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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98화 (99/271)

98

납도한 검병을 쥐며 가토는 승리를 확신했다.

적의 레벨이 높다고는 하나, 자신도 레벨 82 유저.

자신이 쓰는 「발도」의 공격력은 90레벨을 넘긴 마법사라 해도 충분한 피해를 입힐 수 있을 터였다.

그사이 궁수 둘도 놀고 있지는 않을 테니, 빌어먹을 마술쟁이 새끼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나나 궁수 둘 중 하나 정도를 리타이어 시키는 정도가 저놈의 한계!’

설사 내가 죽더라도 상관없다. 너만 죽일 수 있다면.

도진과의 거리를 좁히고, 「발도」를 발동하는 가토의 눈에 푸른 전광이 번뜩였다.

대인 공격에 특화된 전격 마법의 발현.

그걸 보면서도 가토는 피하거나 스킬 사용을 멈추지 않았다.

“같이 죽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가토는 자신은 죽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대마법 방어에 올인한 장비 세팅 덕에 「화염창」을 맞고도 생명력이 절반이나 남았었다.

일어나서 은근슬쩍 가득 채운 생명력이 급조한 전격 마법 한 방에 전부 증발할 리는 없다.

‘마법을 맞고 버텨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뒤쪽 궁수들이 알아서 저놈에게 치명상을 입히겠지.

가토의 바람대로 피핑, 하는 파공성이 뒤쪽에서 시작되어 가토의 옆을 스쳤다.

도진, 가토, 궁수A, 궁수B.

1초에서 2초 사이를 오가는 시간 속에서 네 사람의 행위가 뒤섞였다.

번쩍.

푸른 전광과 함께 「전기 충격」이 가토에게 꽂혔다.

“크아악!”

충격과 고통, 그로 인한 마비 효과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가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자신을 앞서간 화살이 도진을 유린할 걸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터덩.

화살은 도진에게 닿지 않았다.

도진의 어깨어림에서 나타난 은빛 망토 같은 것이 화살을 튕겨 낸 것이다.

“……!”

놀란 가토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다.

다행히 감전 디버프는 거의 끝나 가는 상황이었기에 좀 불편하긴 해도 움직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화살의 위협에서 벗어난 도진은 이미 가토에게 완전히 접근한 상태였다.

“헉!”

마법사가 검사의 간격으로 들어온다고?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상황에 가토는 당황했다.

당황하면서도 검을 뽑으려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PVP에 익숙한 자였기 때문이었다.

하나 도진은 가토보다 훨씬 더 대인전에 익숙한 고인물이었다.

턱.

“……?”

도진은 가토가 검을 뽑지 못하게끔 검 손잡이 끝을 장저로 후려치듯 찍었다.

그러면서 다시 「전기 충격」을 지근거리에서 먹였다.

“그으윽!”

거의 마비가 풀려 가던 가토의 몸이 다시 한번 굳었다.

1초, 어쩌면 그보다 짧게.

가토라는 방패를 얻은 도진은 그의 몸을 엄폐물 삼아 궁수들의 추가 공격을 회피했다.

궁수들도 바보는 아니라, 도진을 쏠 수 있는 각을 찾아 양쪽으로 갈라졌다.

소위 양각을 잡겠다는 생각.

《암석 방패》

그래서 도진은 한쪽 각을 막는 동시에.

《바람 칼날》

반대쪽으로 먼저 몸을 날리며 궁수가 자리를 잡기 전에 마법을 난사했다.

후후훙, 하는 위험한 소리를 내며 궁수를 노리는 여러 개의 「바람 칼날」.

궁수는 도진을 사냥하기 위해 세팅한 방어구를 믿고 맞아 가며 공격을 하려 했으나.

“커억!”

상상 이상의 공격력에 생명력이 뭉텅이로 빠졌고, 그 충격에 몸이 굳어 버렸다.

심각한 피해를 한 번에 받으면 그로기 상태에 걸리는 건 몬스터만이 아니었다.

《화염구》

빠르게 캐스팅된 후속타가 이어서 꽂혔다.

궁수가 힘없이 뒤로 넘어간다.

‘하나 처리했고.’

돌아서는 도진.

“이익!”

그때 옆에서 가토가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쐐애액-

앞에서는 다른 놈이 쏜 화살이 무서운 기세로 날고 있었다.

마법사 나부랭이가 보고 반응해서 피할 속도가 아니다.

하지만 도진은 쫄지 않았다.

【진!】

훨씬 더 정교하고 빠른 반사 신경을 가진 짐승형 정령이 함께하고 있기에.

텅.

