 중상을 입고 실려 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걱정 마. 겉보기엔 많이 심각해 보여도 이쪽은 당장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돼.”
아네모네는 정신을 잃은 메르를 빌 옆에 내려놓았다.
빌은 팔이 잘린 메르의 모습을 보다가 도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15분에 겨우 한 명… 젠장, 한 명이 죽기 전에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더 구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친 눈은 굴 밖을 향하고 있다.
숨도 돌리지 않고 바로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갈 기세다.
빌은 그런 도진의 모습을 보자 무언가 가슴에서 울컥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잘 지키고 있어. 그나마 멀쩡한 건 너 하나니까. 알겠지?”
갑작스럽게 자신을 보며 도진이 하는 말에 빌은 화들짝 놀랐다.
“네, 넵!”
그래도 대답은 제대로 했다.
말을 더듬긴 했지만.
‘다행이다…….’
왠지 모르게 빌은 이 모험가에게 더 이상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럼 얌전히 숨어 있어. 갔다 온다.”
도진이 아네모네와 굴 밖으로 나갔다.
어둠에 녹아들 듯 사라지는 도진을 보며 옅은 한숨을 뱉는 빌 리히트.
그때, 마찬가지로 도진을 보고 있던 제니아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저 인간 언제부터 나한테 반말을 하고 있던 거야?”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제야 눈치를 챈 제니아는 그저 황당했다.
본드레이라는 이름 앞에서 저렇게 무례하게 굴 수 있다니.
‘저런 인간은 처음이야…….’
여러 의미로.
* * *
도진과 아네모네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통한 걸까.
운 좋게 몬스터를 마주치지 않은 학생 2개 조, 총 4명의 학생을 추가로 굴에 피신시킬 수 있었다.
그런 뒤 다시 수색을 재개하려는 때였다.
코와 귀를 쫑긋거린 아네모네가 다급한 투로 말했다.
【진, 아무래도 누가 싸우고 있는 거 같아. 피 냄새랑 싸우는 소리가 들려.】
“어느 쪽이야?”
【타!】
설명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말하는 아네모네.
도진은 아네모네의 등에 착 달라붙어 갈기 털을 움켜잡았다.
모양새는 영 아니지만, 안장도 없이 아네모네를 타려면 이런 자세밖에 선택지는 없었다.
【꽉 잡아!】
아네모네가 산속을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학생 하나가 멘티스 프레데터 둘을 상대로 전투를 치르는 게 보였다.
다친 조원을 지켜 가며, 그것도 2대1로 전투를 치르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
“오른쪽부터 처리하자!”
【확인.】
아네모네가 순간적으로 감속했다.
그에 맞춰 도진이 뛰어내리고, 도진을 내려놓은 아네모네는 다시금 가속하여-
퍼억.
도진과 합의한 타깃의 더듬이를 찍었다.
전속력 질주에 담긴 힘을 그대로 실은 공격에 멘티스 프레데터가 전신을 부르르 떨며 경련한다.
그만큼 충격과 고통이 대단하다는 방증이었다.
잠깐 동안 경련과 마비를 겪는 적을 확인한 아네모네가 훌쩍 뛰어 옆으로 비켜섰다.
《화염창》
그러자 그녀의 뒤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도착한 화염창이 멘티스 프레데터에게 적중했다.
급소를 핀포인트로 저격당한 멘티스 프레데터는 이어지는 아네모네와 도진의 연속 공격에 번갈아 얻어맞으며 최후를 맞이했다.
그렇게 도진과 아네모네가 한 마리를 처치하는 동안 나머지 한 마리도 싸우고 있던 남학생에게 처리되었다.
‘두 마리를 상대로 버틴 것도 모자라서 여유가 생기자마자 한 마리를 바로 죽였다고?’
멀리서 접근하며 상황을 지켜본 도진이 눈을 빛냈다.
멘티스 프레데터의 체액이 묻어 있는 검을 들고 헉헉대던 남학생은 은빛 늑대도, 도진도 잊은 듯 재빨리 자기 조원에게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괘, 괜찮… 으윽!”
“잠깐만요, 지금 힐링 포션을-”
턱.
그런 그를 도진이 말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는 소년.
그에게 도진이 말했다.
“잠깐 기다려. 사마귀 놈들 중에 치유 효과가 역효과를 일으키게 만드는 독을 품은 놈이 있어. 포션을 쓰기 전에 그것부터 확인해야 돼.”
독이라는 말에 소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전투력은 쓸만해도 아직 경험이 부족하군.’
당황한 듯 망설이는 학생을 비켜서게 한 도진은 옆구리와 종아리에 자상을 입은 여학생을 살폈다.
길게 찢어진 로브와 달리 안쪽 자상은 깊지 않았다. 피도 젤리처럼 변하지 않을 걸 보니 적어도 제니아와 같은 종류의 독에 당하지는 않은 모양.
“다행히 독에 중독되진 않은 거 같다. 빠르게 응급처치만 하고 이동해야 돼.”
독이 아니란 말에 안도한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힐링 포션을 사용했다.
“그런데 당신은……?”
“빌 리히트 호위.”
“아……! 그럼 설마 빌이……?”
“질문은 나중에. 일단 따라와. 최대한 사뿐사뿐 걷고. 저 사마귀 놈들은 다른 감각은 아예 없다시피 하지만, 사냥감이 걷고 뛰는 진동은 기가 막히게 감지하거든.”
