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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59화 (6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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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스킬북은 마법 코드를 해석하여 마법 습득을 최대한 쉽게 하도록 가공한 물건이다.

그러니 스킬북으로 가공되지 않은 코드로 마법을 습득할 때는 훨씬 높은 조건이 요구된다.

‘이거 고유 마법이잖아. 마법진에 찍힌 핵이 4개면 4성 마법이니까… 이걸 코드로 배우려면 최소한 지능이 350에서 400은 넘어야 할 텐데……? 마법 수준은 5성은 돼야 할 거고.’

마법사 짬을 먹을 대로 먹은 도진의 예상은 얼추 맞아떨어졌다.

LOST가 정한 「착취의 쐐기」 마법 코드 해석에 필요한 지능 최소치는 400.

여기저기서 온갖 보너스 포인트를 긁어모은 도진이라 해도 도달하려면 아직 멀고 먼 수치였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도진은 [지능 능력치가 부족하여 마법 코드 해석에 실패하였습니다.] 같은 메시지를 봐야 했다.

하지만 제 안으로 들어오는 마법에 관련된 모든 걸 분석하는 데 특화된 「진리의 서」는 기어코 티룬드 대공이 심은 마법 코드를 해석하고야 말았다.

‘마법 코드가 눈이랑 같이 나한테 이식되는 형태여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해도…….’

미친 건 마찬가지였다. 도진은 또 한 번 생각했다.

진리의 서는 좆 사기가 맞다고.

“…왜 그걸 쓸 수 있는 거지?”

티룬드 대공이 도진의 손에 떠 있는 검붉은 쐐기를 노려보며 묻는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써 가며 묻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대공은 지금 이렇게 생각 중이었다.

‘왜 저게 되는 거지?’

이에 도진은 잠시 고민했다.

어떤 대답이 최선의 대답일까에 대해.

그리고 심사숙고하여 대답했다.

“어… 음. 그러게요? 그냥 되네요.”

티룬드 대공의 눈빛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말이 안 되긴 하죠. 저도 놀랐습니다.”

도진은 속으로 소리쳤다. 되는 걸 어쩌라고! 하고.

그래도 다행히 티룬드 대공은 더 이상 도진을 추궁하지 않았다.

‘본인이 더 놀란 눈치다. 정말 이렇게 된 데 대해 크게 놀랐어. 그럼 도대체 어떻게……?’

도진의 생체 징후를 읽고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어리둥절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공은 대마법사로서 도진에게 심은 마법 코드가 순식간에 풀리고, 저렇게 바로 마법을 습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현재 이 인간이 지닌 마법회로의 연산 능력으로는 마법 코드에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직접 마법 코드를 보고 풀어냈다는 이야기인데…….’

이 짧은 시간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아니, 그런 게 가능한 자가 있을 리가…….

‘아니, 있군.’

정확히는 ‘있었다’.

가장 천재적인 마법사, ‘현자’.

마법에 입문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겨우 12살의 나이에 마법학회에 30편이 넘는 논문을 투고한 괴물.

마법회로에 코드를 직접 입력 및 저장하는 마법 스킬북의 개념을 정립하여 마법계에 대격변을 일으킨 인물이 바로 현자였다.

티룬드 대공이 태어나기 전 인물이기에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지금 도진이 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아마 현자밖에 없으리라고, 대공은 생각했다.

‘한 번도 밟아 본 적 없는 영역을 순식간에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삼는 건 이미 경지를 이룬 자가 지닌 지식과 경험으로 문제를 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런 걸 해내는 자들을 세상은 천재라 부른다.

‘마법의 별이 운명에 함께하는가.’

현자는 받은 축복만큼 힘겨운 저주도 함께 타고나 2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다른 세계의 이방인인 이 인간은 죽음마저 극복할 수 있는 운명을 부여받았다.

‘벨라의 마지막 안배라…….’

중앙대륙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을 때 대공은 코웃음을 쳤었다.

제국과 성황청이 창세성 벨라의 힘이 약해지자 혼란을 막기 위해 선동을 한다고 여겼었다.

‘그게 아니었던가.’

그런 대공의 생각이, 지금 도진을 보며 바뀌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의 눈빛도 동시에 바뀌었다.

“…혹시 뱀파이어가 되어 볼 생각 없나?”

