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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브르 호수 수중동굴>은 대량의 마나를 광범위하게 뿌려 대는 던전이다.
던전이 만들어 낸 마나는 바깥으로 흘러나가고, 그로 인해 라브르 마을 인근에는 대량의 정령 몬스터가 출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현상의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에서 정령 몬스터가 계속 생성되게 만들면 된다.
호수와 지상 쪽으로 흘러나가야 할 마나를 계속 정령 몬스터 생성에 쓰게 만듦으로써 잡아 두는 것이다.
물론 흐름 전체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계속해서 몬스터를 사냥하다 보면 조금씩이나마 던전에 잔류하는 마나가 많아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서 문제. 일정 범위 내에 과도한 마나가 집중되면 어떻게 될까요?’
[네임드 몬스터 ‘고대어 즈라르크’가 태어났습니다.]
답은 바로 강력한 한 개체의 탄생이다.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은 이런 식으로 하나씩 네임드 몬스터를 소환하고, 그 끝에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던전이었다.
‘고대어 즈라르크라. 나도 이건 잡아 본 적이 없는 놈인데.’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엔 많은 종류의 네임드 몬스터가 있다.
마나 집중 현상이 벌어질 때마다 그것들 중 하나가 랜덤하게 생성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즈라르크는 도진이 잡아 본 적 없는 몬스터였다.
그래서 긴장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잡아 본 적만 없을 뿐 즈라르크의 특징이나 약점 등은 완벽하게 꿰고 있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네.’
거기다 도진이 생각할 때 즈라르크는 현재의 자신이 상대하기 가장 편한 네임드였다.
“고대어면 물고기란 소린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조심해야겠죠? 소소야, 내 뒤에 바짝 붙어 있어. 넌 내가 지켜.”
“말 안 해도 벌써 붙어 있으니까 앞이나 잘 봐. 내가 못생긴 물고기 싫어하는 거 알지?”
도진은 긴장하지 않았지만, 여자 둘은 달랐다.
그녀들은 메시지가 뜬 순간부터 전투태세에 돌입해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평소 침착한 소소마저 물고기가 싫다며 바짝 긴장한 모습.
도진이 그런 둘에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임드, 고대어. 두 단어를 보면 뭔가 느껴지지 않아요?”
테레사와 소소가 도진을 봤다. 영문을 모르는 순진한 눈들.
이에 도진은 그냥 답을 알려 줬다.
“여기까지 뛰어올 때 제일 많이 잠겼던 게 무릎 높이였잖아요. 이렇게 얕은 물에 네임드 몬스터급 되는 놈이 헤엄을 칠 수 있겠어요?”
도진은 던전 깊숙한 방향을 가리켰다.
“제 생각에는 안쪽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쪽 방에 더 이상 몬스터가 리젠 안 되는 것도 그렇고. 아마 저쪽이 보스룸쯤 되는 거겠죠.”
테레사가 머쓱하게 말했다.
“듣고 보니까… 그러네요?”
슥 하고 얕은 사방의 물을 살피는 테레사와 여전히 친구 뒤에 찰싹 달라붙어 사주경계를 하는 소소에게 도진은 먼저 물에 발을 담그며 말했다.
“따라와요. 나온 건 잡아야 하니까.”
그러면서 머릿속에 이 던전의 구조를 떠올렸다.
‘즈라르크는 물이 깊은 곳에서 젠되는 네임드다. 그리고 그 정도로 수심이 깊은 물이 모인 장소는 이 던전에서 한 곳뿐이지.’
* * *
길목을 지키는 정령 몬스터를 처치하며 전진하기를 얼마간.
도진이 팔을 뻗어 다른 둘을 멈춰 세웠다.
“이 앞인 거 같아요.”
도진의 말에 소소가 한 걸음 물러나고 테레사는 앞으로 나섰다.
테레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물이 새까맣게 보이네요.”
“그만큼 깊다는 거죠.”
“어떻게 하죠? 네임드는 보이지도 않아요. 아마 물속에 있을 텐데 물속에선 싸울 수 없잖아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나중에야 환경을 가릴 필요가 없어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중 전투는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다행히 즈라르크 방에는 사람이 딛고 설 공간이 다수 존재했다.