“죄송합니다. 적진 한복판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제가 시간 낭비를…….”
“사과도 나중에 해. 고맙다는 말도 나중에 하고. 넌 일어나고.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됐을 텐데 왜 일어나질 않고 있어?”
소년과 소녀를 닦달한 도진은 둘을 데리고 굴로 복귀했다.
“휴이!”
빌을 포함한 다수의 학생이 합류한 소년을 보고 반색했다.
‘역시 인기 있는 놈이었군.’
멘티스 프레데터 둘을 상대로 버틴 실력.
과하게 잘생긴 얼굴에 선하고 정의로울 것만 같은 눈빛.
딱 전형적인 아카데미물에서 등장하는 호감형 수석 캐릭터 같은 놈이었다.
훈훈한 분위기를 풍기며 서로의 안위를 확인한 휴이가 도진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제국 아카데미 검술학부 2학년 휴이라고 합니다. 저와 제 조원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우, 부담스러워. 도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받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자기소개를 하면서 아카데미 2학년이라. 거기다 성은 밝히지도 않고.’
그럼 평민이네.
평민이면서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실력, 외모, 성격, 교우관계까지 완벽한 놈이라…….
‘휴이라. 이름 정도는 외워 둬도 괜찮겠는데.’
언제 휘발될지 모르겠지만 말이지.
잡념을 털어 내며 마나 포션 한 변을 입에 털어 넣은 도진이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저도 돕겠습니다.”
휴이가 도진을 따르려 했다.
“여기나 지키고 있어. 거점을 지킬 제대로 된 전력 하나는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도진은 거절과 동시에 아네모네에 올라타 밖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처참하게 파 먹힌 시체를 본 도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벌써 내가 본 것만 일곱 명째…….’
눈으로 확인한 시체만 일곱 구.
사실상 이 정도면 생존한 학생은 이제 거의 없다고 봐야 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찾는 데까지는 찾아봐야지.’
그럼에도 도진은 산을 더 헤매 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기에.
하지만 그것마저도 곧 한계에 봉착했다.
【진, 저놈은 공격하면 안 돼. 주변에 몇 마리 더 있는 거 같아. 여기서 싸우면 계속 몰려올 거야.】
멘티스 프레데터의 개체 수가 많아지면서, 아네모네의 후각과 청각을 활용한 회피 기동이 점점 힘을 잃어 갔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언제 안정될 거냐, 빌어먹을 균열 새끼야.’
도진은 멀리 보이는 균열이 내뿜는 검푸른 마나 기둥을 노려볼 때였다.
【진, 이상해. 벌레들 냄새가 한쪽 방향으로 몰리고 있어. 지금까진 제멋대로 이리저리 움직였었는데.】
“한쪽 방향이라고?”
도진의 반문에, 아네모네는 대답 대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냄새를 맡았다.
바람에 묻어 오는 냄새에서 정보를 유추하듯이.
그런 끝에 아네모네가 불안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이 있는 굴 쪽이야. 확실히 그쪽 방향으로 이동하는 거 같아.】
도진의 얼굴이 굳었다.
‘말도 안 돼. 여긴 굴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굴이 있는 방향으로 몰려간다는 거야?’
놈들은 일정 범위 안에 있는 사냥감의 진동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을 텐데.
‘설마.’
도진의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스쳤다.
아니, 가능성이라기보다는 잊고 있던 멘티스 프레데터라는 종에 대한 정보였다.
‘암컷이다.’
멘티스 프레데터를 통솔하는 엘리트 몬스터.
암컷 멘티스 프레데터는 진동으로 주변 수컷을 불러들여 수족으로 부리는 능력을 지녔다.
‘꼼짝도 않고 숨어 있는 애들이 발견됐을 확률은 낮아. 아니, 발견됐다 해도 이렇게 멀리 있는 놈들이 그쪽으로 몰려가진 않겠지.’
운 나쁘게도 암컷이 그쪽 근처에 나타난 것이리라.
“아네모네, 돌아가자!”
어쨌든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건 분명했다.
* * *
굴로 돌아오면서 도진은 확신했다.
근처에 암컷이 있다는 것을.
‘이대로 있다가는 암컷한테 먹이 수색을 명령받은 수컷 놈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할 거야.’
그러다 보면 굴이 발견될 확률이 높았다.
전투가 불가피해질 것이고, 이는 필연적인 강한 진동을 발생시키겠지.
‘…지금 상황에 멘티스 프레데터 웨이브라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니 정말 모든 걸 다 놓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어찌 됐든 애들한테 가 봐야겠어.’
도진은 굴로 복귀했다.
그런 도진에게 일제히 학생들의 시선이 모였다.
앳된, 아니 그냥 대놓고 어린 애들의 얼굴이 보였다.
학생들 눈에는 도진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달빛에 의지해서 볼 수 있는 건 실루엣 정도였다.
하나 도진은 달랐다.
도진의 눈에는 겁에 질린 학생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보였다.
‘내려놓고 싶다고?’
지랄. 저런 눈을 보고 뭘 내려놔.
이를 악문 도진은 제국 아카데미 학생 8명을 향해 말했다.
“살아서 엄마랑 아빠 다시 보고 싶으면 잘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