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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74화 (7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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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하루에 입장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소모해 가며 8층에 도전한 파티는 대부분 같은 고충을 겼었다.

횃불, 마법으로 만든 조명, 빛 모두 8층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만들기 무섭게 8층에 서식하는 몬스터 ‘그림자 거미’들이 빛을 먹어치워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시(暗視)」 주문이 저장된 마법 스크롤을 써 봤으나 빛이 아예 없다시피 한 환경에서 확보할 수 있는 시야는 한계가 명확했다.

사방팔방은 물론 천장까지 타고 접근해 떼거지로 습격하는 그림자 거미의 공세에 대응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

여기에 더해 놈들이 이곳저곳 파 놓은 구덩이 함정과 구덩이 안에 가득 찬 끈적한 거미줄 덩어리까지.

한마디로 챌린지 플로어의 시작점인 8층의 난이도는 괴랄함 그 자체였다.

도전의 탑 등장 하루 만에 8층까지 다이렉트로 뚫고 올라간 유저 사이에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

모두가 곡소리든 비명이든 좋지 않은 소리를 내고 있을 때.

여유롭게 8층 입구에 선 남자가 있었다.

* * *

‘8층이 공략됐던 게 아마 3주 가까이 지난 후였지?’

공략의 기본은 지형지물이나 몬스터 배치 등 공략에 필요한 정보를 외우고 숙달하는 것이다.

근데 그걸 외울 수 없게 어둠이란 장애물로 가려 뒀으니 클리어가 늦어지는 건 당연했다.

‘입장 횟수는 제한되어 있는데 공략 방법이 시체 끌어 가면서 익숙해지는 것뿐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

그나마 사망 페널티가 적용 안 되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구르고 굴러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나야 내 할 일 하면 그만이지만.’

남이 고생을 하든 말든 도진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도전의 탑 8층부터는 페널티가 추가됩니다.]

[이제부터 사용할 수 있는 소모품 개수가 제한됩니다.]

빛마저 집어삼키는 8층이라고 해 봐야 어둠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단이 있는 도진에겐 전용 스테이지나 다름없으니.

마안 적야(寂夜).

밤의 정점에 선 시조가 건네준 고요한 밤을 닮은 좌안(左眼)은 빛 한 점 없는 곳에서도 깨끗한 시야를 도진 앞에 펼쳐놓았다.

‘더럽게 징그럽네.’

입장과 동시에 사람 무릎 어림까지 불쑥 솟은 커다란 거미들이 몰려드는 게 보였다.

보통 여기가 처음 8층에 진입한 자들의 무덤이 되는 장소였지만, 도진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저쪽이다.’

도진은 거미들이 몰려드는 걸 똑똑히 확인하고, 놈들이 덜 몰려 있는 방향을 정확히 찾아냈다.

‘일단 유인부터.’

가만히 있으면 천장을 통해 이동하고 있는 놈들이 위에서 습격할 터.

도진은 지상과 천장에서 접근하는 거미들을 피해 달렸다.

두꺼운 거미 다리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도진을 쫓는다.

‘최대한 좁고 제한된 공간이 좋은데.’

미로처럼 얽혀 있는 8층을 이동하던 도진의 몸이 붕 떴다.

교묘하게 파 놓은 구덩이를 보고 몸을 날린 것이다.

거미줄을 쳐서 구멍을 가려 놓은 것을 보니 참 악질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염동」을 활용해 세게 뛰고 가볍게 착지한 도진은 다시 달렸다.

아직 만족할 만한 자리를 못 찾은 탓이다.

‘더 욕심부리다가는 양쪽으로 포위되겠어. 여기서 한번 털고 가야지.’

그러다 최선은 아니어도 최악까지는 아닌 자리에 멈춰 섰다.

통로가 좁아지고 천장도 낮아지는 구간.

도진이 고개를 돌려 자신이 달려온 방향을 봤다.

길이 꺾이는 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듯 나타난 거미들이 좁아지는 통로로 꾸역꾸역 몸을 집어넣는 게 보였다.