도진의 가슴에서 머리만 내밀어 위험한 위력을 내포한 「충격 화살」을 입으로 낚아챈 아네모네가 화살을 물어 부러뜨렸다.

“사기 치지 마!”

공격에 실패한 궁수가 억울하게 소리치며 「속사」를 갈겼으나 아네모네는 커다란 상체를 드러내어 도진을 감싸는 걸로 손쉽게 세 발의 화살을 전부 막아 냈다.

【흥!】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는 아네모네.

그녀에게 도진이 속삭였다.

“아네모네, 물어.”

【응!】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아네모네가 완전히 도진을 벗어났다.

그걸 본 궁수는 움찔하여 뒤로 뛰었다.

하지만 아네모네가 노린 건 궁수가 아니었다.

“컥- 끄아악!”

아네모네가 공격한 건 옆에서 달려들려는 가토였다.

“쫄면 죽는 거야.”

궁수에게는 아네모네가 방어를 해 주는 동안 도진이 공들여 짠 「섬광창」이 꽂혔다.

이미 뒤로 훌쩍 뛰며 행동이 제약된 상태였기에 조준점에서 벗어나 보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100퍼센트 크리티컬을 자랑하는 4성 공격 마법에 직격당한 궁수는 그대로 즉사했다.

【진, 이건 어떻게 할까?】

그때 아네모네가 물어왔다.

돌아보니 엉망이 된 가토가 커다랗고 두툼한 아네모네의 앞발에 제압되어 있었다.

모양새를 보아 아네모네가 목을 물고 한 3회에서 4회 정도 바닥에 패대기를 친 것 같았다.

“이렇게 해야지.”

끅끅대는 가토를 본 도진은 고민도 없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점화」로 구워 버렸다.

눈빛을 보아하니 죽을 땐 죽더라도 뭔가 구구절절 떠들고 싶은 눈이었는데…….

‘내가 알 게 뭐야?’

그건 저 새끼 사정이고.

지금 난 피습 당한 피해자다.

무섭고 떨리고 눈물 날 것 같은 상황에 남 배려할 여유는 없었다.

【진, 이것들은 뭐야? 왜 널 공격해?】

아네모네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세상에서 제일 착한 도진을 건드린 인간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이미 ‘이것들’이란 어휘 선택에서 아네모네가 도진을 공격한 인간을 물건 이하로 취급함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얽힌 악연.”

도진은 걱정과 분노를 함께 표출하는 아네모네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악연?】

“예전에 던전에서 보스를 처치한 적이 있거든. 그때 이놈들이 보스를 처치하고 얻은 보상을 빼앗으려고 날 공격했었어.”

【뭐? 완전 나쁜 놈들이잖아!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왜 이제 와서 진을 공격해?】

“그때 날 습격했던 놈들을 내가 다 죽였거든. 이놈도 포함해서.”

【죽였다고? 그런데 왜……. 아, 이놈도 진이랑 같은… 그거야?】

“리제니안.”

【응. 그거.】

“맞아. 나랑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에서 여기로 넘어온 자들이야.”

【마음에 안 들어. 진은 이 세계를 구하려고 고생하는데, 이놈들은 나쁜 짓이나 하고. 나쁜 짓 하다가 혼났다고 복수까지 하려고 들고.】

다음에 보면 더 세게 물어 줄 거야!

눈을 부라리며 아네모네가 새침하게 중얼댔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도진은 아네모네의 등을 쓸었다.

“화살 맞은 데는 괜찮아?”

【기운이 조금 빠지는 느낌은 들었는데 진이 기운을 나눠 주니까 완전 멀쩡해졌어.】

아네모네가 말하는 기운은 당연히 정령력이다.

자연적으로 겉에 두르고 있는 정령력이 외부의 공격을 상쇄하며 증발했지만, 도진이 자신의 마나로 다시 채워 준 것.

특별한 계약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의 생명력과 자원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손실이 전혀 없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행이네.”

【난 걱정하지 마. 진만 무사하면 난 아무래도 좋아.】

아네모네의 진심이 전해진다.

반대로 아네모네에게도 도진이 느끼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전해진다.

그들이 한 계약은 그런 것이었다.

일반적인 정령과 정령사의 계약보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는.

“…아네모네, 미안하지만 아마 이번 습격은 이놈들로 끝이 아닐 거 같아.”

【진을 노리는 것들이 더 있을 거란 말이지?】

“전에 그랬거든. 길드 단위로 날 공격할 거라고. 얼마나 몰려왔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런 놈들이 날 찾아 헤매고 있겠지.”

