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63화 (6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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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간단한 브리핑이 끝났다.

소소가 버프를 돌리는 걸 신호로 파티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일정한 ‘선’을 넘는 순간 던전을 가득 채운 마나가 요동쳤다.

“저, 저기!”

테레사가 비명을 질렀다.

사방팔방에서 희끄무레한 알 같은 것이 생성되기 시작해서였다.

두근두근 박동하며 태어날 준비를 하는 정령체들이다.

‘정말 되는 거 맞아?’

설명은 들었다. 그런데 들었는데도 반신반의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테레사는 뛰는 와중에도 불안했다.

“더 빨리!”

하지만 이미 출발한 걸 무를 수는 없는 일.

도진의 재촉에 테레사는 더 빨리 발을 놀릴 수밖에 없었다.

[불완전한 정령체 - Lv.60]

몇몇이 어설픈 형태를 갖춘 몬스터로 탄생했다.

그렇게 태어난 것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활보하는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스아아아악!

물 아래로 몸을 가라앉힌 정령들이 물살을 가르며 일제히 질주를 시작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도진 파티가 늦지 않게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하급 물의 정령 Lv.62]

그사이 갓 태어난 정령들은 물속에서 진화했다.

속성을 갖지 못했던 것들이 주변 환경과 동조하여 제대로 된 정령으로 바뀐 것이다.

수십 마리의 물의 정령이 물이 가득한 공간을 전장으로 삼아 몰려들었다.

겨우 셋밖에 안 되는 파티로는 희망을 찾기 힘든 상황.

“하, 할까요?”

이에 긴장한 테레사는 도진이 미리 지시해 둔 일을 시작했다.

“아직! 내가 신호할 때까지 참아요!”

그런 그녀를 만류하는 도진.

그의 마안이 물속을 질주하는 정령들을 좇았다.

정령은 마나의 집약체와 같다.

어둠을 뚫는 건 물론 마나를 보는 도진의 눈은 물속에 몸을 숨긴 정령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살필 수 있게 해 줬다.

‘조금만 더. 조금 더 다가와라.’

사방을 점한 채 포위하듯 다가오는 정령들의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두고 좁혀 오는 피라냐처럼 보였다.

하나 도진은 저것들이 피라냐와 같은 포식자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건 어디까지나 자신이라 믿기 때문에.

“지금!”

도진의 신호가 떨어졌다.

긴장으로 근육을 팽팽하게 당겨 두었던 테레사가 아아악! 하는 기합을 내지르며 도끼를 휘둘렀다.

목표 지점은 적이 아닌 적들이 몸을 담그고 있는 공간 그 자체.

즉, 물을 향해 도끼질을 한 것이었다.

《뿜어내는 벼락》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드러난 특성이지만, 번개 속성 공격은 상극인 물과 만나면 강해지는 건 물론 범위 공격으로 성질이 바뀐다.

심지어 이번에는 환경뿐만 아니라 적까지 ‘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물의 정령. 공격은 물론 부가적인 효과인 마비까지 강화되어 들어가게 된다.

효과는 굉장했다.

물밑에서 바글바글 몰려들던 정령들이 일제히 마비되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허억!”

그 광경에 테레사가 헛숨을 들이켰다.

멈춰 있다 한들 너무 많은 숫자가 저러고 있으니 겁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전기 구체》

도진의 마법이 수중에 있는 정령을 향해 작렬하면서 그런 불안은 강렬한 섬광과 함께 사라졌다.

파지지직-

시신경이 타 버리는 것 같은 엄청난 스파크가 연달아 터진다. 그것에 휩쓸려 일정 범위에 뭉쳐 있던 물의 정령들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도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세 번의 마법을 더 시전했다.

동, 서, 남, 북. 네 방향에 한 방씩 갈겨서 몰려든 놈들을 싹 쓸어버린다.

“…….”

“…….”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한 물속.

잡템만이 그곳에 몬스터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 * *

소소는 새삼스런 눈으로 깨끗해진 물속을 바라봤다.

‘나쁘지 않네.’

