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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었을까.
고요하기만 하던 숲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은 도진은 다짜고짜 마법회로를 활성화하고 마법부터 날렸다.
소리의 주인공이 적이 아닐 거란 가정은 하지도 않은 빠른 대처.
카앙-
그러나 도진의 대처보다도 적의 공격이 더 빨랐다.
흐르듯 접근한 놈이 바닥을 검으로 내리쳤다.
콰앙-
빗나간 마법이 뒤쪽에서 폭발하며 폭음이 숲을 뒤흔든다.
“큭!”
몸을 날려 적의 공격을 피한 도진이 고개를 들었다.
끼릭.
[숲의 해골 병사 - Lv.97]
갑옷 입은 해골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다.
해골의 움직임은 매우 기괴했다.
일반적인 언데드가 아니라 나무줄기가 갑옷과 골격 사이에 끼어들어 해골을 조종하는 모양새다.
끄드드득.
해골 병사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근육을 대신하는 게 나무줄기이다 보니 해골 병사가 움직일 때마다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진짜 비주얼 한번 끝내 주네.’
도진은 경계하듯 탐색하던 해골 병사가 움직였다.
나무줄기에 이끌려 급가속한 해골 병사가 도진에게 육탄 돌격을 해 왔다.
《대지의 창》
도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빠르게 물러나며 물리적 방해물을 만듦과 동시에 적을 타격했다.
이번에는 해공 병사도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콰직. 하고 요란하게 놈의 어깨가 꿰뚫렸다.
끼기긱.
그러나 해골 병사는 즉사하지 않았다.
도진의 스펙과 룬 건틀렛의 100퍼센트 크리티컬을 감안하면 한 방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도, 해골 병사는 꿰뚫린 부분이 부서지도록 과격하게 기동해 도진에게 접근했다.
‘이런 게 일반 몬스터라고?’
마법 시전으로 인한 운신의 공백기를 찔린 도진은 해공 병사의 검 끝에 스쳐 맞았다.
스쳤을 뿐인데도 훅- 하고 줄어드는 생명력.
움직임도 빠르고, 몸빵도 튼튼한데 공격력까지 상정 이상이었다.
‘몹 숫자가 더럽게 없는 대신 하나하나가 미친 듯이 센 건가?’
이 정도면 일반 몬스터가 아니라 엘리트 몬스터 수준이다.
애초에 방심하지도 않았지만, 도진은 더욱 긴장을 끌어올렸다.
《화염구》
연속으로 화염구를 바닥을 향해 쏘는 도진.
해공 병사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일정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폭발력이 놈의 움직임을 잠시 봉쇄했다.
《불기둥》
이어 해골 병사가 딛고 선 자리에 불기둥이 솟았다.
타다다닥 하고 해골 병사의 근육을 대신하는 나무줄기가 타고 쪼그라들었다.
근육이 열로 수축하는 셈이라, 해골 병사도 같이 오그라든다.
따다닥.
해골의 턱이 소란스레 부딪쳤다.
불기둥을 뚫고 달려 나오며 검을 휘두르는 놈.
하나 불기둥 안에서 오른팔을 잃은 탓에 어깨 관절만 휘둘러질 뿐이었다.
《섬광창》
거기서 승부가 완전히 갈렸다.
마법사에게 수 초의 시간을 준 전사에게 패배란 당연한 일이었다.
한차례 얇은 섬광이 일고, 일점에 모였던 빛이 폭발했다.
빠각.
벌써 여러 개의 마법을 얻어맞은 해골 병사의 생명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놈의 두개골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후우…….”
짧은 시간이지만, 가까운 간합에서 전사형 몬스터와 드잡이질을 한 탓에 호흡이 조금 흐트러졌다.
도진은 죽은 지 아주 오래된 유골처럼 바닥에 얌전히 흩어져 있는 해골 병사의 잔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러니까 인기가 없지.”
띄운 시스템 창에 표기된 경험치는 별 볼 일 없었다.
남긴 아이템도 없고.
30분을 걸어서 마주친 몬스터가 이거 하난데, 그 와중에 난이도와 경험치, 전리품 사이의 밸런스가 엉망이었다.
“진짜 최악이네.”
대충은 알고 왔음에도 몸으로 직접 겪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짜다 못해 쓴 보상 수준에 툴툴거리면서도 도진은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을 유심히 살피는 누군가의 시선이 닿고 있음을.
* * *
하루에 10마리.
지난 사흘 동안 도진이 마주친 평균 몬스터 숫자다.
좀 더 디테일하게 나누자면, 첫째 날 9마리, 둘째 날 9마리, 셋째 날인 오늘 11마리.
오늘은 아직 수색을 시작하고 7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운이 좋으면 신기록을 더 크게 세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미치겠네.”
물론 그런 사실이 도진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11마리가 아니라 30마리 신기록을 세운들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막말로 아무 마을이나 레벨만 적당한 지역을 골라서 앞마당만 돌아다녀도 이것보다 수십 배는 더 효율적일 것이었다.
도진은 답답한 마음에 퀘스트 창을 열어 살펴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벤토리에서 알을 꺼내 봤다.
그러나 알이 빛을 뿜는다든지 하는 전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 얻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나가 최소한의 흐름으로 존재하는 게 보일 뿐.
대신 다른 일이 일어났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도진 앞에 무언가가 떨어진 것이다.
“……!”