【진은 내가 지켜 줄게.】

“든든하네. 그럼 내가 널 지키는 걸로 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아네모네를 보며 도진은 생각했다.

‘이 새끼들은 대가리가 모자란 새끼들만 모였나? 날 습격할 장소로 이딴 데를 고르는 병신들이 있을 줄이야.’

습격을 하려면 쪽수로 밀어붙이기 딱 좋은 곳을 골라야지.

굳이 숨을 곳이 많고, 반대로 뭘 찾기는 더럽게 어려운 이딴 지랄 맞은 곳을 골랐을까.

의문이네.

‘뭐… 어쨌든 나한텐 다행인 일이지.’

그럼 어디 한번 제대로 칼춤 좀 춰 볼까? 아네모네를 불러들이며, 도진은 험하고 으슥한 그림자 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바깥에서 상황을 통제하고 있던 혈왕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6파티의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신호탄 터진 곳에 도착했으나 현장엔 9파티 시체만 보임. 목표물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5파티, 신호탄 터진 방향으로 이동 중.]

[5파티에서 전파! 목표물이 신호탄을 이용해서 유인 작전을-]

3인 1조로 수색.

목표물 발견 즉시 신호탄을 터뜨려 주변에 위치 전파.

이후 포위망을 형성하며 목표물을 사냥.

얼마나 간단하고 깔끔하며 효율적인 작전인가.

하나 작전 시작과 함께 작전 계획은 죽어 버렸다.

“제길- 머저리 같은 새끼들! 그딴 쥐새끼 하나한테 왜 이렇게 휘둘리는 거냐! 꼭 내가 나서야만 한단 말인가. 무능한 새끼들, 전부 할복이나 해라!”

옆에 있는 노부나가의 반응으로 보아 낭인 길드도 상황은 비슷해 보였다.

아니, 저쪽은 더 심했다.

노부나가가 적의 목을 베어 오는 길드원에게 특별 포상금을 거는 바람에 저쪽은 목표물을 발견해도 신호탄도 터뜨리지 않는 트롤링을 하는 중이니.

‘시발 병신 같은 쪽바리 새끼들.’

[3번 파티에서 보고. 1파티, 2파티 전멸을 확인. 목표물 흔적을 쫓아 추적 중이니 지원 바람. 5초 뒤 터뜨리는 신호탄은 적의 기만전술이 아님을 전파 바람.]

도진이란 놈이 신호탄을 들고 다닐 리는 만무하고.

죽으면서 하필 그걸 떨어뜨린 놈이 있는 건가.

신호탄 쏩니다! 이거 진짜 적이 쏘는 거 아님! 그러니까 꼭 도와주러 와야 된다, 어?

이딴 소리나 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니.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은 혈왕은 길드원들에게 전파했다.

[기존 3인 1조로 수색하는 작전을 수정한다. 5인 1조, 풀파티 단위로 수색 인원을 재편성한다. 이를 위해 전원 작전 캠프로 복귀. 자칫 목표물이 계곡 밖으로 빠져나갈 위험이 있으니, 출입 가능한 통로를 막고 있는 인원은 그대로 자리를 지킨다.]

혈왕의 지시에 따라 계곡 내부로 진입했던 길드원들이 속속들이 귀환했다.

하지만 미처 귀환하지 못한 길드원도 상당했다.

원래 전장에선 후퇴할 때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법.

계곡 내에서 철수를 하는 동안 무려 세 파티, 인원으로는 여덟이 도진에게 사냥을 당해야만 했다.

그나마 하나는 살아남아 복귀 중이라는데…….

‘…이 개자식을 못 죽이면 내가 홧병으로 죽겠군.’

뜨겁게 달아오르는 머리와 가슴에 혈왕은 현기증까지 일어나는 거 같았다.

그런 그의 가슴에 추가로 휘발유를 끼얹는 소식이 전해진 건 바로 그때였다.

“쿨럭, 쿨럭……! 끄으윽……!”

만신창이가 되어 복귀한, 도진과 마주치고서 유일하게 생존한 길드원이 힐러의 치료를 받고 진정한 뒤 도진의 전언을 전한 것이다.

“뭐, 뭐라고?”

“…피곤해서 쉬러 간다고. 내일쯤 다시 접속할 테니 그때 보자고 했습니다.”

숨이 턱 막힌 혈왕은 곧 가슴에 차오르는 분노를 포효로 바꿔 내뱉으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한발 먼저 낭인 길드 쪽에서 노부나가가 괴성을 내질렀다.

“이 시- 발- 새끼가아아아-!”

저쪽에도 똑같은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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