능력주의의 끝판왕 김향기의 딸인 소소는 무능력한 인간에게는 관심 한 톨 주지 않는 게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으로 자랐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보기에도 도진은 꽤나 쓸모가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자의든 타의든 라엘 엔터에 입사해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더더욱.

‘강희 언니가 웬일로 나한테 그렇게 부탁을 하나 했더니… 그럴 만했네.’

소소가 도진에 대해 평가를 하고 있을 때.

“이게 되네……?”

테레사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상을 입으로 내뱉었다.

눈은 잔뜩 쌓인 잡템과 물에 젖은 도끼날 그리고 도진을 번갈아 쳐다보느라 바쁘다.

“역시! 말하는 대로 법사님! 말하는 대로 이루어 내시는군요! 저는 법사님만 믿고 도끼질이나 하겠습니다!”

도를 넘은 몰이사냥이 주는 경험치에 흥분한 테레사가 엄지를 척 들었다.

히히, 하고 웃는 입매를 소소가 꼬집었다.

“침 흐르겠다. 입 닫아.”

볼이 찹쌀떡처럼 죽죽 늘어나든 말든 테레사는 마냥 기쁜 얼굴로 헤실헤실 웃음 지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도진이 말했다.

“얼마 안 있어 몬스터가 리젠될 겁니다. 한꺼번에 쓸어버려서 한꺼번에 생성될 거예요. 그럼 지금 했던 것처럼 테레사 씨가 마비 걸고, 제가 처리하고. 간단하죠?”

테레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네! 너무 간단해요. 이렇게 간단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해요. 처음엔 솔직히 법사님 말대로 되려나 싶어서 불안했는데, 이젠 이렇게 쉽게 경험치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단해요.”

“다행이네요. 힐러님, 버프 돌려주세요. 저한테는 마나의 축복, 저쪽은 기력 회복 주문으로요.”

소소가 말없이 버프를 돌렸다. 각각 마나와 스태미나를 회복시켜 마법과 발동 스킬을 무리 없게 계속 쓸 수 있게 해 주기 위한 버프였다.

그때쯤 다시 사방에 희게 빛나는 알들이 생성되기 시작하더니 정령체가 되고, 다시 물밑으로 몸을 가라앉힌다.

“준비.”

도진의 신호에 테레사가 의기양양하게 도끼를 들어 올렸다.

“지금.”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신호를 내리는 도진과 그에 따르는 파티의 전사.

파지지직- 하는 작열하는 푸른 스파크와 마비되어 부들대는 정령 형상을 한 몬스터들.

이어지는 건 아까와 같은 장면이었다.

비슷한 레벨의 마법사가 보일 수 없는 속도의 연속 캐스팅.

[경험치가…….]

[경험치…….]

[경험…….]

…….

마지막으로 주르륵 쌓이는 메시지가 테레사의 망막을 물들인다.

일부러 켜지 않으면 굳이 출력되지 않는 잡다한 메시지에 해당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시야를 다 가리도록 설정을 켜 놨다.

‘미쳤어. 개멋져. 황홀해…….’

이런 게 사이버 마약일까? 하염없이 올라가는 경험치 획득 메시지에 테레사의 동공이 풀렸다.

그때 도진이 테레사에게 지시했다.

“한번 회수하죠.”

“넵!”

테레사는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떨어진 아이템을 줍자는 얘기란 걸 알기에 그녀는 첨벙 하고 물에 몸을 던졌다.

일방적으로 지시한다고 또는 잡일을 시킨다고 불만을 품는 일 따위는 없었다.

‘2~3분마다 도끼질 한 번만 하면 공짜로 경험치 먹여 주는 파티가 또 어디 있어? 죽어도 저 사람한테 붙어 있어야지.’

테레사는 모내기를 하는 농민처럼, 다슬기를 사냥하는 시골 꼬마처럼 물속에 잠겨 있는 아이템들을 수거했다.

“저렇게 신난 레사는 처음 보네요. 게임이 저렇게 재밌나?”