“예?”

당한 도진이 한 걸음 물러났다.

“그게 지금 무슨 말씀…….”

도진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말이 잘못 나왔군. 혹시 조금 더 머물며 내게 마법을 배워 볼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는 것이.”

표정 변화 없이 말을 고치는 대공이었으나 도진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분명 진심이었어. 날 뱀파이어로 만들려고 했다고!’

도진은 최대한 빨리 튀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대마법사 카르네스 티룬드의 고유 마법?

좋다. 배울 수 있으면 그만한 기연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추가로 더 배우려고 해도 지금처럼 뚝딱 하고 스킬 생성이 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거는 그냥 나한테 마법 코드가 직접 이식됐으니까 얼떨결에 배운 거지. 그거 아니면 어차피 똑같을 거 아냐.’

제한 조건 충족시켜 가면서 스킬이 생성될 때까지 들어갈 노력과 시간을 따지면 손해였다.

‘그 시간에 차라리 레벨업하고 다른 히든 피스 쓸어 담으러 다니는 게 100배 낫지.’

생각하며, 도진은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혔다.

“마법을 전수해 주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큰 호의인지 잘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기 더 머물 수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말이죠.”

이에 대공의 얼굴에 실망이 스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대신 나중에 와서 배우겠습니다.”

도진은 나중에 배우러 오겠다는 말로 대공을 달랬다.

“나중에 배우러 오겠다고?”

“네. 카린에게도 말했지만, 중앙대륙에서 모험을 하면서 충분히 강한 모험가가 되면 이곳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저 위쪽.”

도진의 손가락이 위로 향했다.

“-그러니까 부유대륙의 지상은 모험할 거리가 넘쳐나는 땅이거든요. 모험가로서 부유대륙을 정복하기 위해서라도 전 여기에 다시 올 겁니다. 그때가 되면 마법사로서도 훨씬 더 성장해 있을 겁니다. 그러니 대공께 마법을 배워도 제 마법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심을 잡았을 때. 그때 배우겠습니다.”

대공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도진과 만난 이후 처음으로 보이는 웃음이었다.

“포부가 과할 정도로 대단하군. 나도 명색이 대마법사라 불린 몸인데, 그런 나에게 마법을 사사 받고도 스스로의 마법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건가? 내 고유 마법 체계 전체를 가르친다면? 회로는 물론 영혼의 형태마저 바뀌어야 할 정도일 텐데.”

“그럼에도 저는 제 마법과 제 자신을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괜히 회로 개조니 뭐니 하면서 뜯어고쳐지면 큰일 납니다. 전생에 그랬다가 완전히 조져 봐서 잘 알죠, 제가. 속으로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도진.

대공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러니까 한마디로 카르네스 티룬드의 마법을 통째로 삼켜 보겠다, 이 말이군.”

“그 정도까지 과격한 생각을 한 건…….”

“기대하지. 내가 한 생각이 맞다면 그것마저도 가능할 테니.”

“예? 무슨 생각을 하셨길래…….”

되묻는 도진의 질문에 대공은 대답하지 않았다.

‘현자의 재능에 나와는 다른 형태의 불사를 동시에 지닌 존재라.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카린이 처음으로 마음을 연 인간이라면.’

이미 도진에 대한 호감도가 꽤 높은 수치까지 올라가 있는 대공이기에 전반적으로 생각은 긍정적인 쪽으로 흘렀다.

그러나 너무 티를 내는 건 좋지 않을 것이다.

대공은 다시 평소처럼, 감정의 기복이 없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떠나기 전 시간은 카린과 보내도록. 배웅도 그 아이에게 맡기는 게 좋겠지. 내 입장에서는 딸에게 괜한 미움을 살 일은 피해야 하기도 하고.”

사실상의 축객령.

도진은 대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언젠가 다시 뵙겠습니다.”

“그 언젠가가 너무 멀지 않았으면 좋겠군. 마법사로서도, 아비로서도 자네의 방문은 퍽 즐거울 것 같으니 말이야.”

검은 안개가 도진을 감쌌다.

고개를 들었을 땐 카린이 보였다.

* * *

중앙대륙 마르지아 자작령 인근의 인적 없는 숲.

그곳에서 도진은 카린과 작별을 나누고 있었다.