‘물에 살짝 잠겨 있어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얕게 잠겨 있는 발판 위치를 확인한 도진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전사인 테레사 씨가 뭘 할 수 있는 곳은 아닌 거 같군요. 이번 전투는 저 혼자 하겠습니다.”
당연히 테레사는 펄쩍 뛰며 반발했다.
“미쳤어요? 저 물밑에 뭐가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혼자 가겠다니!”
그런 그녀에게 도진이 물었다.
“지금 물밑에 아무것도 안 보이죠?”
칠흑으로 물든 도진의 한쪽 눈이 테레사를 향했다.
“저한테는 보입니다. 적어도 놈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도진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남을 사람 둘과 나아갈 사람이 나뉘는 순간이었다.
《마나의 축복》
《신속의 축복》
《생명의 축복》
소소는 그런 도진에게 버프를 둘러 줬다.
현재 그녀가 지닌 신성 마법 중 마법사에게 유용한 버프 3종이었다.
도진은 소소에게 고개를 끄덕여 고마움을 표한 뒤 정면을 응시했다.
《얼음길》
까드득- 하는 소리를 내며 도진 앞으로 물이 얼어붙으며 길이 만들어졌다.
‘마법사의 품위가 있지.’
물에서 첨벙거릴 수는 없잖아. 생각하며, 도진은 달렸다.
동공을 가득 채운 물속에서 빙빙 회전하며 헤엄치는 즈라르크가 가장 멀리 떨어지는 타이밍을 노린 전력 질주.
‘어디냐.’
달리면서도 도진은 사방을 살폈다.
물 깊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접근하던 빛 덩어리가 순간 경직되는 것이 보였다.
도진은 망설임 없이 몸을 앞으로 던졌다.
퍼엉.
물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즈라르크가 튀어나왔다.
정령처럼 반투명한 몸체 안쪽으로 이미 죽은 고대어의 뼈가 비친다.
크기는 중형차보다도 커다란 반 정령, 반 시체 괴물은 도약의 힘을 이용해 도진이 방금까지 있던 곳을 휩쓸었다.
콰앙.
마법이 만든 얼음길이 부서지며 상당한 양의 물이 파도가 되어 도진을 밀쳐내려 했다.
그러나 도진은 염동을 적절히 활용해 파도에 저항하며 요령 좋게 몸을 일으켰다.
소름 돋을 정도로 정교한 컨트롤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묘기였다.
“퉤!”
입안으로 침범한 물을 뱉어 낸 도진이 다시 움직였다.
즈라르크도 추진력을 얻기 위해 멀찍이 헤엄치며 가속도를 붙이고 있었다.
‘한 번은 더 흘려야겠군.’
이번에는 더 정교하게, 더 넓은 범위를 덮치려는 듯 신중하게 접근하는 즈라르크.
도진의 마법회로가 빛을 발했다.
퍼엉.
다시금 솟구치는 물기둥.
그 순간 도진이 준비한 마법을 발동했다.
《얼음 방패》
재료는 솟구친 물기둥.
대량의 물이 얼어붙으며 방패가 되었다.
콰앙.
공중에서 즈라르크와 충돌한 얼음 방패는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그래도 그 덕에 즈라르크의 공격 범위를 벗어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발판까지 달릴 시간도.
‘됐어.’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넓은 공간에 도달한 도진.
발목까지 잠기긴 하지만, 얼음길 위를 달릴 때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위치였다.
‘그럼 본격적으로 싸워 볼까?’
즈라르크의 패턴은 단순하다.
발판 위든 얼음길 위든 일단 물 밖에 있는 적을 물속으로 집어넣기 위한 공격이 대부분이다.
적을 물속으로 집어넣기만 하면 더 이상 ‘적’이 아닌 ‘먹잇감’에 불과해지는 걸 놈도 아는 것이다.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지만 않으면 즈라르크가 하는 공격은 크게 두 가지. 방금처럼 점프해서 몸으로 휩쓸거나.’
정령으로서 능력인 물 공격을 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기 무섭게 물속 깊은 곳에서 마나가 응축되는 것이 보였다.
‘대공한테 받은 마안이 아니었으면 상대하기 많이 골치 아팠겠어.’