소소가 도진에게 말했다.

도진은 살짝 놀랐다.

이런 식으로 말을 거는 게 거의 처음이라.

그는 몰랐지만, 소소가 나름 도진을 인정했기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소소 씨도 재미있으니까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뭐… 그냥. 쟤가 하니까 하는 거죠.”

그리 말한 소소는 잠시 생각해 봤다. 게임이 재미있나?

해답은 싱글벙글 웃는 테레사를 보면서 정해졌다.

‘저러고 있는 거 보면 좀 재밌긴 해.’

게임이 재밌는 건지 쟤가 재밌는 건지는 좀 생각해 볼 문제지만.

“아주 조금. 재밌는 것 같기도 하네요.”

“하다 보면 더 재밌어질 겁니다. 여긴 그런 곳이니까요.”

겪은 바가 있어 하는 말.

도진은 자신할 수 있었다.

로스타니아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세계라는 걸.

“슬슬 올라와요. 알 나왔습니다.”

도진의 목소리에 정신없이 템을 줍던 테레사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그러더니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고 사방을 슥슥 둘러보고는 잰걸음으로 섬으로 복귀한다.

“준비 완료했습니다!”

경험치와 돈이 쏟아지는 몰이사냥이 이어졌다.

* * *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 첫 번째 방에 생성되는 몬스터는 53마리.

이 53마리의 몬스터를 처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30초 안팎에 불과했다.

그리고 한꺼번에 죽은 몬스터가 일제히 리젠 되기까지는 대략 2분가량.

한 시간에 1,200마리가 넘는 정령을 황천길로 보내는 만큼 얻는 경험치 양은 어마어마하다.

[도진 Lv.68]

그 결과 도진은 불과 보름 만에 4레벨을 올리며 68레벨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정도 레벨이면 지금도 랭커 자리 하나쯤은 노려 볼 만할려나?’

아직 공식 랭킹 시스템은 업데이트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레벨을 인증한 사람들을 정리해 놓은 로트라넷 플레이어 레벨 랭킹 페이지를 보면 도진의 레벨이면 500위 정도에 해당했다.

레벨 공개를 안 한 재야의 폐인들이 얼마나 될지 감이 잘 안 오지만, 두 배쯤 곱해 보면 그래도 ‘랭커’ 딱지를 붙여 주는 1,000위권에는 걸치지 않을까?

도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흐아압!”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몬스터가 또 리젠 된 모양이다.

테레사의 기합 소리가 일종의 알람 역할을 해서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미어캣 성능 확실하네.’

도진은 기계적으로 마법을 날렸다.

이제 도진은 결과는 확인하지도 않았다.

지난 보름 동안 지겹도록 「전기 구체」를 썼고, 틈틈이 「진리의 서」로 해석까지 해 둔 덕에 시전 속도든 위력이든 더 올라간 상태였다.

조준만 정확하면 화력이 부족해서 몬스터가 안 죽는 일은 절대 없었다.

정령들이 물속에서 증발하는 익숙한 광경을 보며 도진은 픽 웃었다.

‘하긴. 지금 랭커 딱지 다는 건 별 의미 없지. 회귀까지 해서 1,000위권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따지는 것도 우습고.’

지금 랭커에 드냐 마냐를 생각하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다.

전생에도 해 본 랭커가 뭐가 대수라고.

랭커는 어차피 길목조차 안 된다. 출발점 정도로 잡는 게 맞지.

‘단순한 랭킹 1위가 아니라 압도적인 강자가 된 뒤에 이 세계가 망가지지 않게 지켜 내는 것.’

목표를 되새긴 도진은 마안 적야를 떴다.

‘미래는 미래고. 그 미래를 위해서는 지금에 집중해야지.’

그러자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며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몬스터 리젠에 쓰여야 할 마나가 한 곳으로 집중되는 현상.

‘보름이라. 징그럽게도 오래 걸리네.’

바로 강력한 한 개체의 몬스터가 생성될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라브르 호수 수중동굴>의 첫 번째 네임드 몬스터의 해금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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