카린은 막상 이별하게 되자 서러움이 큰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제 착각이었던 모양이에요.”

서글퍼하는 카린의 손에 도진의 손이 겹쳐졌다.

“다시 만날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중에 볼 때까지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지내야 된다?”

도진의 장난스런 말에 카린은 우울한 모습을 억지로 없애고는 활짝 웃었다.

웃는 모습으로 도진을 보내고 싶은 그녀의 마지막 노력이었다.

“장담할 수 없답니다!”

맑은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카린이 날아올랐다.

조금만 지나도 애써 지은 미소가 무너질 걸 알기에 그녀는 도망치듯이 북쪽을 향해 날았다.

도진은 카린이 밤하늘에 녹아들어 가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만월이 뜬 날의 작별이었다.

* * *

오랜만의 로그아웃.

회사에서 고급 캡슐로 바꿔 준 덕에 수면 모드나 건강 관리 등 모든 면에서 질이 좋아졌지만, 그것도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다.

‘하긴. 5일을 누워만 있었는데 멀쩡하면 사람이 아니지.’

삐걱대며 캡슐을 열고 나온 도진은 당황했다.

그의 매니저 천지현이 망부석이라도 된 양 캡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제야 나오는 거야……?”

눈 밑이 퀭하다.

도대체 뭔 일을 겪었기에.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하하. 있지. 있었고, 있고, 앞으로 있을 예정이고. 혹시 내가 보낸 메신저 메시지 봤어?”

메신저? 도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자신이 어느 순간 모든 연락 수단을 차단했었다는 걸.

“도진이 넌 모르겠지. 내가 지난 5일 동안 얼마나 여기저기서 치였는지……. 네 유튜브 채널은 오픈과 동시에 폭주 기관차처럼 치고 나가고, 온갖 곳에서 인터뷰 요청은 쏟아지고, 회사에서는 나한테 너 빨리 데려오라고 하고…….”

중얼중얼 그간 있던 일을 읊는 천지현.

도진은 잠자코 그녀의 말을 경청하는 ‘척’했다.

왠지 그거라도 해 줘야 할 거 같은 몰골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텼거든… 도진이 네가 저쪽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연락을 이렇게까지 받지 않는 건 엄청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믿고…….”

말하면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만지작대는 천지현.

슬쩍 보니 사직서라고 적힌 봉투였다.

“…일단 고마워. 덕분에 하던 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

천지현이 힘없이 웃으며 일어났다.

“그래, 그래도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넌 모르겠지만, 지금 네 채널 난리 났거든? 덕분에 우리 회사도 난리 나고. 오늘도 너 못 데려가면 마케팅팀에서 날 물고문이라도 했을 텐데. 진짜 다행이다.”

휴우, 하고 천지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인터뷰는 안 해.”

그러나 곧 청천벽력을 얻어맞은 천지현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날 죽일 셈이……. 아, 아니, 왜 안 하겠다는 거야?”

세상이 무너진 표정을 짓는 천지현에게 도진이 손짓했다.

가리킨 곳은 모니터가 있는 쪽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굳이 지금 인터뷰를 할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 하더라도 좀 나중에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근거는 뭐 따로 설명하기보다는 이번에 찍은 플레이 영상 보면 이해가 될 거야.”

도진은 PC를 조작해 저장된 플레이 영상을 틀었다.

영상을 빠르게 넘기며 초반, 중반, 후반의 내용을 대충 5분씩 보여 주자 천지현은 홀린 듯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야, 천지현! 오늘은 꼭 데려와라! 방송국 PD가 아주 피거품 물었다고! 오늘도 인터뷰 일정 안 정해지면 앞으로 우리 엔터 딱지 붙인 애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섭외 제외라고 샤우팅했다니까?]

상대는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빼액 질렀다.

이에 천지현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만났어요. 만났는데…….”

[“어? 만났다고? 그럼 데려와야지! 뭘 만났는데, 만났는데, 하고 있어!]

“네. 만났는데요… 일단 이거 좀 보셔야 할 거 같아서요.”

천지현은 상사에게 영상을 보냈다.

영상은 점점 더 위로 올라갔고.

도진의 인터뷰 일정을 포함한 모든 스케줄은 취소되었다.

지금보다 더 큰 불을 지필 장작이 손에 들어왔다는 걸 모두가 인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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