끔찍한 병목현상은 마치 프링글스 통에 억지로 털뭉치를 밀어 넣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럼 구워 볼까.”

조용히 말하는 도진의 마법회로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진리의 서」 특유의 황금 마력이 빛을 발하며 주문을 만든다.

《불의 파도》

「불의 파도」는 넓은 범위를 덮으며 전진하는 마법이지만,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만큼 빠르게 흩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넓은 범위로 불이 퍼져 나갈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좁은 공간에 압축된 불이 더욱 거세게, 더 멀리 전진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화아아악!

좁디좁은 통로가 불과 열기로 가득 찼다.

타다다닥. 파득파득파득. 끼에에엑.

도진 쪽으로 밀고 들어오자니 불이 밀려드는 방향이고, 뒤로 돌아 도망치자니 동족들이 끝없이 밀어닥치는 중이라 꼼짝도 할 수 없다.

결국 거미들은 열과 불에 단체로 익어가며 죽음을 맞이했다.

어느새 꺼내든 연초를 태워 도핑을 하면서, 도진은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했다.

“그림자 거미니 뭐니 해도 결국 벌레는 벌레군. 앞에 놈들이 죽는 걸 봤으면 도망칠 생각을 해야지.”

동족의 죽음에 분노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거미들은 아득바득 좁은 통로로 어떻게든 밀고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도진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범위 마법이 마나를 훅훅 잡아먹는다지만, 한 번에 많이 처리할 수 있으니 결과적으로 남는 장사다.

‘이젠 시체가 쌓여서 더 들어오지도 못하는군. 시체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면 더 들어올 거 같긴 한데… 그러면 반대쪽이 포위될지도 모르니.’

몇 차례 더 대량으로 그림자 거미를 숯으로 만들어 버린 도진은 반대쪽 통로를 통해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두다다닥 하고 거미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얼굴을 맞댄 것도 아닌데 위치를 특정하고 달려오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소리였다.

분노마저 느껴지는 거미들의 발소리에 도진이 사나운 웃음을 띠었다.

“이 새끼들, 그냥 멍청해서 그런 게 아니었구나?”

앞에서 타 죽는 걸 보면서도 계속 밀려들던 놈들을 그냥 멍청하다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뒤쪽으로 돌아간 동료가 적을 포위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희생이었던 것이다.

“근데 좀 늦었어.”

다만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는 게 문제지만.

도진은 복잡하게 갈라지는 길 중에서 발소리가 격하게 들려오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기어 다니는 불》

현재 쓸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오래 남아, 소위 발광을 하는 주문을 골라 날리는 도진.

흡사 거미처럼 꿈틀대며 전진하던 불이 코너를 돌아 휙 사라졌고.

타다다다닷. 끼에에엑.

일렁이는 불길과 꿈틀대는 그림자가 겹치며 거미들의 불행을 전했다.

“미안하지만 여긴 내가 불리한 자리라서. 지금은 그걸로 만족해라.”

약소한 선물로 인사를 건넨 도진은 다시금 이동했다.

“크윽!”

그러나 잠시 후 도진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주 조용히 천장에 잠복하고 있던 거미 하나를 놓친 대가로 놈에게 물린 것이다.

다른 마법사보다 열심히 체력 스탯을 늘려 놨다 해도 마법사는 마법사.

적지 않은 HP가 소모되는 동시에 거미독 디버프가 도진을 덮쳤다.

바로 전기 충격과 화염구 연계로 거미를 구워 버리긴 했지만, 홀로 8층에 입장한 도진 입장에서는 이런 사소한 소모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혼자서 다 처리하려면 포션은 마나 포션으로 다 써도 모자란데.”

어쩔 수 없지. 실수는 실수니까. 빠르게 인정한 도진은 해독 포션과 힐링 포션을 마셔 피해를 복구했다.

“젠장.”

그러나 그사이 그의 뒤쪽과 앞쪽을 거미가 채우고 있었다.