깜짝 놀란 도진은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마법을 준비했다.
그러나.
화악.
상대가 검을 휘두르자 움직이던 마나가 칼로 베인 듯 뚝 끊어졌다.
회로에서 역류하는 마나.
그걸 컨트롤할 새도 없이.
팟.
순간 흐릿해졌던 정체불명의 상대가 지근거리에 접근해 있었다.
목에는 어느새 검이 겨눠진 상태였다.
“…손가락은 물론 입도 뻥긋하지 마라. 허튼수작을 부리는 순간 목이 달아날 테니. 질문에 대한 답은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는 걸로만.”
툭 하고 목젖을 건드리는 검극.
마치 알아들었느냐고 묻는 듯한 느낌에 도진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보여야 할 보스는 안 보이고 결국 파수꾼이랑 마주쳤네.’
그렇다. 갑작스레 나타난 건 숲의 파수꾼이었다.
파수꾼은 다른 몬스터처럼 나무줄기를 근육 삼아 움직이는 게 아닌 인간의 살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살아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살이 썩지 않았을 뿐 목뼈가 완전히 드러날 정도의 상처가 있고, 피가 굳고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부패 직전의 시체 같은 모습.
언데드인 건 확실했다.
얼굴은 나무껍질로 만든 가면을 쓰고 있어 알아볼 수 없었으나 목소리, 체형을 볼 때 어린 여자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왕국에서 온 거라면 고개를 끄덕여라.”
왕국? 하고 반문하고 싶었으나 도진은 입을 열지 못했다.
검극이 목젖을 꾹 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수꾼이랑 마주치면 아무리 최악의 경우에도 기절해서 입구에서 깨어나는 거라고 들었는데.’
어쨌든 지금 상황이 평범한 상황은 아니고. 그럼 퀘스트랑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도진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파수꾼이 입을 열었다.
“곱게 답하면 험한 꼴은 면할 수 있을 거다. 나도 이 숲 안에서 사람이 죽는 걸 바라진 않으니. 다시 한번 묻겠다. 넌 왕궁에서 왔나?”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중앙대륙 왕국하면 떠올릴 만한 건 두 곳 정도인데, 도진은 제국에서 왔다.
“…왕국에서 보낸 자가 아니야?”
파수꾼은 약간 당황한 듯 혼잣말을 했다.
“그럼 그건 뭐지? 뒤늦게나마 여기에서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가져온 물건이 아닌 거냐?”
그렇게 말하며 파수꾼이 바라보는 건 도진이 들고 있는 알이었다.
도진은 곤란한 눈으로 파수꾼을 바라봤다.
질문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걸로는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는 뜻을 담아.
파수꾼도 그걸 깨달았는지 말을 바꿨다.
“…최대한 간단히 말로 설명해라. 쓸데없는 말이 나오면 바로 적으로 간주할 테니 명심하고.”
도진은 고개를 끄덕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난 왕국이랑은 관련이 없다. 네가 말하는 왕국이 어디를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말한 왕국은 호크세스 왕국이다.”
도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냐면.
“호크세스? 그건 한참 전에 멸망한 나라잖아?”
호크세스 왕국은 500년도 더 전에 멸망한 왕국의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그럴 리가!”
파수꾼은 충격을 받아 흥분했는지 거칠게 도진을 밀쳤다.
퍼억- 하고 나무에 등을 부딪친 도진은 고통스런 신음을 흘렸다.
“…네가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내가 아는 대로 대답한 것뿐이야. 네가 말한 왕국은 사라졌다. 그것도 한참 전에.”
파수꾼의 동공이 흔들렸다.
시체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신기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제, 엔장, 이러다 진짜 죽겠-”
파수꾼의 무식한 힘에 압사당할 거 같다는 게 문제였다.
“커헉……!”
그래도 다행히 파수꾼은 아슬아슬한 때에 도진을 풀어 줬다.
“설명해. 전부.”
파수꾼은 쓰러진 도진의 가슴을 지그시 밟아 누르며 말했다.
도진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뭘 설명해야 하는지 알아야 설명을 하지…….’
말 그대로다.
이 이상한 언데드 씨가 무슨 사정을 가지고 있고, 뭘 알고 싶은지 하나도 모르는데 뭘 설명하겠는가.
“전부! 전부 설명하라고!”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잔뜩 격앙된 듯한 파수꾼께서는 그런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해 보였다.
도진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압박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돌아가는 분위기를 봐선 당장 죽일 거 같진 않고……. 뭔가 사연 넘쳐 보이는 게 퀘스트랑 연관도 있을 거 같으니 차근차근 풀어가 봐야겠어.’
무엇보다 알을 꺼내 들자마자 나타난 게 공교롭다고 해야 하나.
생각을 정리한 도진은 많이 불안정해 보이는 파수꾼을 향해 말했다.
“나한테 듣고 싶은 게 있는 거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에서 느껴지던 압박감이 아주 조금 줄어든 걸 보면 그렇다는 대답을 한 걸로 쳐도 될 거 같았다.
“근데 난 네가 듣고 싶은 게 뭔지를 몰라.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서로 가진 정보를 교환하는 걸로. 네가 먼저 차근차근 설명을 좀 해 주면, 내가 그에 맞는 정보를 골라서 전달하기가 편해질 거 같지 않아?”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차분하게 말하는 도진에게 파수꾼은 반박하지 못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왠지 모르게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파수꾼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