즈라르크는 공격 전조를 읽기 힘든 몬스터였다.
활동 영역이 저 깊숙한 물속이기 때문.
하지만 「적야」로 마나를 볼 수 있는 시야를 얻게 된 도진에게는 마나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정령 즈라르크의 위치가 똑똑히 보였다.
놈이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마나를 주둥이 쪽에 끌어모으는 것까지도.
‘지금!’
충전과 방출 타이밍을 잰 도진이 몸을 미리 날렸다.
그와 동시에 즈라르크가 쏜 물대포가 엄청난 수압을 자랑하며 발판 위를 양분했다.
퍼어엉.
자신을 노렸던 물대포가 뒤쪽에서 굉음을 내며 터지는 소리에도 도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다음은 시간차 육탄 공격 차례.’
시선을 분산할 여유 따위 없기 때문이었다.
주문을 준비한다.
즈라르크가 물 위로 튀어 오른다.
놈의 공격을 피하고.
《전기 충격》
빠르게 발동할 수 있는 1성 마법을 놈에게 꽂아 넣는다.
마치 서로 합을 짜 맞춘 뒤 액션씬을 촬영하는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장면이었다.
-키우우우우!
생각지도 못한 충격에 노출된 즈라르크는 신비로운 단말마를 남기며 다시 물속으로 추락했다.
《악령 생성》
그 틈에 도진은 악령을 소환했다.
장소는 즈라르크가 추락한 지점 근처.
‘즈라르크의 약점은 탐지 능력이 단순하다는 것.’
그런 즈라르크를 사냥할 때 가장 유효한 전술은 미끼 전술이다.
잠깐이라도 의식을 날려 버리면, 정신을 차리자마자 가장 가까이 있는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해 돌격하는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굳어 있던 즈라르크는 물속에서 꿈틀대며 정신을 차리자마자 방향을 악령 쪽으로 잡았다.
본능에 따라 일단 움직이는 대상을 적으로 규정하고 돌격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럼 빨대 좀 꽂아 볼까.”
저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전속력으로 수직 상승하는 마나 덩어리를 보는 도진의 마법회로가 황금빛을 내뿜었다.
진리의 서가 펼쳐지며 기록된 마법의 위력을 끌어올린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 정도로 급격한 마나 순환.
《착취의 쐐기》
그 끝에 완성된 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된 대마법사의 고유 마법이었다.
-캬아아악!
접근하는 즈라르크를 감지한 악령이 손톱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악령은 즈라르크와 충돌하며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단 일격에 악령은 검은 연기로 흩어졌다. 그 대가로 즈라르크는 상당 시간 동안 체공하게 됐다.
“게임 끝이다. 물고기.”
그리고 검붉은 쐐기가 놈에게 박혔다.
「착취의 쐐기」는 단순히 상대의 피를 빠는 마법이 아니다.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티룬드 대공의 고유 마법 체계에 속한 마법이니 만큼 좀 더 상위 차원의 개념을 다룬다.
그래서 무엇을 착취하는가 하면 ‘생명’ 그 자체. 그리고 그것을 이루는 근원적인 ‘마나’다.
한마디로 생물형 몬스터는 물론 바위나 금속 같은 무생물 몬스터에게도 쓸 수 있고, 생명력(HP)과 마나(MP)를 동시에 갈취하는 사기 스킬이란 소리다.
‘이제 서로 타임 어택인데 어떻게 할래?’
시간을 끌면 도진이 유리하다.
하지만 즈라르크도 본능적으로 그걸 알 테니 더욱 거칠게 공격을 해 올 터.
‘아주 발광을 하는군.’
아니나 다를까.
도진의 눈에 비치는 즈라르크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헤엄치는 속도 자체가 1.5배는 빨라진 느낌.
‘이 정도면 스치면 사망이겠-’
생각하는 순간.
즈라르크가 수면을 향해 미사일처럼 쏘아졌다.
펑-
물보라보다도 먼저 튀어나오는 듯한 착시 효과가 일 정도.
정령 능력을 부스터처럼 활용한 급가속 공격이었다.
그래도 미리 구른 덕에 가까스로 중형차 크기의 어류에게 치이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