낭비한 시간이라고는 15초? 길어야 30초도 안 될 텐데.

하긴 15초든 30초든 따라잡혀 포위당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긴 했다.

“하아. 이번에는 여기까진가.”

이 포위를 뚫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포위된 상태로 교전을 하면 소모가 심하다는 게 문제지.

이런 낭비가 심한 교전을 한 번이라도 하면, 보스를 처치할 여력을 남길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이번 회차는 실패다.

‘씁쓸하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첫 번째 도전에 클리어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쯤.

하지만 가슴은 또 다른 문제라서, 은근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것도 사실.

결론적으로는 오만이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내가 이 정돈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다는 거지.’

다 보이고, 대충이나마 공략 방법도 가닥을 잡고 있음에도 실수 한 번에 클리어 각이 무너지는데……. 이걸 맨땅으로 헤딩해서 결국은 잡는다는 거 아냐.

‘괴물 새끼들이 너무 많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도진을 향해 그림자 거미들이 킬킬대듯 단체로 몸을 위아래로 으쓱이며 접근했다.

다 잡은 먹잇감 취급을 하면서 무시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걸 보며, 도진이 한숨을 쉬었다.

“한번 삐끗했다고 벌레 새끼들까지 날 무시하는 거야? 미치겠네.”

도진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보스까지 잡는 게 문제지, 너희가 문제는 아니야.”

이미 틀렸다는 생각에 도진은 낭비와 소모 걱정을 접어 두고 날뛰기 시작했다.

거미들의 포위를 거칠게 뚫고, 눈에 띄는 족족 화끈한 화력으로 굽거나 지져 버렸다.

그러면서 최대한 돌아다녔다.

녹화된 영상을 돌려보면서 분석하면, 8층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터.

지금은 그저 최대한 많은 장소를 돌아다니며 데이터를 저장하면 그뿐이다.

그 끝에, 도진은 어느 공터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거미 무리를 기다렸다.

아껴 피우던 연초의 불이 꺼진 건 그때였다.

“…그래도 마지막 한 방은 회복됐네.”

연초를 바닥에 던지는 걸 신호로, 남은 거미 중 가장 성실하고 용감한 녀석들이 도진을 덮쳤다.

그리고 도진은 마지막까지 버티며 회복한 마나를 긁어모아 자신의 몸과 함께 달려든 놈들을 불살랐다.

그렇게 도진의 첫째 날, 첫 번째 회차가 마무리됐다.

* * *

시일이 흘러, 도전의 탑이 등장한 지 정확히 일주일이 된 날 모든 유저는 같은 메시지를 목격했다.

[도전의 탑 공략이 정체되어 멸망의 별 라베스의 빛이 더욱 밝아집니다.]

[로스타니아에서 벨라의 축복이 흔적도 없이 증발합니다.]

[리제니안이 가진 운명에 저항하는 힘이 조금씩 약해집니다.]

[몬스터에게 주는 피해 30퍼센트 감소]

[몬스터에게 받는 피해 30퍼센트 증가]

[획득 경험치 30퍼센트 감소]

[아이템 획득 확률 30퍼센트 감소]

로트라넷을 비롯한 LOST 커뮤니티는 물론 각종 SNS 등 인터넷 세상이 거친 말과 표현으로 뒤덮였다.

하루하루 레벨 올리고 아이템 줍는 맛에 박한 현실을 견디던 사람들.

그들에게서 유일한 낙을 앗아간 것이니 당연히 분노는 크고 거칠었다.

뫼비우스 사는 당연히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으나 언제나 그랬듯 조용히 불통(不通)으로 대응했다.

갈 길 잃은 불똥은 최초 클리어를 선언하며 어그로를 끌고, 후원을 받아 가며 도전하고 있음에도 아직 8층을 클리어하지 못한 인터넷 방송인 쪽으로 튀었다.

그렇게, 8층을 클리어하면 구세주요, 8층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역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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